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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5:2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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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준곤 목사 |
참고 : | 한국대학생선교회 대표 |
한국대학생선교회대표 김준곤목사
성경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6장 4절 말씀을 통하여 부모의 책임을 7단계로 나누어 봅니다.
1. 성서적 가정(가족)관
가족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가족이란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느냐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종국 개념보다 훨씬 높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생물학적인 측면에서의 남녀결합에 의한 자녀생산 개념 이상의 것이며 또한 사회 계약적인, 사회학적 개념 이상의 것입니다. [미래의 충격]의 저자가 다시 [제3의 충격]이란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보면 미래의 특징은 가족제도가 없어진다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가에서 계약결혼이 성행되고 있는데 계약결혼이란 계약에 의해서 한 달동안 시험적으로 살아보는 것입니다. [미래의 충격]을 지은 엘빈 토플러는 말하기를 미래에는 일처제도가 생겨날 것이라고 합니다. 일처제도란 결혼제도가 없기 때문에 어느 도시에 가든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일정한 기간동안 계약을 사는 것입니다. 마치 집을 교환하고 매매하듯이 하루 혹은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낼 사람을 소개시켜 주는 업종이 사업체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자녀를 얻고 싶으면 인간공장이 있어서 여러가지 human form(인간형)에서 자기의 취향에 맞는 자녀를 생산해 달라고 주문을 하면 원하는 자녀를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시험관 아기도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 점을 생각해 볼 때 부부,자녀,혹은 부자간의 온상 속에서 살아온 인간에게는 가족의 기본구조가 흔들린다는 것은 미래에 있어서 가장 큰 충격이 될 것입니다. 엘빈 토플러가 말하는 대로만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이미 말세의 징조로써 가정의 윤리성 혹은 영적인 측면에서의 근본이 흔들리게 된다면 인류의 종말이 오게 될 것입니다. 또한 문명의 종말이나 한 민족이 망하려면 반드시 가정의 규모가 해체되고 가정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거역하며 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비정하고 또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 이혼을 자주하고 성적으로 불결한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사회교육이라든가 자녀교육, 청소년교육 등이 뿌리채 흔들리게 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의 개념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가정이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여러가지 규레를 주시고 남녀가 합해서 한 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하와를 아담에게 데려 갔을 때에 아담이 말하기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둘이 아니고 한 몸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혼하지 말라,간음하지 말라,자녀를 키우라, 부부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도 이를 재확인하셔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셔서 부모를 공경하라,이혼하지 말라,간음하지 말라 등을 거듭거듭 강조하셨으며 가정은 사람이 마음대로 만든 것이 아니며 자녀는 너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섬기듯이 섬기고, 아내는 남편을 그리스도 섬기듯이 섬겨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희생한 것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사람을 투영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 있고,사랑이신 성령이 계시듯 사랑이신 아버지 하나님,사랑을 주시는 아들 하나님, 사랑이신 성령 하나님이 계심으로 사랑의 삼일성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인간가족에게도 아버지, 어머니,아들이 있고 이들이 합해서 하나의 모형이듯 영적인 신체의 모형으로 하늘의 가족이 됩니다. 앞으로 우리가 천당에 가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그곳의 가족인데 그 삼위일체의 가족 속에 우리가 참여하고 연합하여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은 곧 천국가정의 모형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신령한 이치와 도덕적, 인격적 형성을 위해 배우게 되는 것이 가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개의 기관을 땅 위에 세웠는데 그것은 국가,학교,교회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개의 기관을 통해서 국가나 민족 혹은 한 문화나 인류전체가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네개의 기관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곳이 가정입니다. 이 가정이라는 것은 씨, 온상, 못자리,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흔들리게 되면 기초가 전부 흔들리게 되고 뿌리채 다 없어져 버리게 되면 기초가 전부 흔들리게 되고 뿌리채 다 없어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에는 사회가 타락하고, 학교가 타락하고,교회가 부패한다 할찌라도 가장 최초의 학교이며 교회이며 사회인 가정을 우리는 사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가정을 기도와 믿음으로 지키고 성령으로 깨끗하게 하며 말씀으로 사수해야 되겠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가정이 맑아야 사회가 맑습니다. 