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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사랑, 남편 존중

에배소서 조용기............... 조회 수 3787 추천 수 0 2009.05.01 22: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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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엡5:22-33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4년 5월 9일 주일2부설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서론]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아내사랑, 남편존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가족과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가 부부이며 부모, 자녀입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이 가족과 사회의 기초단위가 흔들리고 파괴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한 부부이혼율과 낙태, 아동학대 등이 이 사회를 병들어 가게 하고 있습니다.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 쾌락주의의 만연으로 가족의 신성한 울타리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상대적 이용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부의 결합, 가족의 의미를 하나님 말씀으로 세겨 보고자 합니다.

[본론]
1. 인간 창조
첫째로, 인간창조에 관한 것을 우리가 깊이 알아 보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무신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통하여 모든 존재를 설명하려고 하니까 얼토당토 않는 이론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무신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우주는 큰 폭발로써 이루어졌다. 즉, 빅뱅으로 이루어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우주는 물질이 한점에 모여 대폭발이 일어난 결과 현재 우주는 처음에 폭발을 일으킨 여파로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안계시다고 사람들이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 별도리없이 그렇게 만들어낸 이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단순하게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시니라’ 얼마나 간결하고 완전한 해답입니까? 그리고 무신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은 단세포에서 진화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연히 무생물에서 살아있는 단세포가 생겨서 그것이 점점 발전해서 오늘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찰스 다윈이 만든 진화론의 원리인 것입니다. 사실 진화론을 처음 주장한 찰스 다윈은 노년에 한 부인이 그를 방문하였습니다. 마침 그때 다윈은 그가 존귀한 책이라고 명명한 히브리서를 읽고 있었는데 부인이 그에게 진화론을 받아 들인 사람들이 창조론의 창세기 기사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에 대해서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다윈은 고민스러운 얼굴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당시 나는 젊었고 미숙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항상 의심을 갖고 질문하거나 내 의견을 말하곤 했지요. 그러나 내 생각이 순식간에 학계에 퍼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그들의 종교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다시 돌이킬수만 있다면...” 그 탄식을 하고 수주일후에 그는 세상을 떴습니다. 오늘날 진화론은 그 증거가 너무나 미비해서 대단한 믿음이 아니고는 받아들일수 없는 허구적인 이론인 것이 밝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천문학자인 프레도 호일박사는 원래 진화론자였습니다. 그런데 생명이 저절로 생길 확률을 계산해 보니 간단한 세포 하나가 생길확률은 10의 16만 7천제곱분의 1이라는 확률이 나와 깜짝놀랐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도저히 과학적인 생각으로도 우연히 생명이 생길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생명이 우연이 생겨날 확률은 수많은 부속품이 쌓인 고물상에 회오리 바람이 불어 모든 부품이 하늘로 올려 보낸후에 이 부품이 땅에 떨어지면서 단한번만에 우연히 보잉747점보 여객기가 조립될 확률보다 더 작다는 것입니다. 즉, 생명은 결코 저절로 생길수 없는데 이 지구상에 생명으로 꽉차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힌후에 그는 창조론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메바에서 진화되어서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좁은 식견으로 인간이 주장하는 진화론을 성경은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인간도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6절로 7절에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1절로 2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인류의 시작은 우연히 진화되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부부의 시작
