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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갈라디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063 추천 수 0 2008.10.22 19: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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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갈5:24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 3월 2일 주일2부설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서론>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떤 개인이나 국가도 탐욕에 빠지면 종국적으로 망하고 맙니다. 옛날 황해도의 어떤 금광에서 금을 캐어 서울에 와서 팔려고 금괴를 갖고 배를 탔는데 풍랑을 인천부두에 가까이 와서 그만 배가 파산을 했습니다. 그래서 널빤지에 의지하고 헤엄쳐 나가는 사람, 맨몸으로 헤엄쳐 나가는 사람, 결사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나가는데 이 사람은 금을 잔뜩 싣고 오는지라 금을 버리고 나올수가 없어서 그 금을 모두 허리에 찼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물속에 뛰어 들고 난 다음 다시 소식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금의 무게가 그를 물에 가라앉히고 다시 솟아 오르지 못하게 한것입니다. 탐욕과 욕심은 그와 같습니다. 성경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욕심은 마음의 지혜와 총명을 흐리게 하여 옳은 길을 버리고 잘못된 길 즉 죄의 길로 끌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욕심을 이루려 하고 그 결과는 파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본론>
1. 아담과 타락은 탐욕의 소산
우리는 아담의 생애를 통해서 이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은 바로 욕심의 소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름다운 낙원을 만들어 놓으시고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것에 조금도 지장이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낙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가 와서 그들에게 탐욕을 넣어 주었습니다. 사람이면 자기 분수대로 살아야 됩니다. 사람으로 살아야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은 분수를 뛰어 넘는 탐욕인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에게 마귀는 하나님이 주권으로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실과를 그들은 욕심을 내고 따먹었습니다. 왜였을까요? 하나님처럼 되려는 탐욕 때문인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타락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그 후손들은 죄악과 마귀의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탐욕은 우리에게 분수를 뛰어 넘는 일을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분수대로 살면 될것인데 왜 자기 분수를 뛰어 넘어 욕심을 내다가 부정한 길을 걷게 되고 결국 파멸을 가져 오게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성경에 이스라엘의 첫째 왕인 사울왕은 키도 장대하고 인물도 잘나고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해서 이스라엘 나라에 첫째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해서 들어올 때 아말렉이 그들을 처들어 와서 루비딤에서 거의 전멸 당할뻔 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시고 사울왕에게 말하기를 “아말렉을 쳐서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것없이 짐승까지라도 다 멸망시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명령입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군대를 동원하고 아말렉을 치러 가서 아말렉을 진멸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7절로 19절에 보면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사무엘이 사울왕을 꾸짖은 말인 것입니다. 사울왕이 아말렉을 치고 보니까 거기에 너무나 양과 염소와 소떼가 살찌고 좋은 것이 많거든 이거 하나님이 다 멸하라고 했지만은 그만 그 말씀을 제켜 버리고 그 양과 소떼를 탈취했습니다. 그리고 진멸하지 않고 끌고 왔습니다.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아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때에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하기를 “이 양떼나 소떼는 너무나 살찌고 기름지고 좋기 때문에 백성들이 당신의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 죽이지 말고 살려 오자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변명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꾸짖으실 때 변명하면 안됩니다.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변명하면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무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아 그 왕권을 다윗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탐욕이 그 왕의 자리를 잃게 만든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짓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죄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 결국에는 파멸을 갖고 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둘째왕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분이었습니다. 내 마음에 참으로 합당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일생에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온 이름이 다윗입니다.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는 언제나 다윗을 그리스도의 조상으로써 존경받고 그 이름을 높인 것입니다. 그런 그 다윗이 마음에 탐욕을 품은 결과에 간음하고 살인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저녁 늦게 일어나가지고서 해거름에 기지개를 쓰면서 그는 왕궁위를 거닐고 있다가 저 밑에 내려다 보니 목욕하는 한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여인이 집 뒤에서 목욕을 하고 있으니까 왕궁 지붕에서 다 내려다보이는 것입니다. 그 몸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만 마음에 탐욕이 생겼습니다. 자기 신하를 보내어서 그 여인을 알아보니 일선에 가서 싸우는 자기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간음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딱 눈감고 짓밟아 버리고 우리아의 아내를 데려다가 간음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아의 아내가 잉태해서 잉태한 사실을 다윗에게 고하니 다윗이 이것을 숨기기 위해서 우리아를 일선에서 죽게 만들고 그리고 그 아내 밧세바를 그가 강제로 취해서 아내로 삼았습니다.
