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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갈5: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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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갈라디아서(25) 영성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장 5-12절)
<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
신앙생활의 3원색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지만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5-6절). 믿음이 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성령이 주시는 믿음이고 성령이 주시는 믿음은 곧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란 쉽게 말하면 행동하는 믿음을 뜻합니다. 믿음은 사랑을 통해 역사합니다. 기독교인의 삶의 대전제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상대의 입장에 서는 것이고 더 나아가 상대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망을 가진 인간에게 사랑의 실천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실천을 힘쓰십시오. 인색함은 물질 문제에서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남에게 물질을 잘 베푸는 사람도 인정과 존경을 주는 데는 인색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를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높여줄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야 못난 자아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가장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병자와 나그네는 축복의 전령입니다. 그처럼 누군가를 위해, 더 나아가 사회적인 약자를 위해 자기 삶의 일부를 희생할 때 생명의 빛이 그의 마음과 삶을 환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처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있어야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더욱 실감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 갈라디아 교인들은 믿음으로 굳게 서 있었지만 점점 다른 복음을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넘어갔습니다(7-9절). 그런 율법주의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10절).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에만 맡기지 말고 필요하다면 그들을 출교시키라고 권고합니다. 언뜻 보면 사도 바울이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 같고 사랑이 없는 태도 같지만 사실상 출교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교회를 보호하고 출교하는 그 영혼도 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강력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전후사정을 보면 사도 바울의 강력한 권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다른 복음’은 온전한 구원을 받으려면 믿음에 더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말은 결국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는 말로서 속박에서 벗어나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기쁨과 자유를 얻은 사람들을 다시 율법의 종살이로 만들려고 하니까 얼마나 화가 납니까? 그래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주를 받는다고 말했고(갈 1:9) 심지어는 출교까지 권한 것입니다(12절).
< 영성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
지금 한국교회에서 선포되는 많은 복음도 일종의 ‘다른 복음’입니다. 요새 한국 교회가 쇠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형성된 하나님의 이미지는 부르면 달려오는 ‘비서 하나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어떤 행위를 입력하면 세상적인 축복이 나오는 즉석자판기처럼 인식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욕망으로 통로로 이용하면 악한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소한 일에도 진노하시고 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즉시 일일이 심판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를 지게 하신 하나님은 성도를 끝없는 죄책감으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마음껏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심는 사람들은 성도의 마음을 두렵게 해서 그들을 지배하려 합니다.
그처럼 다른 복음은 참된 복음을 왜곡하는데 왜 많은 사람들이 ‘다른 복음’에 빠집니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율법주의자들이 더 영성이 있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성’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영성은 일상적인 삶을 떠난 거룩함이 아닙니다. 물론 신앙체험은 비일상적인 것일 수 있지만 체험 이후의 삶은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다른 복음’을 따르는 이들은 영성이 있어 보이지만 이기적이고 편협하고 배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다른 복음을 따르는 사람을 멀리하십시오. 필요하다면 과감히 그를 공동체에서 끊어내십시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자신 안에서 율법주의를 과감히 끊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주일에 아무 것도 사먹지 않아!”라는 식으로 기독교적인 사랑의 향기도 없이 남과 구분하는 모습만을 보이는 것은 영성이 있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도 병들게 하고 공동체도 망하게 만듭니다. 항상 은혜의 중요성을 깨닫고 은혜 안에 있기를 힘쓰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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