오늘 그러므로 두 번째 생각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서 부부의 시작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독자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어 놓으시고 난 다음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않다. 혼자 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돕는 베필을 지어서 남자와 여자가 교제와 협력과 대화를 통해서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별도리없이 서로 교제하고 협력하고 대화하는 부부가 있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1999년 대한보건협회 학술지의 보고에 따르면 이혼 남녀의 평균수명이 배우자가 있는 남녀보다 평균 8년에서 10년 짧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남자의 경우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수명은 74.8세, 독신 남자는 65.2세로 약 10년 정도 차이가 나며 여성의 경우도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수명이 78.8세인데 반하여 독신여자는 69.3세로 남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약 10년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혼자살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10년 일찍이 갈 각오를 해야 되겠다 그말씀인 것입니다. 미혼자 또는 이혼자의 경우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는 달리 심리적 갈등을 해소할 기회가 적어 50대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독주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래 남자와 여자를 지어 놓았을때는 결혼해서 서로 협력하고 대화하고 교제하면서 살도록 만들어 놓고 그 가운데 생명의 은혜가 넘치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부부가 있어야 자녀가 생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많은 자녀를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자녀를 생산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잘 길러 내는 것이 뜻입니다. 부부의 생활이란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가 만나면 항상 경쟁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으면 둘이가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누가 먼저냐, 누가 나중이냐 서로 경쟁상태에 들어갈수 있는 위험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보면은 창세기 2장 21절로 22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그것으로 하와를 만든 것입니다. 그럼 요사이 말로 남편이 오빠가 되고 아내가 동생이 됩니다. 뭐 성경이 그렇게 안가르쳐도 요사이 젊은 부부들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았으면서도 남편을 오빠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보면 남자가 먼저나고 여자가 나중 났습니다. 남자가 리더가 되고, 여자가 뒤를 따라가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대게 어떠한 가정도 여자가 리더가 되고 남자가 뒤로 따라가면 그 가정이 별로 편안하지 못합니다.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남자가 언제나 앞서고 여자가 뒤에서 도와주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 놓은 원리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남자는 도움을 받는자고 여자는 도와주는 자로 만들었습니다. 돕는 베필을 지어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6절에 보면 이것이 여실이 나타났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여기 보십시오. 먼저 마귀가 여자하고 대화하고 여자가 선악과를 보고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럽기에 따먹고 그것을 가지고 남편을 설득해서 먹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도움을 받는 남자는 도와주는 여자의 말을 듣고 난 다음에 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왜 여자가 말이 많으냐 그러는데 원래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말이 많습니다. 말을 많이해야 도와주지요. 우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도 보면 학생들이 도움을 받고 선생은 가르치기 때문에 선생이 말을 해야지 선생이 아무말도 안하고 있으면 학생을 가르칠수 있습니다. 남편을 도와주라고 보낸 아내이기 때문에 도와주려면 모든면에 간섭도 많이하고 말도 많이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간섭을 많이하고 말을 많이한다고 불평을 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을 어떻게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내를 남편을 돕는 베필로 창조하였습니다. 여기서 돕는 자라는 것은 히브리어로는 ‘에제르케네그도그’라고 말합니다. 이 의미는 ‘도저히 도움이 없이는 지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래 남자는 여자의 도움이 없이는 지탱하기가 곤란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말인 것입니다. 아내의 역할을 가르키는 말은 다양한데 탈무드에서는 아내를 남편의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서 쉼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탈리아 속담에는 아내가 없는자는 입과 가지가 없는 나무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의 소중함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돕는 베필로 창조된 아내는 남편에게 꼭 필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자기가 유명해진 것은 일생동안 함께 살며 내조해준 아내 헬레네 브라스라의 절대적인 공로라고 그 회고록에 기록해 놓았었습니다. 남편의 승패는 90%가 아내의 내조에 달려 있다고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아내의 돕는 손길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 역사에서 위대한 일을 성취한 사람들은 배후에 반드시 그 어머니나 아내가 있어서 도움을 베풀어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해주는 부부는 그렇게 하지 않는 부부보다 평균수명이 5년이나 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남편이 출근할 때 꼭 문밖에서 포옹해 주고 키스해 주세요. 5년 오래삽니다. 밉거든 그렇게 하지 마세요. 5년 빨리 죽습니다. 자동차 사고도 현저하게 적어진다고 합니다. 직장의 결근률도 50% 감소되며 수입은 25% 증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번 안아주고 키스해 주는데 월급을 25%나 많이 벌어온다면 그렇게 할만하지 않습니까? 예쁜 아내는 눈을 즐겁게 하고 어진 아내는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자꾸 요사이 젊은 사람은 얼굴 이쁜 아내를 찾는데 얼굴이 이쁜 것은 몇 달안가서 사라집니다. 마음이 착하고 어진 아내는 평생토록 귀엽고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선한 아내, 정말로 보배롭고 귀한 아내인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머리와 지체의 관계입니다.
