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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6: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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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5년 4월 17일 주일3부 설교 |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마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범죄가 없는 세상에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탐욕과 압제와 불평등이 없는 세계, 미움과 전쟁과 살상이 없는 세계, 죽음과 고통과 절망이 없는 세계 이와 같은 세계는 이상적인 세계가 될 수는 있지만 마귀가 존재하는 이상 실제적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세계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마귀는 생명의 도적으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마귀는 쉬지 않고 우리를 욕하고 참소합니다. 마귀에 대한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귀가 있는 이상 마귀에 대하여 알아야 우리가 대비할 수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번 이긴다고 손자병법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론]
1. 마귀의 정체
첫째로, 마귀는 왜 생겼습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묻습니다. 마귀는 누가 만들었으며 왜 생겼냐구요. 여러분 마귀는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 중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과 비기려고 할 만큼 잘 지음을 받은 천사장이었습니다. 얼마나 멋있게 만들어졌던지 자기가 하나님과 비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습니까?
성경 이사야 14장 12절로 14절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지극히 높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과 비기겠다고 할 정도로 그는 아름다운 존재로 지음을 받은 천사장이었습니다. 마귀는 자기의 정체성에 혼돈을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가 너무 아름답게 때문에 그만 하나님과 경쟁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에스겔 28장 13절로 14절에 보면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한번 보십시오. 그의 정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 사람으로 형용할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보석의 이름을 다 들었습니다. 그런 보석으로 치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덮는 그룹천사로 만들었는데 그룹천사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위하는 천사로 가장 하나님께 신뢰를 받고 가까이 있는 천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음을 받던 날에 소고와 비파를 주님이 주셨습니다. 음악을 책임지는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음악을 좋아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는 야웨라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찬양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 가운데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즐거워하는 찬양을 총책임진 그룹천사였습니다. 마귀도 하나님의 흉내를 내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합니다. 아주 타락하고 요란스러운 음악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에 타락한 곳에 음악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요란하고 타락한 음악 속에 사람은 광란하는 것입니다. 인생과 음악은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에 장엄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꼭 필요한 것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의 정체성에 혼돈을 가져올 정도로 자기가 아름다웠습니다. 희랍신화에 보면 나르시스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너무 인물이 잘나서 하루는 연못을 지나다가 연못에 비췬 자기 얼굴을 보고 반하여 들여 보다가 곤두박질쳐서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죽은 곳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었는데 그 이름을 수선화, 나르시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사람을 나르시즘에 빠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나르시즘에 빠진 젊은이들도 많이 있지만 이 루시퍼 마귀야 말로 자기의 아름다움에 너무나 도취해서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감히 하나님처럼 되려고 오만하게 날뛰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께 쫓겨났을 때 그를 따르던 하늘천사 3분의 1을 데리고 타락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리더쉽이 강했던지 하늘천사 3분의 1을 반역에 가담시켰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3절로 4절에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별은 천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용이 그 꼬리로 하늘별 3분의 1을 땅에다 던졌다는 것은 타락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늘에서 쫓겨난 루시퍼는 타락한 천사 3분의 1과 더불어 공중에 왕국을 세우고 반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공중에 권세잡은 악의 영이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사라는 것은 한 나라의 중심입니다. 임금이나 대통령이나 수상이 정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바로 이 정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세를 임명합니다. 장관들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쫓겨난 여러 천사들중에 힘있는 자를 장관으로 세워서 온 세계를 다스리게 하고 그 밑에는 지상의 주관자, 지방장관들을 세우고 공중에 권세잡은 마귀의 군대 악령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국가의 조직처럼 공중에서 마귀는 완전한 나라의 조직을 가지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총력을 기울여 하나님과 하나님나라를 대적하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신자들을 유혹하고 교회와 성도를 무너뜨리려고 유혹하며 하나님께 밤낮 참소하고 이간질합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백만 유대인과 수많은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히틀러는 대개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평생 귓가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를 따라 행동했다고 말했습니다. 