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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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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9. 5. 31. 성령강림주일 4부 설교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서론>
오늘 저는 “임금과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특별히 차별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개 일반적인 종교는 구원의 조건이 행위에 있습니다. 수양을 해라. 도덕적인 삶이나 종교적 의를 통해서 구원에 이를 만큼 좋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수양과 도덕과 좋은 행위의 결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조건이 없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 향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착하고 선한 일을 해서 그것이 나중에 상을 받는 것이지 착하고 선한 일을 해서 그 결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임금과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한번 설명을 해보고자 생각합니다.
20세기 인도의 유명한 전도자 선다 씽이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광경을 봤습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들여다보니 수도승 한 사람이 팔을 높이 들고 앉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지은 죄가 많아서 그 손을 스스로 벌한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한달 내내 1년 365일 팔을 들고 있습니다. 너 벌 받으라고... 그래서 선다 씽이 하도 측은해서 "수십 년을 그렇게 벌을 선다고 해서 그 손이 깨끗해지겠소? 마음이 깨끗해져야지 손을 들고 있다고 해서 깨끗해 지지 않는다."고 타일렀다는 말을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은 그의 책「티끌의 윤리」에서 "하나님이 들어 쓰실 때 진흙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면서, "모래와 흙과 불이 하나님의 손에 놓이면 사파이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흙이 하나님의 손에서는 다이아몬드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들리는 것이 문제지 내가 스스로 다이아몬드가 되고 내가 스스로 사파이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와 다른 종교가 달라도 보통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함께 못 박힌 강도가 좋은 행위를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적선할 시간도 없고 참회할 시간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고 시인을 하자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행위는 그 후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임금(賃金)
임금이란 어떻습니까? 노동의 대가로 얻는 것입니다.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돈을 받는 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화이트칼라가 아닌 블루칼라 육체노동은 참으로 대가를 받아도 적습니다. 6.25사변 때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15살 때 6.25사변이 나서 온 전국에서 피난민들이 부산에 내려와서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6.25때 우리의 삶은 생존하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죽어서 넘어져도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는데 밤에 노동을 해야 되겠는데 나이가 15살이니까 노동 현장에서 나를 안받아줘요. 그래서 내가 거짓말을 해서 친구들을 증인을 세워서 18살이라고 해서 부두에 노동자로 들어갔습니다. 부두의 노동자들은 밤 8시에 부두에 들어가서 하역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배에 가서 배에 있는 짐들을 어깨에 걸머지고 와서 공장에다가 세워 놓는데 초저녁까지는 힘이 있어서 그래도 하역작업을 할 수 있어요. 저녁이 되니까 음식이라고 주는데 안남미 조금에다가 바다풀 몇 개를 얹어서 주는데 그것 먹고는 기어도 못 다니겠어요. 그런데 그 음식을 주어서 먹고 또 저녁에 일을 시키는데 짐을 걸머지고 제가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짐을 걸머지고 땅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반장이 와서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고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면 그것을 안고 벌벌 기어서 짐을 날랐습니다. 정말로 육체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힘이 들었었습니다. 공짜는 누가 돈을 줍니까? 그래도 일일노동하고 임금을 받으니까 그 돈 받아서 집에 가는 재미로 하다가 나중에는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만두고 그 다음에는 대신 야경을 돌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밤에 집집마다 야경의 순번이 오면 야경을 도는데 나이 많은 집안사람들이 야경을 돌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경찰서에서 젊은 사람을 대신해서 야경을 돌게 합니다. 그러면 저녁에 나가서 야경완장을 차고 그 다음에는 전지를 들고 동리를 야경을 도는 것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시간마다 온 동리를 돌아봐야 되는데 한번은 철뚝가에 나왔는데 밤 12시가 넘었는데 젊은이가 미군사지에다가 군물을 들여서 입고 미군 군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철뚝을 건너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여보시오. 이 시간에 통금 시간인데 어떻게 절뚝을 건넙니까? 신분증을 내 놓으시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이구 요게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너 내 주먹 하나면 죽는다.”고 그러더라구요. “죽든 살든 나는 야경을 돌 사명이 있기 때문에 신분증 내놓으십시오.” 그러니까 한참 나를 쳐다보더니 허허허~ 웃더니만 신분증을 빼는데 보니까 경찰관이에요. 그 하는 말이 “내가 경찰관이기 때문에 자네가 살았지 내가 진짜 깡패였으면 오늘 저녁에 당신은 제삿날이다.” 그런 위험을 겪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니까 더 이상 야경 돌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의사 선생님 가정인데 미국으로 온 가족이 이민을 가게 되어서 영어교사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제가 응해서 영어교사로 들어가니까 이제는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들어갔습니다. 영어를 가르치니까 정신적으로 노동하는데 힘이 들지만 월급은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서 산 세월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영어를 한 1년 동안 가르치다가 보니까 미국 선교사를 만나서 선교사가 “날 따라다니면서 통역을 해주겠느냐?” 그래서 “돈을 얼마나 주겠느냐?” 하니까 “가정교사로 있을 때보다 배로 많이 주겠다.” 그래서 통역을 하러 따라 다니면서 돈을 좀 벌어서 나중에는 신학교 올 수 있는 돈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절실히 느꼈어요. 부두의 노동할 때 야경을 돌고 있을 때 그 다음에는 우리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없어서 청과시장에 가서 과일을 받아다가 길거리에서 팝니다. 파는데 철뚝 길목에 사람이 많이 오니까 철뚝 길목에서 그 안내원에 사정을 하고 그리고 와이루(뇌물)를 좀 주고 거기에 장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와서 앉아서 사과를 자꾸 만져서 흠을 냅니다. 흠을 내놓고 “이것은 값이 안 나간다. 