성경에는 사무엘하 11장 2절로 5절에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여인이 잉태하매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잉태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러니 다윗은 자기의 욕심을 따라 남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아서 간음하고 난 다음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그 다음에는 살인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을 꾸짖은 것을 보십시오.
사무엘하 12장 8절로 12절에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심은데로 거두겠다는 것입니다. 너는 은밀하게 남의 아내를 빼앗아서 간음하고 그 남편을 죽였으나 나는 그 죄가로 너를 백주에 너의 아내들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 백성들 앞에서 강간당하게 하고 너의 집에 갈이 떠나지 않게 하리라 했습니다. 결국 그 말대로 그 이후 다윗의 집안에서 우환이 떠나지 않았고 그의 아들 압살롬이 결국은 아버지를 왕궁에서 쫓아내고 아버지의 처인 압살롬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입니다. 이 계모들, 이 어머니를 전부 백주에 사람들 보는 앞에서 강간하고 그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칼이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죄라는 것은 부정한 길 아닙니까?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구약에 보면 욕심이 파멸시킨 일들을 우리는 처처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탐욕을 통해서 아담도 타락하게 만들고 사울왕도 왕권을 잃게 만들고 다윗도 처참하게 심판을 받게 한 마귀는 똑같은 탐욕을 가지고 예수님을 아무리 시험해도 예수님은 탐욕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마음속에 욕심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에 욕심이 없기 때문에 마귀가 아무리 유혹을 해도 유혹이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욕심을 버리면 마귀가 우리에게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욕심이 있기 때문에 마귀가 자꾸 부정한 길로 죄의 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2. 탐욕이 통하지 않는 예수님
예수님이 40주 40야 금식하시고 나올 때 마귀가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사용해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하면 탐욕적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 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나는 말씀으로 살지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질을 채우기 위해서는 일하진 않는다.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단호하게 부인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안목의 정욕으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큰 성전의 뾰쪽탑 위에 예수님을 데리고 갔는데 밑에는 예배 드리러 온 사람이 인산인해였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뛰어 내려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고 성큼 내리면 모든 사람이 박수갈채를 치고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명예를 얻고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명예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나는 명예를 얻으려고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자 이성의 자랑을 가지고 시험을 했습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에 올라가서 세상 부귀영화를 다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내게 절하면 이것을 네게 주겠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런 이야기합니다. “왜 예수 안믿는 일본은 저렇게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리고 잘사느냐? 중국보라. 예수를 믿지 않아도 저렇게 중국이 세계 경제 7대국이 되어가고 있지 않느냐? 왜 예수 안믿는데 그렇게 되느냐?” 여러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마귀는 이 세상 권세를 가지고 마귀를 따라가면 부귀, 영화를 줍니다. 이 자리에서도 예수께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 부귀, 영화는 원래 아담의 것이었는데 아담이 내게 넘겨주었으므로 내게 절하는 자에게는 세상 부귀, 영화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믿어도 마귀를 따라가면 마귀가 세상 부귀, 영화도 줍니다. 지위도 주고, 명예도 주고, 돈도 주고, 부자도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 안믿는 다고 해서 반드시 저주 받아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따라가면 세상과 마귀가 주지 못하는 영생복락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주실 뿐 아니라 그 위에 보태어서 영생복락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께 꾀었습니다. “너가 내게 절하면 세상 지위, 명예, 부귀, 영화를 주겠다” 그때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배반했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다만 하나님께 절하고 그만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마음속에 육신의 정욕도 안목의 정욕도 이 세상의 자랑도 없었습니다. 욕심이 없으니까 마귀가 아무리 꾀어봤자 마귀의 꾀임이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들어올수가 없었습니다. 욕심을 버리면 유혹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7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했으니 예수님 마음은 빈마음입니다. 