히틀러는 마귀가 귓전에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서 사악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 저는 기록에 보니까 히틀러의 전용 비행기를 조종하던 조종사가 나중에 고백하기를 히틀러가 가끔 전용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다가 광분을 일으켜 완전히 자기 정신을 잃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비행기 안에 카페트를 손으로 긁어서 쫙쫙 카페트가 찢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히틀러는 마귀에게 잡혀서 예언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히틀러가 살인마가 된 것은 마귀에게 잡혀서 마귀의 목소리에 순종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한 것입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사람을 매개체로 삼아서 이 세상에 자기의 사악한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을 더욱 잔인하고 어두운 곳으로 만들고 있으며 온 세상은 마귀의 손아귀에서 좌우되고 있습니다. 현재 온 세상은 마귀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온 세상을 주었어요. 세상의 임금은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했을 때 이 세상을 마귀에게 진상하고 말았습니다. 마귀가 예수께 나와서 그를 미혹할 때 하는 말이 “내게 절하면 온 세상 부귀, 영화를 다 주겠다. 이는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게 절하는 자에게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 넘겨주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할 때 세상 주권을 마귀에게 넘겨주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시작해서 마귀는 세상의 주권자로써 일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가 와도 세상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육신의 정욕, 세상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 이런 것으로 혼미하게 만들어서 물질만능주의, 인본주의, 쾌락주의의 노예가 되어서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한통계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5,560년 동안 지구상에서 14,530회의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는 1년 평균 2.6회의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에는 날마다 35,000여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전쟁준비에 연간 5,50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며 6백조원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일 이 6백조원을 전쟁하지 않고 나라를 부강케하고 국제적으로 기아선상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잘사는 곳이 될 것입니다. 나는 어느 학자가 발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전쟁을 하지 않고 그 비용으로 서로 골고루 나누어 쓴다면 이 지구는 2백억명을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60억이 살고 있는데 아직까지 2백억명은 지구에서 능히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자원을 동원해서 물고, 찢고, 싸우고, 죽이는 것에 사용해야 합니까?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도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오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있는 이상 이 세상은 파괴적인 역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석학 C. S. 루이스는 무실론자였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의 회심은 세계 지성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루이스 박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열명이 술좌석에 웃고 떠들고 있다면 그때 웃음소리는 열 한명이 웃는 소리일 것이다.” 그것은 뭐냐, 열명이 술먹고 흥청망청 노래를 부르고 웃고 고함치면 들리는 소리는 열한명이 들린다. 왜 마귀가 하나 보태어져 있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면 그 뒤에 귀신은 팔짱을 끼고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이 말했으면 정신없는 소리 한다고 말하겠지만 세계적인 석학인 C. S. 루이스가 이 말을 했기 때문에 이 말은 무게가 있고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어 온 세상이 마귀의 손아래 있다는 영적진리를 깨달았던 사람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인류구원 작전
둘째로, 하나님의 인류구원 작전을 우리가 알아봐야 됩니다.
개인적인 레벨에서 구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담의 타락은 철저하고 그 죄 값은 사망입니다. 마귀는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으매 그 죄 값으로 죽기 때문에 자기 죄도 갚을 수가 없고 남의 죄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회심의 미소를 띠고 “온 세상은 내 손아래 있다. 온 인류는 대대로 내 손아래 있다. 아무도 자기 죄를 청산할 수가 없고 남의 죄를 청산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관은 생길 수 있고 철학은 있을 수 있고 과학도 있을 수 있고 고행과 수련은 있을 수 있어도 죄를 청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영영히 세상에서 왕노릇 할 수 있다고 자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도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구원은 인간의 레벨에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레벨에서 작전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죄 없는 사람이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능력은 모든 인류의 죄를 갚고도 남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는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능력이 있어서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까지 인류의 죄를 다 청산할 수 있어야 되고 그런 실력이 있어야 되고 또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기 때문에 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야 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아담의 씨를 받은 사람은 배속에 있을 때부터 죄로써 잉태되고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아담의 씨를 받지 아니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어서 죄 없이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 그는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속하여 희생재물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아도 인류구원의 전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로 15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 말씀위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제 2위 하나님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참 하나님 참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이 죄 있는 인간의 몸을 썼지만 죄 없이 태어나셨으므로 그의 삶은 어마어마한 속죄의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피는 죄인의 피기 때문에 효과가 없어요. 