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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에배소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866 추천 수 0 2009.07.15 22: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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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엡2:8~9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8월 7일 주일 3부 설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구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후에 영생 천국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누구든지 그 나라에 들어가려고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인간은 불멸의 영혼도 없고 하나님도 계시지 않고 천국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생명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을 합니다. 또 불가지론자들은 영혼불멸도 신도 천국도 지옥도 인간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또 종교인들은 영생도 사후의 세계도 믿지만 각각 저들의 종교가 그곳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본론>

1. 성경이 말하는 인간

첫째로, 우리는 인간이 어디에서 기원하는 가를 성경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불멸의 영혼이 육체의 옷을 입고 사는 존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닮아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불멸의 존재인 것입니다. 이 불멸의 존재가 흙으로 된 집에 살고 있는 것이 인간의 실상인 것을 분명하게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 없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나님을 반역하므로 큰 죄를 짓고 하나님께 쫓겨 나와서 그 영혼이 죽었습니다. 타락하므로 영이 죽고 육체는 혼만 가지고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오늘날 감각과 이성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감각과 이성도 죄로 말미암아 부패되어서 방향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지 아니하고 세상과 육체와 마귀만 뒤쫓고 있는 것입니다.
비키니라는 작은 아름다운 무인도 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섬에는 해마다 거북이들이 와서 모래 속에 알을 낳고 바다로 돌아가는데 뜨거운 모래의 열기로 알이 부화되어 새끼가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통 알에서 부화한 새끼 거북이들이 바다로 바다로 열심히 가서 파도에 휩쓸려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서 거기서 자랍니다. 그런데 이 비키니섬의 거북이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바다로 향하지 않고 산꼭대기로 향해 열심히 기어가서 물이 없는 곳에서 말라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이유를 조사해보니까 비키니섬은 미국이 원자탄 실험을 한 곳입니다. 온 섬 전체가 원자탄 실험으로 말미암아 오염이 되어 있습니다. 그 오염된 땅에서 거북이 알이 부화되어 나오자마자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바다로 가야 될 거북이들이 산꼭대기로 향해서 기어가서 고통스럽게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읽어 보았을 때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사람들도 하나님을 찾아가야 될 사람이 타락하고 난 다음 죄의 오염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육체가 세상과 탐욕과 마귀를 따라 자꾸 갑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가야만 살 것인데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세상을 따라 정욕을 따라 마귀를 따라 육체를 따라 살다가 고통스럽게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져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히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마귀는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완전히 타락한 것이 아니라 꾐을 받아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마귀는 스스로 타락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일정시대 국민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그때는 별로 먹을 것이 없고 늘 배가 고팠습니다. 하루는 학교 갔다 오다가 개천가에 널찍한 곳에 외밭이 있었어요. 탐스럽게 외들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큰 원두막이 있어서 사람이 거기서 지키고 있었는데 나이가 어리니까 원두막에 사람이 지키는 것을 모르고 천연스럽게 외밭에 턱 앉아가지고서 외를 따서 돌에 때려서 깨어 먹으니까 그렇게 맛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내 친구인 이마무라라는 사람이 오기에 “야~ 이리와 이리와. 외가 굉장히 맛있다.” 그녀석이 내 꾀임에 빠져서 내 곁에 와서 둘이 앉아서 외를 먹고 있는데 어떠한 할아버지 한 사람이 먼 산을 보고 옆을 걸어와요. 지나가는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곁에 오더니만 확 달려들어서 우리 멱살을 꽉 잡았습니다. “야 이놈의 자식들! 왜 남의 외밭에 와서 외설이를 하느냐?” 그래서 우리가 모두 다 고함을 치고 살려주십시오 하니까 그 영감이 내 친구인 이마무라를 보고 “너는 가라. 너는 꾀임을 받아서 따먹었기 때문에 죄가 많지 않다.” 나를 보고는 “너는 이마무라를 꾀어서 외를 따먹은 원죄가 있는 놈이다. 너는 학교로 가자!” 그때 학교로 끌려가면 안 죽을 만큼 일본 선생에게 얻어맞습니다. 고통을 가합니다. 너무 겁이 나서 저는 고함을 쳤습니다. “나 조두천씨의 아들이요~ 조두천씨의 아들이요~” 왜냐하면 우리 아버님이 지방 유지였습니다. 아버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니 내가 죽게 되니까 이제 아버지 이름을 팔 수밖에 없어요. “나 조두천씨 아들이요~” 하니까 그분이 내 멱살을 놓더니만 “야~ 그렇게 저명한 인사의 아들이 그래 남의 외밭에 와서 왜 따먹었느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놓아주더라구요. 우리 아버지 덕분에 내가 그때 한번 살아났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저의 마음에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원죄는 책임을 져야 되지만 꾀임을 받아서 지은 죄는 용서받을 수 있구나. 여러분 성경에 마귀는 원죄를 지었습니다. 스스로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 타락으로 말미암아 구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마귀에게 꾀임을 받아서 타락했기 때문에 구제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은 구원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2. 구원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음

