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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1: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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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영봉 목사 |
참고 :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p> |
2009.1.18 (김 영봉 목사)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 시리즈 3 >
"교회는 다르다" (The Church Is Different)
에베소서 1:22-23
1.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이것은 자연 법칙도 넘어서고, 인간의 논리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사랑을 체험할 때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동시에 나 한 사람에게 그 모든 사랑을 집중시키십니다. 그 사랑에 취해야 합니다. 그 사랑에 넋을 잃어야 합니다. 그 사랑에 눈물을 흘려 보아야 합니다. 그 때 그 사랑이 내 마음 속에 뜨거운 힘이 됩니다.이 문제와 관계하여 이제 곧 장로로 안수 받으실 이일형 권사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지난 12월 말, 장로 고시 때, 면접 과정에서 그분의 십자가 체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허락을 받고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죽음이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진리가 그분에게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예배당에 들러 홀로 앉아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위한 것이라면 그 진리를 체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그렇게 기도하며 묵상했는데, 어느 순간, 눈을 감은 채로 있는데 앞이 보이기 시작했고, 저 앞에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이게 어쩐 일인가 하는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난데없이 창이 날아와 그분의 허리를 찔렀고, 거기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피는 멈출 줄 모르고 흘러 내렸는데, 그분이 앉아있는 예배당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피가 점차로 차올라, 앉아있는 자신의 몸을 덮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속으로 "이러다가 내가 질식하여 죽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질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환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이일형 권사님은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이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때 경험했던 십자가의 사랑이 삶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목사가 되고 싶었고 또한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그 길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중에야 하나님은 자신을 ‘전임 목회자’(full-time pastor)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전임 예배자’(full-time worshipper)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권사님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경제학자로서 자신의 길을 가면서 가정을 통해, 직장을 통해 그리고 교회를 통해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전임 예배자의 삶을 살아 오셨습니다.
그분은 20여 년 전부터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유학생들을 만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당신처럼 전임 예배자로 살도록 양육하는 일을 해 오셨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처음에는 희망 없어 보이고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지만, 그 헌신은 곧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 내에 있는 여러 대학 캠퍼스에 KBS(Korean Bible Studies)라는 선교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이 모임을 통해서 성장한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계속 모임을 가지며 영적 성장을 꾀할 정도로 좋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이 권사님은 지금은 캠퍼스 선교에서 어느 정도 뒤로 물러서 있으면서, 우리 교회의 3040 세대를 양육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이 권사님의 헌신을 지켜보면서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누가 저런 섬김을 할 수 있겠는가?"
2.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로써 제가 이 권사님을 위인으로 추켜세우려거나, 그분을 모든 면에서 흠이 없는 성자로 미화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그분을 아십니다. 그분도 하나님 앞에서 늘 긍휼과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입니다. 실수도 있고, 허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체험하고, 그 사랑의 능력에 힘입어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섬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섬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새 삶을 얻었고, 그분 자신도 섬김을 통해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서두부터 이 권사님의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사귐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며,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위해 섬기게 만든다는 신앙의 공식(formula)을 말씀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일은 이 권사님의 경우처럼 늘 이렇게 극적(dramatic)으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동안에 그 사랑에 젖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체험이 극적이든 일상적이든,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려는 열심을 얻습니다.
이 대목에서 혹시 이렇게 묻고 싶은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수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섬길 수 있도록 두 가지의 대리자를 이 땅에 두셨습니다. 하나는 ‘교회’요, 다른 하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말씀 드릴 것입니다. 오늘은 먼저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 대목에서 많이 머뭇거렸습니다. 막상,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문제를 다루려 하니,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문젯거리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하찮게 여기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조차도 "교회, 뭐, 별 거 있어?"라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교회 연구 분야에 큰 공헌을 해 온 바나 그룹(The Barna Group)의 책임 연구원인 데이빗 킨내몬(David Kinnamon)이 3년 동안 미국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이미지를 조사하여 발표했는데, 믿지 않는 미국 젊은이들이 교회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들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1. 타이타닉호?곧 침몰할 위기를 당면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 운명을 알지 못한다. (The Titanic?a ship about to sink but unaware of its fate)
2. 성능 좋은 앰프?하지만 배선이 엉망이고 스피커의 질이 좋지 않다. (A powerful amplifier being undermined by poor wiring and weak speakers)
3. 잘 길들여진 고양이들의 모임?겉으로는 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먹이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A pack of domesticated cats that look like they are thinking deep thoughts but are just waiting for their next meal)
4. 타조?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고 있다. (An ostrich which its head in the sand)
5. 취미 생활?사람들의 머리를 식히는 수단이다. (A hobby that diverts people’s attention) (unChristian, p. 122)
과연 "이것은 미국 교회의 상황이지, 한국 교회는 달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한국 교회의 상황이 더 하면 더 했지 부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말씀을 준비하는 저의 마음은 심히 착잡했습니다. 마치 망가지기 직전에 있는 자동차를 비싼 값에 팔려고 거짓말 하는 부도덕한 장사꾼 같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대들 것 같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눈을 씻고 찾아도 교회다운 교회를 찾을 수 없는데, 어찌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3.