예수님의 보혈은 모든 인생의 죄를 영원히 용서하고도 남음이 있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희생제물이 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요한 예수님을 보시고 선언하기를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대신 값을 지불하고 사주실려고 예수님이 오셨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적당하게 인간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철저히 고난 당하셔서 주님의 흘리신 핏방울 방울마다 모든 인류의 죄를 깨끗이 씻어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는 아담으로부터 장차 주님 강림하실 때까지 산 인류의 모든 죄를 다 갚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요사이 말로 말하면 상황 끝~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죄악의 상황은 끝났다. 세상에 마귀와 세속의 상황은 끝났다. 질병의 상황도 끝났다. 저주의 상황도 끝났다. 죽음과 지옥의 상황도 끝났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철저히 승리하고 만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로 57절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와 싸워서 인간의 죄를 다 도말시키므로 마귀가 묶고 있던 죄의 사슬이 보혈의 능력으로 녹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낙산사의 범종이 산불로 말미암아 녹았다는 말을 읽고 제가 놀랬습니다. 얼마나 산불이 뜨거웠기에 청동으로 만든 종이 녹아 버렸습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얼마나 권세가 큰지 세세토록 잡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죄가 녹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찾을래야 찾을수도 없이 죄의 흔적이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앞에 죄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자기 눈앞에서 인간을 대대로 묶어놓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킬 수 있는 근원인 죄의 사슬이 녹아져 가는 것을 보고 발버둥을 치고 가슴을 쳤지만 별도리가 없습니다. 마귀가 가장 미워하는 것이 예수요 그 보혈의 능력을 미워하고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이 오심과 그 보혈을 흘리심으로 마귀의 정사와 권세는 박살이 나고 만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에 말씀은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은 이겼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도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까?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왜, 지금도 마귀하고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라크 전쟁을 보십시오. 미국은 연합군과 함께 이라크를 공격해서 전쟁에 이기고 말았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전쟁에 이겼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투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이기고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지만 그러나 게릴라 전쟁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과 전투는 틀립니다. 전쟁은 완전히 국가 대 국가의 싸움에서 이겨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패전한 적군은 이제 정권은 없지만 게릴라전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정사와 권세는 무너졌습니다. 완전히 십자가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게릴라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혹과 거짓과 설득으로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전신갑주
그러므로 세 번째,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 아니라 전투에 이기기 위해서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전쟁은 이겨 놓았습니다. 상황이 끝났습니다. 죄의 문제도 끝났습니다. 세상과 마귀의 문제도 끝났습니다. 병의 문제도 끝났습니다. 저주와 가난의 문제도 끝났습니다. 죽음과 멸망의 문제도 끝났습니다. 상황은 다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끝이 안 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거짓으로 속이고 협박하고 공갈하며 지금도 게릴라전을 하고 있는 마귀하고는 전쟁이 아니라 전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전신갑주를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로 18절 우리 다같이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전신갑주를 입어야 게릴라전에서 우리가 이기고 신앙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허리는 몸의 중심입니다. 허리가 상하면 사람은 걸음도 걸을 수 없고 짐도 짊어질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고 반드시 누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허리가 우리의 중심입니다. 허리가 강해야 몸이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중심은 예수님으로 묶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진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허리띠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묶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동정녀로 탄생하시고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보좌 우편에 계시고 장차 오실 그 예수님으로 허리띠를 묶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어떠한 종교나 철학이나 세상 것을 가지고 허리를 묶어 놓으면 허리 디스크가 생기고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단에 빠졌다가 우리 교회 출석하는 어떤 자매님의 간증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자매님은 24년간이나 어떤 이단사설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매님은 이단교주가 메시아요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할 구세주라고 믿었습니다. 잘못된 허리띠를 묶은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를 받아서 우리 교회 나오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교회에 앉아서 앞에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면 목이 획 돌아가 버립니다. 또 십자가를 바라보면 또 목이 획 돌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교회와서 예배를 드릴수가 없어요.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매님을 전도한 지역장, 구역장이 함께 오산리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기도하며 악령을 끈질기게 대적하고 내어 쫓았는데 귀신이 “안 나간다~ 내가 왜 나가느냐? 너희들이 나를 쫓아내지 못 한다~” 그렇게 입에 거품을 물고 저항했습니다. 잘못된 허리띠를 띠면 귀신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허리를 띠면 성령이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귀신이 반항하고 안나가겠다고 발버둥을 치나 우리 지역장, 구역장들이 인내를 하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대적하니까 소리치며 귀신이 나가고 자매님은 해방을 얻게 되고 그때 이후로부터 자매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와 의를 얻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십시오. 어떠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로 허리띠를 띠면 진리의 영, 성령이 여러분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으로 허리띠를 띠면 세상에 악령이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의의 흉배를 붙여야 됩니다.