흠이 있는 사과니까 먹어도 괜찮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먹어 버립니다. 왜 말짱한 사과를 자꾸 만져서 흠을 내놓고 먹느냐고 고함을 쳐도 말을 안 듣습니다. 가을에 와서 감, 홍시 장사는 기가 막힙니다. 홍시는 손으로 만지면 뚫어지지 않습니까? 와서 자꾸 뚫어지면 아까 와서 만져서 뚫어 놓고 “아이구 이것은 못 팔겠네. 이것 먹어야지.” 하면서 주워 먹어 버립니다. 그래서 싸움도 많이 하고 집 주인에게 빗자루로 얻어맞기도 하고 발길로 채이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 몸부림은 가혹한 것입니다. 육체노동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괴롭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민족들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식교육에 온 정성을 다 기울였습니다. 논을 팔고, 밭을 팔고, 집을 팔고, 소를 팔아서 자식을 공부시켰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우골대학이라고 했습니다. 소 뼈다귀 대학이라고 한 것입니다. 소 뼈다귀 대학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우리 한국이 이와 같이 발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배우지 아니하면 육체노동만 하면 가치가 없기 때문에 수입이 없습니다. 배워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면 그 몸의 가치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높은 교육을 받고 기술 향상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무노동은 무임금이 아닙니까? 아무 일도 안하면 아무 임금도 받을 수 없지 않습니까?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일을 안 하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일을 해야 된다. 천국같이 아름다운 곳에 공짜로 갈수가 없다. 이 세상의 선술집에 가서 한술 얻어먹는 것도 돈을 줘야 되고 극장에 갈 때도 표사는데 돈을 줘야 되는데 천국에 들어가는데 일을 하지 않고 값없이 빈손 들고 갈수 있겠느냐?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하고 그래서 도를 닦고 고생을 하고 수양을 하고 애를 써서 자격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애를 써야 자격을 얻는지 그 기준이 없습니다. 끝없이 노력해도 끝없이 기준에 미달하는 것 같습니다. 천국 같은 그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곳은 인간의 자격으로써는 못 들어갑니다. 인간의 노력으로써는 못 들어갑니다. 선물로 받든지 안 그러면 쫓겨나갈 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해서 몸 찢고 피 흘려 온갖 고생을 다하고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 자격을 얻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공짜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로 거저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가 막힙니다. 아예 몸에 진동을 옵니다. 이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천국에 가는데 행위로 가지 않고 은혜로 가고 노동의 대가로 가지 않고 선물로 천국에 간다는 것 오직 믿음으로 간다는 것 얼마나 큰 축복인 것입니까?
2. 선물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내가 행위로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위로 했으면 자랑할 것이 있지요. 하나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십시오.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 온갖 고생을 다해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고 값없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평생 자랑하고 모셔야지 조금이라도 우리 스스로가 자랑하고 잘난 척 어깨에 힘줬다가는 큰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난 구원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가 값을 주고 산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물이란 거쳐주는 것입니다.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자라도 하나님이 주기를 원하시는데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내가 받을 자격이 있어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시는데요. 선물이란 달라고 한다고 주지 않습니다. 주고 싶은 사람이 선물 주는 것입니다. 선물 좀 주세요. 선물 좀 주세요. 한다고 주나요?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 주지 그러므로 주는 자가 원해서 주는 것이 선물인데
로마서 9장 16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원한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달음박질 하여도 구원받기 위해서 애를 쓴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보시고 택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신랑감이 있는데 신부가 여러 명이 있어서 그 신랑에게 시집을 가고자 애를 써서 아무리 자원해서 신랑에게 나에게 장가들어 주십시오. 한다고 신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이 좋아하는 사람 택합니다. 여자가 좋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 신문에 보니까 200억을 가지고 있는 50대 과부가 40대 젊은이하고 결혼하겠다고 광고를 냈는데 어제 신문에 보니까 300여명이 신청을 했다는 것입니다. 50대 과부에게 40대 신랑을 원하는데 300여명이 신청했다고 해서 신랑이 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 과부가 선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당신!”하고 지적을 해야지요. 아무리 웃고 폼을 재고 손을 비비고 소용없어요. 부인이 인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은 것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만세전에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것입니다. 굉장한 특권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 너무나 큰 특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그 자체가 특권 아닙니까?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4억 내지 5억의 정액 가운데 한 마리가 어머니 난자를 택해서 들어가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뿜어내는 4억 내지 5억 마리의 정자 중에 한 마리가 난자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우연히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4억 내지 5억 마리 중에 여러분이 한 마리입니다. 그것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해 줘야 육신으로 태어나고 구원을 받는 것도 하나님이 만세전에 우리를 택하셔야 우리가 구원을 받지 우리 스스로가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이렇기 때문에 구원 받은 우리 자신을 생각할 때 끔찍하게 우리가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로 태어나는데 그 가운데 구원을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전율할 정도로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받는 자는 그저 믿음으로 감사히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는데 선물을 주는데 무슨 잔소리 합니까? 선물이 왜 너무 적냐, 선물이 너무 크냐. 금방 이 소리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 받습니다. 선물은 공짜로 주는 것인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받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한 것입니다.
