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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갈4: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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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갈라디아서(22) 은혜 안에 사는 축복 (갈라디아서 4장 21-23절)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힘이 되는 덕목은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러나 정의와 진리가 없는 은혜와 사랑은 헛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사랑’을 주장하면서 아무 것이나 다 용납하려고 하거나 다 용납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연약성과 실수는 최대한 용납하되 악과 속임수와 사탄적인 것은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은 은혜로 보호해 주었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은 강력하게 물리쳤습니다.
살다 보면 율법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일반적으로 법 하면 속박을 연상하지만 사실상 법은 자유를 주려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길에서 신호등은 일종의 법입니다. 신호등을 볼 때 “저것 때문에 마음대로 길을 못 건너!”라고 속박을 느끼기보다는 “저것 때문에 질서와 안전이 생겨!”라고 자유를 느끼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법은 다수에게 폭넓은 자유를 주려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 안에서 자유를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대개 보면 못된 사람이 법을 속박으로 느끼며 법을 싫어합니다. 도둑이 밝은 보름달을 보고 제 영업을 방해한다고 눈을 흘기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처럼 법의 원래 의도는 자유를 주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도 참된 자유를 위해 주신 것이지 속박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간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계명이 남의 순결을 짓밟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속박이겠지만 순결을 지키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됩니다. 얼마나 고마운 법입니까? 그처럼 율법은 원래 사랑의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율법을 사악하게 보지 마십시오. 자신이 부족한 것이지 율법이 사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율법으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율법주의는 최대한 멀리해야 합니다.
목회할 때 은혜와 진리 중에 어느 것을 앞세워 목회해야 할까요? 한 목사님이 처음에는 진리를 너무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고 자신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은혜를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진리와 은혜가 충만하더라!”고 하지 않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한 말씀이 실감나게 이해되었습니다. 그처럼 율법은 필요한 것이지만 율법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서 은혜가 질식된 율법주의가 되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합니다.
< 은혜 안에 사는 축복 >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아브라함의 두 아들인 이스마엘과 이삭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종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고 또 하나는 자유인인 사라로부터 태어난 이삭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보다 명쾌하게 깨닫습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들의식은 없고 종 의식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자들은 항상 불안하고 무엇인가에 억눌려 삽니다.
율법주의자는 교회를 옮기면 큰 벌을 받는 줄 압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옮기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옮기는 것 자체가 벌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옮기는 것 자체가 벌을 준다면 지금 교인 중에서 95%는 벌 받을 사람일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는 헌신해도 마지못해 벌 받지 않으려고 헌신합니다. 그러다가 조금 무슨 일만 만나면 내가 과거에 무슨 잘못을 했는가 하고 생각하며 과거의 어떤 특정한 죄와 그 어려움을 연결시킵니다. 살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 잘못만 했을까요? 어불성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은혜를 앞세워 사는 사람은 버릇없게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를 알고 앞세워 사는 사람은 대개 감사도 잘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앞세워 사는 사람이 결국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에게는 감사도 없고 평안도 없고 기쁨도 없습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도시에서 울새와 참새가 대화하다가 울새가 물었습니다. “참새야! 저기 인간들 좀 봐라. 왜 인간들은 저토록 불안하고 근심하면서 돌아다닐까?‘ 그때 참새가 대답했습니다. “아마도 인간에게는 우리를 보살펴주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일 거야.” 이 우화는 참새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산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유지되고 있습니다. 불행을 행복으로 볼 수 있는 눈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가진 눈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심리학 교수들이 오히려 부부싸움을 잘한다고 합니다. 그처럼 모든 사람이 약한 존재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살면서 때때로 넘어질 때 하나님은 “왜 넘어졌느냐?”고 묻지 않고 오히려 위로하고 감싸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겉포장이 나쁠 수도 있지만 그 포장 안에는 엄청난 축복의 보석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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