높은 사람이 올바를 때 아랫 사람의 행실이 바로 되기 때문에 그 사회 속에서 가정이 부패하면 그 부패를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민족 복음화 토착화 운동'이라는 것도 그 종교가 개개인에게 들어가서 너와 너의 가정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너희들은 두 신 사이에서 어느 신을 섬기겠느냐 너희들은 다른 신을 섬길찌라도 나와 내 가족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하였듯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온 가족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한국의 기독교는 100년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각 가정 속에 들어갈 때 그 가정들이 가정제단을 쌓고 가정종교가 되었을 때 그 가정 속에서 자라난 자녀들로 인하여 민족 복음화와 민족 토착화가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정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가정복음화 운동이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청소년 문제라고 하는 것은 사실 70-80%가 가정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머니가 자녀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자녀가 태어나기 20년 전부터 교육을 받아 바른 사람이 되고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꽉 채워 두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채워 둔 것이 자녀에게 유전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교육입니다. 즉 청소년 교육이라는 것은 부모교육을 의미하고 청소년 문제는 가정문제, 부모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밀레의 [만종]이라는 유명한 그림에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3가지의 신성이 나타나 있는데 첫째는 노동의 신성,둘째는 가정의 신성, 셋째는 종교의 신성입니다. 이 세가지가 다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것과 가정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또 가정에 하나님께서 안 계시면 그것은 마치 혼이 없는 몸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가정, 예배 없는 가정, 기도 없는 가정은 사실 죽은 가정입니다. 생명이 없고 뿌리가 없으며 족보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영혼이 없는 가정입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남녀가 합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가정이 아닙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그보다 훨씬 신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삼각관계 즉 하나님이 그 가정의 주인으로 앉아 계실 때,참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지극히 큰 자가 작아지고 작은 자가 커집니다. 가정은 돈이나 권력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못나고 약할수록 최선의 대우를 받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희로애락이 있으며 가난하고 부요한 것,건강하고 약한 것, 이런 모든 것들을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남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나누어지고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이곳이 미래의 천국인데, 가정 속에서 천국을 완성하지는 못하지만 느낄 수는 있습니다. 또 육체뿐만 아니라 혼도 영도 다같이 성장해 가는 곳을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주님을 배우는 곳이고 주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주님도 없고 예배도 없다면 그곳은 가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두개의 고향이 있는데 하나는 내 부모가 나를 낳아준 곳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예비하신 영혼의 집 즉 영원한 집입니다. 이 두가지의 향수 속에서 사람들은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영원한 집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탕자인 것입니다.이 집이 없는 사람들은 영원 속에서,정신 속에서 탕자처럼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 정신으로 정상적인 삶을 누린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집이 없고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육신의 집에서 배신을 당하고 사랑이 없으며 자기 부모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이상성격이 되어 범죄형 성격으로 타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같이 가정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과 나는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녀입니다. 반드시 미래의 부모가 지금은 누군가의 자녀입니다.참 좋은 성서적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일은 박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이것을 별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되고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가 되느냐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학자나 부자가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 신앙을 소유한 아버지와 어머니, 성서적인 남편과 아내가 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가정과 성서를 통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성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Home,home,there is no place like home)이것이 아마 가정을 노래한 것 중에서 제일 유명한 노래일 것입니다.