감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우리들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면 구원을 뺏깁니다. 구원을 주는 하나님 편에서는 감사하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남에게 선물을 줄 때 선물을 받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선물을 받고 오히려 원망, 불평하면 준 선물을 빼앗고 싶지 주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주는 자가 원해서 주는 구원은 받는 자는 믿음으로 감사히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프린스톤 대학교의 이전 총장인 캘빈 콜리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젊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 나의 나머지 모든 생애는 단순히 덧붙여진 하나님의 덤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주님, 그때 내게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하며 살아왔습니다."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는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백성이 되었으니 그 다음에는 먹고 자고 깨고 하는 것은 그저 덤으로 하늘나라 올라갈 때까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각, 청각, 언어의 3중장애를 가진 헬렌 켈러에게 혹시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물었었습니다. 그는 눈도 못보고 귀도 못 듣고 말도 못하는 시각장애인 삼각 장애인인데 그 헬렌 켈러가 말하기를 “받은 은혜를 헤아리기도 바쁜데, 원망할 시간이 없다?”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감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감사하고 기뻐하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랍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 역도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 교회 출신인 장미란 선수가 경기 직후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당시 장미란 선수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금메달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게 주어져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사람이 달음박질 잘한다고 1등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역기를 하는데 무게를 잘 든다고 해서 그날 1등 한다는 보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잘 달리는 사람도 꼴찌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쳐서 넘어지면 꼴찌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최선을 다한 이후에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지 하나님이 안도와 주시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물은 하나님이 원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받는 자는 믿음으로 감사히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감격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한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준 것이 아니고 천사를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기의 변신체인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가진 최고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어서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영생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는데요. 주는 자가 그렇게 말씀하는데요. 내가 영생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 의심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내 구주로 모심을 받았으면 영생을 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고 사는 생활 중에 하나님이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금덩어리를 주는 사람에게 “신문지를 주십시오. 좀 싸가겠습니다.”하면 신문지 안주겠습니까?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데 도움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면 안 베풀어 줄 리가 있겠습니까? 예수를 잘 모시고 있으면 이 세상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구하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줄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안 받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 구원에 있어서는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를 가지고 따지지 인간의 개인 자격을 따지지 않습니다. 네가 잘났느냐, 못났느냐, 학위가 있느냐 없느냐, 좋은 집안에 태어났느냐 나쁜 집안에 태어났느냐. 동서양 사람이냐 아프리카 사람이냐. 자세히 따지지 않습니다. 네가 믿느냐 안 믿느냐? 아무리 자격 있어도 안 믿습니다 하면 낙제다. 아무리 못나보여도 믿습니다. 너는 합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구원을 단번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일주일 만에 받는다. 한달만에 받는다. 일년동안 받는다고 수양을 닦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선물은 단번에 받지 선물을 뜸 들여서 받습니까? 선물 받기 위해서 한달동안 노력을 하는 것 그런 것 보았습니까? 선물은 단번에 받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주께로 오면 당장 주님께서 짐을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죄 짐을 주님께 고백하면 즉시로 죄 짐을 주님이 책임지고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일어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하고 고백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 선물
예수님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놀라운 선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습니다. 오중복음, 삼중축복, 사중지위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축복을 모르고 조금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 믿자마자 하나님은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찔리고 상함으로 허물과 죄를 사하시고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께 쫓겨나서 버림을 받으므로 우리와 하나님과 화목 되어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채찍에 맞아 등이 찢어지므로 우리의 모든 병이 고침을 받았도다. 여러분,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고 가시와 엉겅퀴와 고난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그를 통해서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용서와 의를 선물로 받고 거룩함과 성령을 선물로 받고 치료와 건강을 선물로 받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선물로 받고 부활 영생 천국은 선물로 이미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보너스 티켓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믿는 자에게는 오중복음의 선물이 주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1~5)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서비스 티켓을 받고도 잊어버리고 서랍 속에 넣어 놓고 버리고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서 우리 위해서 마련해 주신 선물을 기억하고 그 선물을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해서 그 선물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이 간구한다. 간청한다. 그냥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렸으니 내 영혼이 날로 잘되는 것같이 네가 범사에도 가시와 엉겅퀴의 저주에서 해방되고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절히 원한다. 아무리 신앙이 좋고 성령충만 해도 너무 가난하면 삶의 고통이 심합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고 생활이 유복해도 몸이 죽을병에 걸려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면 여러분, 사는 것이 괴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뜻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완전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아무 자격도 없는데 택하신 족속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버림받은 족속이고 여러분은 택한 족속이 되었습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천당 가는 택한 백성이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팔자가 좋아서 택함을 받았습니까? 말로 다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버림을 받았는데 여러분은 택하신 족속이 되고 왕 같은 제사장도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왕 노릇 하고 하나님께 예배와 찬송을 드리는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귀신을 물리치는 왕 같은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세상에 추한 나라가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는 거룩한 나라가 되고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꺼 라고 했습니다. 소유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감사로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단번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마음에 믿는 것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 일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인 것을 아무리 믿어도 입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주입니다라고 시인을 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지으실 때 빛이 있으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속에 아무리 빛이 있으라고 생각해도 빛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를 창조한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빛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마음에 믿기만 하면 안 됩니다. 마음에 믿었으면 늘 입으로 시인하고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건강하다. 마음에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입으로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나는 건강하다. 마음으로만 나는 성공한다 말하지 말고 입술로도 나는 성공한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잘살게 된다. 나는 성대하게 된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구원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택하사 성령으로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하셨으니 입술로 늘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데이비드 리버만은 「나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라는 그의 책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대로 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일 다른 위치에 있고자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고 자기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면 훌륭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면 자기 이미지가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축복받은 생각을 마음에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다 생각에 따라서 자기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사진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꿈과 환상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안 보이는 꿈과 환상을 바꾸지 아니하면 운명이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바꿔져야 환경도 바꿔지고 마음이 달라져야 환경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고 "벽에도 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낮말을 무슨 새가 듣습니까? 