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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고 장수하는 길

에배소서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433 추천 수 0 2011.08.20 14: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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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엡6:1-3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잘되고 장수하는 길
엡6:1-3

만약 이 시간 하나님께서 두 가지 소원을 반드시 들어 줄테이니까 두 가지 소원을 말하라면 무슨 소원을 말하겠습니까? 대부분 건강하게 사는 것과 성공하는 것, 즉 잘 사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이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심.소.동을 말합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영양소 잘 섭취해야 하며, 운동을 적당히 해야 한답니다. 마음이 아프면 신경이 고르지 못하고 면연과 신진대사에 이상이 생겨 병이 온다는 것입니다. 입에 좋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몸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못하면 하루에 30분씩 몸털기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의 정의를 사전에 나온 것처럼 “정직하고 성실한 과정을 거쳐 목적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다면 성공하는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정의할 때 성공하기 위한 필요한 조건은 단순하게 3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목표를 정하는 것이고 둘째 실행하는 것이며 셋째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결국 이루는 것입니다.
"백만장자가 알려주는 미국에서 부자가 되는 비결"(The Millionaire Next Door)라는 책이 있습니다. Thomas J. Stanley , William D. Danko가 지은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부자가 되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미국 내의 백만장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20여 년간의 연구를 하였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방법은 (1)성공한 부모님이나 친척으로부터 유산을 상속 것 (2)일류 대학에서 진학 학문 분야의 학위를 취득 것 (3)경쟁자들보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거나 현명하게 대처하여 경쟁에서 승리 것 등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비결은 (1)투철하고 지속적인 직업윤리로 시장에서 경제적 소득을 실현하는 것 (2)장기적이고 일관된 저축 습관을 가지는 것 (3)적은 지출과 많은 저축을 실천하는 자기 훈련 즉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철저한 재무 원칙과 미래를 위한 투자, 그리고 근면한 노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우리가 건강하고 잘 사는 비결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 제 5 계명의 말씀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이 땅에서 장수하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5장 16절에는 더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 5:16)”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장수할 뿐 아니라 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1. 부모님에게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에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그것은 성경을 너무나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억지라고 받아들일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생각해 보십시오. 주변의 사람들, 친구들을 보십시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고 제멋대로 산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런 사람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부모 말 듣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가출한 사람들 별로 잘 되지 않습니다. 자녀가 잘 되고 건강하시길 원하시면 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결혼하여 독립적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시행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주신 부모의 권위를 주님 안에서 철저히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옳은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 권위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의 권위, 교권이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의 통치적 권위, 통치권이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의 영적권위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권위주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권위까지 부정하면 안 됩니다. 권위가 살아 있어야 질서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권위가 존중되어야 나라가 잘되고 교회가 잘되고 가정이 잘되는 것입니다. 질서가 없는 사회는 지옥과 같은 사회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참으로 버릇이 없다고 말들을 합니다. 어느 집에 할머니와 부부 그리고 3형제가 살고 있었답니다. 아이들을 잘 기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아이들 하는 대로 그대로 길렀답니다. 기 꺾지 않고 자존감 세워주워 준다고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버릇없는 아이를 만든 것입니다. 거센말로 싸가지 제로 아이를 만든 것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모처럼 집에 있었는데 학교에 갔다 온 큰아들이 안방 문을 활짝 열면서 아버지에게 책가방을 던졌답니다. "야! 나 학교 갔다왔다." 둘째 아들도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놀랐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큰절을 하면서 "아버지. 학교에 다녀왔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음. 그래. 너밖에 없다"며 흐뭇해했답니다. 그러자 막내아들이 두 형을 쳐다보면서 말했답니다. "제, 좋단다."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아빠, 아빠 머리카락 중에 하얀 머리는 왜 있어?" "네가 말 안 듣고 말썽 피울 때마다 하얀 머리가 하나씩 난단다." 그러자 이 아이가 "그럼 할머니 머리는 왜 전부 다 하얘?" 라고 반문하더라는 것입니다. 누가 오늘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오늘 날은 너무나 부모의 권위가 상실되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되어 가고 있습니다. 과거 니체는 조로아스터교(拜火敎)의 교조(敎祖)인 차라투슈트라의 입을 빌어 최고의 권위를 누려온 신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세기 후인 20세기에 미국의 사회학자 마르쿠제 역시 차라투슈트라의 입을 빌어 아버지는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21세기는 모든 권위를 파괴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부모의 권위가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잘 되고, 가정도, 나라도 잘 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조건을 보고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마땅히 지켜야 할 인간의 본문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 3:20)"라고 말씀하십니다.
