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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7:4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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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2504) |
진리를 막는 3대 요소 (요한복음 7장 46-52절)
1. 시기
유대 교권주의자들이 왜 예수님을 잡으러 아랫사람들을 보냈는가? 무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이분보다 많은 표적을 행하시겠는가?”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가장 큰 이유는 시기 때문이었다. 시기는 시비와 관련이 깊다. 사랑이 없이 공의만 따지고 옳은 편에 있는가보다 내 편에 있는가를 보며 편 가르기를 할 때 생기는 감정이 시기다.
나의 일과 남의 일의 경중을 따지며 비교하지 말라. 내가 못하는 일을 남이 하면 시기하지 말고 남이 대신 해주는 것으로 여기고 감사하라.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각자의 위치로 부름 받은 동역자다. 남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휘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실 때가 많다. 위치의 차이나 능력의 편차를 두신 것은 차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더욱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다.
같은 쟁기를 지운 겨릿소로 땅을 갈 때 왼쪽의 안소는 크고 노련한 소다. 오른쪽의 마라소는 안소에 이끌리며 일을 익힌다. 안소도 마라소로 인해 밭갈이가 쉬워진다. 하나님은 나를 성장시키려고 나보다 일 잘하는 안소 성도를 예비하셨다. 안소 성도는 배움의 대상이지 시기 대상이 아니다. 위대한 모델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안소를 존중하고 마라소의 길을 묵묵히 가면 점차 하나님의 일을 멋지게 감당하는 안소의 위치에 서게 된다.
2. 무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시기심에 사로잡혀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고 엉뚱한 저주까지 하자 보다 못해서 바리새인 중 하나인 니고데모가 말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51절).” 니고데모의 말은 정상적인 판단을 위해 2가지 자세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첫째, 듣는 귀를 가지고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자세다. 둘째, 마음을 열고 상황을 잘 알려는 자세다. 무지가 때로는 큰 죄다.
사람이 헛된 욕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는 이유는 대개 체험은 있지만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체험도 필요하지만 자기 체험이 모두의 체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체험이 자기 개인에게는 큰 의미가 되고 변화의 불을 붙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만 그 체험을 공적인 진리로 만들려고 무리한 시도는 무지한 것이고 무지는 광신을 낳는다. 사소한 일상에도 특별계시를 내세우는 광신은 사람을 점점 더 무지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나 꿈보다 하나님의 단순한 말씀이나 뜻을 먼저 잘 받들려고 하라. 하나님의 뜻은 신비한 꿈이나 계시보다 건강한 이성과 말씀 안에서의 깊은 생각을 통해 전해질 때가 많다. 머리도 없이 가슴으로만 미래를 열어갈 수는 없다. 머리 아래의 육적인 욕망을 따라 무지하게 살면 편협성과 폭력성이 커지고 점차 광신적으로 변한다. 말씀을 가까이해야 무지를 극복할 수 있고 자기 욕망과 집착을 이겨낼 수 있다.
3. 편견
당시 무리들 중 일부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하자 반대자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 출신에게서 나오겠는가.”라고 말했다(41절). 또한 니고데모가 정당하게 판단하자고 바른 소리를 하자 그들은 논리적으로 할 말이 없으니까 니고데모를 엉뚱한 말로 몰아붙였다. “너도 갈릴리 출신이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52절).”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갈릴리에서도 선지자가 많이 나왔다. 예수님이 ‘유대 예루살렘 예수’가 아니고 ‘갈릴리 나사렛 예수’란 사실이 상처 입은 인생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를 주는가?
편견에 빠져 무조건 “내가 옳다. 내 말이 옳다.”는 사고를 가지면 참된 축복을 누리기 힘들다. 복된 존재가 되는 위대한 전환점은 “내 말만 옳다.”라고 하다가 “네 말도 옳다.”라고 하면서 의식의 문이 열릴 때다. 그때가 사람이 철이 드는 때다.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들기보다 철이 들어야 한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신앙 연조가 오래 되면서 고집이 들면 안 된다. 자기 생각도 있어야 하지만 자기 생각이 맹목적인 고집으로 변하면 안 된다.
한과 상처와 모든 정신적인 아픔에서 자유하기를 원하면 “네 말도 옳다.”라는 것을 전제로 생각해보려고 힘쓰라. 주관이 없게 되라는 말이 아니다. 남의 생각을 인정하면서도 충분히 바른 진리를 찾을 수 있고 뚜렷한 주관을 가질 수 있다. 진리 안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반드시 2가지가 열려 있어야 한다. 그 2가지는 마음과 귀다. 마음과 귀를 열고 성육신의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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