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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5:2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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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2002.10.29
세계적인 인물로 인류에게 큰 업적을 남긴 사람 중에서 부부 생활은 아주 불행하게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 세명을 들라면 아마 톨스토이, 링컨, 소크라테스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의 부인은 임종할 때 머리맡에 딸들을 불러놓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은 내 탓이었었다." 톨스토이의 생애의 비극의 원인은 아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화려함을 원하는데 그는 그것을 경멸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회적 명성이나 칭찬을 갈망하고 있었으나 그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부를 동경하고 있었으나 그는 부를 죄악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서의 인세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아내는 화를 내고, 울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몇 년 동안 집요하게 그에게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발작을 일으켜서 그를 위협했습니다. 1910년 10월 어느 눈 내리는 밤, 83세의 톨스토이는 가정의 불화를 참고 견딜 수 없는 나머지 정처없이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11일 후 그는 어느 역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에게는 아내를 절대로 곁에 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만이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입장에서도 불평을 말할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링컨의 생애를 비극적으로 만든 것도 역시 결혼이었습니다. 링컨의 아내는 세상에 보기드문 잔소리 많은 여자로서 20년 이상의 결혼생활 동안 링컨을 곤경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남편에게 불평 불만과 비난을 퍼부어 댔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링컨에게 좋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등도 굽은데다 걸음걸이도 보기 흉하다, 인디언 그대로다, 귀모양과 얼굴모습이 온통 마음이 안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링컨은 아내와는 모든 점에서 대조적이었습니다. 성장과정, 기질, 취미, 사고 방식 등 무엇 하나 공통된 것이 없었습니다. 링컨은 가능하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안으려고 변호사 시절 봄 3개월과 가을 3개월을 순회 재판에 나가면 결코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링컨이 재빨리 불을 피우지 못하자 매리가 장작개비로 그의 얼굴을 때려 그는 다음날 상처난 코에 반창고를 붙인채 출근한 일도 있으며 매리는 남편의 얼굴에 커피를 뿌리고 빗자루로 때렸는가 하면 그를 집밖으로 내쫓기도 하고책이나 감자를 집어던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번은 아내가 소크라테스에게 잔소리를 퍼부은 뒤 그래도 성이 안 찼는지 물통에 담긴 물을 머리에 부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빙긋이 웃으며 "천둥이 친 다음에는 소나기가 오게 마련이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대 철학자가 저런 부인과 사는가?" 주위에서 물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나운 말을 타고 연습을 하면 어떤 말도 다룰 수 있지. 아내를 다룰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인들 다루지 못하겠나?"
소크라테스는 학식있는 대 철학자였습니다. 링컨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통치한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대통령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명작을 남김 대 문호입니다. 그들에게는 권력도, 학식도, 돈도, 명예도, 건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가정 생활은 불행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행복한 부부생활을 누리지 못했을까요?
그 원인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부부의 잘못된 관계 때문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데 중요한 요소는 원만한 인간관계입니다. 인간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아무리 권력이 있고, 물질이 많고 건강하고 잘생긴 용모를 가지고 출세하였다해도 행복한 가정 생활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것은 학문적으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들은 다섯 항목의 만족도 지표와 기쁨과 비참함 사이를 일곱 단계로 구분한 기준표를 사용하여 행복의 본질을 측정해 냈습니다. 그런데 행복의 첫째조건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이나 젊음, 잘생긴 용모 등보다는 "원만한 인간 관계"가 꼽혔습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려면 인간 관계가 중요합니다.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성경을 통하여 행복하게 살려면 부부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I. 먼저 남편과 아내는 자신의 가치관으로 서로를 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가치관으로 서로를 대하여야 합니다.
서로 남남이 사람이 20-30년 동안 각각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집에서 살다가 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단숨에 어떻게 서로 조화되며 화합하겠습니까?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조화될 수가 없습니다. 로버트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집 아이를 보니까 조립품 로버트를 사다 조립을 합니다. 하다가 안되면 본드로 붙여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학자들은 대부분의 가정은 크게 일곱 단계의 변천 과정을 격는다고 합니다.