이런 반문 앞에 저는 유구무언일 따름입니다. 교회에 속한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교회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교회가 그동안 보여준 온갖 잘못과 수치와 허물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저는 다른 교회나 다른 목회자를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뉴스를 통해 교회의 문제를 접할 때마다 마치 내 문제인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좋거나 나쁘거나, 교회는 제 가정과 같습니다. 그러니 제 가정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저 죄송하다고 말할 따름입니다.
다만, 가정이 아무리 망가져서 가정 같아 보이지 않아도, 가정은 가정이 아닙니까? 사람이 아무리 타락하여 짐승 같다 해도, 그 사람은 여전히 사람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오염되고 타락했어도, 교회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범한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본질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교회를 대신할만한 다른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오늘 읽은 에베소서의 본문은 교회의 본질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해 놓았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 공동번역성경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해 놓았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The church is Christ’s body, in which he speaks and acts, by which he fills everything with his presence."(,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서 말씀하시고 활동하십니다. 그분은 교회를 통해 모든 것을 당신의 임재로 채우십니다.")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은 나사렛 청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교회를 일으키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서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활동하십니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활동을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하도록 세운 것이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교회 안에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며, 교회를 통해 이 세상으로 나가 생명의 사역을 계속 하십니다.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교회 밖에 없습니다. ‘교회’라는 말은 예배당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예배와 사귐과 섬김과 나눔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제자로 변화해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거점으로 하여 이 세상을 향해 손길을 뻗치십니다. 교회는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사역을 위한 ‘보이는’ 거점입니다. 그분은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가 없이는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팔다리를 잃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없으면 교회는 머리 없는 몸이 되어 버립니다. 생명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4.
이렇게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권위를 추락시킴으로써 얼마나 큰 죄를 범했는지를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토록 고귀한 교회를 우리는 천덕꾸러기로 전락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수 없도록 우리는 그분의 몸을 훼손했습니다. 교회에서 만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고귀한 지체들인데, 우리는 주님의 분신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해 왔습니다. 이 얼마나 큰 잘못이며, 얼마나 큰 책임입니까?
반면, 교회의 이 같은 본질을 생각한다면,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며, 교회가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만드는 일은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요! 우리가 교회로 모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요! 교회를 위한 우리의 섬김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요!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도 끝내 교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지 않습니까? 교회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 왜 고귀한 것인지를 알 것 같지 않습니까? 이 같은 교회를 이루는 거룩한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지워져 있다고 생각하면,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마음 뜨거운 감동을 느끼지 않습니까?
이미 그같이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들이 이 땅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 같은 거룩한 교회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막힘없이 말씀하시고 활동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로써 우리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치유되고 회복되고 성장하는 일이 지속되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를 거점으로 하여 세상 끝까지 나가도록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열망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 섬기면, 그 섬김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섬김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를 섬김으로 성부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치유하실 것입니다. 교회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교회의 문제들은 대부분 교회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자체가 목적이 되면 교회는 부패합니다. 그것이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의 증언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고 일할 때 교회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향해 나가 힘 있게 섬기기 위해서 먼저 교회가 건강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똑 같은 봉사를 하더라도 건강한 몸으로 봉사하는 것과 병약한 몸으로 봉사하는 것은 다릅니다. 병약한 몸으로 다른 사람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그 사람에게 병균을 옮겨 줄 수도 있습니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폐를 끼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그런 모습으로 선교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선교지에 나가 보면, 선교사로 나와 있는 분들이 현지인들보다 더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먼저 교회가 건강해져야 합니다. 거룩해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 강력하게 역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 고백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5.
