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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갈6: 6-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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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좋은 씨를 뿌리고 좋은 나무를 심자
본문: 갈 6:6-10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스알데 힐이라는 작은 마을에 요한이라는 집배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마을 부근 약 오십 마일의 거리를 매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해왔습니다. 어느 날 요한은 마을로 이어진 거리에서 모래먼지가 뿌옇게 이는 것을 바라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야 하는 길이 이렇게 황폐하다니… 앞으로도 오랜 기간을 흙먼지만 마시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요한은 정해진 길을 왔다갔다 하다가 그대로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황막감을 느낀 것입니다. 풀, 꽃 한송이 피어 있지 않은 모래 길을 걸으며 요한은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무릎을 탁 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일이고 그것이 매일 반복되는 것이라면 그저 구경만 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내 일을 하자! 아름답지 않은 저것은 아름답게 만들면 되지 않은가?" 그는 다음날부터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우편배달을 하는 짬짬이 그 꽃씨들을 거리에 뿌렸습니다. 그 일은 그가 오십여 마일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그가 걸어다니는 길 양쪽에는 노랑, 빨강, 초록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습니다. 봄이면 봄꽃들이 활짝 피어났고 여름에는 여름에 피는 꽃들이, 가을이면 가을 꽃들이 쉬지 않고 피어나 그가 가는 길을 환영해주었습니다. 그 꽃들을 바라볼 때마다 요한은 더 이상 자기의 인생이 외롭지도 황막하지도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긴 거리에 이어진 울긋불긋한 꽃길에서 휘파람을 불며 우편배달을 하는,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기들도 주머니에 꽃씨를 넣어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찾으리라’(전11:1).
미국에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경건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의 후손 400명을 조사해 보니까 대학 총장이 14명이 나왔고 교수가 100명, 복음 사역자와 선교사가 100명, 판사 변호사가 100여 명이 나왔고 그 옛날에 박사가 6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부모가 복 받을 씨를 심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십시오.
우리 인간은 매일매일 미래를 위한 씨를 심으며 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악한 씨를 심으면 고통과 저주의 열매를 거두고 선한 씨, 복 받을 씨를 심으면 우리 자신과 후손들이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악한 씨를 심고 좋은 열매를 거두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욕망을 가진다면 그것도 큰 바보입니다. 매일매일 자신을 위해서 후손을 위해서 축복의 씨앗을 심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6장 7-9절을 다시 한 번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하였습니다.
잠언 11장 18절 말씀에도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또 시편 126편 5절에서 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였습니다.
호세아 10장 1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또 야고보서 3장 18절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하나의 진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지 신령한 의미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입니다. 곡식을 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좋은 씨든 나쁜 씨든 씨를 뿌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매일의 생활은 무엇을 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는 생각, 우리의 하는 말, 우리의 행동,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모두 다 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 매시 무엇을 뿌리고 심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뿌리고 심은 그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좋은 씨를 뿌리고 싶으면 먼저 마음을 올바르게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만한 마음, 음란한 마음, 거짓된 마음, 탐심의 마음을 가지고는 절대로 좋은 씨를 뿌릴 수 없습니다. 마음이 쌓이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행동이 쌓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오래되면 결국 성품이 되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 5- 6)
우리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오래 참음의 마음이 있어야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아서 언젠가는 그 열매를 거두는 날이 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36)라고 하셨습니다.“말은 씨앗이다”라는 말은 진리입니다. 그 사람이 평상시에 복 받을 말을 하느냐, 악한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복을 받으며 살수도 있고 불행의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저는 말을 잘못하면 복된 생활을 못하고 목회에도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부흥회도 잘하고 인물도 좋은데 별명이 “면도칼”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책망하고 쪼아주는 말을 잘해서 어떤 분은 그 분의 입이 무서워서 같이 앉아 식사도 안 하고 피해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그 분은 10년 넘게 병상에서 지내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잠언 18장 20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또 한 목사님은 부흥사이기도 하고 설교도 깊이 있게 잘하는 분인데 가만히 그분 앞에 앉아 대화하다 보면 다른 목사들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깎아 내리는 말을 하고 형편없는 인간으로 폄하시키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설교를 깊이 있게 잘하고 부흥회를 인도하면 많은 교인들이 은혜를 받는데도 목회가 되지 않고 고생만 계속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함부로 남을 비판하고 악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남을 깎는 말을 하지 말고 칭찬하고 높여주는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12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남에게 속아서 손해보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남에게 속아서 손해를 보는 것보다 스스로 속아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가령 만 원짜리 물건인 데 만원 주고 사면 괜찮은데 5천 원 한다니까 싼값에 매력을 느껴서 삽니다. 