첫째, 낭만감이 넘치는 허니문(Honey moon)시절인데 이때 두 사람은 세상을 다 소유한 듯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들뜬 감정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둘째, 신혼 초 과도기적 단계인데 신혼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세계로 들어오는 과정으로 두 사람은 바뀌어진 환경과, 생활습관, 가치관의 차이로 말미암아 서로 실망하게 되지만 서로에게 아픈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감정을 삭이거나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셋째, 결혼생활이 현실에 적응하여 안정하게 되는 단계인데 아이들 갖게 되고 삶의 여러 가지 위협적인 문제로 심각한 갈등과 위기를 겪으며 잦은 말다툼, 냉전, 열전이 있습니다.
넷째, 혼동과 위기의 단계입니다. 부부 사이에 잦은 갈등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실망과 좌절감이 찾아 옵니다.
다섯째, 보복과 배척의 단계, 혹은 재헌신과 연합의 단계입니다. 혼동과 위기의 단계를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원망과 비통함이 시작되고 서로 분리되고 고립화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서로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보복을 합니다.
여섯째, 빈 둥우리의 단계로 남편이나 아내는 정년퇴직 하여 집안에 들어오는 반면, 성장한 자녀들 은 때론 학업을 위하여, 직장이나 결혼으로 인해 하나 둘씩 부모 곁을 떠나는 단계입니다. 공허감이 찾아 옵니다.
일곱째, 자녀들이 다시 부모가 되는 부메랑(Boomerang)의 단계입니다.
대부분 이런 관정을 거치면서 부부는 한 인생을 살아 갑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끝없이 조화되지 못하고 부디치는 것이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아내는 아내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고 남편은 남편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가정을 쉽게 깨어 집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이런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모든 가치관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A.먼저 아내에게 말씀합니다.
1.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22-24).
2. 남편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엡5:33)
3. 남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딛2:4-5절)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원수같은 남편, 폭군 같은 남편, 다시 보기 싫은 남편에게 어떻게 순종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노예 제도가 성행하는 1-2세기에 성경이 쓰여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남녀가 평등한데 왜 남편에게 복종하는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인격적으로 타협하여 좋은 방법으로 결정해야지 여자가 왜 남편에게 복종하여야 하는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자가 남편에게 (1)왜 강제로 억제 당하고 (2)굴욕적으로 굽실 거리는 굴복을 해야 하고 (3)위축되고 (4)타의적으로 모든 권한을 빼앗기고 (5)열등해서 아첨하고 (6)줏대없이 행동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여자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여자가 열등한 이유 (1)대소변을 볼 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2)여자는 변덕이 심해서(남자 어머니 좋아하다 아버지 좋아하는 반면 여자 어머니-아버지-어머니 변절) (3)여자는 창의력이 부족하기 때문에(명 요리사, 위대한 예술 작품, 남자-여자는 창의력이 부족)에 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자가 약하니까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인격적으로 똑같습니다.
결혼한 아내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한 가정을 이루어 아내가 되었으니 가정의 권위를 위하여 복종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창조질서)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잘해주어서도 아닙니다. 부자여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참 행복이 있습니다. 범위는 범사입니다. 불신 남편에게도 마찬 가지입니다. 벧전3:1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죄송합니다. 다시 저희 아이 이야기를 해야 겠습니다. 지난 주에 차에 치어 천국갈뻔 했습니다. 롤러 브레이드를 타다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이야기 해도 잘 못알아 듣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고 자신의 자유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 같지만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B. 남편에게 말씀합니다.
1.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25-30).
2. 아내를 괴롭히지 말라고 합니다. (골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3.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말씀합니다.(벧전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
아내는 ① 부르러운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②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는 길 원합니다. ③ 신뢰할 수 있는 기둥이 되어 주길 원합니다. ④ 재정적으로 안정감을 주길 원합니다. ⑤ 가장으로서 가정에 대한 헌신하길 원합니다.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귀히여겨야 합니다.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사랑하라는 것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교회를 그렇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26-27)
부인에게 강요하고 군림자 독제자가되어 지배하고 굴복시키고 맹종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인으로 하여금 남편에게 복종하게 한 것은 남편이 잘나서 남자가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가 가정에서 시행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가정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가정에서 성취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말 2:15)"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잠 5:18)"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잠 5:19)"
지난 21일 날이 부부의 날이었습니다. 이날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주는 올해의 부부상을 박우범 장로님께서 받았습니다. 4년 전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좌측뇌의 손상된 아내는 언어 기관과 우측 수족 장애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장로님은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돌보며 사업과 가사일까지 하였습니다.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일주일에 한 두번씩 목욕을 시켜주고 하루에 두시간씩 운동을 시킵니다. 천사 장로님이라고 불리우는 그분은 반드시 아내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하며 절망하지 않고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드린다고 합니다.
