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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5:2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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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한 부부
에베소서5:22-33
5월은 가정의 달이고,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사별하신 분도 있고, 사정으로 홀로 되신 분도 있고, 아직 미혼인 분들도 있겠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정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 가정은 부부로부터 출발합니다. 부부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해지고 가정이 행복해야 교회도 사회도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사회 구원의 가장 기본 단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부부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까? 조선일보·한국갤럽·글로벌마켓인사이트가 신년기획 '2011년, 한국인이여 행복하라'를 위해 실시한 10개국 5,190명의 여론조사에서 한국 여성이 가장 불행한 집단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빚과 자녀의 굴레 등으로 피로감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국가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25위에 머물렀습니다. 가정폭력이 심각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 여성 6명 중 1명이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여성 200만 명이 16초에 한 명꼴로 남편에게 맞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도 가정주부의 40%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가정폭력은 지위와 빈부 격차, 종교 유무와 관계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생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을 당하던 할머니가 60까지는 쥐죽은 듯이 살았는데 60이 되어서는 말대꾸를 하며 싸웠답니다. 날마다 부부싸움을 했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부부싸움은 굉장했답니다.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날아가고 언쟁은 늘 높았답니다. 이제 힘이 부친 할아버지가 어느날 “내가 죽으면 관뚜껑을 열고 흙을 파고 나와서 엄청나게 할망구 괴롭힐꺼야… 각오해!” 그러던 어느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답니다. 장사를 지내고 돌아온 할머니는 동네사람들을 모두 불러 잔치를 베풀고 신나게 놀았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옆집 아줌마가 할머니에게 걱정이 되는듯 물었답니다. “할머니 걱정이 안되세요? 할아버지가 관뚜껑을 열고 흙을 파고 나와서 괴롭힌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답니다. “걱정마. 그럴줄 알고 내가 관을 뒤집어서 묻었어…. 아마 지금쯤 땅 밑으로 계속 파고 있을꺼야….”
부부 행복이 가정 행복이고 사회 행복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가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1.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주인이 되면 행복해 질 것으로 생각하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돈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돈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돈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불행을 가져다주는 수많은 가정문제의 밑바닥에는 돈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돈 때문에 다투고, 돈 때문에 갈라서도, 돈 때문에 죽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파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늘어나는 파혼 이유는 대부분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28살이 어느 자매는 4년 동안 사귄 남자와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남자친구를 집에 대리고 왔다고 합니다. 당연히 부모님께서 허락해 주실 줄 믿었는데 아버지가 반대하였답니다. 이유는 "남자가 집을 사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합니다. 이에 화가난 남자친구 측 부모는 5억 4000만원짜리 34평 아파트를 전세계약하고는 "혼수는 알아서 해오라"며 기싸움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비 신랑신부들은 결혼을 한두 달 앞두고 예단과 예물을 준비하는 시기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신랑 측 어머니가 신부 어머니에게 한 "딸을 키워준 것만으로도 고마우니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 등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큰 코다친다는 것입니다. 혼수· 예단· 예물을 다른 집과 비교하며 심각한 갈등을 겪기 일쑤고 결혼한다해도 신랑신부는 미운털이 박힌 채 힘겨운 결혼생활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가 전국 신혼부부 380쌍에게 질문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약 3분의 1이 결혼 준비과정에서 갈등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신혼부부들이 결혼을 위해 평균적으로 지출한 비용은 1억 7542만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보니까 저 같은 사람은 인간적으로 아이들 결혼시킬 일이 암담합니다. 물론 생활을 위해 돈이 중요합니다.
