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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4:1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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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1. 들어가는 이야기 /
우리가 남의 집을 방문 하였을 때 그 가정 안방이나 거실에 걸려 있는 한문 액자, 병풍, 동양화 한 폭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根深葉茂( 뿌리 깊고 잎 무성한 나무 처럼 되라 ), 家和萬事成( 집안이 화평하면 만사를 이룰 수 있다 ), 靜中動 動中靜(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며 움직임 가운데 고요하라 ), 忍中有和( 참는 중에 화평이 오느니라 ) 등입니다. 혹 음악하는 사람들 집에는 바하, 베토벤, 토스카니니, 카랴얀 같은 사람들의 초상화나 흉상이 있습니다. 이 모두는 평소에 그 교훈의 말씀이나 그 존경하는 인물 처럼 되어지이다 하는 속 마음의 드러냄입니다. 묘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삼성에서 나온 < 호암의 경영철학 >이란 책에 실린 사진을 보니까 호암 이병철 회장은 그의 안방 아랫목 바로 벽 위에 < 空手來空手去 >라는 글을 붙여 놓았습니다.
영성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그 마음으로 깊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흑과 백의 태극을 그려넣은 도교는 도를 지향하는 영성을 가진 것이고, 불상을 모신 절집에서는 부처의 영성을 추구하는 것이며 공자의 위패를 모신 향교에서는 공자의 영성을 닮아가려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이렇게 한 사람이 자신이 믿는 바, 바라는 바, 기림직한 바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모델을 자신의 인생 속에 재현해 가는 과정이며 연습이며 훈련이라고 하겠습니다.
2. 기독교 영성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칼빈은 < 기독교 영성이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준비와 기꺼이 따르려는 마음의 결단이다. 우리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과 일체된 삶을 사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한기춘 교수는 < 기독교 영성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 받은 사람들을 말씀으로 가르쳐서 성장케 하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하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그 양떼들을 위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하는 과정이며 활동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 곧 루아흐, 프뉴마,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육적인 것, 세상적인 것, 땅의 것, 자기 중심적인 옛 사람의 가치관을 벗어 버리고 영적인 것, 위의 것, 신령한 것,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이다 >고 합니다.
김외식 교수는 < 기독교 영성이란 인간의 감각 현상을 초월하는 실재( Reality ) 곧 하나님과 인간 존재의 심층 수준에서 관계 맺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이며 이 관계성을 통하여 인간은 새로운 자각 혹은 깨달음( Self-awareness )을 얻어 역사 안에서 창조적인 행위로 헌신케 하는 내적 意識( Inner Consciousness )과 힘( Energy ) 등 이 모든 과정과 결과 일체를 말한다. 이 영성은 이중적 구조를 가지는 바 내향적, 외향적 운동을 한다 >고 하였습니다.
나의 말로 표현한다면 말씀의 샘물 제69호에서 말한 것 처럼 < 기독교 영성생활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삶은 전혀 비 그리스도적인 우리의 삶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적인 삶,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내적 그리고 외적인 모든 훈련이다. 즉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를 자신의 실제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살아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하는 모든 과정이다 >라고 하겠습니다.
3. 영성 생활의 목표-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은 무엇인가?
사막의 교부들과 수도원 등에서 영성 생활을 추구하였던 많은 영적 선배들은 영성 생활을 위한 훈련 과정으로서 < 순종, 침묵, 청빈, 순결, 기도 > 생활을 강조 하였습니다. 수도원 전통에 따라서는 이를 셋으로 줄여서 < 순종, 침묵, 청빈 >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 세 항목이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데 유익한 덕목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수도원적 영성 훈련은 매우 유익하리라고 믿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하나 하나 깊이 묵상 하려고 합니다.
4. 영성 생활은 훈련입니다.
오늘 우리가 깊이 명심하려고 하는 말씀은 기독교 영성 생활은 단순한 지적 축적이 아니라 전인적인 단련이며 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영적으로 쇠약한 것은 지적으로 몰라서 아니라 육체적으로 심령적으로 단련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막상 현실에서 부닥치면 그만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성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영성 훈련도 훈련 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훈련의 본질은 무엇인가? 오늘은 이 훈련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하나, 훈련은 단순입니다 ( Simplicity )
훈련은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 내 몸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훈련의 기본은 단순해야 합니다.
하나, 훈련은 반복입니다 ( Repetition )
훈련의 본질은 끊임 없는 반복에 있습니다. 반복은 또 하나의 습관입니다.
하나, 훈련은 집중입니다 ( Concentration )
자연 상태의 태양 열로는 불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 열을 오목 렌즈에 집중 시키면 불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精神一到何事不成의 집중력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 훈련은 육화입니다 ( Incarnation )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때 군대 출신 각료들은 다 엎드렸고, 비군대 출신은 두리번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게 훈련의 육화입니다.
하나, 훈련은 계속입니다 ( Continuity )
영성 훈련은 졸업이 없습니다. 섰다하면 넘어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받는 그 날까지 계속입니다.