이것이 스스로 속는 일입니다. 어떻게 만원 상당의 물건이 5천 원 할 수 있습니까? 도둑 물건 아니면 가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지나치게 비싼 것만 찾는 사람도 스스로 속는 일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허영심 때문에 속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 있은 일이지만 고급 보석만을 찾아다니며 사들이는 별난 여자들이 있었는데 물론 어떻게 모은 돈일는지 모르지만 돈 쓸데없으니까 보석 사들이는 것을 취미로 삼았습니다. 그저 좋은 것이다, 귀한 것이다, 비싼 것이다고 하면 무조건 사들였습니다. 이것이 법에 벌려 나중에 조사를 다 해 봤더니 물론 진짜도 있었지만 대개는 가짜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스스로 속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반면에 마귀는 모두가 거짓말입니다. 속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진실하면 마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 거짓된 생각을 품고 있으면 마귀는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이 남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속일 줄로 아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입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를 믿는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생활이 따르지 아니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일이요 결국은 하나님을 속이려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누구에게나 심는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공의를 나타내지만 이 인과의 원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 가 없습니다. 아무런 씨도 뿌리지 않은데서 무엇을 좀 거둬 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이거 어딘가 좀 잘못된 사람일 것입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지 않습니까? 배우지 않고 알 수 있습니까? 힘써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 가정의 학생들 가운데 대학 입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이 다 소원하고 지망한 학교에 합격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꼭 기억할 것은 기도만 해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야 합니다. 실력을 배양했어야 합니다. 실력은 기르지 아니하고, 공부하는데는 게을리 하고 좋은 학교에만 가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입니다. 심어야 거둡니다. 그리고 심는 대로 거둡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는 대개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농촌 생활을 해보신 분이 많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 평범한 진리를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가령 벼 심으면 벼를 거둡니다. 배추씨를 심으면 배추를 거둡니다. 무우씨를 심고 상추를 먹으려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하십니다. 따라서 그 거두는 시기도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것은 일찍 거두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늦게 거두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꼭 기억할 것 은 언제나 심었으면 거둘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서 볼 때, 우리 사람들은 다 무엇을 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매일매일 심는 것은 반드시 거둘 때가 옵니다. 가령 여기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저 매일매일 말하는 것이 나쁜 말을 씁니다. 생각하는 것은 못된 생각만 합니다. 생활하는 것을 보아도 좋지 못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성품은 자연히 좋지 못하게 될 것은 당연합니다. 개인의 성품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사업도 그렇고, 우리 가정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습니다. 오늘에 심은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언젠가는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것 심으면 좋은 것 거두고, 나쁜 것 심으면 나쁜 것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잠언 29장 2절에 보면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 성이 탄식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의로운 씨를 뿌려 놓으면 평안과 즐거움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씨를 심어 놓으면 불안과 싸움, 원망과 탄식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일에 따라서 어떤 것은 오늘 심고 내일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현재에 심은 것을 장래에 거둡니다. 봄에 심은 것을 가을에 거둡니다. 모든 곡식이 대개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보면 부모가 심은 그것을 그 당대에 거두는 경우도 있고 자식대에 가서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심은 것을 현세에서는 거두지 못하고 내세에 가서 거두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으면 언제 거두든지 반드시 거두고야 맙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보면 사람은 대개 두 가지 종류의 씨를 심는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그대로 두 가지 종류입니다. 물론 그 표현은 지루한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하지만 결국은 두 가지입니다.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 등....