골로새서 2장 19절에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남편이 머리가 되고 아내는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순서는 머리가 먼저오고 다음은 지체가 오지만 그러나 머리와 지체는 하나로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체는 머리에게 순종하고 머리는 지체를 인도하여 가는 것입니다.상호부조적인 관계지만 언제나 머리가 리더쉽을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에서는 내리 사랑하고 지체는 위로 존경의 관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9절에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했고,
골로새서 3장 18절에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되고 그 우리의 맡은바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분명히 다할 때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질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에게는 에베소서 5장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요구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실때에는 교회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청결하게 만들어 준것입니다. 고통을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남편은 아내의 삶에 모든 짐을 대신 짊어져 주고 고통을 감당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8절로 29절에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몸이야 우리가 언제나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잘 쉬게 하고 정성을 다하여 보양하지 않습니까? 아내는 자기 몸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남편은 자기 몸을 보양함 같이 아내를 보양하고 돌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명령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5장 22절로 24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복종이란 말은 굉장히 강한 말입니다. 순종이란 말은 내가 따르고 싶으면 따르고 안 따르고 싶으면 안따를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종은 무조건 따라야 됩니다. 좋을때도 따르고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때도 따르는 것이 복종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종합니다. 주님께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옵니다.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앉으라면 앉습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절대 복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남편에 대해서 복종하라. 기분좋을때만 따라가지 말고 기분이 나쁠때도 공경하고 따라가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 동시에 말하기를 에베소서 5장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을 하고 그 다음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라는 것은 굉장히 강한 어조인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존경하라. 오늘날 많은 가정이 파괴되는 이유는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고 사랑하지 않는것과 함께 아내가 남편을 멸시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가정이 원만하게 이끌려 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경외하는 이 두가지가 연합되면 좋은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의 법적 관계를 주님께서는 성경에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6절로 9절에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몸이 될찌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더라”
요사이는 부부간에 의견이 맞지 아니하면 쉽게 재판소에 가서 이혼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은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으로써 나누어지게 할지언정 사람은 결혼문제에 대해서 간섭하지 말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폴란드의 귀족출신 캐서린이 스웨덴의 왕자 존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권력다툼에 휘말려 그녀의 남편 존이 형 에릭에 의해 평생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캐서린은 급히 자기 남편의 형 왕을 찾아갔습니다. “폐하! 저를 제 남편이 있는 감옥으로 보내 주십시오.” “캐서린 그대의 남편은 평생동안 다시는 햇볕을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네. 그대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폐하!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존 왕자는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 저의 변함없는 남편입니다.” 왕은 측은한 눈빛으로 캐서린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대의 남편이 감옥에 갇힌 지금 결혼서약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러자 캐서린은 자기의 결혼반지를 빼들고서 말했습니다. “폐하, 이 반지에 세겨진 문구를 봐주십시오.” 그 반지에는 ‘오직 죽음으로써만’이란 문구가 세겨 있었습니다. 