교회를 위한 섬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여러분의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진실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감리교회를 시작하신 존 웨슬리 목사님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위해 아주 열심히 헌신해야 하며, 교회에 많은 사랑을 바치고, 교회의 번영과 성장을 소원해야 합니다. 또한 열심으로 온 세상의 교회를 위해, 특히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여러분의 교회가 얼마나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까? 사랑이 있으면 자연히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반대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생깁니다. 여러분에게 교회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교회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십니까? 그렇다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대한 사랑이 생겨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로써 우리 교회는 거룩하고 바른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쓰실 수 있는 교회,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데 있어서 기도는 가장 중요한 자원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깊이 사귀며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교회를 위해 물질을 드리는 일에 적극적입니다. 예수님은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마 6: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깊이 사귀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보물로 여깁니다. 하나님을 보물로 여기면 물질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할 자유를 얻습니다. 그런 사람은 십일조가 최대한의 목표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내 소유가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그 뜻대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여러 가지 점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으며 또한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요 길잡이가 되는 교회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뭔가 뜻있는 일을 해 주리라는 기대감이 우리 지역 사회에 있습니다. 버지니아 연회의 1천 개가 넘는 교회 중에서 제일 큰 교회로서 많은 일을 감당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약 3백 개의 한인연합감리교회 안에서 큰 형님의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기대감을 느낄 때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또한 크나큰 감사도 느낍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며 마음을 담아 드리는 헌금은 이 같은 고귀한 일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봉헌하실 때마다, 나 혼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하고 고귀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생각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시면서 마음을 담아 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헌신으로 인해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적극적으로 바깥으로 손을 뻗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깊이 사귀며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사용하여 교회를 섬깁니다. 작은 일 하나라도 맡아서 섬기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이 이미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내가 속한 그리스도의 몸이 좀 더 건강해지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내 작은 일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손을 뻗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각양각색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마음대로 사용하실만한 건강한 몸이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교회를 통해 거룩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가자는 말은 바로 이런 비전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하자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통해 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사랑의 손길을 미치기를 원하십니다.
6.
지난 1월 10일, Leadership Training Day에 참석했을 때, Herndon UMC에 다니는 래리(Larry)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평신도인데,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전도에 관한 클래스에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강사의 인도에 따라 잠깐 신앙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래리는 약 60세쯤 되었는데, 원래 뉴욕 태생이라고 합니다. 그는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중학교 때까지 천주교회를 다니며 모든 과정을 거쳤습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그렇듯, 그는 견신례(confirmation)를 끝낸 다음부터 교회를 떠나 살았습니다. 청년기를 지나면서도 교회에 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아이들이 태어나자 아이들을 위해 교회에 다녔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교회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40세쯤 되었을 때, 래리는 직장 관계로 콜로라도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전형적인 중년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마음에 빈자리가 점점 커지고 깊어지면서 해답을 찾아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덴버에 있는 어느 연합감리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했던 첫 날, 그는 비로소 자신이 오랫동안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 날로부터 그는 그 교회에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야 마음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곳 버지니아로 이사를 왔는데, 그는 이제 교회가 어떻든지 상관없이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사랑하기에 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래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질문을 가져 보았습니다. 만일 교회가 없었더라면, 아니 만일 래리가 오랜 방황 끝에 찾았던 그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여 그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지 못했다면, 그랬다면 래리는 오늘날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의 앞날은 어떻게 되었을 것이며, 그의 영원한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혹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섹스나 마약이나 알코홀에 인생을 팔아버리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교회를 위한 섬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곧 영혼을 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고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섬김은 곧 하나님을 위한 섬김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사랑을 호소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간절히 보기 원하시는, 진정한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가 되도록, 여러분의 기도와 물질과 시간과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여 전보다 더 뜨겁게, 더 강하게, 더 넉넉히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길 잃은 사람의 길잡이가 되며, 길 찾은 사람의 동행자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우리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고, 머리가 영광을 받으면 몸의 모든 지체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이 신비롭고도 거룩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당신의 몸을 훼손했던 저희의 잘못을,
당신의 몸을 섬기는 데 소홀했던 저희의 허물을
고백합니다.
저희를 용서하소서.
저희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주님의 사랑이 저희 안에 살아 움직이게 하시고
그 사랑의 힘으로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소서.
기도의 섬김에 부지런하게 하시고
물질의 섬김에 넉넉하게 하시며
은사의 섬김에 열심이게 하소서.