새가 듣는 것이 아니라 낮말을 나 혼자 하더라도 내 마음의 새가 듣고 있다. 내 마음이 들어요. 밤말을 무슨 쥐가 사람 말 듣습니까? 밤말을 하면 내 마음이 쥐가 되어서 내 마음이 밤말을 내가 듣고 있다. 벽에도 귀가 있다. 벽에는 흙이 있지 무슨 귀가 있습니까? 그러나 벽에도 귀가 있다는 것은 내 마음이 내가 벽보고 혼자 말해도 내 마음이 내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말로 내가 사로잡혔다고 말이 우리의 생명과 생활을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무엇보다 먼저 '내 마음'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마음에 우리 말을 듣고 그 마음이 그를 따라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나는 약하다. 병든다. 나는 불행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면 여러분 그 사람은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옛날에 제가 어릴 때 우리 친구들 집에 오면 어머님이 바느질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부정적으로 말 안하는 어머니 거의 못 봤습니다. “아이구 아이구 내 팔자야.. 어찌하다가 이 고생을 하노. 가난한 집에 시집와 가지고서 먹고 살기도 힘이 들고... 아이구 내 팔자야. 언제 한번 잘 살아볼고..” 늘 부정적인 노래만 하다가 늘 그 상태로 죽는 것입니다. “아이구 아이구 내 팔자야. 이렇게 좋을 줄 내가 몰랐네. 나날이 살아가면 좋아지고 나날이 기뻐진다.” 이렇게 말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 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입으로 말하고 또 입의 말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가에 따라서 마음의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의 생각이 달라지므로 또 말을 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일상생활에 평범하게 하는 말에 관심을 깊이 기울이십시오. 잘산다. 승리한다. 평안하다. 축복받는다. 기쁘다. 행복하다. 그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성공하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면 그것이 그런 형태의 인간으로 만들어 놓고 그 마음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것이 환경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희안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은 육체라는 3차원의 세계 속에 영이라는 4차원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제한이 되어 있지만 4차원의 세계는 무한한 영원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4차원의 세계에서 생각하고 꿈꾸고 말하고 믿는 것이 3차원의 세계에 변화를 가져와서 우리 운명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꼭 4차원의 영성개발에 힘을 써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믿고 묵상하고 들음으로 우리의 생각을 인간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달라지면 그 사람의 행위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운명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부정적이면 인생도 부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희망차면 그의 인생도 희망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언제나 마음에 희망찬 생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위해 희망을 휘장을 쳐놓은 것입니다. 죄를 용서했지요. 추악하고 불의한 것을 용서했지요. 질병을 청산했지요. 저주를 멸했지요. 죽음을 멸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천막 밑에 있으니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용서받고 의로움을 받을 희망이 있지요.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희망이 있지요. 병 나을 희망이 있지요. 고통과 괴로움에서 놓여날 희망이 있지요. 영생복락을 얻을 희망이 있으니까 희망 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생각을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희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늘 꿈을 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꿈을 꿉니다. 요리를 할 때도 요리를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야 되겠다고 마음에 꿈을 꾸지 않습니까? 하루를 살아갈 때도 오늘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꿈을 꾸지 않습니까? 막연하고 목적 없이 하루를 살고 있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지는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마음을 점령하면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85세에 자식 낳을 꿈을 별들을 바라보고 헤아렸습니다. 85세에 꾼 꿈이 100세에 이루어진 것 보십시오. 꿈은 나이도 상관없습니다. 꿈은 나이가 들어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꿈을 품으면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롭게 산다.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산다. 한국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늘나라가 우리나라에 임하여있다. 그런 꿈을 품어야지 아휴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꼬? 우리 피난가야 되지 않겠느냐? 우리다 죽지 않겠느냐? 우리 큰일 나지 않겠느냐? 부정적인 불안과 공포의 마음을 가지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무슨 꿈을 꾸느냐가 여러분이 무슨 인생을 살까를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마음을 점검하시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를 늘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참 놀라운 것입니다. 사람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봅니다. 청각이 있어서 듣습니다. 후각이 있어서 냄새를 맡습니다. 미각이 있어서 맛을 봅니다. 그러므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 다음 촉각으로 만집니다. 그런데 거기에 뛰어나서 여섯째번하고 있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오각은 모두다 3차원이지만 육각은 4차원인 것입니다. 마음에 믿음인 것입니다. 마음에 믿음을 사용해서 눈도 바꾸어 놓고 귀도 바꾸어 놓고 코도 바꾸어 놓고 입도 바꾸어 놓고 촉각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각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청각이 마음을 바꿔놓을 힘이 없습니다. 후각이 마음을 바꿔 놓을 힘이 없습니다. 미각이 마음을 바꿔 놓을 힘이 없습니다. 촉각이 마음을 바꿔 놓을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이 모든 것을 다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믿음으로써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으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믿는다고 밀고 나가면 어찌할 도리 없는 것입니다. 자꾸 믿다가 안 믿다가 믿다가 안 믿다가 하면 안돼요. 못한다고 믿으면 못합니다. 한다고 믿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번 믿는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믿어야 돼요. 여러분이 한번 믿었으면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을 믿으라 누구든지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하고 그 말한 것이 마음에 이룰 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큽니까? 엄청나게 큽니다. 믿음은 한번 믿었으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되고 의심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믿음은 마음에서 역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우리는 말을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찬 말을 해야 되고 꿈이 있는 말을 해야 되고 믿음이 있는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이 세상적으로 말을 하고 무력한 말을 하면 그 인생이 세상적이고 무력한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 말이 누에가 입에서 실이 나와서 고치를 만드는 것과 한가지인 것입니다. 입에서 실이 나오는데 그 실이 눈에 보일락말락 하는 실로 언제 집을 짓습니까? 그런데 하루 종일 그 입에서 실을 내어서 자기 고치를 짓습니다. 나중에는 둥굴둥굴 하고 하얀 고치 집이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도 입에서 나오는 말로써 우리 집을 지어서 그 안에 사는 것입니다. 일평생 우리가 사는 것이 우리 입에서 나오는 실로써 우리 집을 지어 놓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쉽게 하지 말고 말을 가볍게 말하지 말고 말을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통해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고 은혜 속에 산다는 것은 너무나 큰 특권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은혜의 선물로 우리의 행위의 대가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비하셔서 거저 주는 축복을 받은 놀라운 특별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영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면서 주의 축복 가운데 오중복음과 삼중축복과 사중지위와 그리고 사차원의 영성을 개발하면서 여러분 하나님 백성으로써 위대한 승리와 성공적인 삶을 사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지만은 곧장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끊임없이 우리 인생을 개발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늘나라에 지식을 주셔서 하늘나라의 생각을 가지게 하고 하나님의 꿈을 마음속에 품고 현재 없는 것을 마음에 꿈꾸게 만들어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현재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어 주시고 믿음으로 나가게 만들어 주시고 아버지여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게 만들어 주셔서 우리의 생활이 날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도록 변화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앙은 변화 받는 신앙이니 변화의 기적이 모든 성도들에게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임하여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론>
오늘 저는 “임금과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특별히 차별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개 일반적인 종교는 구원의 조건이 행위에 있습니다. 수양을 해라. 도덕적인 삶이나 종교적 의를 통해서 구원에 이를 만큼 좋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수양과 도덕과 좋은 행위의 결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조건이 없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 향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착하고 선한 일을 해서 그것이 나중에 상을 받는 것이지 착하고 선한 일을 해서 그 결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임금과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한번 설명을 해보고자 생각합니다.