Ⅱ. 서로 주님께 하듯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동물에게 대하듯, 물건 대하듯 조금 나아져 사람에게 하듯 하며 살면 행복의 진수를 누릴 수 없습니다. 남편 대하기 아내 대하기 동물 대하듯 하지 마십시오.
어떤 아내는 남편이 새처럼 일찍 일어나 밥을 짖고 소처럼 잠자코 부지런하여 퇴근 후 반찬 사오고 양처럼 온순하여 말대꾸 하지 말고 개처럼 충성하고 돼지처럼 좋든 나쁘든 가리지 말고 아무것이나 주는대로 받아 먹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남편을 동물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글에 아버지가 시집을 가는 딸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만일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하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만일 남편이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갈 때는 목욕도 하게 하여 몸치장을 잘해서 보내도록 할 것이고, 남편의 친구가 놀러 올 때는 극진히 대접할 것이다. 그렇게하면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귀중히 여겨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울 것이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주님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A. 아내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복종하라고 합니까?
1. 주께하듯(22)
2.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이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24).
B.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입니까?
1.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함같이(25b).
2.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같이(29)
우리는 아내와 남편을 볼 때 단순한 인간관계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대하듯 대하여야 합니다. 주님 대하듯 대하는데 괴롭힐 수 있겠습니까? 카페 아가시보다 더 귀하지 않게 볼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화난다고 서로 말하지 않고 일주일 냉전을 하겠습니까?
한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고는 몇일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아침 일찍 회사를 가야했기 때문에 부인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싫어서 테이블 위에 메모를 남겼습니다. '아침 6시에 깨워줘.' 다음날 아침 남편이 침대에서 일어나자 시간이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남편이 부인을 찾으러 일어나는데 테이블 위에 메모지가 놓여있었습니다. '6시에요. 빨랑 일어나서 나가요!'
밥의 영양가는 누룽지에 있다고 누룽지만 남편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생선은 어두일미라 해서 생선 대가리만 남편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사과는 껍질에 영양가가 있다고 해서 껍질을 남편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투기하는 것이라고 퇴근시간에서 조금만 늦으면 어디 들렀다 왔느냐고 심문하며 어딘가에 숨겨놓은 여자가 있는 게 아니냐고 추궁하며 옷에 묻은 머리카락 DNA 조사하며 냄새를 맡아볼 수 있겠습니까? "아내"라는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배우자의 모든 것을, 심지어는 깊숙한 내면적인 부분까지도 몽땅 꿰차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배우자의 횡포 때문에 알게모르게 시달리며 사는 부부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께 하듯하라하니까 남편이 주님이 됩니다. 아내가 주님이 됩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하듯 행위를 하라는 것이지 존재 자체를 주님으로 여기라는 말은 아닙니다.
링컨형 남편이 있습니다. 아내의, 아내에 의한, 오로지 아내를 위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케네디형 남편이 있습니다. 아내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내가 아내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 갑니다.
데카르트형 남편이 있습니다. 나는 아내만을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하며 아내 없으면 이세상 존재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형이 있습니다. 내 아내만을 알자라고 말하며 다른 여인은 사람취급도 안합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인정해주고 주님께 대하듯 자신을 대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19세기 최고의 화가 중의 하나인 폴 세잔느가 있습니다. 그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밤새워 그림을 그리다가 원대로 못그리면 버렸습니다. 당시 그는 무명 화가였습니다. 그러면 그 구겨진 그림을 아내가 다시 잘펴서 화실에 갔다 놓았습니다. 다시 그립니다. 그것들이 유명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어떠한 남성이건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반대하고 비웃을 때라도 자기 편을 들어 주는 여성을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되지 않을 때, 남의 공격을 받을 때, 사업에 실패했을 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당신에 대한 저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남편에게 끈기와 용기와 자신을 북돋아 주는 아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19세기 말엽. 미국의 미시간 주, 데트로이드 시의 전등회사에 포드는 다녔습니다. 그는 날마다 10시간씩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뒷뜰에 있는 낡은 오두막집에 틀어박혔습니다. 새로운 엔진의 제작을 위해 밤이 깊도록 일에 몰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쓸데없는 짓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이 젊은 기사를 놀림감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의 아내만은 그를 믿었습니다. 집안 일이 끝나면 반드시 그 오두막집에 나타나 남편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나의 信者'라고 불렀습니다. 포드는 자동차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후, 포오드는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내 아내와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건 전혀 개의치 않겠오."