이 [즐거운 나의 집]이란 노래를 작사한 존.허와드 페인은 영국 런던의 화려한 주택가를 아침 저녁으로 지나가야만 하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화려한 주택가를 아침 저녁으로 지나가야만 하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궁전처럼 화려한 저택가에서는 추운 겨울날에 창문들이 꼭꼭 닫혀있고 거텐도 다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바깥 공기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안의 따뜻한 공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고 날씨는 추운데 돌아갈 집이 마땅치 않게 된 그는 너무나 사무치도록 그리운 자기 집을 그리면서 이 노래를 지은 것입니다. 구라파의 가정 하면 온 식구가 벽난로에 둘러앉아 아빠는 시골 목사처럼 투박한 목소리로 설교를 하고 가족들이 돌아가며 기도하는 그런 가정이 연상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슬하에서 성경을 배우고 기도의 탯줄에서 믿음의 젖줄로 자라나는 것이 그곳의 가정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가정과는 다릅니다. 우리도 하루속히 온기독교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기독교 가정, 참된 가정을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성서적인 남편과 아버지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모든 남자들의 첫째 사명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내 사랑하기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내를 너무 지나치게 사랑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례를 설 때마다 이 성경귀절을 낭송하는데 과연 몇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자기의 아내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희생적으로 사랑할 것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보통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내가 불구가 되든지,문둥이가 되든지 간에 자신을 희생해서 절대적으로 조건없이 사랑해야 하는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모든 남자들은 자기의 아내 앞에 하나님의 말슴을 다시 한번 새겨보야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뜻입니다. 물론 그 사랑을 미국 사람들처럼 표현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동양 사람은 동양 사람식으로 표현하면 됩니다. 청소년 문제를 얘기하는데 왜 이런 문제를 언급하는가 하면 좋은 가정에서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있을 때에만 좋은 자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와 비슷하게 됩니다. 자녀는 자기의 축소판입니다. 자기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설때 자녀들이 올바른 생활을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좋은 남편이 되려면 자기 아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에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본의 어느 기독교인이 자기 아내에게 대해 기록한 것이 있는데 10년동안 정신병자가 되어서 밤에도 뛰어다니고 벌거벗고 다니며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아내를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여서 마침내 10년 후에는 정신이 되돌아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남편은 아내의 전인적인 필요를 자상하게 살펴줘야 합니다.
잠언 5장 18절 말씀에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적으로 아내를 만족시켜 주라는 것입니다. 요즘도 한국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장 실제적인 문제로써 육체적, 정신적, 심리학적으로 여러가지 다른 성격을 자상하게 살펴줌으로써 자기 아내의 영적 운명에 대해깊은 관심을 가져주라는 것입니다.
세번째,남편은 항상 아내에게 친절한 언어를 써야 합니다.
하만슈타인의 시 가운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다.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다.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다] 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자기 아내에게 날카롭고 무섭고 속상하며 기분 나쁜 발언을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불쾌한 말들이 쌓이고 쌓이면 정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평상시 가정에서 말을 곱게 하며 성내지 않고 친절하게 좋은 표현을 많이 하는 것도 남편이 아내를 위하는 것입니다.
네번째, 남편은 아내의 인격을 높여 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가정을 보면 남편은 공부를 많이 해서 유식한데 반해 부인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옛날 유명한 이야기 가운데,남편은 미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부인은 국민학교도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더운 여름날, 부인이 엿을 고아 종이에 싸가지고 정거장에 남편을 마중 나왔습니다. 목회를 하는 남편이 여학생들과 상담을 마치고 같이 오는 것을 보고는 지키고 서 있다가 여학생들을 쫓아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신학박사는 그러한 부인이지만 존경하는 성자였습니다.남편은 자기 아내가 어떠하든지간에 존중해 주는 것이 자녀교육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다섯번째,성적으로 순결해야 합니다.