20세기 인도의 유명한 전도자 선다 씽이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광경을 봤습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들여다보니 수도승 한 사람이 팔을 높이 들고 앉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지은 죄가 많아서 그 손을 스스로 벌한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한달 내내 1년 365일 팔을 들고 있습니다. 너 벌 받으라고... 그래서 선다 씽이 하도 측은해서 "수십 년을 그렇게 벌을 선다고 해서 그 손이 깨끗해지겠소? 마음이 깨끗해져야지 손을 들고 있다고 해서 깨끗해 지지 않는다."고 타일렀다는 말을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은 그의 책「티끌의 윤리」에서 "하나님이 들어 쓰실 때 진흙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면서, "모래와 흙과 불이 하나님의 손에 놓이면 사파이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흙이 하나님의 손에서는 다이아몬드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들리는 것이 문제지 내가 스스로 다이아몬드가 되고 내가 스스로 사파이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와 다른 종교가 달라도 보통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함께 못 박힌 강도가 좋은 행위를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적선할 시간도 없고 참회할 시간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고 시인을 하자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행위는 그 후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임금(賃金)
임금이란 어떻습니까? 노동의 대가로 얻는 것입니다.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돈을 받는 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화이트칼라가 아닌 블루칼라 육체노동은 참으로 대가를 받아도 적습니다. 6.25사변 때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15살 때 6.25사변이 나서 온 전국에서 피난민들이 부산에 내려와서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6.25때 우리의 삶은 생존하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죽어서 넘어져도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는데 밤에 노동을 해야 되겠는데 나이가 15살이니까 노동 현장에서 나를 안받아줘요. 그래서 내가 거짓말을 해서 친구들을 증인을 세워서 18살이라고 해서 부두에 노동자로 들어갔습니다. 부두의 노동자들은 밤 8시에 부두에 들어가서 하역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배에 가서 배에 있는 짐들을 어깨에 걸머지고 와서 공장에다가 세워 놓는데 초저녁까지는 힘이 있어서 그래도 하역작업을 할 수 있어요. 저녁이 되니까 음식이라고 주는데 안남미 조금에다가 바다풀 몇 개를 얹어서 주는데 그것 먹고는 기어도 못 다니겠어요. 그런데 그 음식을 주어서 먹고 또 저녁에 일을 시키는데 짐을 걸머지고 제가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짐을 걸머지고 땅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반장이 와서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고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면 그것을 안고 벌벌 기어서 짐을 날랐습니다. 정말로 육체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힘이 들었었습니다. 공짜는 누가 돈을 줍니까? 그래도 일일노동하고 임금을 받으니까 그 돈 받아서 집에 가는 재미로 하다가 나중에는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만두고 그 다음에는 대신 야경을 돌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밤에 집집마다 야경의 순번이 오면 야경을 도는데 나이 많은 집안사람들이 야경을 돌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경찰서에서 젊은 사람을 대신해서 야경을 돌게 합니다. 그러면 저녁에 나가서 야경완장을 차고 그 다음에는 전지를 들고 동리를 야경을 도는 것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시간마다 온 동리를 돌아봐야 되는데 한번은 철뚝가에 나왔는데 밤 12시가 넘었는데 젊은이가 미군사지에다가 군물을 들여서 입고 미군 군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철뚝을 건너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여보시오. 이 시간에 통금 시간인데 어떻게 절뚝을 건넙니까? 신분증을 내 놓으시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이구 요게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너 내 주먹 하나면 죽는다.”고 그러더라구요. “죽든 살든 나는 야경을 돌 사명이 있기 때문에 신분증 내놓으십시오.” 그러니까 한참 나를 쳐다보더니 허허허~ 웃더니만 신분증을 빼는데 보니까 경찰관이에요. 그 하는 말이 “내가 경찰관이기 때문에 자네가 살았지 내가 진짜 깡패였으면 오늘 저녁에 당신은 제삿날이다.” 그런 위험을 겪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니까 더 이상 야경 돌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의사 선생님 가정인데 미국으로 온 가족이 이민을 가게 되어서 영어교사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제가 응해서 영어교사로 들어가니까 이제는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들어갔습니다. 영어를 가르치니까 정신적으로 노동하는데 힘이 들지만 월급은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서 산 세월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영어를 한 1년 동안 가르치다가 보니까 미국 선교사를 만나서 선교사가 “날 따라다니면서 통역을 해주겠느냐?” 그래서 “돈을 얼마나 주겠느냐?” 하니까 “가정교사로 있을 때보다 배로 많이 주겠다.” 그래서 통역을 하러 따라 다니면서 돈을 좀 벌어서 나중에는 신학교 올 수 있는 돈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절실히 느꼈어요. 부두의 노동할 때 야경을 돌고 있을 때 그 다음에는 우리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없어서 청과시장에 가서 과일을 받아다가 길거리에서 팝니다. 파는데 철뚝 길목에 사람이 많이 오니까 철뚝 길목에서 그 안내원에 사정을 하고 그리고 와이루(뇌물)를 좀 주고 거기에 장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와서 앉아서 사과를 자꾸 만져서 흠을 냅니다. 흠을 내놓고 “이것은 값이 안 나간다. 흠이 있는 사과니까 먹어도 괜찮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먹어 버립니다. 왜 말짱한 사과를 자꾸 만져서 흠을 내놓고 먹느냐고 고함을 쳐도 말을 안 듣습니다. 가을에 와서 감, 홍시 장사는 기가 막힙니다. 홍시는 손으로 만지면 뚫어지지 않습니까? 와서 자꾸 뚫어지면 아까 와서 만져서 뚫어 놓고 “아이구 이것은 못 팔겠네. 이것 먹어야지.” 하면서 주워 먹어 버립니다. 그래서 싸움도 많이 하고 집 주인에게 빗자루로 얻어맞기도 하고 발길로 채이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 몸부림은 가혹한 것입니다. 육체노동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괴롭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민족들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식교육에 온 정성을 다 기울였습니다. 