서로 얼굴을 보며 주님처럼 사랑한다고 해보십시오. "여보 사랑해" 그것이 쑥스러우면 "보여 요해-랑사!"해 보십시오.
1945년 7월 16일 5시 30분에 뉴멕시코 사막에서 태양의 1000배가되는 섬광을 밝히면서 최초의 원자탄이 폭팔 되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쇼펜하우러 박사가 이 무서운 무기에 대하여 설명했을 때 의원들은 두려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여 그것을 막을 무기는 없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박사는 이 원자탄 무기를 막을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무기뿐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한다면 어떤 고난도 이기며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Ⅲ. 하나님을 모시고 주님께서 제정해 주신 가정의 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31)
세계미래학회가 발행하는 미래예측 전문지 <퓨처리스트>에서는 21세기의 가족은 자녀의 재생산.양육 및 사회화 그리고 가족애라는 전통적인 가족 기능이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맞벌이의 증가로 가족은 남성화되고 결혼이 거래라는 개념으로 이혼이 가정파탄이 아니고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는 긍정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가족 형태 즉 장기동거 뒤의 결혼, 혼합가정(이복형제가정) 및 입양가정의 일반화, 저소득층의 결손가정화, 동성애 가정의 합법화, 성적 결합없는 공동거주 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부가 행복해지려면 만고 불변의 가정원리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결혼이란 신분 상승, 경제 계약, 필요 충족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가정이 상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1. 결혼 제도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도입니다.
창조시-초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유대인에게-이혼요구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 19:5)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 19:6)
이방인에게-이미 결혼 사람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1)
창3: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가정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입니다. 부부가 우연히 만난 것 아닙니다. 필연적인 사건입니다.
2. 결혼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1)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창2:29 남편이 부모를 떠나"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1)"
남편이 부모를 떠난다는 원리입니다. 물론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인간 삶의 습관을 말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부모의 권위 통치로부터 떠남을 말합니다.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될 것을 말한다. 과거의 친구 친정, 과거의 습관, 사상, 생활 태도 등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현명한 아버지지는 "애야 너는 이제 결혼을 하면 네 가정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집은 언제까지나 그리고 언제든지 너를 환영할 것이다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네 남편과 함께 와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2) 아내와 연합하는 원리입니다. (하나됨의 원리.)
연합이라는 말은 아교로 붙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월터 트로비쉬(나는 너와 결혼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아무것도 들어 가지 못합니다. 남편 100% 헌신 아내 100% 헌신이 있습니다. 연합을 방해하는 요소는 그 어는 것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 (1)자신의 만족을 위해. (2)아기, 자녀 (3)친인척 (4)경제력 (5)교회 그 어떤 것도 이 연합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3)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1+1=1 육체 뿐이 아니다. 경제 사회 신앙, 한 단위가 되어야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결혼을 앞둔 조카 달에게 "결혼이란 서로 사랑하는 것 이상이란다. 결혼은 사랑보다 지고한 존엄성과 힘을 지닌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명령을 통해 세상 끝까지 인류를 존속시킬 뜻을 가지고 계시단말이다. 너희들이 연애중일 때는 세상에서 단 두 사람만 보았을 거다. 그러나결혼 생활에서는 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세대를 연결하는 사슬의 고리가 되는 것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연애 중일 때는 네 행복의 천국만을 보았지만, 결혼 생활에서는 이 세상과 인류를 위한 책임을 지는 것이야. 그러니앞서 말한 답이 나온 셈이다. 네 사랑은 네 자신의 개인 소유지만, 결혼이란 개인적인 것. 이상이란 말 뜻을 이제 알았겠지. 그렇다면 마음에 새겨두기를 바란다. 결혼은 하나의 사회적 신분이고 임무라는 것을...."이라고 결혼 축하문을 보내었습니다.
결혼이란 단순히 남녀가 만나는 차원 그 이상입니다.