왕은 그 문구를 읽은후 캐서린을 설득시키는 일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캐서린은 남편과 함께 감옥에서 17년을 보냈고 국왕 에릭이 사망한 후에야 감옥에서 풀려나올수 있었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나 환경이 부부를 갈라 놓을수 없다는 것을 이 체험을 통해서 잘알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혼과 재혼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1절로 32절에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그러므로 남편에 의해 이혼을 당하면 자기가 잘못이 없어도 다른데 시집가면 간음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아내를 버린 남자도 간음하고 버림을 받은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7장 10절로 11절에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찌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살아있는 동안에 이혼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서로이 의견이 맞지 않아서 갈리거든 “좋다. 갈려서 그냥 있어라. 그러나 또 마음이 달라지거든 도로 합쳐라. 그러나 갈라지고 난 다음 남편이 다른 여자하고 간음하는 것이요, 아내가 다른 남자하고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타협없이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상황따라 이혼을 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25세에서 35세 미혼 2,118명을 대상으로 이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생각하는가에 대한 설문조사에 미혼여성 10명중 9명, 미혼남성 10명중 6명꼴로 상황에 따라 이혼이 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혼은 절대 안된다는 대답은 여성 7%, 남성은 26%에 그쳤습니다. 그러니 젊은세대 가정이란 큰 의미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드신 법을 완전히 짓밟아 버리고 깨어져 버립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지 않을수가 없지요. 하나님이 심판하는 가정이 행복해 질수가 없지 않습니까? 오늘 황혼이혼도 많습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작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혼한 나이는 40세 전후로 나타났습니다. 황혼이혼이 작년보다 30%, 10년전보다 무려 10배나 늘어난 것입니다. 열심히 잘살고 오다가 40, 50이 되어서 “아이고 이제는 지쳐서 실증이 나고 피곤하니 갈라서자” 그래서 미련없이 갈라서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란 무엇입니까? 20대는 사랑으로 살고, 30대는 노력으로 지탱하고, 40대는 인내로 꾸려나가고, 50대는 체념으로 살다가 60대 이르러서야 불쌍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여기며 산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0까지 견뎌 보십시오. 그때는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고 측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봐도 불쌍하고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봐도 불쌍하게 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육정으로 살고 그 다음에는 인정으로 살고 그 다음에는 동정으로 살고 나중에는 감사함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직 재혼이 허락된 것은 사망의 케이스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7장 1절로 3절에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고린도전서 7장 39절에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정 남편이 맘에 안들거든 빨리 천당가기를 기도하고 기다리십시오. 죽고 나면은 자기 원하는데로 결혼해도 하나님 앞에 죄가 안돼요.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미워도 그 남편을 이혼하고 다른데 시집가면 간음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행복한 부부가 되기 위하여
셋째로, 행복한 부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노력을 해야 되겠는가!
여러분 모든 부부는 행복을 목표로 해서 보조를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이제 함께 살기 때문에 상대를 항상 의식한 보조를 맞춰야 됩니다. 혼자살때야 자기 생각대로 자기 생활에 리듬을 따라 살면 되지 않습니까? 같이 살면은 이제 자기 혼자 살지 않고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를 의식하고 보조를 맞춰야 돼요.나는 언제나 결혼식할 때 말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초등학교때 운동경기에 보면 두사람이 발을 묶어서 뛰는 경기가 있지 않습니까? 두사람이 발을 묶고 뛰기 때문에 한사람이 잘뛴다고 해서 반드시 일등하지 않습니다. 한사람이 너무 잘뛰면 옆에 있는 사람이 쓰러집니다. 또 옆에 있는 사람이 못뛴다고 해서 너무나 천천히 가면 잘뛰는 사람이 걸려서 넘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돼요? 두사람이 보조를 맞춰야 돼요. 자기 생각만 하지 말고 상대를 늘 의식하고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서로 보조를 맞추면 잘 뛰어갈수 있습니다. 부부라는 것은 발을 서로 묶고 뛰는 경기와 같아서 상대를 늘 의식하고 보조를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른떡 하나먹고도 인정있는 것이 아주 고기반찬 먹고도 늘 싸우는 것 보다 훨씬 낫다.
빌립보서 2장 2절에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3절에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한마음을 가지고 화목하게 하는데는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서로 굉장한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늘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격차가 없을수가 없지요. 남녀가 어떻게 성격이 똑같습니까?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교육이 다르고 사회적인 훈련도 다르고 그리고 남녀유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생체적으로도 다른데 성격이 맞을턱이 없습니다. 한술밥에 배가 부르겠나요? 처음부터 함께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절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그렇게 말했고 로마서 15장 1절로 2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웃을 언제나 의식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고 덕을 세우도록 하라.