논을 팔고, 밭을 팔고, 집을 팔고, 소를 팔아서 자식을 공부시켰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우골대학이라고 했습니다. 소 뼈다귀 대학이라고 한 것입니다. 소 뼈다귀 대학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우리 한국이 이와 같이 발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배우지 아니하면 육체노동만 하면 가치가 없기 때문에 수입이 없습니다. 배워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면 그 몸의 가치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높은 교육을 받고 기술 향상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무노동은 무임금이 아닙니까? 아무 일도 안하면 아무 임금도 받을 수 없지 않습니까?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일을 안 하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일을 해야 된다. 천국같이 아름다운 곳에 공짜로 갈수가 없다. 이 세상의 선술집에 가서 한술 얻어먹는 것도 돈을 줘야 되고 극장에 갈 때도 표사는데 돈을 줘야 되는데 천국에 들어가는데 일을 하지 않고 값없이 빈손 들고 갈수 있겠느냐?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하고 그래서 도를 닦고 고생을 하고 수양을 하고 애를 써서 자격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애를 써야 자격을 얻는지 그 기준이 없습니다. 끝없이 노력해도 끝없이 기준에 미달하는 것 같습니다. 천국 같은 그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곳은 인간의 자격으로써는 못 들어갑니다. 인간의 노력으로써는 못 들어갑니다. 선물로 받든지 안 그러면 쫓겨나갈 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해서 몸 찢고 피 흘려 온갖 고생을 다하고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 자격을 얻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공짜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로 거저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가 막힙니다. 아예 몸에 진동을 옵니다. 이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천국에 가는데 행위로 가지 않고 은혜로 가고 노동의 대가로 가지 않고 선물로 천국에 간다는 것 오직 믿음으로 간다는 것 얼마나 큰 축복인 것입니까?
2. 선물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내가 행위로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위로 했으면 자랑할 것이 있지요. 하나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십시오.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 온갖 고생을 다해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고 값없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평생 자랑하고 모셔야지 조금이라도 우리 스스로가 자랑하고 잘난 척 어깨에 힘줬다가는 큰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난 구원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가 값을 주고 산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물이란 거쳐주는 것입니다.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자라도 하나님이 주기를 원하시는데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내가 받을 자격이 있어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시는데요. 선물이란 달라고 한다고 주지 않습니다. 주고 싶은 사람이 선물 주는 것입니다. 선물 좀 주세요. 선물 좀 주세요. 한다고 주나요?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 주지 그러므로 주는 자가 원해서 주는 것이 선물인데
로마서 9장 16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원한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달음박질 하여도 구원받기 위해서 애를 쓴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보시고 택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신랑감이 있는데 신부가 여러 명이 있어서 그 신랑에게 시집을 가고자 애를 써서 아무리 자원해서 신랑에게 나에게 장가들어 주십시오. 한다고 신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이 좋아하는 사람 택합니다. 여자가 좋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 신문에 보니까 200억을 가지고 있는 50대 과부가 40대 젊은이하고 결혼하겠다고 광고를 냈는데 어제 신문에 보니까 300여명이 신청을 했다는 것입니다. 50대 과부에게 40대 신랑을 원하는데 300여명이 신청했다고 해서 신랑이 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 과부가 선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당신!”하고 지적을 해야지요. 아무리 웃고 폼을 재고 손을 비비고 소용없어요. 부인이 인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은 것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만세전에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것입니다. 굉장한 특권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 너무나 큰 특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그 자체가 특권 아닙니까?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4억 내지 5억의 정액 가운데 한 마리가 어머니 난자를 택해서 들어가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뿜어내는 4억 내지 5억 마리의 정자 중에 한 마리가 난자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우연히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4억 내지 5억 마리 중에 여러분이 한 마리입니다. 그것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해 줘야 육신으로 태어나고 구원을 받는 것도 하나님이 만세전에 우리를 택하셔야 우리가 구원을 받지 우리 스스로가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이렇기 때문에 구원 받은 우리 자신을 생각할 때 끔찍하게 우리가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로 태어나는데 그 가운데 구원을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전율할 정도로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받는 자는 그저 믿음으로 감사히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는데 선물을 주는데 무슨 잔소리 합니까? 선물이 왜 너무 적냐, 선물이 너무 크냐. 금방 이 소리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 받습니다. 선물은 공짜로 주는 것인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받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한 것입니다.
