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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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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현 목사 |
참고 : | 라스베가스 복된교회 |
< Nov. 21, 2010 복된교회 / 성령강림 후 스므 다섯 번째 주일 / 추수감사주일 >
< Nov. 21, 2010 / This message is for the twenty sixth Lord's Day after Pentecost. / Thanksgiving Week >
엡 Ephesians 5:1-4
『 복의 씨앗 』, 『 Seed of Blessing 』
각기 다른 농부들이 토질이 똑같은 논밭에서 농사를 지을 때, 농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기후가 크게 작용하지만, 그 부분은 농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하나님께 달린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농부 입장에서 볼 때에 어떤 씨앗이냐, 어떤 묘목이냐, 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며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결실이 좋고 풍성할려면 가장 먼저 씨앗이나 묘목의 품질이 좋아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다, 사는 동안 생각의 씨, 말의 씨, 행실의 씨 등 무수한 씨들을 뿌리고 심습니다. 그러나 어떤 씨를 심느냐? 좋은 씨냐, 좋지 못한 씨냐가 중요합니다. 좋은 씨를 뿌렸다면 그 다음에 얼마만큼 잘 관리하여 좋은 열매를 얼마만큼 거두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받으시면서 지금껏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 속에 어떤 씨앗들을 심었는지를 돌아보실 수 있기 바랍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씨를 심기 위하여 몸부림쳐 왔었습니까?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고자 몸부림쳐 왔었습니까? 부끄러움과 후회가 많다면 오늘 말씀을 받으시면서, 우리 모두가 성령의 깨닫게 하시고, 회개케 하시고, 변화되게 하시는 역사, 새롭게 하시는 역사가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갈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엉뚱한 것을 심어놓고서, 아무리 안그런척 하고, 아무리 감출려고 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감출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는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떻게든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어떻게든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시면서 앞으로의 생애에 어떻게든 좋은 씨를 뿌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겠습니다라고 결심하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삶의 현장에서 결심한대로 사는 하늘 백성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봉독해 드린 본문의 3절에서 “너희 중에서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스러운 것은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음행이나 탐욕스러운 것들은 그 순간에는 달콤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 아무런 힘이 없고, 낙이 없을 때에, 인간의 세상사가 일장춘몽(一場春夢) 같이 헛됨을 깨닫고 나면, 허무한 짓이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정체를 세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동물적 본능으로 사는 인간입니다. 가장 최하위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이성적 인간입니다. 이성에 의하여 어느 정도의 합리성과 윤리를 갖춘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성과 합리, 윤리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사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성적 인간만으로는 너무도 많은 제한과 제약이 뒤따릅니다. 인간의 이성이 이루어 놓은 문명의 힘, 구체적으로 과학의 힘, 물질의 힘이 인간의 속 깊은 심사의 괴로움과 고독과 공허함을 결단코 해결하지 못합니다. 셋째, 신학적 인간입니다. 신학적 인간은 이성적 인간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 할 수 있는 영성에 지배를 받는 가장 고차원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와 비극과 불행을 극복하는 길이 바로 신학적 인간의 삶,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영성에 지배받고 이끌리는 삶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분명한 사실을 바탕으로 저자는 본문의 3절에 “너희 중에서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스러운 것은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본문의 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말들이란 천한 말, 분별 없는 말, 외설적인 상스러운 말 등을 가리킵니다.
결국 분문의 3절로 4절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복된 말, 아름다운 말을 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반복되는 똑같은 생각이 말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의 입으로 반복적으로 내뱉는 말이 습관과 행실 등의 삶으로 이어짐니다. 결국 말대로 우리의 인생이 되어짐니다. 즉 말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말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생을 삽니다. 말을 복되게 하는 사람은 복된 삶을 삽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입술에 어떤 말을 담고 사느냐에 깊이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말을 하면서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원리를 잘 알고 있었던 저자는 다시금 본문의 4절 말미에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현대인들의 비극과 불행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과 삶 속에 감사를 잊었다는 데 있습니다. 웬만한 것 아니고서는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현대인들은 수 많은 감사거리에 전혀 무감각 합니다. 감사는커녕 늘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아갑니다.
교회에서 왜 어머니학교나 아버지학교를 하는 것입니까? 부부가 오랫 동안 살면서 서로의 존재에 대한 존귀성을 상실하고, 인격도 예의도 없이 피차간 무례히 대하며 깨어진 관계,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내 아내나 내 남편이나 내 자녀가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지를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수 많은 모순과 문제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성격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주고, 사랑해 줄 사람은 하나님과 가족 밖에 없습니다. 가족은 내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합니다. 내가 울때, 함께 울어줍니다. 그러한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가족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최고의 복입니다. 우리 교회 신앙공동체가 바로 그와 같은 가족공동체를 이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의 의미가 어디에 있습니까? 가족이든 성도든, 이웃이든 누군가 내 곁에 있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존재가 의미 있는 것입니다. 즉 너가 있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가 있기에 나라고 하는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많은 지식과 능력과 경험과 돈을 갖고 있고, 값비싼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궁궐같은 집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너와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가 없다고 한다면 그 갖고 있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너라고 하는 존재와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를 떠나서는 나라고 하는 생명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깨닫고 보면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나의 옆에 너라고 하는 누군가 있고,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감사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시간 말씀을 받으시면서 옆에 있는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 또 성도들의 손을 잡으시고, “나와 함께 있으니 너무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 나누십시오.