그런데 구원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어요. 요사이 여러분 바캉스에 많은 사람이 물놀이 갔다가 익사하는 사고가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나올 수 있다면 허우적거리고 빠져 죽을 리가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못나오니까 빠져 죽지요. 저도 한번 물에 빠져서 거의 죽다가 산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큰 비가 와서 하천이 물이 넘실거리고 흘러가는데 친구들이 저를 보고서 “너 저 하천을 건너서 저쪽 둑에 갈 수 있겠느냐? 가면 용감한 사람이라고 부르겠다.” 제가 바보같이 용감한 사람 되려고 옷을 벗고 그 흐르는 물살 속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헤엄도 잘못치고 개헤엄으로 그냥 죽어라하고 헤엄을 치는데 나중에는 기운이 다해서 하천 둑에 가까이 갔는데 서보니까 푸~욱 물에 빠지더라구요. 물을 잔뜩 먹었습니다. 그리고 목을 내놓고 숨을 조금 쉬고 난 다음 또 푸~욱 내려가면서 또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또 죽을 힘을 다해서 목을 내가 지고서 또 숨을 한번 쉬고는 세 번째 푸~욱 내려가는데 그때 제가 예수를 안 믿었는데 내 귀에 음성이 들려와요. ‘세 번째 내려가서 다시 올라오지 못하면 너는 죽는다. 결사적으로 헤엄을 쳐라.’ 그래서 세 번째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는 있는 힘을 다하여 죽을 힘을 다해서 헤엄을 쳤는데 그 고통은 말로다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누가 와서 확 미는 것 같아서 돌이켜 보니 아무도 없는데 언덕위에 올라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산 적이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는 것이 굉장히 괴롭습니다. 물을 마시고 호흡할 수 없고 고통이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헤엄쳐서 나올 수 있으면 물에 빠져 죽을 리가 없잖아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의 바다에 빠진 것입니다. 죄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데 스스로 나올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지요. 그러나 인간은 죄에 빠져서 스스로 헤엄쳐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에 빠져서 스스로 헤엄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죄와 절망, 허무와 무의미, 죽음과 무의 큰 바다에 빠져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나오지 못합니다. 인간은 종교적인 노력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땅에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행위와 노력으로 마음의 평안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죄악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유대교는 율법을 행하므로 구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불교는 참선이나 선행, 고행을 통해서 열반에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이슬람교 역시 매일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하고 매년 한 달 동안 금식을 하며 일생의 한번은 메카로 성지순례를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힌두교는 극심한 고행을 통한 구원을 주장합니다. 장기적인 단식, 걸식, 불속으로 뛰어 들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한쪽 다리로 서있기, 가시덤불이나 오물위에 누워 생활하기, 몸에 재를 뒤집어쓰기, 손톱과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행위와 노력으로 무언가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력으로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인간은 스스로 죄악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오지 못합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철학적인 탐구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철학적인 깊은 사고를 통해서 인간의 죄와 절망, 죽음과 멸망에서 건져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골로새서 2장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유명한 대승한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30년 동안 면벽을 하면서 도를 닦았습니다. 면벽했다는 말은 30년 동안 벽을 앞에 두고서 벽만 바라보고 좌우로 바라보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대로 앉아서 도를 닦고, 앉아서 잠을 자고 고행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소문이 외국에까지 퍼졌습니다. 미국의 한 종교철학자는 소문을 듣고 이 스님을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수많은 편지를 보내고 연락을 취해서 겨우 5년 만에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대승을 만나면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꼭 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왔습니다. 통역까지 구한 후 산을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절에 도착해서 스님을 발견했는데 이 스님이 뒤도 안돌아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죽었고 나도 죽었소” 그리고는 절간에 들어가 버리고 만나주지 않습니다. 