세상의 욕심을 비워버린 마음이기 때문에 마귀가 그 마음속에 죄악의 씨를 심을수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했는데 우리가 마음에 가난하고 비워 버리면 사탄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을 비워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속에 빈곳에 예수님이 들어오시고 천국이 들어오십니다. 그 나라와 그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주님 중심으로 살면은 주님께서는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형통하며 강건하게 해줄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 천국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잠시 있다 사라지는 세상의 정욕, 안목의 정욕, 육신의 자랑을 취하고 그 결과는 멸망으로 들어가는 이러한 비극에 떨어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탐욕을 이기려면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탐욕을 이기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그 마음속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끊임없이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의 노예가 되고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할 것을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은총과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행한 가운데 풍성한 데로 너희 모든 쓸 것을 더하시리라고 했는데 우리가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세상 사탄을 따라가다가 상처 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욕심을 이기려면 우리는 마음속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교육하려해도 집안에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만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이있어 무서워 떨 수 있어야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3장 7절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악을 떠나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섭지 아니하면 모든지 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 우리를 사랑할 뿐 아니라 우리를 엄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 하나님이 무서우니까 악을 떠나지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아니하면 악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잠언서 14장 2절에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패역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고 하나님의 법을 짓밟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경외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 19절에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 하지 아니하면 악이 돼요. 한 집안에도 어린아이가 도무지 아버지, 어머니를 무서워 하지 아니하면 집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행합니다. 집안의 물건을 도적질하기도 하고 집안을 온통 무질서하게 만들어 놓아도 아무도 꾸짖지 않고 두려운 사람이 없으니 자기가 방자히 행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집안에 아버지가 있어 두려운 자가 있으면 여러분 그렇게 방자히 행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탐욕을 이기려면 반드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고 선을 베풀뿐 아니라 우리가 잘못할 때 우리를 꾸짖으시고 채찍질 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아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되 영원히는 참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시간이 와서 하나님이 심판하실때는 어마어마하게 징계하시고 채찍으로 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알아야 악에서 멀리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늘 일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은 우리가 그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악을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말씀이 수술 도구가 되어서 우리 속에서 욕심과 악을 수술해 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자꾸 정결케 하는 것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말씀이 들어와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1절과 102절과 133절에 보면은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리고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말씀이 여러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우리 행보를 지키게 하시고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 되고 내 길에 빛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해야 마귀의 유혹과 계략에 빠져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탐욕을 물리칠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단호하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렇게 말한것처럼 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는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로 6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이와같은 여러분 탐심과 욕심이 안생긴 사람 누가 있습니까? 다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을 단호하게 대적할줄 알아야 됩니다.