이로써 주님 높아지시고
주님과 함께 저희도 높임 받게 하소서.
아멘.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 시리즈 3 >
"교회는 다르다" (The Church Is Different)
에베소서 1:22-23
1.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이것은 자연 법칙도 넘어서고, 인간의 논리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사랑을 체험할 때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동시에 나 한 사람에게 그 모든 사랑을 집중시키십니다. 그 사랑에 취해야 합니다. 그 사랑에 넋을 잃어야 합니다. 그 사랑에 눈물을 흘려 보아야 합니다. 그 때 그 사랑이 내 마음 속에 뜨거운 힘이 됩니다.이 문제와 관계하여 이제 곧 장로로 안수 받으실 이일형 권사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지난 12월 말, 장로 고시 때, 면접 과정에서 그분의 십자가 체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허락을 받고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죽음이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진리가 그분에게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예배당에 들러 홀로 앉아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위한 것이라면 그 진리를 체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그렇게 기도하며 묵상했는데, 어느 순간, 눈을 감은 채로 있는데 앞이 보이기 시작했고, 저 앞에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이게 어쩐 일인가 하는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난데없이 창이 날아와 그분의 허리를 찔렀고, 거기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피는 멈출 줄 모르고 흘러 내렸는데, 그분이 앉아있는 예배당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피가 점차로 차올라, 앉아있는 자신의 몸을 덮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속으로 "이러다가 내가 질식하여 죽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질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환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이일형 권사님은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이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때 경험했던 십자가의 사랑이 삶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목사가 되고 싶었고 또한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그 길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중에야 하나님은 자신을 ‘전임 목회자’(full-time pastor)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전임 예배자’(full-time worshipper)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권사님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경제학자로서 자신의 길을 가면서 가정을 통해, 직장을 통해 그리고 교회를 통해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전임 예배자의 삶을 살아 오셨습니다.
그분은 20여 년 전부터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유학생들을 만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당신처럼 전임 예배자로 살도록 양육하는 일을 해 오셨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처음에는 희망 없어 보이고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지만, 그 헌신은 곧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 내에 있는 여러 대학 캠퍼스에 KBS(Korean Bible Studies)라는 선교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이 모임을 통해서 성장한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계속 모임을 가지며 영적 성장을 꾀할 정도로 좋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이 권사님은 지금은 캠퍼스 선교에서 어느 정도 뒤로 물러서 있으면서, 우리 교회의 3040 세대를 양육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이 권사님의 헌신을 지켜보면서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누가 저런 섬김을 할 수 있겠는가?"
2.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로써 제가 이 권사님을 위인으로 추켜세우려거나, 그분을 모든 면에서 흠이 없는 성자로 미화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그분을 아십니다. 그분도 하나님 앞에서 늘 긍휼과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입니다. 실수도 있고, 허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체험하고, 그 사랑의 능력에 힘입어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섬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섬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새 삶을 얻었고, 그분 자신도 섬김을 통해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서두부터 이 권사님의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사귐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며,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위해 섬기게 만든다는 신앙의 공식(formula)을 말씀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일은 이 권사님의 경우처럼 늘 이렇게 극적(dramatic)으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동안에 그 사랑에 젖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체험이 극적이든 일상적이든,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려는 열심을 얻습니다.
이 대목에서 혹시 이렇게 묻고 싶은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수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섬길 수 있도록 두 가지의 대리자를 이 땅에 두셨습니다. 하나는 ‘교회’요, 다른 하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말씀 드릴 것입니다. 오늘은 먼저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 대목에서 많이 머뭇거렸습니다. 막상,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문제를 다루려 하니,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문젯거리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하찮게 여기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조차도 "교회, 뭐, 별 거 있어?"라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교회 연구 분야에 큰 공헌을 해 온 바나 그룹(The Barna Group)의 책임 연구원인 데이빗 킨내몬(David Kinnamon)이 3년 동안 미국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이미지를 조사하여 발표했는데, 믿지 않는 미국 젊은이들이 교회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들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1. 타이타닉호?곧 침몰할 위기를 당면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 운명을 알지 못한다. (The Titanic?a ship about to sink but unaware of its fate)
2. 성능 좋은 앰프?하지만 배선이 엉망이고 스피커의 질이 좋지 않다. (A powerful amplifier being undermined by poor wiring and weak speakers)
3. 잘 길들여진 고양이들의 모임?겉으로는 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먹이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A pack of domesticated cats that look like they are thinking deep thoughts but are just waiting for their next meal)
4. 타조?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고 있다. (An ostrich which its head in the sand)
5. 취미 생활?사람들의 머리를 식히는 수단이다. (A hobby that diverts people’s attention) (unChristian, p. 122)
과연 "이것은 미국 교회의 상황이지, 한국 교회는 달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한국 교회의 상황이 더 하면 더 했지 부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말씀을 준비하는 저의 마음은 심히 착잡했습니다. 마치 망가지기 직전에 있는 자동차를 비싼 값에 팔려고 거짓말 하는 부도덕한 장사꾼 같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대들 것 같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눈을 씻고 찾아도 교회다운 교회를 찾을 수 없는데, 어찌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3.