여섯번째, 남편은 자기 아내를 위해서 항상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기도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자녀를 위해 하루도 잊지 않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곧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2. 모든 아버지는 자녀교육의 책임자
첫째는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명기 6장 7절 말씀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뼈에 새겨지고 마음에 새겨지고 삶에 새겨져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새겨지도록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고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벽이나 천장,식탁에 성구 카드를 놓는다든지 성구 카드놀이를 한다든지 성구 암송을 함께 한다든지 하여 시험을 당할 때면 적재적소에서 총을 쏘는 것처럼 튀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성구는 어렸을 때 암기 시키면 늙어서도 안 잊어 버립니다. 결국 영적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은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는 자녀교육을 할 때 육체만 키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키우는데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목사요 교사요,제사장인 동시에 왕과 예언자적인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절대적 권위와 책임은 자녀교육에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을 책임지라고 맡겼으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를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찌 그 자녀를 다 키울 수 있겠습니까? 오직 자녀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성령으로 기도로 키우시고 우리는 청지기 노릇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생활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말로만 하고 생활에서 본을 보이지 못하면 자녀들은 반항을 하게 됩니다. 가령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때에,어떤 기도문제를 놓고 아이들을 동참시키면 됩니다. 저는 종종 아이들에게 기도제목을 얘기해 주고 기도하며 하며 또 아이들 자신의 기도문제를 얘기하게 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또한 성경공부 모임도 갖고 가정 부흥회 같은 것을 하는 것이 좋으며 시간이 나는대로 며칠에 한번씩 요절암송을 하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어머니 한분이 선생님 백 분에 해당하고 목사님 열분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가정에서 부모에게 배우는 것이 진짜 잘 배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번째는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자녀들과 가정예배를 같이 드리고 여행도 같이 다니며 대화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 시간의 양을 질로 바꾸어야 합니다. 빌 브라잍 박사는 1년이면 10개월 가까이 나가 있는데 아무리 바빠도 2주일에 1번씩 집에 와서 자기 자녀들과 3-4시간씩 풀에서 놀면서 자녀들의 기억속에 있음으로 해서 매우 즐거운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린아이의 입장에 서서 잘 대해주며 어린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게 될 때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에 있는 것을 무엇이든지 터놓고 얘기할 때 그것이 올바른 자녀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자기 아버지에게는 무서워서 이야기를 못하고 어머니에게만 이야기하는 아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너무 무섭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어만 면도 있어야 하지만 사랑으로 이야기하고 친구처럼 대해주는 그런 부모 자식간의 관계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째는 어떻게하든지 가정예배를 유산으로 물려 주어야 하겠습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유산은,외국인들이 이것저것 다들여다 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한 가장 위대한 것은 christian home, 즉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랍니다.미국의 위인들마다 가정예배의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 생활화되고 토착화 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는 자녀에 대한 징계문제인데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징계를 하려면 사랑과 공의로 해야 합니다. 징계를 안하면 자녀교육이 안됩니다. 성경 말씀에도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징계를 성서적으로 해야지 잘못하면 역효과가 나타납니다. 건전하고 신령한 징계나 책망의 원칙이 여섯 가지가 있는데,
첫째,징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한다는 것을 자녀들에게도 납득시켜야 합니다.
어떠한 규율을 정해 놓고 그 법에 순종하지 않을 때에는 징계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둘째, 반드시 준비기도를 하고 매를 때려야 합니다.
이것은 특별히 아들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딸들에게는 매를 때리지 말고 다른 벌, 즉 베개를 머리에 이고 있게 한다든가 성경말씀을 어디에서 어디까지 읽으라든가 하는 융통성 있는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세째, 본인의 동의를 구하고 때려야 합니다.
매를 때로 놓고 아버지에게서 정이 떨어지고 불쾌하게 느껴진다면 매를 때리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매를 때린 후에도 존경심이 생기도록 기술적으로 교육적으로 해야 합니다.
네째,분노나 즉흥적인 감정으로 때리면 절대로 안됩니다.
다섯째, 사랑의 원리에 의해 때려야 합니다.