본문 말씀에서 육체를 따라 심는 사람과 성령을 따라 심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육체를 위하여 정욕을 심으면 음란과 부패를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악을 심으면 무자비와 포악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미움을 심으면 싸움을 거두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둡니다. 여러분, 구약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라는 인물이 나오지요. 그 사람을 생각하면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아주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속여서 형이 받을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형을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가로챘습니다. 외숙이요 장인을 속여서 자기 양의 수를 늘였습니다. 얼마 나 간사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야곱이 자녀를 낳아 키울 때 그 자식들에게 또 속았습니다. 요셉 의 일로 얼마나 가슴아파했습니까? 그러니까 이 원리는 어김이 없습니다. 매일 태양이 어김없이 뜨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너무 분명한 사실입니다. 혹 자녀된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면 효도를 심은 사람은 그가 자녀를 키워서 효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못하고 불효의 씨를 심고 자녀에게서 효도를 거두겠다고 하는 것은 천리에 어그러지는 일입니다. 행한 대로, 심은대로 거둡니다. 구약 열왕기에 보면 아합왕의 왕후 이세벨이 얼마나 악독한 여인이었습니까? 바알신을 신봉하는 이방 여인으로서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신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핍박하고 학살하였습니다. 더구나 나봇이라는 무고한 사람의 포도원 하나를 빼앗기 위해서 모략 중상하여 누명을 씌워 무참히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이렇게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린 이세벨이 어떻게 되었어요? 자기도 종래는 무참하게 피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이조 500년 역사를 여러분이 기억하시지요? 한 마디로 말해서 당파 싸움의 역사 아니었습니까? 서로 모함하여 죽이고 권세를 차지하고, 또 모함 당해 죽고 권세를 빼앗기고... 이런 악순환의 반복이었습니다. 심으면 그대로 거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 천대하면 내가 또한 천대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 아프게 하면 반드시 내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 서의 하만의 모략과 그 결과를 우리가 잘 기억하거니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요 교훈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기억해서 나쁜 씨를 심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씨 심으면, 악한 종자 심으면 반드시 악한 열매 거둡니다. 반면에 성령으로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의를 뿌리면 상이 확실합니다. 선과 덕과 의를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친절을 거둡니다. 자비를 심으면 화평을 거둡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선으로 갚음을 받습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는 말이 있지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사랑과 친절과 웃음으로 대해 주세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기세요. 그리고 양에 따라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는데 영적인 세계에도 꼭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 절에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우리가 선한 일을 조금하여도 하나님은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십니다. 열매는 더 많이 얻게 됩니다.
잠언 19장 17절에 보아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꾸어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꾸인 것만큼 갚아 주실 까요? 저는 절대로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그보다 몇 10배 갚아 주실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우리 인간도 자녀에게 꾸었던 것을 그대로 줍니까? 더 보태서 줍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자녀에게 꾸신 것을 그대로 갚아 주시겠습니까? 풍성한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잠언 11장 24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 아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구제를 너무 많이 해서 패가망신했다 하는 말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고래로 욕심부리다가 망한 사람은 많아도 남을 도와주고 구제하다가 망한 법은 없습니다. 선을 심으면 선을 많이 거두는 것처럼, 악을 심으면 악을 많이 거둡니다. 호세아 8장 7절에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를 여러분 기억하시죠? 우리가 심은 것을 언제 거둡니까? 곡식은 대개 봄에 심어 가을에 거둡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우리 주님 오실 때를 말하는데 그 때를 누구도 분명히 모르지마는 거둘 때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요 분명합니다. 물론 현세에서 거두는 것이 있습니다. 또는 후손대에 가서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세에 가서는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거둘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매일매일 무엇을 심습니까? 육신의 씨를 뿌립니까? 성령의 씨를 뿌립니까? 악의 씨를 뿌립니까? 의의 씨를 뿌립니까? 의의 씨, 선의 씨, 성령의 씨를 뿌리는데 열매가 없습니까?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러분의 평생 살아가는 동안 의의 씨를 뿌리세요. 