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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갈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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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갈라디아서(18) 진정한 리더십의 원천 (갈 4:1-7)
< 십자가를 지는 삶의 축복 >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철저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을 ‘후견인과 청지기’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일정 기간까지는 율법의 후견인과 청지기에게 마치 종처럼 가르침을 받고 배웁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유업을 얻습니다. 예를 들어, 왕건이 자랄 때까지는 사부로부터 학문과 무술을 배우지만 다 자란 후에는 사부를 휘하에 거느리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런 역사를 이루도록 때가 되어 예수님이 율법 아래 나시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지불해야 할 죄의 값을 대신 치러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4-5절)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6-7절). 어떻게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율법의 저주’ 아래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은혜를 한 시도 잊지 말고 더 나아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말할까요? 자기 변화를 우선하는 삶을 말합니다. 살면서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를 깨닫지 못하고 “저 사람은 좀 이렇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변하려고 해야 합니다.
어느 날, 한 목회자가 말썽을 부리는 교인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서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내가 그를 변화시켜 새 사람을 만들리라. 아니면 추방하리라.”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그를 변화시켜 주소서. 아니면 다른 데로 보내주소서.” 그때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아무개야! 나도 그를 고칠 능력이 없어서 죽었다. 고칠 능력은 없었지만 죽을 능력은 있지? 그를 고치는 것보다 네가 죽는 것이 쉽고 빠르단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주님! 저를 변화시켜 주소서.” 그때부터 목회에 더욱 은혜가 넘쳤습니다. 교인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괴로웠으나 스스로를 죽이려고 하니 문제가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새롭게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변화는 빼놓고 남만 바꾸려고 하면 아무리 금식기도 해도 하나님은 그런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자기가 죽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기도가 천하를 얻는 기도입니다.
< 진정한 리더십의 원천 >
결국 진정한 리더십의 원천은 십자가입니다. 목회자가 리더십을 얻으려면 교인을 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합니다. 목사 한 사람이 죽으면 교인 전체가 목사와 함께 죽으면서 교회가 평안해집니다. 자신이 죽지 않기에 교회와 가정과 나라가 시끄러운 것입니다. 알고 보면 남 책임이 아니라 자기 책임입니다. 그처럼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이면 삶이 달라집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가 되고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임을 실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성도의 최대 목표는 십자가의 삶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십자가의 신앙이 있어야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교회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은 죽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죽지 않고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입니다. 교회에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예수님은 성찬식을 통해 십자가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성찬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주님 안에서 십자가를 지고 나누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의 진리, 십자가의 삶, 십자가의 영성의 핵심 내용은 결국 나눔입니다. 혼자 먹으려고 하면 물성이 발달하지만 나눠 먹으려고 하면 영성이 발달합니다. 오늘날 사회 문제는 영성화되지 않고 물성화되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유를 기쁘게 포기하고 공유를 기쁘게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사유화를 포기하는 마음이 들게까지 만듭니다. 내가 가진 물질이라도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 원하는 대로 써야 합니다. 보통 가난한 사람들은 빚지고 살고 부자는 꾸어주며 살지만 기독교는 반대로 가진 것이 빚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는 자가 임자이고 그 뜻을 거절하면 심판에 이릅니다. 결국 십자가의 영성을 가질 때 위대한 삶이 시작됩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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