흉배라는 것은 방탄복입니다. 방탄조끼입니다. 의의 흉배를 붙이고 있으면 총을 쏴도 가슴에 맞아도 튕겨 나가지요. 불화살을 쏘아도 뚫고 들어오지 못합니다. 왜 의의 흉배를 붙어야 되느냐. 마귀는 와서 늘 말합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정죄 받아야 마땅하다. 죄인의 괴수다. 너는 죄 덩어리다. 너 같은 사람은 구원 못 받는다. 너 같은 기도는 응답도 못 받는다.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다.” 끊임없이 참소합니다.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고 좌절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면 “나는 예수의 보혈로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의의 흉배를 붙이고 있으면 마귀가 아무리 와서 정죄해도 끄덕도 안합니다. 마귀가 “너는 죄인이다.” “어~ 알아. 죄인이야. 그러나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어.” “너는 정죄 받아야 마땅하다.” “예수님이 나 대신 정죄받아 피를 흘려서 그 피가 마음에 큰 증거가 되어 너는 아무 가치가 없고 무가치하다.” “알았어. 나는 아무 가치없지만 보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 보혈로 우리 자신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의의 흉배를 붙였습니다. 보혈로 하나님의 용서와 의로움을 가슴에 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9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보혈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보혈을 의지하면 여러분 모든 아는 죄, 모든 죄가 다 용서를 받고 하나님은 죄를 기억도 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빛나는 의로운 의복을 입혀 주심으로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가슴에 이 의의 흉배인 보혈의 능력으로 용서와 의를 받은 것을 간직하고 가슴을 내밀고 마귀의 참소를 대적하고 이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복음의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신어야 됩니다.
여러분 신발 없이 자갈밭을 걸어가거나 가시와 엉컹퀴를 걸어가면 피투성이가 되고 못 걸어가지요. 옛날에 종과 아들은 똑같이 밭에서 일했는데 겉으로 보면 누가 종이고 아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발을 보면 아들은 신을 신고 종은 맨발을 벗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주님은 신발을 신겨 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신겨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신겨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걸어가는 앞길에 가시와 엉컹퀴를 나게 하고 가시밭길이 생기게 해서 못 걸어가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복음의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용서와 의의 신발을 만들어 주어서 죄악의 가시밭길을 걸어가게 만들어 줍니다. 성결과 성령충만한 신발을 만들어 주어서 세상에 죄의 유혹을 짓밟고 지나가게 만들어 주십니다. 치료와 건강의 신발을 만들어 주어서 질병을 짓밟고 지나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신발을 주어서 가난과 저주를 짓밟고 지나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신발을 주셔서 사망과 음부를 짓밟고 지나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발을 믿음으로 신고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가시와 엉컹퀴를 밟고 지나가지 못합니다. 가시밭길 자갈길을 못 걸어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안의 예비한 신발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 오중신발이 있습니다. 이를 믿고서 나가면 우리는 당당하게 승리로 걸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신발을 신고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써야 됩니다.