에베소서 4장 2절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내 고집대로 하고 나는 너를 용납할수 없다. 내 고집대로 나를 용납하지 않느냐. 서로 용납하지 아니하면 언제나 부딪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 들이고 그 앞에서 겸손하게 낮아지고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오래참고 용납해야 함께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혼 사유중에 단연 으뜸은 성격차이입니다. 45.3%가 성격차이로 이혼한다고 했습니다. 다른말로 말하면 결코 상대방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서 존 그레이는 남녀의 차이점과 충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남녀는 의사소통의 문제뿐 아니라 정서적 욕구, 행동방식 등에서도 뿌리깊은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을 할 때도 남성은 목표지향적이기 때문에 업적과 결과를 중요시 하지만 여성은 관계지향적이기 때문에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또한 남성은 우뇌가 발달하여 시공간을 분별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여성은 좌뇌가 발달하여 언어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주차할때는 여성이 운전하는 것보다도 남편이 공간을 보고 운전하는 것이 사고를 안냅니다. 그러나 싸움할때는 남자가 하지 말고 여자를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말을 엄청나게 잘합니다. 부부싸움에서 말로써 아내을 이긴 사람 누가 있어요? 부부싸움에 아내와 말다툼하면 남편 백전백패합니다. 왜냐하면 월등하게 여자는 좌뇌가 발달되어서 말을 잘합니다. 그것을 알고서 살아야 합니다. 남성은 문제가 생기면 먼저 생각하지만 여성은 문제가 생기면 말부터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남편은 “이것 어떻게 돼냐?” 생각을 하는데 여자는 말부터 먼저하니 그러니까 충돌하지요.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남성은 “골치가 아프다. 골치 아프다.”고 말하는데 여성은 “아이고 가슴이 답답해. 가슴이 답답해.” 남편은 문제를 머리로 생각하고 여자는 가슴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성은 감정표현에 서툴뿐 아니라 표현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고, 감정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도 방어적입니다만 반면에 여성은 감정표현을 잘하지만 그 기분의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남성은 공적자리에서 말이 많은 반면에 여성은 사적인 자리에서 말이 많습니다. 남성은 이성적, 논리적, 객관적인 성향이 높은데 반해 여성은 감성적, 비논리적, 주관적인 성향이 높습니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은 정서적으로 구조적으로 굉장히 다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남녀의 기본적인 차이점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은 사람입니다만 성격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고 남자가 화성에서 왔다면 여자는 금성에서 온만큼 다릅니다. 그것을 나와 똑같다라고 말하면 안되지요. 남자가 자기 아내를 자기처럼 만들려고 애를 쓰면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서로서로 자기 기분에 맞도록 만들려고 하면 안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다르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고 받아 들여야만 편안하게 살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절에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베드로전서 3장 7절에는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해서 아내도 남편에게 순복하고 남편도 아내를 귀중히 여기고 서로를 인정하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고치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이해를 하고 난 다음에 그 상대방에 보조를 맞추려고 기도하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격이 급한 남편을 모시고 있는 아내는 그 성격급한 것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힘을 쓰고 애를 써야 되고 성격이 느릿느릿하여 집안 소제도 안하고 아침밥 먹은 것을 저녁까지 치우지 아니하는 아내, 아무리 잔소리해도 안따라하는데 그러면 남편이 보조를 맞추어서 일찍 퇴근하여 설거지를 도와주는 도리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서로서로 양보하고 보조를 맞추는 도리밖에는 화합하게 살아갈수 없습니다. 명령을 하고 협박을 하고 주먹을 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르게 개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비난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가 함께 살면서 서로의 약점을 들추어 내고 비난하면 절대로 원만한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나 다 과거, 현재, 생활에 허물과 죄가 있습니다. 그 허물과 죄를 들추어 내서 공격을 하면 사람들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비참하게 되고 아내도 비참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존심이 짓밟히니까 대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7장 1절, 3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항상 이말씀을 깨달아야 됩니다. 형제의 허물과 죄는 티라고 말하면 이만한 사실 들보를 눈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내 잘못은 보지 않고 이웃의 잘못만 자꾸 보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남에게 손가락질 하면 보세요. 