제 친구 중 한 사람은 15살난 중학생 아들이 3번이나 사고를 내어 학교에서 경고장이 와 아버지가 학교로 불려 갔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내 체면이 있으니 좀 봐 달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아이를 데려다 놓고 [이제부터 너를 위해서 너도 조금 고생하고 나도 조금 고생하자,나는 3일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와서 아들과 같이 기도하고 매를 때린 후 또 기도하기를 [하나님,제가 이 아들을 잘못 키웠습니다.기도도 등한히 하고 잘못 가르쳤으며 나쁜 성격을 유전시킨 것을 회개합니다. 앞으로 이 아이를 위해서 더 가르치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회개하며 기도하였더니 그 아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면서 [아버지,다시는 그런 일이 안하겠습니다]라고 용서를 빌었으며 그후 그 아이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섯째, 효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구약에 보면 부모를 구타하거나 조롱 또는 불순종하면 반드시 돌로 쳐 죽이거나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 부모에게 불순종하게 되면 그 벌이 엄격하고 용서가 없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효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에서 그러니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십시오.기독교는 특히 효에 대해서 엄격하고 준엄하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좋은 아버지 가운데 표본적으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얼마나 철저하게 교육을 시켰는지 자손만대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매우 철저하고 위대한 교육의 아버지였습니다. 이삭은 아들 가운데 표본적인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였기 때문에 순종하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합니다. 아버지가 하나님께 효도해야 아들도 아버지에게 효도합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에 3일 길을 갈때였습니다.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어린 이삭이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고 대답했습니다.아브라함이 모리아 산 꼭대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했을 때도 이삭은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자녀들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좋은 아버지의 상을 부각하고 그자녀들이 나가는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가를 항상 살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중세 수도원처럼 입소해서 한 두달 동안 생활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나쁜 습관을 고치고 기도하는 습관을 의식화하고 음식 먹는 법,말하는 법 등을 훈련시켰으며 하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그러한 것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어머니의 책임
성서적인 아내와 성서적인 어머니의 책임을 소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남편을 돕고 자녀를 기르며 집안살림을 하는 것입니다. 여성 상위시대,여성 해방운동, 공처가 등 세계적으로 여성이 남성화되고 옷을 못입게 되어 있는데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여자가 남자같이 되어가고 남자는 여자같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것은 종말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자신의 본분을 알아야 합니다. 여자가 직업을 갖는 장관이 되든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독신으로 사는 여자는 할 수 없지만 남편을 섬기고 살림을 하고 자녀를 키우고 집안 일을 돌보는 여자의 본분을 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 일을 해야 합니다. 여자는 아내의 임무가 첫번째입니다. 어머니가 나이 들면 남편과는 멀어지고 아이들의 일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서적으로 보면 아이들보다 남편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에 [아내는 복종하고 공경하라]고 하였는데 복종이란 것은 군사용어입니다.
안 믿는 남편에게도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얻기 때문에 남편에게는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아주 준엄한 말씀입니다. 디도서 2장 3절에서 6절까지에 보면 아내에 대한 몇가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실이 경건하고 거룩한 여자, 참소를 안하는 여자, 쓸데없는 말을 안하는 여자, 경건한 크리스챤 여성 등을 들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수태하였을 때 천사에게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요하게 말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정숙하고 현숙하며 경건한 마리아처럼 크리스챤 여성들도 선하고 친절하며 정숙한 아내요,어머니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잠언 31장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남편이 신뢰하는 아내,부지런하여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무를 나눠주는 아내,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미는 아내, 그 자식들과 남편의 칭찬과 존경을 받는 아내, 이 모든 것을 겸비한 아내도 귀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아내는 더욱 아름답고 귀하며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크리스챤 여성들이 이 모든 것을 갖추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분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키울 때 말씀으로 키우고 기도로 키우며 정성껏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정성된 어머니가 그 배후에 있으면 자녀는 결코 잘못되지 않습니다. 크리스챤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 어거스틴과 아브라함 링컨의 어머니들은 기도로 자녀를 키운 기도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나 집안에서 교육을 잘못 시키게 되면 그 아이가 호로자식이 되어 원시충동 속에서 살게 됩니다. 즉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반항하고 자기의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이가 됩니다. 이런 아이는 힘이 세면 깡패가 되고 힘이 약하면 남에게 그 자녀들을 자신의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자녀들의 옷이나 학교성적 등 외면적인 것에 너무 신경을 씁니다. 결혼조차도 가난한 집 처녀는 안되고 명문집 처녀와 하라고 강요합니다.