이 미국에서온 종교철학자는 기가 막혀서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아~ 저 스님이 말씀한 그 깨달은 진리는 인생은 죽는다는 것이로구나. 나도 깨달았다.’ 인생이 죽는 것은 30년 면벽 수양을 안 해도 다 알아요. 나도 죽는 것 알아요. 여러분도 알지요. 무엇을 그렇게 30년 동안 도를 닦아서 인생이 죽는 것을 깨달았으며 뭘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와서 인생은 죽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까? 여러분 철학적으로 아무리 수련을 하고 도를 닦아도 죽음 저 건너편은 알 수가 없어요. 인생이 죽는 것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죄책과 절망, 허무와 무의미, 죽음과 무의 존재란 것밖에는 더 이상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죽음 저 건너편에 일을 모르는 것은 인간 철학의 한계인 것입니다. 삶의 이후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은 다른 종교나 철학은 대답할 수 없는 한계점인 것입니다. 독일의 무신론 철학자인 니체는 죽기 전 몇 년 동안 극심히 답답함과 슬픔을 느끼며 이렇게 고뇌했습니다. ‘나는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머물 수 있는 곳을 찾고자 갈망했지만 시종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느 곳이 나의 돌아갈 곳인가. 나는 찾았지만 그러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아하~ 영원한 세상에 어느 곳이 내 발을 둘 곳인가’ 결국 그는 이런 고민을 하다가 미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철학적인 탐구로는 죄와 허무, 무의미,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구원은 철학적 탐구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고행을 통해서 죄를 다 사함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잠언서 16장 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는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의롭다고 하나 더러운 옷 같고 쇠패한 나뭇잎사귀 같습니다. 그러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 많은 고행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차디찬 골방에서 기도하며 이만큼 추위의 고통을 겪으면 하나님이 만족하실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금식하며 이만큼 굶었으면 이 굶주림의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기 않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고행을 하고 굶어 보아도 마음에 죄 사함을 얻을 수가 없고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510년 로마 순례 중에 무릎에서 피가 나도록 빌라도의 계단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심판받을 때 올라갔다는 계단입니다. 그 계단에 유리를 깨어서 흩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무릎과 팔꿈치로 올라가는데 유리조각에 찔려서 피가 흐릅니다. 마르틴 루터도 그런 고행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올라가다가 하나님의 음성이 그 마음에 들려 왔습니다. 그 말은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는 순식간에 깨달았습니다. ‘아~ 이런 고행으로 나의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구나.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용서와 의를 얻는구나’ 그 자리에 일어나서 걸어 내려가고 그것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고행으로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고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들 다 해봤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종교도 고행을 통해 구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고행은 용서받은 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3.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물을 받는 데는 자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선물 받는 것도 아닙니다. 무식하다고 선물 못 받는 것도 아닙니다. 잘났다고 선물 받고 못났다고 선물 못 받는 것도 아닙니다. 선물은 우리의 자격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는 자가 호의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선물은 믿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한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다 선물 아닙니까? 지구와 생명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구를 사람이 만들었나요? 여러분의 생명을 여러분이 만들었나요? 다 만들어진 것 주어진 것을 우리가 받아서 누리고 있으니까 만물이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주님이 만물을 다 지어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부정모혈로 태어나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과학이 발달합니다. 게놈지도가 등장하고 복제양 돌리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생명연장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생명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세포나 유전자가 있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오늘날 복제기술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이미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세포나 유전자를 사용해서 복제기술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지구와 생명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요, 제 아무리 발버둥친다 할지라도 인간의 최대능력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생명을 이용해서 복제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 인간이 스스로 과학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늘도 