손가락 한 개는 남을 보고 있지만 손가락 세 개는 나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한사람에게 비평하면 나는 세가지 비평을 받을수 있는 처지에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가 인생을 살면 항상 용서하고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되 덮어주고 치료해주고 씻어주고 추스려줘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가 없이는 결코 인생은 살아갈수 없습니다. 자연도 언제나 용서합니다. 산불이 나서 완전히 태어버린 것도 봄이 되면 용서하고 그 태워버린 들판에 새로 파릇파릇한 풀이 나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그리고 미워안하려고 결심을 하고 그리고 사랑으로 덮어주고 치료해주고 씻어주고 추스려주는 이러한 일이 있어야 부부간에도 행복하게 살고 이웃과도 원만하게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출석하는 한 자매님이 이런 간증을 했어요. 그분은 남편하고 오랫동안 싸우고 가정이 파탄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예배시간에 제가 남편을 언제나 찬양하고 칭찬하라고 설교하는 것을 듣고 그날부터 남편을 칭찬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간 자매님이 남편을 칭찬을 하고 보니 아무리 찾아도 칭찬할 거리가 하나도 없어요. 결점을 찾으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찾을수 있는데 칭찬할 것을 찾아보니 하나도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남편을 칭찬해서 가정을 따뜻하게 만들어야겠는데 막상 칭찬하려고 하니 칭찬할 것이 하나도 안보입니다. 주여 내 눈을 열어서 남편을 칭찬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날 저녁에 남편이 퇴근해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데 남편이 목욕을 하고 와서 그런지 갑자기 얼굴이 보송보송하고 미끈미끈하게 참 잘생겨 보이더랍니다. 게다가 입고 있는 체크 무늬 셔츠도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그래서 옆에 싹가서 “여보~ 당신 오늘 목욕갔다 왔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남이야 목욕을 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자매님은 남편의 신경질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굳게 결심을 하고 칭찬을 했습니다. “야~ 오늘 보니 당신 참 미남이네요. 여태까지 살면서 당신이 오늘처럼 멋있어 본적이 없었어요. 입고 있는 체크무늬 셔츠도 어쩜 그렇게 잘 어울려요? 여지껏 당신이 이렇게 멋있는 사람인줄 나는 모르고 살았네요.” 그러니까 남편이 TV를 보다말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자기 아내를 쳐다보면서 “아니 당신 갑자기 왜그래? 뭐 잘못먹었어?” 자매님이 “글세, 나는 여지껏 당신이 그렇게 미남인줄 몰랐는데 오늘 찬찬이 처다보니 굉장히 미남이네요. 당신같은 사람하고 결혼한 것 참 잘했네요.” 남편이 “허허허, 살다가 별꼴 다보네.” 그러나 남편 얼굴이 환해진 것을 보고 부인은 그길로 방안에 들어가서 이부자리에 드러누워 발과 손을 바둥거리면서 “한건했다. 한건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내 눈을 열어서 한건 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성공했습니다.” 그날부터 시작해서 부인이 자꾸 남편을 칭찬하니까 남편의 마음이 열리고 부인을 잘대해주고 칭찬해 주고 가정에 얼음이 녹아지고 화목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음에 행복을 가져 오겠다고 결심을 하면은 서로서로의 결점과 단점을 들춰내지 말고 모든 것을 용서로 덮고 잘한점을 들춰내서 자꾸 칭찬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칭찬은 기계에 기름을 붓는것과 한가지입니다. 자꾸 칭찬해주면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기쁨하고 즐거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데 서로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인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부딪힌다고 해서 그대로 다 반응을 하면 어떻게 삽니까?
골로새서 3장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긍휼이라는 것은 불쌍히 여기고 자비하고 겸손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오래 참을 옷입어라. 인생은 참는 것입니다. 또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또 참는 것입니다. 참지 아니하면 모든 것이 다 끝장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농사짓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업하는 모든일에도 다 오래참음으로 결실하는 것이지 성급하면 아무 결실도 맺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인내하면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여러분 뛰어 나가서 끌어 앉고 납작웃음을 웃고 그런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언제나 마음속에 깊이 상대의 결점을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용서를 깊이 하고 미워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모든일을 덮어주고 치료해주고 씻어주고 그리고 추스려 주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할 기분이 생기면 내가 사랑하고 기분이 안생기면 안하겠다. 그러면 행복한 인간관계와 부부관계와 가정을 이룰수는 없습니다. 마음에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용서하겠다. 끝까지 용서하겠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번씩 490번이라도 나는 상대를 용서하고 미워하지 않고 허물을 덮어주고 치료해주고 씻어주고 수술해 주겠다. 이게 사랑입니다. 그러면 원만한 가정이 됩니다.