세계적인 인물로 인류에게 큰 업적을 남긴 사람 중에서 부부 생활은 아주 불행하게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 세명을 들라면 아마 톨스토이, 링컨, 소크라테스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의 부인은 임종할 때 머리맡에 딸들을 불러놓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은 내 탓이었었다." 톨스토이의 생애의 비극의 원인은 아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화려함을 원하는데 그는 그것을 경멸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회적 명성이나 칭찬을 갈망하고 있었으나 그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부를 동경하고 있었으나 그는 부를 죄악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서의 인세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아내는 화를 내고, 울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몇 년 동안 집요하게 그에게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발작을 일으켜서 그를 위협했습니다. 1910년 10월 어느 눈 내리는 밤, 83세의 톨스토이는 가정의 불화를 참고 견딜 수 없는 나머지 정처없이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11일 후 그는 어느 역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에게는 아내를 절대로 곁에 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만이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입장에서도 불평을 말할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링컨의 생애를 비극적으로 만든 것도 역시 결혼이었습니다. 링컨의 아내는 세상에 보기드문 잔소리 많은 여자로서 20년 이상의 결혼생활 동안 링컨을 곤경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남편에게 불평 불만과 비난을 퍼부어 댔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링컨에게 좋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등도 굽은데다 걸음걸이도 보기 흉하다, 인디언 그대로다, 귀모양과 얼굴모습이 온통 마음이 안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링컨은 아내와는 모든 점에서 대조적이었습니다. 성장과정, 기질, 취미, 사고 방식 등 무엇 하나 공통된 것이 없었습니다. 링컨은 가능하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안으려고 변호사 시절 봄 3개월과 가을 3개월을 순회 재판에 나가면 결코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링컨이 재빨리 불을 피우지 못하자 매리가 장작개비로 그의 얼굴을 때려 그는 다음날 상처난 코에 반창고를 붙인채 출근한 일도 있으며 매리는 남편의 얼굴에 커피를 뿌리고 빗자루로 때렸는가 하면 그를 집밖으로 내쫓기도 하고책이나 감자를 집어던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번은 아내가 소크라테스에게 잔소리를 퍼부은 뒤 그래도 성이 안 찼는지 물통에 담긴 물을 머리에 부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빙긋이 웃으며 "천둥이 친 다음에는 소나기가 오게 마련이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대 철학자가 저런 부인과 사는가?" 주위에서 물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나운 말을 타고 연습을 하면 어떤 말도 다룰 수 있지. 아내를 다룰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인들 다루지 못하겠나?"
소크라테스는 학식있는 대 철학자였습니다. 링컨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통치한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대통령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명작을 남김 대 문호입니다. 그들에게는 권력도, 학식도, 돈도, 명예도, 건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가정 생활은 불행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행복한 부부생활을 누리지 못했을까요?
그 원인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부부의 잘못된 관계 때문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데 중요한 요소는 원만한 인간관계입니다. 인간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아무리 권력이 있고, 물질이 많고 건강하고 잘생긴 용모를 가지고 출세하였다해도 행복한 가정 생활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것은 학문적으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들은 다섯 항목의 만족도 지표와 기쁨과 비참함 사이를 일곱 단계로 구분한 기준표를 사용하여 행복의 본질을 측정해 냈습니다. 그런데 행복의 첫째조건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이나 젊음, 잘생긴 용모 등보다는 "원만한 인간 관계"가 꼽혔습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려면 인간 관계가 중요합니다.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성경을 통하여 행복하게 살려면 부부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I. 먼저 남편과 아내는 자신의 가치관으로 서로를 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가치관으로 서로를 대하여야 합니다.
서로 남남이 사람이 20-30년 동안 각각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집에서 살다가 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단숨에 어떻게 서로 조화되며 화합하겠습니까?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조화될 수가 없습니다. 로버트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집 아이를 보니까 조립품 로버트를 사다 조립을 합니다. 하다가 안되면 본드로 붙여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학자들은 대부분의 가정은 크게 일곱 단계의 변천 과정을 격는다고 합니다.