조선일보가 한국갤럽·글로벌마켓인사이트와 세계 10개국의 행복 조건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돈과 행복이 무관하다'고 답한 한국인은 7.2%에 불과했습니다. 행복과 돈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우리나라 사람은 생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심각한 수준인, 한국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도 '돈'이었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금전적 문제'를 가장 많이(29.8%) 꼽은 나라도 한국이었습니다. 한국인의 물질에 대한 집착이 미국인의 3배, 일본인의 2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한국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첫 번째 요인은 돈에 대한 집착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노벨경제상을 받은 디톤 교수와 심리학자 카네만은 2년 동안 45만 명의 미국인들을 상대로 돈과 행복지수를 조사하였습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인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연간 수입이 7만 5,000달러에 이르렀을 때라고 합니다. 그 이상 돈을 벌면 7만 5,000달러 받을 때의 감격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수입이 늘면 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가 짐이 된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돈은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반드시 '돈=행복'이라는 공식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드 디너 교수는 2004년 포브스가 뽑은 미국 400대 부호와 인터뷰를 했답니다. 응답을 7점 만점으로 계량화한 결과, 부호들의 행복지수는 5.8이었습니다. 얼어붙은 땅 그린란드의 이누이트 족이나 케냐 사막의 유목 민족 마사이 족과 같은 수준입니다. 돈이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문제는 그 효과가 극히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네먼 프린스턴대학교 교수와 연구팀은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이 전반적으로 행복감을 줄 것이라는 인식은 '대부분 착각'이라고 말합니다. 미국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가 지난 20년 동안 발표한 '행복지수'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나라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이 1만 5000달러에 도달하면 '수확체감'이 발생하며 돈은 행복감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학자들은 '손실 혐오(loss aversion)'와 '적응'으로 설명을 합니다. 소득이 아무리 늘어나더라도 인간은 쉽게 그 상태에 적응하게 되고 만족도가 점점 감소해진다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손실혐오에 시달리게 되어 불만족도가 점점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배, 일본이 7배 성장했는데, 행복지수는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은 이유입니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이 1960년대 초반에 비해 250배 이상 증가했는데도 삶의 만족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밑바닥인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이 중심이 되며, 아내가 중심이 되면 행복해 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너만 있으면 행복해 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한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삼각형의 원리입니다. 주님이 꼭지점에 있고 밑변에 꼭지점에 남편과 아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보십시오. 성령 안에서 거룩하고 행복한 부부의 삶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전제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입니다. 22절을 보십시시오. 아내들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주께 하듯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한 복종이 아닙니다. 주님께 하듯입니다. 23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가정을 교회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의 주인도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 자신을 교회를 위하여 주심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하셨듯이 나는 남편과 아내에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은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돈도, 술도 아니고 주님이시라고 받아들이고 사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입니다.
여호수아의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는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2. 주님께서 주신 가정의 윤리를 잘 지키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 안에서 거룩하고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한 아내의 자세(22-24), 남편의 자세(25-30), 결혼의 원리(31-32), 결론(33)으로 되어 있습니다.
1)먼저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해 아내가 지켜야 할 윤리는 무엇입니까?
첫째가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22-24).
어떻게 순종해야 합니까? 주께하듯(22),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이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24).
둘째가 남편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엡5:33). 셋째가 오늘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남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딛2:4-5절).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즈음 남편들 기가 죽어 있다고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아바타라고 말합니다. 아내가 조정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신혼 부부가 교회에서 배워 아내가 말대꾸를 하니까 “지난번 결혼식 때 목사님이 말씀해잖어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라고, 잊어버렸어?”
그러자 아내는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답니다. “요즘은 땅 값이 하늘 위로 치솟는 것도 몰라!”
이제 딸을 낳아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답니다. 여자가 남자 보다 두 살이 더 많은데
남편이 “밥” 하면 아내가 “예 잠시만요” 하며 아내는 남편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딸이 묻었답니다. “엄마는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왜 존댓말을 해?”
“안 그러면 쟤 삐져”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중년이 되어 남편이 회사 회식이 있어 새벽에야 들어 왔답니다. 문을 열어 주지 않은 것입니다. 사정 사정하여 들어갔는데 그 새벽에 남편에게 따발총 같은 잔소리를 했답니다. 남편이 어쩔 수 없었다고 이유를 다니까 더 화가 난 아내가 " 찍 소리도 하지마~!!"라고 소리쳤답니다. 그러자 그 남편은 "찍...." 하고 주무였답니다.
어느덧 미운정 고운정 붙어 늙었답니다. 할머니가 동창회를 다녀왔답니다. 할아버지가 "왜 그려"라고 하자 할머니는 "별일 아니유"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할머니 눈치를 보던 할아버지는 "별일 아니긴 ..... 뭔일 있구먼 "라고 하자 할머니는 빽 소리치며 "아니라니께"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옛날 잘못한 일을 생각하며 " 당신만 밍크코트가 읎어" 할머니는 아무말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당신만 다이아반지가 읎어" 그래도 침묵한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그럼 뭐여?"라고 하자 할머니 왈 “예휴 ~ 나만 남편이 살아있슈."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남편 보기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순종과 존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원수같은 남편, 폭군 같은 남편, 다시 보기 싫은 남편, 돈도 벌어 오지 않는 남편, 화만 내는 남편, 짐덩어리인 남편에게 어떻게 순종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성경이 노예 제도가 성행하는 1-2세기에 성경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여성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시대에 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남녀가 평등한데 왜 남편에게 복종하는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인격적으로 타협하여 좋은 방법으로 결정해야지 아내가 왜 남편에게 복종하여야 하는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왜 강제로 억제 당하고, 굴욕적으로 굽실 거리는 굴복을 해야 하고, 위축되고, 타의적으로 모든 권한을 빼앗기고, 열등해서 아첨하고, 줏대없이 행동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여자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결혼한 아내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여자가 약하니까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인격적으로 똑같습니다.