땅도 세계도 생명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그 무엇보다 더구나 구원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예비하고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하사 인간의 절망을 극복하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우리의 죄, 더러움, 질병, 저주, 절망, 죽음을 다 청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을 지나가게 한 것도 우리 힘이 아니요,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되는 것도 우리 힘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전 것은 청산하고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희망을 얻고 영원한 긍정적인 삶을 얻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청산해 주시고 모든 더러움을 청산하시고 질병을 폐하시고 저주를 속하시고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무덤에 들어갔다가 부활하시므로 이 모든 것을 다 이겨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들어가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저주를 이기고 사망과 음부를 이기고 부활의 승리의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영원한 소망, 영원한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죄를 이긴 것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세상과 마귀를 이긴 것도 아니에요. 우리 힘으로 병을 이기고 저주를 청산한 것도 아니고 우리 힘으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한 것도 아니요,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이 고난을 겪으시고 이를 극복하시고 승리하시고 부활하사 우리에게 생명의 은혜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4. 은혜와 믿음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나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라는 것은 값없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에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면은 안 됩니다. 부모님의 은혜로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지 않습니까? 그 부모님의 은혜를 여러분이 대가를 주고 사겠다고 돈 천원을 부모님에게 드리면 부모님이 얼마나 모욕감을 느끼겠습니까? 부모님은 무조건하고 사랑하므로 은혜로 우리를 키워 주셨는데 ‘자, 나 지금부터 조금도 마음에 꿀리지 않기 위해서 천원 드릴 테니까 날 낳고 기르신 대가를 받으시오.’ 그것은 부모를 모욕해도 유분수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대가를 지불할 수 없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공짜로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는 은혜를 받을 도리가 없어요. 은혜는 우리가 자격이 있어 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믿는 여러분을 용서하고 의롭다고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자격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저는 미국 선교 여행 중 하와이에서 사업가 한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제게 와서 “목사님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고생 한 끝에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제 나이 48이지만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지금은 은퇴하고 별장에서 사냥과 낚시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생하면서 열심히 살 때는 몰랐는데 시간과 돈이 많아지니까 이제는 말할 수 없이 인생이 허무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허무함을 느끼지 아니할 것입니다.”라고 하니까 나를 보고 웃으면서 “나는 뜨겁고 열렬할 가톨릭신자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가톨릭신자로써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으면 인생에 공허함을 왜 느낍니까?” 그러니까 “나는 가톨릭신자지만 구원은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공짜로 얻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값을 지불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으려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저는 그동안 오직 돈버는 일에 급급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당에 나가기는 해도 아직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해요. 내가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지 값을 지불하고 구원을 살려고 하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목사님 모르는 소리하지 마세요. 대가를 치르지 않고 구원받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비록 저는 구원을 받지 못하면서도 자손들이나 잘되라고 내가 성당에 나갑니다.”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래요? 그러면 한 가지 물어봅시다. 부형님은 저 찬란한 태양 햇빛을 대가를 주고 비췹니까? 전기도 값 안주고는 켤 수 없는데 저 태양빛에 값을 줍니까? 부형님 ...숨 안 쉬면 4분 만에 죽는데 지금 호흡을 하고 있는 공기를 값 주고 사서 호흡합니까? 부모님이 잘 키워주tu서 부모 은혜로 지금 잘 살고 있잖아요. 그러면 부모님의 은혜를 돈 주고 샀습니까?” 그러니까 싱긋 웃으면서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지요. 햇빛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값 주고 살 수 없고 공기도 너무나 값이 나가기 때문에 돈 주고 못 사지요. 부모님의 사랑도 너무나 크시기 때문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제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햇빛도 돈 주고 못 사고 공기도 돈 주고 숨 못 쉬고 부모님의 사랑도 값으로 지불해서 청산하지 못하는 그 주제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구원을 사주셨는데 그 값을 계산할 수 있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요, 창조주께서 사람의 몸을 쓰시고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렸는데 그것을 대가로 계산할 수 있어요? 