첫째, 낭만감이 넘치는 허니문(Honey moon)시절인데 이때 두 사람은 세상을 다 소유한 듯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들뜬 감정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둘째, 신혼 초 과도기적 단계인데 신혼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세계로 들어오는 과정으로 두 사람은 바뀌어진 환경과, 생활습관, 가치관의 차이로 말미암아 서로 실망하게 되지만 서로에게 아픈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감정을 삭이거나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셋째, 결혼생활이 현실에 적응하여 안정하게 되는 단계인데 아이들 갖게 되고 삶의 여러 가지 위협적인 문제로 심각한 갈등과 위기를 겪으며 잦은 말다툼, 냉전, 열전이 있습니다.
넷째, 혼동과 위기의 단계입니다. 부부 사이에 잦은 갈등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실망과 좌절감이 찾아 옵니다.
다섯째, 보복과 배척의 단계, 혹은 재헌신과 연합의 단계입니다. 혼동과 위기의 단계를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원망과 비통함이 시작되고 서로 분리되고 고립화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서로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보복을 합니다.
여섯째, 빈 둥우리의 단계로 남편이나 아내는 정년퇴직 하여 집안에 들어오는 반면, 성장한 자녀들 은 때론 학업을 위하여, 직장이나 결혼으로 인해 하나 둘씩 부모 곁을 떠나는 단계입니다. 공허감이 찾아 옵니다.
일곱째, 자녀들이 다시 부모가 되는 부메랑(Boomerang)의 단계입니다.
대부분 이런 관정을 거치면서 부부는 한 인생을 살아 갑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끝없이 조화되지 못하고 부디치는 것이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아내는 아내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고 남편은 남편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가정을 쉽게 깨어 집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이런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모든 가치관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A.먼저 아내에게 말씀합니다.
1.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22-24).
2. 남편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엡5:33)
3. 남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딛2:4-5절)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원수같은 남편, 폭군 같은 남편, 다시 보기 싫은 남편에게 어떻게 순종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노예 제도가 성행하는 1-2세기에 성경이 쓰여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남녀가 평등한데 왜 남편에게 복종하는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인격적으로 타협하여 좋은 방법으로 결정해야지 여자가 왜 남편에게 복종하여야 하는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자가 남편에게 (1)왜 강제로 억제 당하고 (2)굴욕적으로 굽실 거리는 굴복을 해야 하고 (3)위축되고 (4)타의적으로 모든 권한을 빼앗기고 (5)열등해서 아첨하고 (6)줏대없이 행동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여자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여자가 열등한 이유 (1)대소변을 볼 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2)여자는 변덕이 심해서(남자 어머니 좋아하다 아버지 좋아하는 반면 여자 어머니-아버지-어머니 변절) (3)여자는 창의력이 부족하기 때문에(명 요리사, 위대한 예술 작품, 남자-여자는 창의력이 부족)에 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자가 약하니까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인격적으로 똑같습니다.
결혼한 아내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한 가정을 이루어 아내가 되었으니 가정의 권위를 위하여 복종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창조질서)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잘해주어서도 아닙니다. 부자여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참 행복이 있습니다. 범위는 범사입니다. 불신 남편에게도 마찬 가지입니다. 벧전3:1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죄송합니다. 다시 저희 아이 이야기를 해야 겠습니다. 지난 주에 차에 치어 천국갈뻔 했습니다. 롤러 브레이드를 타다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이야기 해도 잘 못알아 듣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고 자신의 자유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 같지만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B. 남편에게 말씀합니다.
1.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25-30).
2. 아내를 괴롭히지 말라고 합니다. (골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3.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말씀합니다.(벧전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7)"
아내는 ① 부르러운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②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는 길 원합니다. ③ 신뢰할 수 있는 기둥이 되어 주길 원합니다. ④ 재정적으로 안정감을 주길 원합니다. ⑤ 가장으로서 가정에 대한 헌신하길 원합니다.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귀히여겨야 합니다.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사랑하라는 것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교회를 그렇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26-27)
부인에게 강요하고 군림자 독제자가되어 지배하고 굴복시키고 맹종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인으로 하여금 남편에게 복종하게 한 것은 남편이 잘나서 남자가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가 가정에서 시행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가정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가정에서 성취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말 2:15)"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잠 5:18)"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잠 5:19)"
지난 21일 날이 부부의 날이었습니다. 이날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주는 올해의 부부상을 박우범 장로님께서 받았습니다. 4년 전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좌측뇌의 손상된 아내는 언어 기관과 우측 수족 장애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장로님은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돌보며 사업과 가사일까지 하였습니다.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일주일에 한 두번씩 목욕을 시켜주고 하루에 두시간씩 운동을 시킵니다. 천사 장로님이라고 불리우는 그분은 반드시 아내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하며 절망하지 않고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드린다고 합니다.