우리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얼마만큼 감사하는 사람이냐, 곧 감사의 정도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 가운데 화목제라는 제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초막절은 일주일 내내 초막에서 생활하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사람이 살기 힘든 광야에서 지낸 모든 날들을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 초막절을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가을의 추수를 감사하며 해를 끝마치는 추수감사제이자 신년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무교절, 유월절은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면서 애굽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오순절, 맥추절은 보리와 밀이라고 하는 곡식을 거두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모든 절기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봉독해 드린 본문의 1절로 2절에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를 무엇이라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단 하나뿐인 독생자를 희생제물 삼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삼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피로써 죽을 죄에서 건짐 받았습니다.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늘 곧 천국의 시민권자로 신분이 변경되었습니다. 영원한 세계, 하늘을 소망삼는 고차원의 인생, 최고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감사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 내려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대로 암의 원인이 크게 음식물과 관계 있고, 환경과 관계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것과도 관계 있습니다. 그 중에 정신적인 것이 70%를 차지합니다. 환경이나 음식물에 의해서 주어지는 발병보다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느냐가 이렇게 질병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불만을 토하고, 근심하며, 스트레스가 쌓일 때에 나쁜 호르몬이 만들어짐니다. 병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노화도 빨리 진행되어 빨리 늙습니다. 반면에 기뻐하고, 희망을 가지고, 사랑할 때, 엔돌핀의 분비가 촉진되어 몸을 건강하게 하고, 병을 이기게 하며, 더 오래 살도록 만들어 줍니다. 엔돌핀의 효과는 얼마나 큰지, 아편, 마약의 열 배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그처럼 엄청난 유익이 있어짐니다. 그러나 엔돌핀보다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져다 주는 또 하나의 호르몬이 있는데, 다이돌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이돌핀은 엔돌핀의 4천 배 효과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찾아낸 것입니다. 다이돌핀은 언제, 어떤 경우에 나오느냐가 중요합니다. 바로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감사가 넘칠 때, 다이돌핀이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 말씀을 들을 때, 기도와 말씀으로 내 인격과 삶에 변화가 일어날 때에, 내 안에, 즉 우리 몸에 엔돌핀의 4천 배에 해당하는 다이돌핀보다 더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생겨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므로 우리는 저주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가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므로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가 낮아짐으로 우리가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부끄러움을 당하므로 우리가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하나님께, 우리의 예수님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에 사주팔자(四柱八字)를 최고로 잘 보는 분이 있답니다. 대체적으로 잘 맞는 가운데, 항상 안 맞는 경우가 있답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교인들은 안 맞는답니다. 사주팔자를 최고로 잘보는 이 분이 교인들을 보면 저 사람은 분명히 망할 사람인데도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분명히 죽을 사람인데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분명히 병들 사람인데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결단코 재앙과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확정된 사주팔자, 정해진 운명을 뛰어넘어 전혀 새롭고 놀라운 기적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977년부터 5년간 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냈고, 2002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지미 카터 전대통령은 세 가지 감사를 했습니다. 첫째로 제일 큰 감사는 예수 믿는 것, 두 번째, 하나님의 교회에서 집사로 사는 것, 세 번째, 목수로 좋은 일 하면서 남을 위해서 집을 지어주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대통령 된 것이나 노벨상 받은 것,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대통령을 하신 분들이 수천 명이겠지만, 가장 큰 복은 예수님 잘 믿는 믿음의 대통령, 성령의 대통령, 기도의 대통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대통령이 되는데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이작 윌튼은 “하나님의 주소는 두 곳에 있다. 한 곳은 하늘나라이고, 또 한 곳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어린아이에게 감사를 가르치기 전에는 무엇도 가르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감사가 가득할 때 그 다음에 지식도 약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지, 불만하고 불평하는 아이에게 지식을 가르쳐 보십시오. 모든 지식이 그 아이를 망그러뜨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감사의 씨앗을 파종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골로새서 2장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대부분의 것들은 적당해야 좋지만 감사는 넘칠수록 좋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무수한 복을 안겨다 주는 복의 씨앗입니다. 감사가 넘칠 때 잘되고, 행복 가득한
삶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를 이루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복의 씨앗인 감사가 넘쳐 감사의 열매가 충만한 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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