당신이 좋은 공로를 세워서 그 값으로 예수님의 구원을 사겠다면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조건하고 믿음으로 공짜로 받아들이는 거요. 햇빛도 공짜로 받고 공기도 공짜로 숨쉬고 부모의 사랑도 공짜로 받으면서 왜 예수님의 구원을 대가를 지불하고 받으려고 합니까? 큰 잘못입니다. 은혜가 크면 클수록 공짜로 받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니까 “아~ 말을 들어보니 그렇군요. 나는 여태까지 그런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힌데요. 구원을 공짜로 받는다니 감격적입니다.” 그는 그때부터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의 은총을 주시고 있으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나면 성령을 주셔서 아름다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죄가 너무 많기 때문에 구원 못 받는다. 교회 나오라고 하니까 이 죄인이 어떻게 교회에 나오느냐? 옛날에 제가 한사람보고 교회 나오라고 하니까 “나 좀 죄를 청산하고 좀 깨끗하게 되고 난 다음 교회 나오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아니올시다.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입니다. 당신 일주일에 목욕을 몇 번 합니까? 그는 하는 말이 ”매일같이 목욕한다고 그래요.“그래요?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때를 깨끗이 씻고 목욕탕에 들어갑니까?” 그러니까 “아니요~ 때가 있기 때문에 목욕탕에 가지요.” “그것 보세요. 목욕탕에는 때가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처럼 교회도 죄가 있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왜? 교회는 죄를 씻는 영적인 목욕탕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회 와야 죄를 씻지요. 교회 밖에서 죄를 다 씻고 교회에 나올리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보혈로 씻음 받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그다음부터 아름다운 인격적인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변화 받아야 구원받는 줄 알고 있는데 구원을 받아야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게 되면 그 마음에 변화가 다가오고 행동에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선해지거나 선행을 할 수 없다. 그 누구도 행위로 선하게 될 수없고 선행 역시 선한 사람이 된 후에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좋고 아름답게 보이는 행위라 할지라도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는 모두 헛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 믿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 착한 행실을 하게 되고 선한 사람이 되어야 선한 행위를 하게 되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의로운 언어, 심사, 행동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속이 변하지 않는데 바깥 행동이 변할 턱이 있어요? 이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성령이 오셔서 속사람이 변화 받으면 그 생활이 변화 받게 되는 것입니다. 생활이 변화 받지 않는다고 “뭐~ 예수 믿어도 별도리 없다.”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과일이 열매를 맺을 때 과일나무 심자마자 열매 맺습니까? 시간이 흘러야 과일이 열매를 맺습니다. 먼저 꽃피고 그 다음 조그만한 열매로써 세월이 흘러가면 자라서 탐스러운 열매가 되는 것처럼 예수 믿고 변화 받으면 그 다음에는 성령의 열매가 조그맣게 나타나는 것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자꾸 커지고 자라서 나중에 탐스러운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먼저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가 속에 들어오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변화된 행동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급하게 빨리 열매 맺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공격하고 멸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예수 믿고 난 다음 좋은 행위를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주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토요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십계명을 지켜야 구원받는다. 예수 믿고 난 다음 선행을 행해야 구원받는다. 예수 믿는 것과 인간의 선행을 플러스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올바르게 말한 것같이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세상을 뜨실 때 마지막 남긴 말이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인데 단번에 완전히 끝마쳤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미 다 끝났기 때문에 영원히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는 구원은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거기에 조금도 보탤 수 없고 뺄 수도 없습니다. 완전히 이룬 것 우리의 행위로 보태어서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 이루어 놓은 것에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 다 이룬 것에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모욕인 것입니다. 다 이룬 것은 보태고 뺄 것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잔칫날에 어머니가 부엌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모든 음식을 완전히 준비해놓고 난 다음에 이제 잔치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늦게 딸이 친정에 와서 “엄마, 내가 거들어 드릴께요” 내가 부엌에 들어가서 음식 만드는데 거들어 주면 엄마가 “아니야~ 내가 다 만들었어. 다 끝났어. 이제 잔치에 참여 하기만 하면 돼~” “아니야~ 엄마 솜씨는 믿을 수가 없어. 