Ⅱ. 서로 주님께 하듯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동물에게 대하듯, 물건 대하듯 조금 나아져 사람에게 하듯 하며 살면 행복의 진수를 누릴 수 없습니다. 남편 대하기 아내 대하기 동물 대하듯 하지 마십시오.
어떤 아내는 남편이 새처럼 일찍 일어나 밥을 짖고 소처럼 잠자코 부지런하여 퇴근 후 반찬 사오고 양처럼 온순하여 말대꾸 하지 말고 개처럼 충성하고 돼지처럼 좋든 나쁘든 가리지 말고 아무것이나 주는대로 받아 먹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남편을 동물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글에 아버지가 시집을 가는 딸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만일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하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만일 남편이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갈 때는 목욕도 하게 하여 몸치장을 잘해서 보내도록 할 것이고, 남편의 친구가 놀러 올 때는 극진히 대접할 것이다. 그렇게하면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귀중히 여겨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울 것이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주님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A. 아내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복종하라고 합니까?
1. 주께하듯(22)
2.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이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24).
B.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입니까?
1.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함같이(25b).
2.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같이(29)
우리는 아내와 남편을 볼 때 단순한 인간관계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대하듯 대하여야 합니다. 주님 대하듯 대하는데 괴롭힐 수 있겠습니까? 카페 아가시보다 더 귀하지 않게 볼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화난다고 서로 말하지 않고 일주일 냉전을 하겠습니까?
한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고는 몇일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아침 일찍 회사를 가야했기 때문에 부인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싫어서 테이블 위에 메모를 남겼습니다. '아침 6시에 깨워줘.' 다음날 아침 남편이 침대에서 일어나자 시간이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남편이 부인을 찾으러 일어나는데 테이블 위에 메모지가 놓여있었습니다. '6시에요. 빨랑 일어나서 나가요!'
밥의 영양가는 누룽지에 있다고 누룽지만 남편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생선은 어두일미라 해서 생선 대가리만 남편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사과는 껍질에 영양가가 있다고 해서 껍질을 남편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투기하는 것이라고 퇴근시간에서 조금만 늦으면 어디 들렀다 왔느냐고 심문하며 어딘가에 숨겨놓은 여자가 있는 게 아니냐고 추궁하며 옷에 묻은 머리카락 DNA 조사하며 냄새를 맡아볼 수 있겠습니까? "아내"라는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배우자의 모든 것을, 심지어는 깊숙한 내면적인 부분까지도 몽땅 꿰차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배우자의 횡포 때문에 알게모르게 시달리며 사는 부부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께 하듯하라하니까 남편이 주님이 됩니다. 아내가 주님이 됩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하듯 행위를 하라는 것이지 존재 자체를 주님으로 여기라는 말은 아닙니다.
링컨형 남편이 있습니다. 아내의, 아내에 의한, 오로지 아내를 위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케네디형 남편이 있습니다. 아내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내가 아내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 갑니다.
데카르트형 남편이 있습니다. 나는 아내만을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하며 아내 없으면 이세상 존재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형이 있습니다. 내 아내만을 알자라고 말하며 다른 여인은 사람취급도 안합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인정해주고 주님께 대하듯 자신을 대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19세기 최고의 화가 중의 하나인 폴 세잔느가 있습니다. 그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밤새워 그림을 그리다가 원대로 못그리면 버렸습니다. 당시 그는 무명 화가였습니다. 그러면 그 구겨진 그림을 아내가 다시 잘펴서 화실에 갔다 놓았습니다. 다시 그립니다. 그것들이 유명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어떠한 남성이건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반대하고 비웃을 때라도 자기 편을 들어 주는 여성을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되지 않을 때, 남의 공격을 받을 때, 사업에 실패했을 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당신에 대한 저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남편에게 끈기와 용기와 자신을 북돋아 주는 아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19세기 말엽. 미국의 미시간 주, 데트로이드 시의 전등회사에 포드는 다녔습니다. 그는 날마다 10시간씩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뒷뜰에 있는 낡은 오두막집에 틀어박혔습니다. 새로운 엔진의 제작을 위해 밤이 깊도록 일에 몰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쓸데없는 짓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이 젊은 기사를 놀림감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의 아내만은 그를 믿었습니다. 집안 일이 끝나면 반드시 그 오두막집에 나타나 남편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나의 信者'라고 불렀습니다. 포드는 자동차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후, 포오드는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내 아내와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건 전혀 개의치 않겠오."
