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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3:1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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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순복음중앙교회 2010.6.20 |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에베소서 3장 14∼21절
먼저 다가오셔서 친구가 되어 주신 하나님
주님 모습 통해 이웃에게도 좋은 친구 되어야
모든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주님께 감사
우리는 부모, 이웃, 동역자, 경쟁자, 원수, 무관심한 자 등과 어깨를 부딪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친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친구는 이해와 동정과 사랑의 관계가 깊으며 시련과 환난, 고통 때 큰 위로와 도움이 되는 이웃을 친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를 많이 가진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좋은 친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많이 가져야 되고 또 좋은 친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로 15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너희는 나의 친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 친구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19절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2장 4절에 제자들을 ‘내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11절에 나사로를 우리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야고보서 2장 23절에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일뿐 아니라 친구이기 때문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라는 복을 예수 믿을 때 알든지 모르든지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굉장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첫째, 중생의 복음이 주어진 것입니다. 죄가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공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둘째로, 성령충만의 복음이 주어진 것입니다. 성결과 성령충만의 은총을 십자가에서 주신 것입니다. 셋째로, 내가 다 이루었다 할 때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과 병을 짊어지고 치료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넷째,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저주를 제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다섯째의 축복은 재림의 축복으로 부활, 영생, 천국이 종국적으로 우리가 갈 운명의 처소인 것입니다. 삼중축복이란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살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주님 앞에 잘되면 주님께서 영혼이 잘됨과 동시에 우리 기도를 통해서 들으시고 범사에 잘되게 하시고 건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못되면 범사에도 잘못되고 병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자마자 십자가의 공로를 통하여 누구나 예외 없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이미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중생의 축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충만의 축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유의 축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축복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재림의 축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기 때문에 이 약속을 알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해주시는 주님, 나에게 지금 이 삼중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면 이미 약속된 축복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친구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로 19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베풀어 주신 그 은혜를 언제든지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우리의 생활 속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 다음으로 오신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구약 4천년 동안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신약 33년 동안에는 아들 예수님이 역사하셨고 이제 예수님이 부활승천하고 난 다음 우리에게 내려와서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은 성령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친구되신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에게 와서 신령한 세계를 깨닫게 하고 체험하게 하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친구인 것입니다. 영안을 열어서 천국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알게 해주시고 또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하고 방언을 말하게 하고 예언을 말하게 하고 감사 드리게 하고 우리 심신의 연약함을 성령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의 사람만 우리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속사람 또한 우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사람 속에 계셔서 우리 육체를 성전삼고 와서 거하시는 축복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기도하는 것조차도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되는데 방법을 모릅니다. 어떻게 기도할해야 될지 길을 모릅니다. 그럴때 “성령이여 저를 도와주셔서 기도하게 해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나는 못합니다. 성령께서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기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고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친구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건방진 일 같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될 뿐 아니라 우리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생명의 친구가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육체의 구원의 친구가 되시고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도와주는 친구가 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4절로 25절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있고 숨쉴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셔서 이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생명과 호흡과 만물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역사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넘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손이 큰 사람하고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손이 굉장히 크신 분입니다.
모나미 볼펜에 새겨진 글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153이라는 숫자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볼펜을 만든 송삼석 장로님의 아이디어로,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려서 물고기를 잡으니 물고기가 몇 마리였습니까? 153마리였습니다. 그래서 물고기의 숫자와 153이라는 것에 착안하여 그와 똑같이 153을 볼펜에 새겨 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이 볼펜은 기적같이 많이 판매가 되어 회사 이름도 아예 ‘모나미’로 바꾸었습니다. 모나미라는 말은 ‘나의 친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기고 피 흘려서 이루어 놓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피로써 사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를 우리에게 체험하게 해주시는 것에서 알고 우리는 담대하게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친구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2. 우리는 친구 되신 하나님을 닮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시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사람이 우리가 친구가 되어도 참 귀중한데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시면 삶의 믿음과 자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8절에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같이 계시면 어느 곳에 가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어디가나 우리는 그곳을 개척하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새로운 사람 살만한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친구로서 같이 있으면 희망과 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꿈을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 마음속에 주는 것입니다. 소원이 바로 우리의 꿈인 것입니다. 소원이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바라보고도 하나님이 계시면 그 공간에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친구로 삼으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친구끼리 서로 닮아가듯이 말입니다. 에베소서 5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친구가 되시고 하나님을 본받는 우리가 되면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함께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면 우리의 삶에 점점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빛 가운데 있으므로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3. 좋은 이웃은 좋은 친구가 되는 것
누가복음 10장 30절로 34절에 보면 강도 만난 사람을 돌봐 준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장사한 것을 다 뺏기고 얻어맞아 죽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리고의 길거리에 던져 놓았는데 제사장도 레위인도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나 한 사마리아인이 그를 도와 상처를 보살피고 데리고 가서 돌보아줍니다. 이 이야기를 하시고 예수님께서 “누가 이 사람의 친구냐?”고 물으십니다. 물론 사마리아인 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와같은 좋은 친구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8절로 19절에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선을 행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하늘에 다 쌓여있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행함이 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인 것입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실제로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친구 같은 남편과 친구같은 아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에베소서 5장 33절에는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말씀합니다. 교회 그냥 왔다갔다 의식과 형식만 취하고 행위는 안믿는 사람보다 나은 것이 조금도 없고 비난하고 서로 공격하고 손가락질하고 분열하면 그것이 무슨 성도요, 무슨 친구인 것입니까? 우리가 교회 왔다갔다 하면 누구보다 무엇이 달라도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친구로 사귀고 있는 우리가 아버지가 나의 친구, 예수님이 나의 친구요, 성령이 나의 친구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세상에 주셨고 아들은 몸을 찢어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축복을 주셨고 성령 보혜사는 이 땅에 내려와서 지금 우리를 성전 삼고 이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미국 화폐에 새겨진 문구인 “In God We Trust” 즉,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 말은 청교도들에 의해 건립된 미국의 종교적 유산이 반영된 문구입니다. 이 말은 1864년 워킨슨 목사의 제안으로 2센트짜리 동전에 새겨졌다가 그 다음해에 은화와 금화에도 새겨 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956년 미국이 소련과 냉전을 벌이던 시절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서 국가적인 모토로 선언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7년 10월 1일부터 1달러 지폐 뒷면에도 새겨 넣었습니다. 그러나 5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 문구에 대해 사회 곳곳에서 비판이 일어났습니다. 반대자들은 이것은 국교를 제정하는 행위로,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불화를 조성한다고 없앨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여러 차례 재판이 있었지만, 미국 국민의 대부분은 이 말을 사용하는 것에 찬성했습니다.
2006년 플로리다 주에서는 이 말을 주의 공식 모토로 지정하고, 2007년 인디아나 주에서는 자동차 번호판에 이 문구를 새겨넣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시면 우리는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삶 가운데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것은 우주에서 제일 좋은 친구 되신 하나님을 만나러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를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면 자동적으로 서로 만나고 낯이 익게 되고 친구가 됩니다. 교회 성도들은 모두다 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만큼 수많은 친구들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친구가 되는 것을 배우고 친구가 되고 가정에 들어가서 가정에 친구들이 모이게 되고 사회 친구들이 모이게 되면 세계는 평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모두다 하나님의 친구가 된 것을 아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기쁘게 생각하고 흡족하게 생각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성도들에게 친구가 되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친구가 되셔서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고 은혜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큰 감동을 받아서 마음문을 열고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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