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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4: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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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길
2005-07-17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I. 본문 해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가택 연금되었던 2년 동안에 쓴 서신 중 하나로 교회가 무엇인지를 잘 제시하고 있다. 무척이나 활동적으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연금되는 동안 말씀을 깊이 묵상할 은혜를 받았다. 전반부는 교리 중심으로, 후반부는 실제적인 교회 안에서의 교인의 삶을 가르치고, 세상에서 적용되어야 할 점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 이 일을 위해 성도들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드려야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II. 교회의 직분과 섬김(11절)
A. 다양한 직분
성경 본문에는 다양한 직분이 등장하나, 이것은 모두 교회를 섬긴다는 한 가지 목적에 닿아 있다. 직분은 교회를 세워가기 위한 것인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교회는 지역교회 하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의미의 교회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는데, 이 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유형의 한 지역 교회가 아니라 이 땅의 있는 모든 교회로 이루어진 하나의 지상교회, 그리고 천상의 교회를 포함한 교회이다. 창조 시, 모든 피조물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구현하고 있었고, 영적인 연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자 영적인 연결은 모두 부서지고 피조세계에 깃들어 있던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자신께로 돌아가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의 원래 목적과는 상관없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피조 세계를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고자 하셨고, 온 피조 세계의 영광스러운 회복에 앞서 먼저 인간을 구속하셨다. 교회는 창조시의 아름다운 영적인 연결을 성도와 성도 안에서 다시 구현한 것으로, 선취적으로 창조시의 영적 연합을 경험할 수 있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한 성도의 아픔을 온 교회가 함께 아파하고, 한 성도의 기쁨을 온 교회가 함께 기뻐하는 영적 연합을 맛본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 안에서 누리는 이 선취적인 연합은 완전한 연합이 아니다. 끊임없이 더 연합되어가야 할 연합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참된 연합을 이루고 진정한 의미의 예수님의 몸으로 세워져 가게 하시기 위해 여러 가지 직분을 주셨다. 본문에 거명된 직분은 모든 직분이 아니다. 당시에는 이 보다 많은 직분이 교회에 있었고 지금은 더욱 많은 직분들이 섭리 속에서 생겨났다. 직분은 종적인 위계질서가 아니라 횡적구조로 이것은 모두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하나님께서 각각의 은사를 따라 나누어 주신 것이다.
B. 통일된 목적
시계의 초침, 분침, 시침, 그리고 온갖 부속들이 각각 다르게 움직이나 결국은 시간을 알려준다는 하나의 목적을 추구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다양한 직분들 역시 각각 다르게 움직이나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속에 연합을 이루어 하나의 통일된 목적에 기여하고 있다. 그 통일된 목적에 대해 본문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이라고 말한다.
III.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길(12절) -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A. 성도를 온전케 함
성경은 먼저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을 거론한다. 여기서 “세우다”의 의미로 사용된 의미의 희랍어 (오이코도메)는 집을 짓는다는 의미의 건축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완전하신 분으로, 사실 그 분의 몸은 더 이상 완성되어 가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를 일컫는 비유적 표현으로, 이 교회를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계속 지어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첫째, 통치적인 면에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 머리와 몸 사이에 존재하는 생명적이고 유기적인 연합의 관계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복종의 관계도 연합의 관계도 아직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모퉁이 돌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모든 성도들의 연결, 교회들의 연결이다. 지금도 계속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지는 영혼들이 있고, 이에 따라 이 연결은 지금도 계속 커져 간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지금도 계속 지어져가는 중이고 우리는 각자 맡겨진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며 선교와 전도와 봉사로 그 일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접붙여진 모든 성도들이 온전한 신자는 아니다. 그들 중의 상당수가 미숙하므로, 가르치고 돌보는 일에 은사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온전한 신자로 세워가며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하게 지어가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B. 섬김의 일을 하게 함
많은 성도들이 무위도식하고 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이러한 사람 속에 어떻게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있을 수 있나? 성경은 다음으로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라고 말한다. 여기서 “봉사”의 의미로 쓰인 희랍어 (디아코니아)는 사실 식탁을 차리는 일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인이나 노예에게 속한 일로, 우리는 이 구절 속에서 종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배우게 된다. 수없이 많은 일들이 우리의 섬김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시기 위해서,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 사명의 자리가 있는가? 예수님의 마음은 섬김의 현장에서가 아니면 알 수가 없다.
IV. 결론과 적용
예수를 위하여 감당하고 있는 사명의 자리가 있는가? 주의 참사랑을 알고 무엇이라도 생명을 걸고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길 때 예수의 마음을 품은 참 성도로 설 수 있다. 200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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