감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우리들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면 구원을 뺏깁니다. 구원을 주는 하나님 편에서는 감사하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남에게 선물을 줄 때 선물을 받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선물을 받고 오히려 원망, 불평하면 준 선물을 빼앗고 싶지 주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주는 자가 원해서 주는 구원은 받는 자는 믿음으로 감사히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프린스톤 대학교의 이전 총장인 캘빈 콜리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젊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 나의 나머지 모든 생애는 단순히 덧붙여진 하나님의 덤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주님, 그때 내게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하며 살아왔습니다."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는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백성이 되었으니 그 다음에는 먹고 자고 깨고 하는 것은 그저 덤으로 하늘나라 올라갈 때까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각, 청각, 언어의 3중장애를 가진 헬렌 켈러에게 혹시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물었었습니다. 그는 눈도 못보고 귀도 못 듣고 말도 못하는 시각장애인 삼각 장애인인데 그 헬렌 켈러가 말하기를 “받은 은혜를 헤아리기도 바쁜데, 원망할 시간이 없다?”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감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감사하고 기뻐하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랍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 역도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 교회 출신인 장미란 선수가 경기 직후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당시 장미란 선수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금메달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게 주어져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사람이 달음박질 잘한다고 1등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역기를 하는데 무게를 잘 든다고 해서 그날 1등 한다는 보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잘 달리는 사람도 꼴찌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쳐서 넘어지면 꼴찌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최선을 다한 이후에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지 하나님이 안도와 주시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물은 하나님이 원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받는 자는 믿음으로 감사히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감격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한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준 것이 아니고 천사를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기의 변신체인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가진 최고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어서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영생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는데요. 주는 자가 그렇게 말씀하는데요. 내가 영생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 의심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내 구주로 모심을 받았으면 영생을 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고 사는 생활 중에 하나님이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금덩어리를 주는 사람에게 “신문지를 주십시오. 좀 싸가겠습니다.”하면 신문지 안주겠습니까?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데 도움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면 안 베풀어 줄 리가 있겠습니까? 예수를 잘 모시고 있으면 이 세상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구하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줄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안 받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 구원에 있어서는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를 가지고 따지지 인간의 개인 자격을 따지지 않습니다. 네가 잘났느냐, 못났느냐, 학위가 있느냐 없느냐, 좋은 집안에 태어났느냐 나쁜 집안에 태어났느냐. 동서양 사람이냐 아프리카 사람이냐. 자세히 따지지 않습니다. 네가 믿느냐 안 믿느냐? 아무리 자격 있어도 안 믿습니다 하면 낙제다. 아무리 못나보여도 믿습니다. 너는 합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구원을 단번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일주일 만에 받는다. 한달만에 받는다. 일년동안 받는다고 수양을 닦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선물은 단번에 받지 선물을 뜸 들여서 받습니까? 선물 받기 위해서 한달동안 노력을 하는 것 그런 것 보았습니까? 선물은 단번에 받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주께로 오면 당장 주님께서 짐을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죄 짐을 주님께 고백하면 즉시로 죄 짐을 주님이 책임지고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일어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하고 고백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 선물
예수님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놀라운 선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습니다. 오중복음, 삼중축복, 사중지위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축복을 모르고 조금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 믿자마자 하나님은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찔리고 상함으로 허물과 죄를 사하시고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께 쫓겨나서 버림을 받으므로 우리와 하나님과 화목 되어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채찍에 맞아 등이 찢어지므로 우리의 모든 병이 고침을 받았도다. 여러분,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고 가시와 엉겅퀴와 고난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그를 통해서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용서와 의를 선물로 받고 거룩함과 성령을 선물로 받고 치료와 건강을 선물로 받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선물로 받고 부활 영생 천국은 선물로 이미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보너스 티켓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믿는 자에게는 오중복음의 선물이 주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1~5)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서비스 티켓을 받고도 잊어버리고 서랍 속에 넣어 놓고 버리고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서 우리 위해서 마련해 주신 선물을 기억하고 그 선물을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해서 그 선물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이 간구한다. 간청한다. 그냥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렸으니 내 영혼이 날로 잘되는 것같이 네가 범사에도 가시와 엉겅퀴의 저주에서 해방되고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절히 원한다. 아무리 신앙이 좋고 성령충만 해도 너무 가난하면 삶의 고통이 심합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고 생활이 유복해도 몸이 죽을병에 걸려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면 여러분, 사는 것이 괴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뜻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완전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아무 자격도 없는데 택하신 족속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버림받은 족속이고 여러분은 택한 족속이 되었습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천당 가는 택한 백성이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팔자가 좋아서 택함을 받았습니까? 말로 다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버림을 받았는데 여러분은 택하신 족속이 되고 왕 같은 제사장도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왕 노릇 하고 하나님께 예배와 찬송을 드리는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귀신을 물리치는 왕 같은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세상에 추한 나라가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는 거룩한 나라가 되고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꺼 라고 했습니다. 소유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감사로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단번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마음에 믿는 것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 일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인 것을 아무리 믿어도 입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주입니다라고 시인을 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지으실 때 빛이 있으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속에 아무리 빛이 있으라고 생각해도 빛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를 창조한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빛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마음에 믿기만 하면 안 됩니다. 마음에 믿었으면 늘 입으로 시인하고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건강하다. 마음에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입으로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나는 건강하다. 마음으로만 나는 성공한다 말하지 말고 입술로도 나는 성공한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잘살게 된다. 