머리는 참 중요합니다. 공사장에 일하는 사람은 헬멧을 씁니다. 다른데 다쳐도 고침을 받을 수 있지만 머리가 깨어지면 사람이 죽지 않습니까? 운동선수들도 머리에 헬멧을 씁니다. 스키타는 사람들도 머리에 헬멧을 씁니다. 다른데 다쳐도 괜찮지만 머리가 다치면 죽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머리에 투구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를 칼로 내려치거나 창으로 찔러도 꿈쩍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 머리라는 것은 생각인 것 입니다.이 생각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와서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나는 슬프다. 불행하다. 패배자다”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치명타를 입습니다. 머리가 구원의 투구를 써야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소망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부정적인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아담이 가져온 것은 3대재앙입니다. 죄로써 영원히 죽고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컹퀴를 내고 몸이 병들고 죽는 3대재앙을 가지고 왔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삼중축복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죄를 용서하고 저주를 제하고 치료하고 부활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삼중축복, 전인구원의 투구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의 생각이 삼중축복으로 사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어떤 부정적인 말을 해도 “이 마귀야~ 거짓부렁이야 너는 나를 부정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영원히 구원받아 용서와 의를 얻어 잘되고 범사의 저주에서 해방을 얻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어 강건하고 부활에서 영생을 얻게 되었다. 나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전인구원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이로써 무장하고 있으면 밤을 지나나 폭풍우를 지나나 험산준령을 지나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인구원을 받고 삼중축복을 얻은 사람이다. 구원의 투구를 쓰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방패란 적의 화살을 막는 것입니다. 불화살이 오면 방패로 막아야 되지 않습니까? 다른 방패는 맞아도 구멍이 다 뚫어집니다. 그러나 믿음의 방패는 마귀가 아무래도 뚫지 못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은 같이 하셔서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이 산들을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하고 그 말한 것이 이룰 줄 마음에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이 믿음의 선물인 것입니다. 말씀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 없이는 믿을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우리는 믿고 있으면 눈에 안보여도 귀에 안 들려도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칠흙같이 어두워도 우리는 말씀으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협박과 공갈이 아무리 와도 여러분은 말씀에 굳세게 서고 억척같이 말씀을 따라서 살면 말씀대로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부정적인 생각으로 공격을 해도 말씀에 기록하였으되 성경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대로 믿는다고 하면 마귀의 화살은 부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할 때도 주님은 항상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해서 기록하였으되 하나님 말씀하기를 기록하였으되 마귀를 대적하니 마귀의 모든 참소와 유혹의 화살은 부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방패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방패를 삼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검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성령의 검입니다. 하나님이 마귀를 공격하고 마귀의 염통을 찌르는 말씀의 검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갭니다. 성경은 보통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살아있는 권능의 말씀인데 말씀을 이용하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쫓겨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양천대교구의 박말선 집사님의 간증을 듣고 큰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집사님은 14살에 일본에 건너가서 결혼했는데 시댁 영향으로 무당이 되었습니다. 후에 경주로 와서 사는데 경주에서 박보살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의 굿을 해주면서도 정작 집사님의 마음은 늘 답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집사님에게는 시집 간지 17년이 된 큰 딸이 있는데 그때까지도 아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큰 굿을 몇 번이나 해줘도 소용이 없고 동창생인 점쟁이를 불러다가 아무리 점을 쳐도 효과가 없어요. 그런데 딸이 교회 나가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자 얼마 안 되어 임신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집사님이 속으로 “아따~ 예수신이 용하기는 용하구나!” 감탄은 했지만 30년 동안 무당 생활을 하고 유명한 박보살이 되었으니 그 생활을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딸들이 무당 그만두고 무당 옷을 벗어 버리고 예수 믿으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러던 하루 집사님이 손자가 보고 싶어서 서울에 큰 딸네 집에 왔는데 딸들과 사위 네 명이 붙잡고 우리 교회로 강제로 끌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끌려 나와서 이 대성전에 앉아 있었습니다. 대성전 1층에 앉아서 제 설교말씀을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모든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는데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무당귀신이 그 속에서 떠나갔습니다. 집사님은 그날 이후로 변화되었습니다. 담배가 탁 끊어지고 난 다음에 무당귀신이 떠나가니까 아무런 점도 쳐지지 않아요. 무당의 계시가 사라져 버렸어요. 완전히 중생하고 만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 믿어야 살 수 있다고 외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검인 말씀이 그 마음에 부딪혀 오자 집사님을 30년 동안 점령하고 있던 마귀의 세력이 해체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성령의 검은 거짓을 해치는 하나님의 메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위에 서야지 말씀에 서지 않으면 마귀는 쫓겨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능력있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뜨거운 마음으로 한서린 마음으로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되든지 우리가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본 사람은 이것이 사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기쁨과 즐거움은 기도를 응답받는 그 아름다운 체험인 것입니다. 