요셉 보십시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와서 보디발의 집에서 10년 동안 종살이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매 보디발이 요셉에게 총무직분을 주어서 가사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모습이 준수하고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끝없이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언제나 요셉에게 눈짓하고 요셉을 유혹해서 동침하려 했습니다. 어느날 요셉이 사람들이 없을 때 안채에 사무보러 들어갔을 때 늦게 자고난 보디발의 아내가 잠옷 바람으로 뛰어 나와서 요셉을 끌어 안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보고 동침하자 했습니다. 그때 요셉이 뭐라 했습니까? “당신의 주인이 온 가사 모든 것을 내게 맡겼으나 당신은 내게 맡기지 아니했다. 나는 당신을 취할 수 없다” 단호하게 거부하고 떨치니까 요셉의 잡은 옷이 그냥 벗겨졌습니다. 옷을 벗겨진채 그는 도망을 쳤습니다. 요셉은 단호한 결단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셉이라고 해서 탐욕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종으로 갔는데 주인집 부인이 자기를 좋아해서 눈짓하고 동침하자고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주인집 부인하고 동침하고 여기에서 영화를 누려보자” 그렇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단호하게 뿌리쳤습니다. 말이 쉬어 그렇지 오늘날 요셉과 같은 위치에 처하게 되면 대개의 남자들은 “좋습니다. Okay~ 내일일이야 어떻게 될지 오늘 쾌락을 누리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유혹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혹의 쾌락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내 하나님 앞에서 중범죄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요셉을 귀하게 여기셔서 비록 모함을 당하여 감옥에 3년동안 들어 있었으나 바로왕을 통해서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로 발탁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역사를 보아도 신라삼국을 통일한 위업을 이룬 김유신을 보십시오. 김유신도 청년시절에 한동안 기생집에 출입하며 주지육림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교훈도 받고 그가 한번 결심을 해서 “이러다가는 내가 완전히 파멸하고 말겠다. 이렇게 주지육림속에 빠져서 기생하고 날을 보내다가는 내가 삼국통일도 하지 못하고 내 일생을 망치겠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다시는 그 기생집에 안가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고된 훈련을 하고 말위에 타고 그만 잠이 들었는데 항상 기생집에 가니까 말이 이 숙소에서 그냥 기생집으로 갔어요. 그런데 아 오래간만에 김유신이 말을 타고 기생집으로 오는 것을 보고 기생이 버선발로 뛰어 나와서 “아이고~ 서방님 오십니까?” 하는데 정신을 바짝 차려 보니까 기생집에 와있어요. 김유신이라고 해서 오래간만에 그 아름다운 기생의 보드라운 손으로 자기를 끌어 안는데 들치지 않고 따라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어요? 있었지요. “아이고~ 마 오늘 한번만 더 내일부터 결심하지. 그러므로 오늘 한번만 더 들어가서 기생과 함께 즐기고 오늘 가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유신은 말에서 내려서 칼을 뽑아 가지고서 그 앞에 자기 사랑하는 말의 목을 쳤습니다. 피가 튕기고 말이 뒹그러지고 피가 호수처럼 떨어지고 기생은 놀라 자빠졌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김유신은 칼을 칼집에 꽂고 자기 집으로 도보로 걸어갔습니다. 그러한 결단을 가졌기 때문에 그가 유혹을 이기고 삼국을 통일하는 위대한 유업을 세울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유혹을 물리칠 때 그때 마음에 결단이 있어야 돼요. 담배 끊는 사람 보면 항상 말합니다. “내일! 한 대만 더피고. 내일부터. 내일부터” 그다음 내일이 오면 “아이고~ 내일부터..” “다음달부터..” 그러나 단호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담배갑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나는 오늘부터 담배피지 않는다” 그렇게 결심하면 하나님이 도와 주시고 담배를 안피울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가 된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술주정뱅이었습니다. 알콜중독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술을 안마시겠다고 각오를 하면서도 직장에서 일을 그만두고는 언제나 술집 앞으로 지나옵니다. 안마셔야지... 그러면서 술집 앞으로 지나와서 술집앞에 서서. “안마셔아지.. 안마셔야지...” 그러다가 “아이고~ 오늘 하루만” 그러고 들어갔어요. 만취되어 버립니다. 항상 그는 술집앞을 지나오면서 안마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가지고서는 안마실수가 없어요. 유혹을 곁에 두고서 안당할 수가 있습니까? 나중에 결심하고 직장에서 발걸음을 옮길 때 술집있는 골목으로 가지 않고 술집없는 골목으로 단호하게 발을 돌이키자 그때로부터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유혹을 이기려면 우리 마음속에 단호한 결심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까? 단번에 따먹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했습니다. 단번에 선악과 먹으라고 하지 않았어요. 마귀가 선악과 나무에서 아담과 하와를 보고 “이 과일좀 보세요. 좀 보세요. 얼마나 좋습니까? 색깔도 좋고 아름답고...”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매일같이 가서 바라보았습니다. 나무밑에서... 그러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을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탐욕이 들어왔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바라보면 여러분 탐욕이 생깁니다. 