얼른 열매가 안 맺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계속 의의 씨를 뿌리세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계속합시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있어서 교육문제는 가장 큰 걱정거리이며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 만으로는 앞날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불신 속에 부모와 아이들은 흔들리고 있으며 외국 이민의 주요한 목적 중에 자녀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미국의 교육도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교내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나는가 하면 학생들의 약물중독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학교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홈 스쿨링'(Home-Schooling)이 작년 170만 명을 넘어 올해에는 2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교육은 전 세계의 문제가 되어 가는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 답은 학생들을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창조자를 바라보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아이들 가슴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채워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육에도 씨를 뿌리는 출발이 중요하고 교회는 이러한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나라의 초기 선교사들은 의료선교와 교육선교에 씨를 뿌렸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려 절망과 허무함으로 일생을 포기하려 할 때에 치료해주고 주님에게 인도하는 선교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또한 경신학교, 배재학당, 이화학당, 숭실대학, 연세대학과 같은 '미션 스쿨'을 설립하고 수많은 분야에 인재를 길러내어 사회 각 부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였습니다. 현재의 교육은 힘있는 기업과 정부가 맡고 있지만 학교의 위기, 청소년의 방황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학교로 만들어 다시 생명력 있는 학교로 소생되고 회복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인생은 시작과 출발이 중요합니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어려서 먹는 보약과 같이 일생동안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코미디언 이주일씨는 죽으면서 '1년 전에만 담배를 끊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학생의 경우, 담배는 3개월만 피워도 벌써 중독이 된다고 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담배 한 대가 인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현대의 사람들은 쉽게 시작하지만 그 시작은 바로 멸망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주님의 복음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멸망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기독교는 심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고 땅에 심기우는 한 알의 밀알처럼 죽음으로 심게 하심으로 많은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심는 것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바울은 심고 아볼로가 물을 주고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햇볕을 통하여 자라나게 하시기 때문에 농부는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좋은 일을 믿음으로 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서 하루하루 우리의 모든 삶이 심고 뿌리는 기쁨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넷째, 사람은 좋은 것, 거룩한 것을 심어야 합니다.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잠 22:8)
미국의 험준한 산 속에서 금을 캐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홀로 산 속에 들어가서 몇 주일 동안 금을 캐는 일에 열중하던 중에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는 물론이고 꽃도 볼 수 없자 삭막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따금씩 꽃씨를 사 주머니에 넣고는 산길을 오고 갈 때마다 길가 여기저기에 뿌렸습니다. 겨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쉬다가 이듬해 봄에 그 길을 지나다 보니 길 곳곳에 꽃들이 만개하여 별세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잠시 번성하는 듯해도 그 악이 자라서 재앙의 열매를 맺으면 모든 기세는 쇠하여집니다.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마음 씀씀이는 모두 하나님 나라에 심는 보이지 않는 씨입니다. 좋은 씨는 좋은 열매를 맺지만, 악한 씨는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좋은 말, 선한 행동 착한 마음으로 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거룩한 것을 심는 사람은 거룩한 것을 거두고 영원한 것을 심는 사람은 영원한 것을 거두게 됩니다. 농촌에서 사는 사람은 자연의 법칙, 하나님의 법칙을 배우는데, 그것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법칙입니다. 성도의 삶은 거룩한 삶을 심는 것인데 이것은 예배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 여행자가 아주 황폐한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무와 물이 없는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그때 한 양치기가 있었는데 그 목자의 이름은 엘제아르부피에, 그는 30마리의 양과 함께 그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목자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무언가를 열심히 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도토리였습니다. 그는 폐가에서 양을 돌보면서 하루에 100개씩 도토리를 심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3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여행자는 군인이 되어 우연히 예전의 그 황폐했던 땅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은 아름다운 숲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엘제아르부피에가 심어 놓은 밤나무, 참나무가 절묘하게 어울려 환상의 숲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남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프로방스 지방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황폐한 마음밭에 희망의 숲을 만듭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복음의 씨앗을 뿌립시다. 우리는 열심히 소망(희망)의 씨, 예배의 씨, 감사, 찬송의 씨, 기도의 씨, 사랑의 씨, 복음의 씨, 전도의 씨를 뿌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 하루를 살아도 좋은 씨를 뿌리고 좋은 나무를 심고 살다가 천국의 열매를 거두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매일 좋은 씨를 뿌리고 좋은 나무를 심으면서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듣고 깨달아 행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그리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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