이런 반문 앞에 저는 유구무언일 따름입니다. 교회에 속한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교회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교회가 그동안 보여준 온갖 잘못과 수치와 허물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저는 다른 교회나 다른 목회자를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뉴스를 통해 교회의 문제를 접할 때마다 마치 내 문제인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좋거나 나쁘거나, 교회는 제 가정과 같습니다. 그러니 제 가정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저 죄송하다고 말할 따름입니다.
다만, 가정이 아무리 망가져서 가정 같아 보이지 않아도, 가정은 가정이 아닙니까? 사람이 아무리 타락하여 짐승 같다 해도, 그 사람은 여전히 사람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오염되고 타락했어도, 교회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범한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본질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교회를 대신할만한 다른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오늘 읽은 에베소서의 본문은 교회의 본질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해 놓았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 공동번역성경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해 놓았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The church is Christ’s body, in which he speaks and acts, by which he fills everything with his presence."(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은 나사렛 청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교회를 일으키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서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활동하십니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활동을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하도록 세운 것이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교회 안에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며, 교회를 통해 이 세상으로 나가 생명의 사역을 계속 하십니다.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교회 밖에 없습니다. ‘교회’라는 말은 예배당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예배와 사귐과 섬김과 나눔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제자로 변화해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거점으로 하여 이 세상을 향해 손길을 뻗치십니다. 교회는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사역을 위한 ‘보이는’ 거점입니다. 그분은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가 없이는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팔다리를 잃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없으면 교회는 머리 없는 몸이 되어 버립니다. 생명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4.
이렇게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권위를 추락시킴으로써 얼마나 큰 죄를 범했는지를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토록 고귀한 교회를 우리는 천덕꾸러기로 전락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수 없도록 우리는 그분의 몸을 훼손했습니다. 교회에서 만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고귀한 지체들인데, 우리는 주님의 분신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해 왔습니다. 이 얼마나 큰 잘못이며, 얼마나 큰 책임입니까?
반면, 교회의 이 같은 본질을 생각한다면,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며, 교회가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만드는 일은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요! 우리가 교회로 모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요! 교회를 위한 우리의 섬김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요!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도 끝내 교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지 않습니까? 교회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 왜 고귀한 것인지를 알 것 같지 않습니까? 이 같은 교회를 이루는 거룩한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지워져 있다고 생각하면,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마음 뜨거운 감동을 느끼지 않습니까?
이미 그같이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들이 이 땅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 같은 거룩한 교회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막힘없이 말씀하시고 활동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로써 우리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치유되고 회복되고 성장하는 일이 지속되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를 거점으로 하여 세상 끝까지 나가도록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열망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 섬기면, 그 섬김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섬김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를 섬김으로 성부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치유하실 것입니다. 교회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교회의 문제들은 대부분 교회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자체가 목적이 되면 교회는 부패합니다. 그것이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의 증언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고 일할 때 교회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향해 나가 힘 있게 섬기기 위해서 먼저 교회가 건강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똑 같은 봉사를 하더라도 건강한 몸으로 봉사하는 것과 병약한 몸으로 봉사하는 것은 다릅니다. 병약한 몸으로 다른 사람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그 사람에게 병균을 옮겨 줄 수도 있습니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폐를 끼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그런 모습으로 선교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선교지에 나가 보면, 선교사로 나와 있는 분들이 현지인들보다 더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먼저 교회가 건강해져야 합니다. 거룩해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 강력하게 역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 고백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5.