그런데 능력 있는 기도는 목표를 두고 간절히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도가 있고 간구가 있는데 간구는 목표를 두고 간절히 창자속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는 것이 간구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요. 존낙스가 스코틀랜드에서 복음을 전할 때 당시 통치자였던 메리 여왕은 열심있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낙스는 자기 서재에 들어가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목표를 정하고 애끊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저에게 주십시오. 아니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가 기도하던 방의 창문으로는 메리 여왕이 살고 있는 궁전이 보였는데 그는 그곳을 바라보며 같은 기도를 몇시간씩 되풀이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자 메리여왕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여왕은 죽기전에 “존낙스 한사람의 기도가 백만대군보다 무섭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존낙스의 기도를 통해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마귀가 치를 떨고 무서워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만 할 뿐 아니라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는 방언기도인 것입니다. 일반기도를 하고 또 간구를 하되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라.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부엌에서 밥하면서도 할 수도 있고 시장가면서도 할 수가 있습니다. 자다가도 할 수가 있어요. 바울선생은 여행하면서 천막 만들면서 매를 맞으면서 감옥에서도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고린도교인 모두가 합쳐서 하는 방언보다 더 많이 방언기도함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방언은 신령한 기도인 것입니다. 영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방언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점점점 강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수시로 방언기도를 많이 합니다. 방언기도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운동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걸어가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무엇을 하면서라도 방언은 내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선생은 기도하고 또 목표를 가지고 간구도 하고 또 성령안에서 무시로 기도하여 믿음을 강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일평생 마귀와의 싸움을 계속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끝났습니다. 상황은 끝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나 게릴라 전투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미혹케 하려고 참소하고 끊임없이 따라다닙니다. 이 마귀를 우리는 이제 전투에서 이기고 당당히 승리하기 위해서 항상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복음의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신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성령의 검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세상 사람은 마귀를 대적할 수도 없습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 있는데 어떻게 마귀를 대적합니까? 우리는 전쟁에서 이긴 예수님을 의지하고 마귀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자유인으로써 이제 마귀와 전투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마귀가 누군지 알고 예수님 은혜 안에 있는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는지 알면 승리는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그렇게 말합니다. 마귀가 죄악의 유혹을 가져오면 “야 이놈아! 상황 끝이다. 십자가에서 다 끝나 버렸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찌어다.” 세상이 들어오면 “상황 끝이다. 세상은 나와 관계가 없다. 십자가에서 끝난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물러가라.” 여러 가지 병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말합니다. “이 병아! 상황 끝. 십자가에서 이미 예수님은 다 끝내 버렸다. 너는 거짓의 애비다. 거짓되고 헛된 병마야 물러가라! 물러가라! 나는 한 발자욱도 뒤로 물러가지 않는다.” 환경의 저주를 향해서도 말합니다. “저주야 상황 끝났다. 옛날에 한때 네가 좋은날이 있었지만 이제 다 끝났다.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너를 다 도말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 받은 사람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찌어다.” 죽음의 공포가 다가올 때는 “예수님이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이미 주셨다. 죽음과 음부의 공포는 이미 끝났다. 상황은 끝나고 말았다. 나는 오직 부활과 영생과 천국만 남아있다.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알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무장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생활하고 천국을 확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우리를 위한 전쟁에서 이겨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담이 타락해서 온 세계를 마귀에게 넘겨주었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철폐하고 십자가로 승리해서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천국을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여 전쟁에서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게릴라 부대인 마귀와 전투에서 싸우고 있으나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무장시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모든 성도들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진리의 허리띠를 띠게 하여 주시옵소서.
의의 흉배를 붙여서 용서받은 의인된 것을 확인하고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복음의 예비한 오중복음의 평안의 신발을 믿음으로 신고 아버지 하나님 삼중축복의 전인구원의 투구를 쓰게 하여 주시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성령의 검 말씀을 가지고 기도와 간구와 방언기도를 하면서 승리의 생활을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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