순종하기는 순종하되 모든 일입니다. 선별적이 아닙니다. 단 주 안에서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거슬리는 것까지 순종할 것을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에 부모를 통하여 통치되기는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가정을 권위를 가지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자녀가 마음대로 하는 것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느 사회든 부모의 권위가 살아지면 그 사회는 질서가 무너지고 결국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삼손을 보십시오. 나실인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방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의 포로가 되어 눈을 빼임당합니다. 짐승이 돌리는 맷돌을 돌리다 죽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을 보십시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성전에서 방탕합니다. 고기를 도둑질해 갑니다. 간음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방치합니다. 겨우 권면하는 것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이 정도 수준에서 머물게 됩니다. 성경은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 22:15)”라고 말씀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부패한 욕심을 이겨낼 만큼 두려운 체벌을 가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순종하게 하여야 합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아이들은 전쟁터에 나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잘 되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삭을 보십시오(창22:9-10) 결혼할 배우자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는데도 순종합니다. 결국 이삭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 26:12-14)" 잘 되었습니다. 잘 되었을 뿐 아니라 장수하였습니다. 아브라함 175세, 야곱 147세에 비해 이삭은 1백 80살까지 장수합니다. 기운이 진하여 죽습니다. 얼마나 건강하게 살았다는 말입니까?(창35:29)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창 35:29)”
감리교위 창시자 요한 웨슬리 어머니 수산나는 19명의 자녀를 출산하였습니다. 가난한 가운데 이 많은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아이들을 훌륭하게 양육하였습니다. 그녀는 순종 교육을 철저히 시켰답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배우면 부모에게도, 선생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순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가르치는 길이 그 자녀가 영원히 효를 행하며 살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소름끼치는 무서운 경고를 보십시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잠 30:17)” 객사하는 이야기입니다.
신21:18-21에서는 성 밖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2.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이란 말은 우리말 사전에 “공손히 받들어 모심.”이라고 뜻풀이를 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공경은 ‘카베드’라는 단어로 “존경하다. 영광되게 하다, 기쁨이 되게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잠3:9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잠 3:9)”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 공경과 같은 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되 마치 하나님을 공경하듯 섬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순종과 비교하면 순종은 결혼 전의 효도 윤리라면 공경은 결혼 후까지 적용되는 효도 윤리입니다. 순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은과 봉양, 양지까지를 포함합니다. 부모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유일합니다. 부모 공경 없이 사람답게 잘 사는 사회 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옛 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어 왔습니다. 효를 중심으로 한 정신문화가 인간 행위의 근본과 인간교육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정신은 우리 민족의 삶과 전통 속에 깊이 스며들어 전통윤리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효는 모든 도덕의 근간으로서 사회의 기초 집단인 가정을 안정시키고, 가정의 안정에서 사회의 안정으로, 국가의 안정으로 연결시키는 기본적 윤리개념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불교 문화권에 있었는데 불교에서도 부모를 섬기고 처자식을 돌보는 것이 최상의 행복이라 하여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바른길 가운데 으뜸이라고 가르치는데 만일 부모님이 아니 계시면 태어나고 길러짐의 인연을 갖지 못한다하여 부모님 은혜를 강조하고, 배은과 불효가 지옥에 떨어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효 사상은 유교를 통해 구체화되고 강화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이후 유교가 민족정신의 근간을 이루었는데 유교에서는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공자는 "어버이가 살아 계시면 섬기기를 예로써 하고 돌아가시면 장사지내기를 예로써 하고 제사지내기를 예로써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살아 계시는 부모에 대한 봉양뿐 아니라 죽은 후 상 제례에 의한 조상숭배로 효를 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돌아가신 후의 효를 강조하다 보니까 부모님의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3년간 묘를 지키고 3년 동안 매일 성묘해야 효를 다하는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3년 동안 흰죽만 먹거나 소금이나 간장을 3년 동안 먹으며 모든 고기, 술, 담배를 기피하는 등 특정 음식물을 절제함으로서 이를 효의 척도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상숭배의 제례를 중요시하고 제사드릴 남자를 중요시하다보니 남아 선호사상이 생기고 첩제도가 생겼습니다. 부위부강(夫爲婦綱), 남존여비(男尊女卑), 여필종부(女必從夫), 삼종지의(三從之義), 칠거지악(七去之惡) 등과 같은 남녀의 차별윤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여성은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였고, 혈통과 대를 잇는데 봉사하는 남자의 종속물로 생각되었습니다. 