엄마가 무슨 장찌개를 잘해. 내가 해야지. 엄마가 어떻게 조기를 잘 구워. 내가 구워야지.” 엄마가 이미 장찌개나 조기를 다 구워 놓았는데 자기가 해야지 엄마가 한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엄마에 대한 모욕입니다. 엄마가 이미 내가 다 해놓았으니 방안에 들어가서 음식을 즐기자고 하면 “아이고 감사해요. 아이 고마워요.” 그러면 될 것 아닙니까? “엄마가 한 것은 내가 믿을 수 없다. 엄마가 한 것에 대해서 장찌개는 내가 해야 한다. 조기는 내가 구워야 된다.” 이것은 엄마에 대한 모독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려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았습니다. 주께서 친히 내가 다 이루었다고 했는데 “아니요. 다 이루지 못했어요. 내가 좀 도와 드려야 돼요. 그래야 구원이 되지 내가 안 도와 드리면 안돼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욕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욕인 것입니다. 절대로 구원은 여러분 조금도 플러스 하거나 마이너스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구원은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불안전한 것이 없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사람도 예수께 나와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열매와 행위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나중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으로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것은 믿고 하나님의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은혜로 주는 선물을 우리가 믿고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밖에 할 것이 더 있습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나가면 그로써 모든 우리 구원의 역사는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이 2천년 전에 이미 몸을 찢고 피 흘려 다 이루어 놓았습니다. 하나도 모자란 것이 없습니다. 티끌만큼도 모자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보탤 수 없습니다. 주님이 완성해 놓으신 구원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감격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 놓은 구원을 가지고 우리에게 선물로 받으라.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이며 얼마나 놀라운 구원인 것입니까? 우리가 할 일은 믿고 하나님의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습니다.
세계 제일의 강철왕 카네기는 ‘빚은 다 갚을 수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영원히 갚지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갚을만한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주신 것이기 때문에 감사히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론>

신앙인의 거룩한 행위는 믿음의 열매이지 믿음의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는 고로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지 변화된 삶을 살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나 깨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일어나나 앉으나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입니다. 울어도 못합니다. 힘써도 못합니다. 애써도 안 됩니다. 참아도 안 됩니다.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얼마나 놀랍고 기막힌 은혜이지 않습니까? 너무나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놀랍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 이렇게 귀한 선물을 공짜로 받을 수 있나. 무엇이든지 조금 내어야지. 무슨 일을 좀 해야지.’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그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값주고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햇빛도 값주고 못사는 주제에 공기도 값주고 숨쉬지 못하는 주제에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도 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를 값주고 사려고 합니까? 그저 무릎으로 엎드려 눈물로 감사하며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너나할 것 없이 구원을 받아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값없이 선물로 주시고 천국도 영원히 믿는 자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 받아서 영원히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죄악의 바다에 빠져서 우리 힘으로 발버둥을 쳐도 헤엄쳐 나올 수가 없는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우리 생명이 경각간에 달리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건져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건짐을 받았지 우리 힘으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엄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종교도 철학도 고행도 우리를 건져 주지 못하고 우리는 헤엄쳐 나올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우리를 건져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영원히 그리스도는 우리 주님이 되시고 우리는 영원히 주님께 신세를 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은 예수 믿고 신세를 지고 구원을 받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 것을 깨달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므로 영원히 주님께 신세지고 주님을 믿고 경배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사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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