결혼한 아내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한 가정을 이루어 아내가 되었으니 가정의 질서를 위하여 복종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창조질서)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잘해주어서도 아닙니다. 부자여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참 행복이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주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때문에 남편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가정에서 시행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서로 주도권싸움을 하려고 하면 가정은 불행해집니다. 서로 주님께 가까이 가면 가정은 행복해 집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는 방법이 바로 아내에 있어서 순종, 존경, 사랑입니다. 범위는 범사입니다. 불신 남편에게도 마찬 가지입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벧전 3:1)”
2) 남편들에게 말씀합니다.
남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25-30).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함같이(25b).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양육하고 보호함같이(29)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아내를 괴롭히지 말라고 합니다(골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셋째,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말씀합니다(벧전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벧전3:7)”
넷째, 아내를 즐겁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전 9:9)" 남편들은 아내보다 마담을 귀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보다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폭력을 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어 폭력 정서 폭력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관심도 폭력입니다.
오늘 성경은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입니까?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했듯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했습니까? 자신의 몸을 주셨습니다. 왜요 거룩한 교회, 영광스런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듯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강요하고, 군림자나 독제자가되어 지배하고, 굴복시키고, 맹종시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로 하여금 남편에게 복종하게 한 것은 남편이 잘나서, 남자가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가 가정에서 시행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가정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가정에서 성취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옛날 페르시아의 사이러스 왕이 전쟁에서 승리를 했답니다. 그래서 이 적군의 왕자와 부인 그리고 아이들을 생포해 왔는데 사이러스 왕은 왕자를 죽이기 전에 심문을 했답니다. “만일 내가 왕자인 당신을 살려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당신의 아이들을 살려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의 재산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왕자에게서 재산 전부를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궁금했습니다. “만일 당신의 아내를 살려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면 제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사이러스 왕은 아내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바치겠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이 어디 있느냐? 이런 사람의 재산을 뺏으면 어떻게 하냐? 이런 사람은 살려야 한다.’ 해서 그래서 온가족을 다 살렸주었답니다. 그날 밤 살아서 돌아온 왕자와 그 가족은 너무 기뻐서 축하잔치를 벌였답니다. 왕자가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사이러스 왕은 비록 적군의 왕이지만 참 훌륭한 사람이고 남자 중에 남자고 참 훌륭한 사람이오. 멋있더라.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더라.” 그랬더니 이 아내가 말하길 “여보, 저는 사이러스 왕이 멋있는 사람인지는 알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사이러스 왕이 어떤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나를 위해 죽겠다’는 당신의 말이 생각날 뿐입니다. 나는 당신을 보는 동안에는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남편으로 아내를 이 정도 사랑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부부가 되겠습니까?
3. 주님께서 제정해 주신 가정의 원리를 지키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31)
세계미래학회가 발행하는 미래예측 전문지 <퓨처리스트>에서는 21세기의 가족은 자녀의 재생산. 양육 및 사회화 그리고 가족애라는 전통적인 가족 기능이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맞벌이의 증가로 가족은 남성화되고 결혼이 거래라는 개념으로 이혼이 가정파탄이 아니고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는 긍정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가족 형태 즉 장기동거 뒤의 결혼, 혼합가정(이복형제가정) 및 입양가정의 일반화, 저소득층의 결손 가정화, 동성애 가정의 합법화, 성적 결합 없는 공동거주 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가정의 절대적인 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결혼도 선택 사항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상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가 행복해지려면 만고불변의 가정원리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결혼이란 신분 상승, 경제 계약, 필요 충족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입니다. 부부가 우연히 만난 것 아닙니다. 필연적인 사건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결혼 제도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도입니다. 이 말씀은 창조시 초혼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이혼을 요구하는 유대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마19:5) 이미 결혼한 이방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엡5:31). 행복한 가정을 위한 결혼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1) 독립의 원리입니다.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창2:29 남편이 부모를 떠나" 남편이 부모를 떠난다는 원리입니다. 물론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인간 삶의 습관을 말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부모의 권위 통치로부터 떠남을 말합니다.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될 것을 말합니다. 과거의 친구, 친정, 과거의 습관, 사상, 생활 태도 등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2) 연합의 원리입니다.
아내와 연합하는 원리입니다. 하나됨의 원리입니다. 연합이라는 말은 아교로 붙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월터 트로비쉬는 “나는 너와 결혼했다.”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연합을 방해하는 요소는 그 어는 것도 허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만족, 자녀. 친인척. 경제. 교회 그 어떤 것도 이 연합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다 남편이 몹시 화가 났습니다. 화가 난 남편은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당장 나가 버려!" 아내도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흥, 나가라고 하면 못 나갈 줄 알아요!" 그런데 잠시 후.... 아내가 다시 자존심을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남편은 "왜! 다시 들어오느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에 가장 소중한 것을 두고 갔어요!" "그게 뭔데?" "그건 바로 당신이에요!"
3) 일치의 원리입니다.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1+1=1의 원리입니다. 육체 뿐이 아닙니다. 경제, 사회, 신앙이 한 단위가 되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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