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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인식의 혁명적 전환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

갈라디아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972 추천 수 0 2012.12.16 23: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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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갈2:20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1.9.21 주일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자기 인식의 혁명적 전환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
갈 2:20

‘나’라고 할 때 그 ‘나’는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내 마음이 ‘나’입니까? 아니면 내 몸이 ‘나’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 속에 일어나는 감정이 날까요. 또 그것도 아니라면 삶의 주위의 발생하는 잡다한 일들, 직업적인 업무, 직업인가, 가족일까요?

그러나 사실 나의 정신, 육체, 감정, 주위의 여러 가지 일들은 ‘내’가 사용하고 체험하는 것이지 ‘나’ 자신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이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나는 몸을 가지고 있다. 나는 몸을 쓴다’ 하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수술할 때 마취를 하면 몸은 그대로 살아 있지만 나는 전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때 나는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또 감정이 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즉 사랑, 미움, 두려움, 믿음 같은 것이 자기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몸은 감정의 명령 아래에 있으며 그것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이런 말이 인간의 진실을 드러내는 솔직한 것인 양 취급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의 노예임을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하시즘)

어떤 사람은 인간은 지적인 존재라고 믿고, 정신 또는 이성이 가장 고귀한 것이고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신이 육체라는 도구를 움직이고 지배한다고 생각하고 지적인 자아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것의 고대적 형태는 지식이 자기를 구원한다고 믿은 영지주의이고 오늘날의 형태는 지적인 것만 최우선시하는 주지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난 어떤 존재라는 사실은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지능이 차이가 있고 인간의 지식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자꾸 바뀌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나’가 체험하는 것이지 ‘나’ 자신이 아님이 분명해지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때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대개 인간이 도덕적인 존재라거나 종교적인 존재라는 좁은 의미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영적’이라는 의미를 비물질적이라는 의미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그리스철학에서 의미하는 영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천한 물질과 분리되는 고상한 천상의 본질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인간은 세상에 대해서 비관적이 되고 영적인 비전은 피안적이고 타계적인 것이 됩니다. 이런 사고는 잘못되면 열광주의나 광신주의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성서도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덕적 존재나 종교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이런 위대한 자아를 찾은 대표적 인물은 바울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비참한 존재요 죄에 종노릇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죄 속에서도 그 죄를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 속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고,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에다 나를 사로잡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롬 7:19-21)

바로 이 구절 다음에 바울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롬 7:25).

금방 모든 게 끝난 것 같이 절망적이었는데, 한순간에 그것이 뒤집히고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180도로 방향전환이 되었습니다. 탄식이 감사와 찬양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바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주셨다”는 말을 할 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바로 앞에서 바울은 자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가,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으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또한 분명히, 그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롬 6:3-9).

이것은 세례의 의미, 즉 그리스도인으로 입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의 부활하심과도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를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그 십자가에서 내가 같이 죽음으로써 옛 자아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살아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자기가 죽는 것으로 의식합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자기 몸과 의식을 초월하는 자아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자기 초월입니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의미의 초월입니다. 이것은 영웅적 초월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옛 자아로부터,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의 초월입니다. 바로 이런 신학을 가장 분명하게 결정적으로 집약한 것이 오늘 읽은 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 2:20).

바울은 외모나 생각이나 성품은 전과 다름이 없었죠. 하지만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연합한 그는 이제 어느 가문의 유대교 신자 바울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려고 하는 삶을 대신해서 사는, 그리스도가 삶의 목표가 되고 의미가 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노력해서는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도 없고 도덕적으로 완벽할 수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렇게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죄 된 자기 자신이라도 예수와 함께 죽고 이제 자신이 아니라 예수가 그 안에서 살기 때문에 이제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신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엄청난 은혜의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신체나 감정 이성 같은 어떤 체험할 수 있는 것을 자기 자신으로 착각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이런 모든 것을 초월하는 자아를 의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초월은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심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때까지 ‘내 안에 뭔가가 들어온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내 안으로 들어온 그것으로 인해 ‘새로운 나’가 된다는 것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함으로 자신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신비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현실을 떠난 어떤 몽환적인 상태에서 그렇게 느낀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현 실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살고 우리의 삶이 바로 그리스도의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사실에서 인간은 육체만도, 감정이나 정신만도 영적인 존재만도 아닌, 그것을 훨씬 더 뛰어넘는 신적인 존재임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스스로 신이 되려는 뱀의 유혹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로서 신과 같이 위대한 삶이 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의식에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밝혔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듣고 신성모독이라고 하면서 예수를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희의 율법에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고 하셨다”(요 10:34-35).물론 유대인에게 대응하는 맥락에서 강조법을 쓰신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을 그 누구도 해칠 수 없고 침범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로 확립하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은 틀림없습니다.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시편 82편에 나오는데, 여기서 ‘너희’가 인간 통치자들을 의미하는지 천사들을 의미하는지 논란이 분분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고 한 것으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속에 산다고 할 때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바로 이런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적 의미에서 영혼불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이제 우리의 신 이해는 바뀌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신들”이라고 불러주신 우리가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비하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이 그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자꾸만 열등하게 여기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무슨 거창한 이름을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고 하셨는데 히브리어로는 “나는 나다”라는 의미입니다(출 3:14). 이것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시지 않은 채 단지 하나님의 주체성만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름 대신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은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그 안에서 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삶을 통하여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느냐?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막 12:26-27).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하나님은 바로 “나의 하나님” “허태수의 하나님”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 “아무개의 하나님” 이렇게 불리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이름이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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