유혹을 받기를 받을 장소에 가서 자꾸 유혹을 바라보고 있으면 유혹에 끌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학교에 있는 주위에 술집이나 비디오방을 없애라는 이유는 애들이 밤낮 그리 왔다갔다하면서 어른들이 하는 놀이를 바라보고 술집을 바라보고 놀이방을 바라보고 왔다갔다 하는데 유혹을 안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집을 세 번 옮겼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묘지곁에 있으니까 밤낮 바라보는 것이 장례식이니까 늘 짐승을 잡던지, 벌레를 잡아서 죽이면서 “어하옹. 어하옹....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하옹” 그 노래만 자꾸 부르는 거에요. 그래서 안되겠다고 시장터로 집을 옮겼더니 이젠 시장에 장사하는 것보고 “어~ 헐찍클찍한 내 물건 사세요. 떨입니다. 떨입니다. 반값으로 드립니다. 빨리와서..” 그런단 말입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어머니가 서당옆으로 집을 옮겼더니 그때부터는 “하늘천 따지 거물현 누룰황 집우 집주 넗을홍 거칠황...” 천자문만 외우고 있어요.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바라보고 마음에 상상하면 그대로 끌려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이기려면 유혹을 피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꾸 신문이나 잡지에 로또복권 해가지고서 부자된 사람만 자꾸 읽어보고 자기도 로또(Lotto) 사가지고서 부자 될걸 꿈을 꾸면 그 다음 로또복권 안살수가 없어요. 수십만원 어치를 사가지고서 숫자 넣는데도 골치를 앓고 숫자 그거 네자리수 기록하기가 얼마나 힘들다고요? 나중에 안되니까 자동차 번호판까지 다 바라보고서 기록을 하고 그렇게 해서 자꾸만 떨어지면 또 유혹을 당하여 또 돈쓰고 또 돈쓰고 마음이 황폐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고보서 1장 14절로 16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 그렇기 때문에 이 욕심이 발동하지 못하도록 바라보는 것을 그치고 상상을 그쳐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사람이 조그마한 일에 욕심을 가지면 욕심이 자꾸 커집니다. 자꾸 커져요. 이솝이야기에 보면 어떠한 사람이 집에 거위를 가지고 있어요. 거위가 황금알을 낳거든... 매일매일 황금알을 낳으니까 “야~ 이거 보통 아니다” 자꾸 욕심이 생기니까 “에라~ 이 황금알을 하루하루 기다릴게 아니라 한꺼번에 다 꺼집어 내겠다”고 거위를 잡아서 배를 갈랐습니다. 그 다음에는 황금알이 없어요. 욕심은 자기 있는 것으로 만족할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10명중에 4명은 복권대박을 꿈꾼다고 말했습니다. 올들어 로또복권에서 고액당첨이 연이어 나오면서 직장인들이 40퍼센트가 로또복권을 샀습니다. 미국의 한 언론사가 1천만달러 약 120억 이상 복권에 당첨되야 5년이 지난 70명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상과 달리 80퍼센트인 70명중 56명이 당첨이후 더 불행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집과 차를 바꾸면 좋았으나 결국에는 거의 다 가정파탄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그 돈가지고 부인은 부인대로 우리 친정집에 나누어 주자. 남편은 나름대로 왜 친정에 줘. 우리 동생들 우리 형제들도 있는데... 돈가지고 친정집 식구하고 시집댁 식구하고 서로 나누어 준다고 싸움이 붙어가지고서 결국에는 난장판이고 때리고 입원하고 파탄에 이릅니다. 이혼하고. 이런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생깁니다. 반면 복권당첨후 행복해졌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몇 명 안되는 사람들은 당첨금의 대다수를 교회에다 헌금하고 사회단체에 기증한 사람들은 행복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번에도 복권당첨한 사람이 1억을 그냥 사회사업에 쾌척했습니다. 그분 행복한 사람이요. 왜, 주는자가 받는자보다 복이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주어 버리면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행복의 강물을 넘치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캐나다에서 가장 부자가 된 깁슨에게 어느날 기자가 비결을 묻자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술마시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고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않고 일하면 부자가 된다” 기자는 “그거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깁슨은 말하기를 “그렇지 다 알고 있지. 그러나 실천은 안한다고.. 실천하면 부자가 될수 있다” 술마시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고 하나님 믿고 십일조 드리고 살면은 부자가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천하지 안잖아요. 여러분 사람은 한번 탐욕에 빠지면 그것을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어느 소매치기가 평생을 소매치기 하다가 감옥살이 하고 나중에 나와서 병들어 죽게 되어서 목사님이 불쌍히 여겨서 그 소매치기에게 간절히 전도를 하고 눈을 감고 안수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눈을 떠보니까 팔목시계가 없어요. 보니까 숨이 넘어간 소매치기가 그손에 팔목시계를 가지고 있어요. 숨넘어 가면서도 그는 팔목시계에 소매치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호하게 탐욕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면 언제나 그 노예가 되어 끌려가서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때문에 기도할때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하라고 주님이 말씀했었습니다. 한번만 하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같이 기도할 때 시험에 들지 마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 욕심의 탐욕의 시험에 떨어져서 마귀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늘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0절로 41절에도 주께서 말씀하기를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시험 즉, 유혹에 빠지지 않게 깨어서 기도해야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유혹을 자꾸 생각하고 상상하고 있고 기도하지 아니하면 백발백중 유혹에 빠집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로 36절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우리가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유혹을 이기고 세상에 부정과 부패의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주님 오시는날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생활에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까? 