서로 얼굴을 보며 주님처럼 사랑한다고 해보십시오. "여보 사랑해" 그것이 쑥스러우면 "보여 요해-랑사!"해 보십시오.
1945년 7월 16일 5시 30분에 뉴멕시코 사막에서 태양의 1000배가되는 섬광을 밝히면서 최초의 원자탄이 폭팔 되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쇼펜하우러 박사가 이 무서운 무기에 대하여 설명했을 때 의원들은 두려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여 그것을 막을 무기는 없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박사는 이 원자탄 무기를 막을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무기뿐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한다면 어떤 고난도 이기며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Ⅲ. 하나님을 모시고 주님께서 제정해 주신 가정의 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31)
세계미래학회가 발행하는 미래예측 전문지 <퓨처리스트>에서는 21세기의 가족은 자녀의 재생산.양육 및 사회화 그리고 가족애라는 전통적인 가족 기능이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맞벌이의 증가로 가족은 남성화되고 결혼이 거래라는 개념으로 이혼이 가정파탄이 아니고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는 긍정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가족 형태 즉 장기동거 뒤의 결혼, 혼합가정(이복형제가정) 및 입양가정의 일반화, 저소득층의 결손가정화, 동성애 가정의 합법화, 성적 결합없는 공동거주 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부가 행복해지려면 만고 불변의 가정원리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결혼이란 신분 상승, 경제 계약, 필요 충족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가정이 상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1. 결혼 제도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도입니다.
창조시-초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유대인에게-이혼요구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 19:5)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 19:6)
이방인에게-이미 결혼 사람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1)
창3: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가정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입니다. 부부가 우연히 만난 것 아닙니다. 필연적인 사건입니다.
2. 결혼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1)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창2:29 남편이 부모를 떠나"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1)"
남편이 부모를 떠난다는 원리입니다. 물론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인간 삶의 습관을 말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부모의 권위 통치로부터 떠남을 말합니다.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될 것을 말한다. 과거의 친구 친정, 과거의 습관, 사상, 생활 태도 등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현명한 아버지지는 "애야 너는 이제 결혼을 하면 네 가정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집은 언제까지나 그리고 언제든지 너를 환영할 것이다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네 남편과 함께 와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2) 아내와 연합하는 원리입니다. (하나됨의 원리.)
연합이라는 말은 아교로 붙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월터 트로비쉬(나는 너와 결혼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아무것도 들어 가지 못합니다. 남편 100% 헌신 아내 100% 헌신이 있습니다. 연합을 방해하는 요소는 그 어는 것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 (1)자신의 만족을 위해. (2)아기, 자녀 (3)친인척 (4)경제력 (5)교회 그 어떤 것도 이 연합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3)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1+1=1 육체 뿐이 아니다. 경제 사회 신앙, 한 단위가 되어야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결혼을 앞둔 조카 달에게 "결혼이란 서로 사랑하는 것 이상이란다. 결혼은 사랑보다 지고한 존엄성과 힘을 지닌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명령을 통해 세상 끝까지 인류를 존속시킬 뜻을 가지고 계시단말이다. 너희들이 연애중일 때는 세상에서 단 두 사람만 보았을 거다. 그러나결혼 생활에서는 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세대를 연결하는 사슬의 고리가 되는 것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연애 중일 때는 네 행복의 천국만을 보았지만, 결혼 생활에서는 이 세상과 인류를 위한 책임을 지는 것이야. 그러니앞서 말한 답이 나온 셈이다. 네 사랑은 네 자신의 개인 소유지만, 결혼이란 개인적인 것. 이상이란 말 뜻을 이제 알았겠지. 그렇다면 마음에 새겨두기를 바란다. 결혼은 하나의 사회적 신분이고 임무라는 것을...."이라고 결혼 축하문을 보내었습니다.
결혼이란 단순히 남녀가 만나는 차원 그 이상입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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