경제적 낭비와 허례허식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자식의 예속적 지위를 강조하여 권위주의를 만들었고, 가족 내에서 고부사이의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부모를 하나님의 자리에 앉혀놓은 유교의 부작용으로 기독교인들이 때로는 부모를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실 때 우리는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효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부모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면서도 30세전까지는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며 목수의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까지 육신의 부모인 마리아를 그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는 아름다운 효의 모습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장로들의 유전'이 있었습니다. 이 유전 가운데는 '고르반'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하나님께 바친 물건' 즉, '헌물'이라는 신앙적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가련한 부모들을 도와드리고 모셔야 할 의무를 오직 부모로부터 자신들의 재산권을 보호받기 위해서 '고르반'이라고 선언만 해놓고, 실제로는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불효자들의 기만적 행위는 '장로들의 유전'에 의해서 오히려 정당화되는 구실이 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율법을 왜곡해서 불효의 죄를 저지르는 것을 가증하게 보시고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 신랄하게 꾸짖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15:3-6)”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에 대하여 성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 주어진 사역을 지혜롭게 성취함으로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네 부모님을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잠 10: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잠15:20)”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부모를 즐겁게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부모에게 근심 걱정을 끼쳐 드리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늙었다고 없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부담으로 여기고 창피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저의 어머니도 늙으시니까 참 초라한 모습이 된 것을 봅니다. 파출부한다고, 청소한다고, 궂은 일 한다고 창피하게 생각하고 업신여기면 안됩니다. 어떻게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경 인물 중 국무총리가 되어 아버지 야곱의 노년을 기쁘게 살게 한 요셉을 통해 그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야곱을 공경할 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도 부모라는 한 가지 이유로 공경합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사기 친 사람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뿐입니까? 아내를 4명이나 두었습니다. 이정도 되면 어디 정상적인 사람 같으면 아버지에 대하여 자신의 가정에 대하여 창피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에 대하여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담을 쌓고 살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지금 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어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돈이나 많으면 효도하는 체라도 하겠지요. 요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습니다.(창50:14) 국무총리가 되어 아버지를 모셔다가 바로에게 안수하게 하였습니다(창47:7). 형들로부터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창세기 45장 9절 11절을 보십시오. 지체하지 말고 요셉에게로 오시라고 말합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아무리 환경과 조건이 좋지 않을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비전을 이룸으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요셉의 가정환경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분인데 어머니는 네 분입니다. 작은 어머니이면서 이모입니다. 배다른 형제가 10명이나 있습니다. 어머니들이 서로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하여 투기합니다. 형제들이 질투하고 시기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요셉은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문제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비전을 갖고 그 비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요셉의 가정처럼 복잡하지는 않겠지만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가정에는 있습니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술주정, 부모의 무식, 남보다 못한 직업, 경제적인 어려움, 형제들의 시기, 불신, 가족 간의 대화의 단절, 부모님이 공부강요, 간섭 등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이 땅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은 먹을 것 사드리고 용돈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성취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잠 23:24)"했습니다.

2) 마지막까지 부모님 업신여기지 말고 잘 돌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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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배소서 무엇보다 귀한 자녀(1) 자식을 귀하게 여기라 엡6:4  김동호 목사  2004-10-13 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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