우리가 남의 집을 방문 하였을 때 그 가정 안방이나 거실에 걸려 있는 한문 액자, 병풍, 동양화 한 폭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根深葉茂( 뿌리 깊고 잎 무성한 나무 처럼 되라 ), 家和萬事成( 집안이 화평하면 만사를 이룰 수 있다 ), 靜中動 動中靜(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며 움직임 가운데 고요하라 ), 忍中有和( 참는 중에 화평이 오느니라 ) 등입니다. 혹 음악하는 사람들 집에는 바하, 베토벤, 토스카니니, 카랴얀 같은 사람들의 초상화나 흉상이 있습니다. 이 모두는 평소에 그 교훈의 말씀이나 그 존경하는 인물 처럼 되어지이다 하는 속 마음의 드러냄입니다. 묘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삼성에서 나온 < 호암의 경영철학 >이란 책에 실린 사진을 보니까 호암 이병철 회장은 그의 안방 아랫목 바로 벽 위에 < 空手來空手去 >라는 글을 붙여 놓았습니다.
영성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그 마음으로 깊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흑과 백의 태극을 그려넣은 도교는 도를 지향하는 영성을 가진 것이고, 불상을 모신 절집에서는 부처의 영성을 추구하는 것이며 공자의 위패를 모신 향교에서는 공자의 영성을 닮아가려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이렇게 한 사람이 자신이 믿는 바, 바라는 바, 기림직한 바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모델을 자신의 인생 속에 재현해 가는 과정이며 연습이며 훈련이라고 하겠습니다.
2. 기독교 영성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칼빈은 < 기독교 영성이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준비와 기꺼이 따르려는 마음의 결단이다. 우리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과 일체된 삶을 사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한기춘 교수는 < 기독교 영성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 받은 사람들을 말씀으로 가르쳐서 성장케 하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하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그 양떼들을 위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하는 과정이며 활동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 곧 루아흐, 프뉴마,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육적인 것, 세상적인 것, 땅의 것, 자기 중심적인 옛 사람의 가치관을 벗어 버리고 영적인 것, 위의 것, 신령한 것,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이다 >고 합니다.
김외식 교수는 < 기독교 영성이란 인간의 감각 현상을 초월하는 실재( Reality ) 곧 하나님과 인간 존재의 심층 수준에서 관계 맺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이며 이 관계성을 통하여 인간은 새로운 자각 혹은 깨달음( Self-awareness )을 얻어 역사 안에서 창조적인 행위로 헌신케 하는 내적 意識( Inner Consciousness )과 힘( Energy ) 등 이 모든 과정과 결과 일체를 말한다. 이 영성은 이중적 구조를 가지는 바 내향적, 외향적 운동을 한다 >고 하였습니다.
나의 말로 표현한다면 말씀의 샘물 제69호에서 말한 것 처럼 < 기독교 영성생활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삶은 전혀 비 그리스도적인 우리의 삶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적인 삶,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내적 그리고 외적인 모든 훈련이다. 즉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를 자신의 실제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살아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하는 모든 과정이다 >라고 하겠습니다.
3. 영성 생활의 목표-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은 무엇인가?
사막의 교부들과 수도원 등에서 영성 생활을 추구하였던 많은 영적 선배들은 영성 생활을 위한 훈련 과정으로서 < 순종, 침묵, 청빈, 순결, 기도 > 생활을 강조 하였습니다. 수도원 전통에 따라서는 이를 셋으로 줄여서 < 순종, 침묵, 청빈 >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 세 항목이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데 유익한 덕목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수도원적 영성 훈련은 매우 유익하리라고 믿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하나 하나 깊이 묵상 하려고 합니다.
4. 영성 생활은 훈련입니다.
오늘 우리가 깊이 명심하려고 하는 말씀은 기독교 영성 생활은 단순한 지적 축적이 아니라 전인적인 단련이며 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영적으로 쇠약한 것은 지적으로 몰라서 아니라 육체적으로 심령적으로 단련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막상 현실에서 부닥치면 그만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성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영성 훈련도 훈련 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훈련의 본질은 무엇인가? 오늘은 이 훈련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하나, 훈련은 단순입니다 ( Simplicity )
훈련은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 내 몸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훈련의 기본은 단순해야 합니다.
하나, 훈련은 반복입니다 ( Repetition )
훈련의 본질은 끊임 없는 반복에 있습니다. 반복은 또 하나의 습관입니다.
하나, 훈련은 집중입니다 ( Concentration )
자연 상태의 태양 열로는 불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 열을 오목 렌즈에 집중 시키면 불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精神一到何事不成의 집중력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 훈련은 육화입니다 ( Incarnation )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때 군대 출신 각료들은 다 엎드렸고, 비군대 출신은 두리번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게 훈련의 육화입니다.
하나, 훈련은 계속입니다 ( Continuity )
영성 훈련은 졸업이 없습니다. 섰다하면 넘어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받는 그 날까지 계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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