골로새서 3장 14절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사랑이 있어야 온전하게 묶어질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미움은 모든 것을 발가벗깁니다. 미워하면 모든 허물과 결점을 다 들추어내서 발가벗겨요. 아내가 남편을 발가벗겨 놓으면 남편이 가만 있겠습니까? 남편이 또 아내를 발가벗겨 놓으면 가만 있겠습니까? 사람은 모두다 자기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자기 삶에 감추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꾸 파헤쳐서 발가벗기면 저항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파괴되고 맙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사랑은 상대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상대의 프라이버시에 손가락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친정집 식구들을 결점을 들추어내면은 원수돼요. 시집식구의 결점을 자꾸 말하면 그 아내하고 사이가 멀어집니다. 여러분이 항상 알아야 될 것은 인간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허물과 죄가 한없이 많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서로 덮어주는 것이 필요하지 서로서로 벗기기 시작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치료해 주어야지 서로서로 손톱을 세워서 할퀴기 시작하면 피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씻어줘야지 서로 흙칠을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서로 붙들어 일으켜 줘야지 자꾸 짓밟고 문지르면 살아날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행복한 가정을 이룰려면 여러분 우리는 사랑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부부의 관계를 30분만에다 설파할수 있다면 거짓말입니다. 저는 결혼 40년이 되어도 아직 아내가 연구대상이고 행복한 부부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40년 살아도 아직 아내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부 십계명이 있습니다. 오늘 이 부부십계명을 말씀드리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부부십계명은 뭘까요? 첫째로, 두사람이 동시에 화를 내지 말아라. 함께 화를 내면 화산같이 폭발해 버리고 말기 때문에 한사람이 화를 내면 다른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것입니다. 화를 내고 싶거든 나중에 내야 됩니다. 둘째는 집에 불이 났을 때 외에는 고함을 지르지 말라. 불났으면 ‘불이야~’ 고함치지만 그 외에는 차근차근하게 말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말라. 말은 쉽지만 화가 났는데 목소리가 안날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눈이 있어도 허물을 보지 말고 입이 있어도 실수를 말하지 말라. 눈이 있다고 다 허물보고 입이 있다고 실수를 들춰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넷째, 아내나 남편을 다른사람과 비교하지 말라. “아이고, 아무게 아빠는 이런데 당신은 왜 이모양이야?” “아무게 엄마는 날씬하고 스타일이 좋은데 당신은 똥배가 왜 이렇게 나왔어?” 그러면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다섯째, 서로의 아픈곳을 찌르거나 부모, 형제를 욕하지 말라. 다 아픈곳이 있습니다. 다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찌르거나 상대방의 부모, 형제를 욕하면 좋아할사람 없습니다. 해가지도록 분을 내지 말고 화를 품고 잠자리에 들지말라. 우리교회 자매님 부형님 한분 가정에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말하라고 하니까 그런말을 했습니다. 성경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그래서 부부간에 싸움을 하고 난 다음 해가 지게 되면 남편이 “여보~ 해가진다.” 그러면 부인이 “알았어요.” 그리고 난 다음 저녁먹을때는 다 분을 풀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해가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일곱째, 처음사랑을 잊지 말며 칭찬할 것을 찾아라. 사람이 처음 연애할 때 사랑을 어떻게 늘 계속할 수 있습니까? 얼마살지 않으면 덤덤한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도 언제나 처음 좋아서 사랑해서 서로 만나고 결혼했기 때문에 상대방을 늘 칭찬하고 장점을 발굴해서 언제나 상대방에게 격려를 해주는 것입니다. 여덟째,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서로 상대방을 속이거나 거짓말하면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아홉째는 자존심을 깨고 먼저 회개하라. 이것 힘든 일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싸우고 난 다음 먼저 회개하는 것 굉장히 힘들지요. 대게보면 남자가 먼저 회개하고 여자가 나중회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부부간에 싸움하면 누가 한사람 먼저 잘못했다고 말을해야 물고가 트이지 둘이가 서로 자존심을 세우면 결코 물고가 트이지 않습니다. 열째로 가정제도의 창시자요, 주례자요, 중매자가 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항상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원만하게 잘되가도고 하나님 도와 달라고 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땅을 만드시고 인생을 지으실 때 남녀를 지으시고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사람이 함께 살므로 여러 가지 시련과 환난과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게 되있사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인내하고 사랑하므로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고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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