성경에 말씀하기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다 연약해요. 큰 소리 할사람 없어요. 다 연약해요. 그러나 우리의 연약한 우리를 도와 주시기 위해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와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항상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도 자꾸 가정싸움을 하는 이유가 간단합니다. 우리는 공격과 방어만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공격하고 서로 욕하면 방어만 하려고 하지 그 중간에 화해하고 이해하고 타협할줄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간에나 성도간에도 그렇습니다. 무슨일만 생기면 내가 공격하든지 방어하려고 하지 이해하고 동정하고 화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 인간의 심정은 공격 아니면 방어만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욕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화목하는 그러한 일을 하면은 많은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고 많은 형제간에 싸움이 해결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지요. 우리의 욕심을 버리고 성령이 우리를 붙들어 도와 주시기를 간구하면 성령이 우리를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로 17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보십시오. 성령을 쫓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러므로 매일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성령이여 육체를 대적하여 이기게 해주시옵소서. 그럴 때 성령이 여러분을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탐욕이란 과일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습니다. 그 때문에 그것을 선전하는 마귀에게 넘어가 사람들은 끊임없이 희생제물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죄의 원어는 헬라어로 ‘하마르티아’입니다. 하마르티아는 활을 쏘는데 과녁을 보고 쏘는데 맞지 않고 옆으로 빗나간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빗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탐욕은 우리의 삶을 바른 길에서 빗나가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이길로 가라고 하는데 탐욕이 들어와서 죄의 길로 갑니다. 빗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인생을 빗나가면 가시밭 엉겅퀴에 걸리고 천길만길 벼랑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슬픔과 파멸을 보고 알면서도 사람들은 탐욕을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탐욕이 오면 십자가를 바라 보십시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탐욕과 욕심만 저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분수대로 열심히 우리가 일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 모두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의와 평강과 희락,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탐욕은 처음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습니다. 그것에 굉장한 기쁨과 쾌락이 있는줄 알지만은 나중에 탐욕을 취하고 나면 쓰디씁니다. 창자가 썩어 내려 앉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낙원을 버리게 됩니다. 사울처럼 왕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다윗처럼 자식에게 버림을 당하고 자식이 죽이려고 따라오는 비극적인 인생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은 우리 인생 삶에서 가장 큰 지혜요, 총명입니다. 우리 다 그것 알면서 그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수렁에 빠져서 마귀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과 욕을 못박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성경의 도움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든 사람이 우리 마음속에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욕심없는 사람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탐욕 때문에 항상 빗나간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고
마귀의 올무에 걸려서 비참하게 되고 여생을 고통을 당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오늘 원하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정과 욕을 못박아 버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 주셔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게 탐스런 욕심을 다 제켜 버리고
바른길로 걸어가게 도와 주시옵시고 말씀을 따라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서 주님이 주시는 밝고, 맑고, 환하고,
참된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가지고 살고 천국에 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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