교회를 위한 섬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여러분의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진실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감리교회를 시작하신 존 웨슬리 목사님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위해 아주 열심히 헌신해야 하며, 교회에 많은 사랑을 바치고, 교회의 번영과 성장을 소원해야 합니다. 또한 열심으로 온 세상의 교회를 위해, 특히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여러분의 교회가 얼마나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까? 사랑이 있으면 자연히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반대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생깁니다. 여러분에게 교회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교회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십니까? 그렇다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대한 사랑이 생겨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로써 우리 교회는 거룩하고 바른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쓰실 수 있는 교회,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데 있어서 기도는 가장 중요한 자원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깊이 사귀며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교회를 위해 물질을 드리는 일에 적극적입니다. 예수님은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마 6: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깊이 사귀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보물로 여깁니다. 하나님을 보물로 여기면 물질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할 자유를 얻습니다. 그런 사람은 십일조가 최대한의 목표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내 소유가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그 뜻대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여러 가지 점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으며 또한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요 길잡이가 되는 교회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뭔가 뜻있는 일을 해 주리라는 기대감이 우리 지역 사회에 있습니다. 버지니아 연회의 1천 개가 넘는 교회 중에서 제일 큰 교회로서 많은 일을 감당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약 3백 개의 한인연합감리교회 안에서 큰 형님의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기대감을 느낄 때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또한 크나큰 감사도 느낍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며 마음을 담아 드리는 헌금은 이 같은 고귀한 일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봉헌하실 때마다, 나 혼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하고 고귀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생각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시면서 마음을 담아 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헌신으로 인해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적극적으로 바깥으로 손을 뻗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깊이 사귀며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사용하여 교회를 섬깁니다. 작은 일 하나라도 맡아서 섬기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이 이미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내가 속한 그리스도의 몸이 좀 더 건강해지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내 작은 일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손을 뻗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각양각색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마음대로 사용하실만한 건강한 몸이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교회를 통해 거룩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가자는 말은 바로 이런 비전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하자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통해 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사랑의 손길을 미치기를 원하십니다.
6.
지난 1월 10일, Leadership Training Day에 참석했을 때, Herndon UMC에 다니는 래리(Larry)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평신도인데,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전도에 관한 클래스에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강사의 인도에 따라 잠깐 신앙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래리는 약 60세쯤 되었는데, 원래 뉴욕 태생이라고 합니다. 그는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중학교 때까지 천주교회를 다니며 모든 과정을 거쳤습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그렇듯, 그는 견신례(confirmation)를 끝낸 다음부터 교회를 떠나 살았습니다. 청년기를 지나면서도 교회에 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아이들이 태어나자 아이들을 위해 교회에 다녔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교회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40세쯤 되었을 때, 래리는 직장 관계로 콜로라도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전형적인 중년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마음에 빈자리가 점점 커지고 깊어지면서 해답을 찾아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덴버에 있는 어느 연합감리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했던 첫 날, 그는 비로소 자신이 오랫동안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 날로부터 그는 그 교회에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야 마음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곳 버지니아로 이사를 왔는데, 그는 이제 교회가 어떻든지 상관없이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사랑하기에 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래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질문을 가져 보았습니다. 만일 교회가 없었더라면, 아니 만일 래리가 오랜 방황 끝에 찾았던 그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여 그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지 못했다면, 그랬다면 래리는 오늘날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의 앞날은 어떻게 되었을 것이며, 그의 영원한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혹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섹스나 마약이나 알코홀에 인생을 팔아버리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교회를 위한 섬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곧 영혼을 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고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섬김은 곧 하나님을 위한 섬김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사랑을 호소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간절히 보기 원하시는, 진정한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가 되도록, 여러분의 기도와 물질과 시간과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여 전보다 더 뜨겁게, 더 강하게, 더 넉넉히 섬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길 잃은 사람의 길잡이가 되며, 길 찾은 사람의 동행자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우리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고, 머리가 영광을 받으면 몸의 모든 지체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이 신비롭고도 거룩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당신의 몸을 훼손했던 저희의 잘못을,
당신의 몸을 섬기는 데 소홀했던 저희의 허물을
고백합니다.
저희를 용서하소서.
저희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주님의 사랑이 저희 안에 살아 움직이게 하시고
그 사랑의 힘으로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소서.
기도의 섬김에 부지런하게 하시고
물질의 섬김에 넉넉하게 하시며
은사의 섬김에 열심이게 하소서.
이로써 주님 높아지시고
주님과 함께 저희도 높임 받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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