이것이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마치 자녀를 자기의 성공수단과 노예로 삼아 자기의 틀에다 가두어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반항을 하고 집에서 뛰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 누구와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주정뱅이 부모라든가 불화한 가정,이혼했다든지 범죄하고 악한 부모의 자녀들은 반드시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는 아버지를 권능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며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절대자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자기 부모를 이렇게 훌륭하게 보았는데 그런 부모에게 배신 당하고 사랑받지 못하면 그 마음에 미움이 들어오고 반항심이 생겨 하나님께 반항하고 사회에 반항하며 부모님과 교회에 반항하는 반항아가 됩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받은 배신감과 환멸감의 상처가 어떠한 것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이 아픔의 상처가 그대로 있으면 올바른 자녀교육을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며칠씩 금식을 하고 회개함으로써,잘못된 일은 자식 앞이라고 용서를 구하고 화해할 때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경건되고 현숙한 어머니의 예를 몇 들어보면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이며 성경학자인 캠버른 몰갠의 부인을 들 수 있습니다. 이분은 아들 넷이 전부 목사입니다. 이들 네 명의 목사에게 지상에서 누가 제일 유명한 설교자냐,누가 너희에게 성경을 제일 잘 가르쳐 주느냐고 물었더니 한결같이 어머니가 우리에게 제일 좋은 설교를 해주시고 또 어머니가 들려 주신 성경이야기 때문에 목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여러분께서는 무디를 아실 것입니다. 무디의 아버지는 일곱 아이와 유복자까지 남겨 놓은 채 40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8명의 자녀를 혼자서 키웠는데 그녀는 매일 벽난로 앞에서 기도를 한후에 자녀들에게 기도와 성경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집에는 가죽성경, 교리문답,예배책 이 세권의 책이 전부였으며 무디의 어머니는 이 세권의 책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무디는 회고록에서 그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가르친 후에는 꼭 기도하셨으며 아침에는 그들에게 햇빛처럼 명랑하고 기쁜 얼굴로 대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웨슬레의 어머니 스잔나 웨슬레는 열 아홉 명의 자녀를 키웠는데, 아이들이 5살만 되면 자신이 직접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그래서 그녀를 감리교의 어머니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분의 사모록에 [세상에서 만난 나의 첫사랑, 내가 처음 기도를 배운 곳,내가 처음 언어를 배우고 찬송을 배웟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곳, 그곳에 내 영원한 집이 있고 따뜻함이 있는데 그곳은 내 어머니의 품이라]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어머니는 위대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4. 목사,장로들의 자녀가 왜 타락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 아홉 가지로 나누어 보았는데,
첫째는 유전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지니고 있었던 성격은 조상 때부터 피 속에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유전적인 것은 아무리 유명한 목사라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래 믿을수록 좋습니다.
두번째는 한쪽이 안믿는다든가 성격이 좋지 못할 경우에 자녀교육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세번째는 목사나 장로들이 이중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훌륭한 인격을 지닌 사람일찌라도 가정에서는 그렇게 못할 때 자녀들은 반항하며 나쁜 길로 빠지게 됩니다.
네번째는 예수님을 믿는 목사,장로의 집에서 가정불화가 생긱 때 반드시 자녀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다섯째는 자녀에게 신앙을 너무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명한 문인가운데 反기독자가 있는데 그 분은 부모로부터 예배를 너무 강요 당해서 일생동안 예배드리는 장소에만 가면 머리가 아프고 토하려 하였답니다. 그러므로 너무 강요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여섯째는 구원은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녀를 구원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상으로 보아도 사무엘의 자녀라든가 노아의 자녀 함,이삭의 자녀인 야곱과 에서 등 이루 헤아일 수 없이 많습니다. 아버지가 목사요, 부흥사라 할찌라도 그 자녀들이 다 구원받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소 난 자들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3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은데 마태복음 9장 27절부터 31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소경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오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능히 이 일할 줄을 믿느냐?]고 하셨을 때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두 소경이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심으로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고 하였습니다. 믿음과 기도라는 것은 내게 힘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믿음이라는 방법과 기도라는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방법과 기도의 방법은 두 개의 날개와도 같은 것입니다. 성경말씀에도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뜻이므로 이런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소경에는 눈 뜨고 싶다는 염원이 있었고 예수님께 가면 고침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도드릴 때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기도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부모님들이 가지고 계신 자녀들에 대한 문제와 소원이 다 응답될 것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믿는 사람들이 예수 안믿는 사람보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기도의 특권입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들은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믿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소원을 아뢰며 필요한 것을 주님께 구할 때 응답해 주시는데 그중에서도 자식을 위한 소원과 필요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먼저 우리 자녀가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기도의 제목과 [내 아들과 내 딸을 이렇게 해주실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감을 가지고 자기 자녀들의 문제를 열심으로 꾸준하게 간절히 기도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네 믿음대로 되라]는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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