나는 성대하게 된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구원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택하사 성령으로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하셨으니 입술로 늘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데이비드 리버만은 「나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라는 그의 책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대로 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일 다른 위치에 있고자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고 자기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면 훌륭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면 자기 이미지가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축복받은 생각을 마음에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다 생각에 따라서 자기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사진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꿈과 환상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안 보이는 꿈과 환상을 바꾸지 아니하면 운명이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바꿔져야 환경도 바꿔지고 마음이 달라져야 환경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고 "벽에도 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낮말을 무슨 새가 듣습니까? 새가 듣는 것이 아니라 낮말을 나 혼자 하더라도 내 마음의 새가 듣고 있다. 내 마음이 들어요. 밤말을 무슨 쥐가 사람 말 듣습니까? 밤말을 하면 내 마음이 쥐가 되어서 내 마음이 밤말을 내가 듣고 있다. 벽에도 귀가 있다. 벽에는 흙이 있지 무슨 귀가 있습니까? 그러나 벽에도 귀가 있다는 것은 내 마음이 내가 벽보고 혼자 말해도 내 마음이 내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말로 내가 사로잡혔다고 말이 우리의 생명과 생활을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무엇보다 먼저 '내 마음'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마음에 우리 말을 듣고 그 마음이 그를 따라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나는 약하다. 병든다. 나는 불행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면 여러분 그 사람은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옛날에 제가 어릴 때 우리 친구들 집에 오면 어머님이 바느질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부정적으로 말 안하는 어머니 거의 못 봤습니다. “아이구 아이구 내 팔자야.. 어찌하다가 이 고생을 하노. 가난한 집에 시집와 가지고서 먹고 살기도 힘이 들고... 아이구 내 팔자야. 언제 한번 잘 살아볼고..” 늘 부정적인 노래만 하다가 늘 그 상태로 죽는 것입니다. “아이구 아이구 내 팔자야. 이렇게 좋을 줄 내가 몰랐네. 나날이 살아가면 좋아지고 나날이 기뻐진다.” 이렇게 말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 안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입으로 말하고 또 입의 말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가에 따라서 마음의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의 생각이 달라지므로 또 말을 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일상생활에 평범하게 하는 말에 관심을 깊이 기울이십시오. 잘산다. 승리한다. 평안하다. 축복받는다. 기쁘다. 행복하다. 그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성공하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면 그것이 그런 형태의 인간으로 만들어 놓고 그 마음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것이 환경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희안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은 육체라는 3차원의 세계 속에 영이라는 4차원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제한이 되어 있지만 4차원의 세계는 무한한 영원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4차원의 세계에서 생각하고 꿈꾸고 말하고 믿는 것이 3차원의 세계에 변화를 가져와서 우리 운명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꼭 4차원의 영성개발에 힘을 써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믿고 묵상하고 들음으로 우리의 생각을 인간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달라지면 그 사람의 행위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운명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부정적이면 인생도 부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희망차면 그의 인생도 희망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언제나 마음에 희망찬 생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위해 희망을 휘장을 쳐놓은 것입니다. 죄를 용서했지요. 추악하고 불의한 것을 용서했지요. 질병을 청산했지요. 저주를 멸했지요. 죽음을 멸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천막 밑에 있으니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용서받고 의로움을 받을 희망이 있지요.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희망이 있지요. 병 나을 희망이 있지요. 고통과 괴로움에서 놓여날 희망이 있지요. 영생복락을 얻을 희망이 있으니까 희망 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생각을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희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늘 꿈을 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꿈을 꿉니다. 요리를 할 때도 요리를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야 되겠다고 마음에 꿈을 꾸지 않습니까? 하루를 살아갈 때도 오늘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꿈을 꾸지 않습니까? 막연하고 목적 없이 하루를 살고 있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지는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마음을 점령하면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85세에 자식 낳을 꿈을 별들을 바라보고 헤아렸습니다. 85세에 꾼 꿈이 100세에 이루어진 것 보십시오. 꿈은 나이도 상관없습니다. 꿈은 나이가 들어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꿈을 품으면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롭게 산다.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산다. 한국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늘나라가 우리나라에 임하여있다. 그런 꿈을 품어야지 아휴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꼬? 우리 피난가야 되지 않겠느냐? 우리다 죽지 않겠느냐? 우리 큰일 나지 않겠느냐? 부정적인 불안과 공포의 마음을 가지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무슨 꿈을 꾸느냐가 여러분이 무슨 인생을 살까를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마음을 점검하시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를 늘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참 놀라운 것입니다. 사람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봅니다. 청각이 있어서 듣습니다. 후각이 있어서 냄새를 맡습니다. 미각이 있어서 맛을 봅니다. 그러므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 다음 촉각으로 만집니다. 그런데 거기에 뛰어나서 여섯째번하고 있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오각은 모두다 3차원이지만 육각은 4차원인 것입니다. 마음에 믿음인 것입니다. 마음에 믿음을 사용해서 눈도 바꾸어 놓고 귀도 바꾸어 놓고 코도 바꾸어 놓고 입도 바꾸어 놓고 촉각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각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청각이 마음을 바꿔놓을 힘이 없습니다. 후각이 마음을 바꿔 놓을 힘이 없습니다. 미각이 마음을 바꿔 놓을 힘이 없습니다. 촉각이 마음을 바꿔 놓을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이 모든 것을 다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믿음으로써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으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믿는다고 밀고 나가면 어찌할 도리 없는 것입니다. 자꾸 믿다가 안 믿다가 믿다가 안 믿다가 하면 안돼요. 못한다고 믿으면 못합니다. 한다고 믿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번 믿는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믿어야 돼요. 여러분이 한번 믿었으면 뒤로 물러가면 안 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을 믿으라 누구든지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하고 그 말한 것이 마음에 이룰 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큽니까? 엄청나게 큽니다. 믿음은 한번 믿었으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되고 의심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믿음은 마음에서 역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우리는 말을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찬 말을 해야 되고 꿈이 있는 말을 해야 되고 믿음이 있는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이 세상적으로 말을 하고 무력한 말을 하면 그 인생이 세상적이고 무력한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 말이 누에가 입에서 실이 나와서 고치를 만드는 것과 한가지인 것입니다. 입에서 실이 나오는데 그 실이 눈에 보일락말락 하는 실로 언제 집을 짓습니까? 그런데 하루 종일 그 입에서 실을 내어서 자기 고치를 짓습니다. 나중에는 둥굴둥굴 하고 하얀 고치 집이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도 입에서 나오는 말로써 우리 집을 지어서 그 안에 사는 것입니다. 일평생 우리가 사는 것이 우리 입에서 나오는 실로써 우리 집을 지어 놓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쉽게 하지 말고 말을 가볍게 말하지 말고 말을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통해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고 은혜 속에 산다는 것은 너무나 큰 특권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은혜의 선물로 우리의 행위의 대가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비하셔서 거저 주는 축복을 받은 놀라운 특별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영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면서 주의 축복 가운데 오중복음과 삼중축복과 사중지위와 그리고 사차원의 영성을 개발하면서 여러분 하나님 백성으로써 위대한 승리와 성공적인 삶을 사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지만은 곧장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끊임없이 우리 인생을 개발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늘나라에 지식을 주셔서 하늘나라의 생각을 가지게 하고 하나님의 꿈을 마음속에 품고 현재 없는 것을 마음에 꿈꾸게 만들어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현재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어 주시고 믿음으로 나가게 만들어 주시고 아버지여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게 만들어 주셔서 우리의 생활이 날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도록 변화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앙은 변화 받는 신앙이니 변화의 기적이 모든 성도들에게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임하여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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