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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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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
새생활, 거룩한 성도의 경쟁력(3) 경제 경쟁력
엡4:28
오늘은 새 생활, 거룩한 성도의 경쟁력 세 번째로 “경제 경쟁력”이라는 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설교의 제목으로는 조금 부적절하고, 너무 거창한 것같이 보이지만 물질에 대한 포괄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렇게 붙여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새사람이 되었으면 경제면에서도 믿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경쟁력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면에서도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은 때와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경제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경제생활에서 어떤 면에 불신자들과의 삶 속에서 경쟁력 있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까?
오늘 주어진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 4:28)”
첫째는 돈을 버는데 도덕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먼저 도둑질하고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정적인 방법,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취득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경제 경쟁력이 있으려면 먼저 돈을 버는 방법이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유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부자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성공신학을 말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신주의적이고 기복적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 청빈하게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재물관이냐? 청부로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재물관이냐를 놓고 논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청부론은 물질을 벌고 쓰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얼마든지 깨끗한 부자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가난을 칭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무조건 칭찬 받을 일이 아니요 가난한 자가 부자보다 깨끗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청빈론에서는 가난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가난은 기본적 생활을 못할 정도의 가난이 아닌 생필품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물질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깨끗이 재물을 모아도 그것을 자신의 최소 수입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의견이 상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강조점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부자를 결코 정죄하지 않습니다. 돈 자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돈은 통화의 수단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는 것이지 돈 자체를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대신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의 제자였지만 부자였습니다(마27:15). 천지를 창조할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시면서 에덴의 풍요를 인간에게 누리도록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신16:1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다"(창13: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은 거부(巨富)였으며, 솔로몬은 당대 왕들 가운데 필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부와 영예를 누렸습니다(왕상3:13).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잠 10:22)”라고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신8:18)”라고 말씀합니다.
경제행위는 단순하고 쉬운 말로 표현하면 “버는 것” “관리하는 것” “쓰는 것”입니다. 조금 고상한 말로 하면 수입경쟁력, 관리 경쟁력, 지출 경쟁력입니다. 재테크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믿는 사람이 버는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수입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부자가 되려면 잘 벌어야 합니다. 벌기는 벌되 정당하게 벌어야 합니다. 학생들처럼 벌지 않고 쓰려고만 하면 결코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기 위해 벌려고 할 때 잘못된 방법으로 벌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늘 성경에 나오는 도둑질입니다. 축적이야 말로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적하려고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도적질해서는 행복한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도둑질로 돈을 축적할 수 있다해도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 도적질은 믿지 않는 사회의 경제생활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믿는 사람도 세상에 살기 때문에 감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고후5:17) 자동적으로 모든 죄로부터 면역되는 것입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유혹이 끊임없이 있습니다.
도적질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겠습니까?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 것에 손을 대는 행동입니다. 도적질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라헬이 부친의 드라빔을 도적질하였습니다(창31:19-30). 아간이 노략물의일부를 도적질하였습니다(수7:21)
도적질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자기의 목적과 자기의 만족을 위하여 활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을 훔칠 수도 있고, 시간을 훔칠 수도 있고, 생각, 아이디어, 감정을 훔칠 수도 있습니다. 명예, 지적 소유권을 훔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 속한 것, 국가에 속한 것, 교회에 속한 것, 직장에 속한 것을 내 것처럼 마음대로 활용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교회 헌금으로 저의 집 컴퓨터를 사고, 아내 차를 사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누가 그런 교회에 가려고 하겠습니까?
응당 가져야 할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것도 도적질입니다. 국가에 내야할 세금을 내지 않는 것, 일하는 사람에게 노임을 주지 않은 것,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는 것 등은 도적질에 속합니다. 이러한 도적질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탐욕에서 오는 것입니다. 끝없이 가지고 싶은 욕망, 노력하지 않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 움켜 쥐고 싶은 욕망에서 오는 것입니다.
기업도 신뢰를 잃으면 경쟁력이 없습니다. "위대한 기업의 조건"을 쓴 라인하르트 K. 슈프렝어는 "기업의 조직과 조직구성원에 있어 신뢰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며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요소이다. 따라서 21세기 기업의 생존과 번영은 신뢰에 달려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뢰가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유연한 조직을 만들며, 변화에 대한 저항을 없애고, 고객을 끌어들이며, 시장 대응력. 창의력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협력을 이끌어 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인 로버트 레버링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종업원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선정된 100대 기업 직원들 중 3분의 2가 자신이 근무하는 기업에 신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높은 '신뢰 지수'를 지닌 기업에 '자질이 뛰어난' 노동력이 모인다는 것입니다.「좋은(Good)」 회사와 「뛰어난(Great)」 회사의 차이점 바로 신뢰라고 합니다. 신뢰도가 높아지면 기업의 재무상황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1백대 신뢰기업이 5백대 기업의 실적보다 2배나 좋다고 합니다. 경제와 도덕은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돈을 버는데 도덕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떡볶이 체인점 '아딸' 대표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목사되려고 신학대학을 마쳤지만 아버지 목사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여 떡볶이로 년 매출 1200억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른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업하려면 약아빠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료도 아끼고 조금씩 속여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거죠. 저는 정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통닭을 튀겨 팔아도, 그 누가 기름 색깔을 보지 않아도, 내가 정한 원칙대로 정직하게 음식을 만들어 팔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업가는 지극히 도덕적이어야 하고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올봄에 처음으로 세무조사를 받았답니다. 3주를 뒤졌는데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답니다. 조사팀장이 '정말 세금을 100% 다 냈느냐'면서 놀라더랍니다. 그는 말합니다. 바닥에 떨어뜨린 떡 하나를 주워서 떡볶이를 만들다가 손님이 그걸 보면 그 가게는 망합니다. 떡 한 개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수박 장사를 했는데 다들 수박을 작게 잘라서 먹어보고 사갔습니다. 그는 그냥 팔았답니다. 대신 큰 소리로 말합니다. '맛없으면 다시 오세요. 무거운 수박 집에 두고 그냥 오세요. 하나 더 드립니다.' 그래도 기어이 수박 반통을 들고 와서 바꿔달라는 분이 있었답니다. 그러면 소리지른답니다. '그냥 오라는데 이걸 왜 들고 왔어요?' 그러면서 더 큰 걸로 한 통 줍답다. 구경하던 사람들 얼굴에 '감동'이 지나간답니다. 그는 법정 최고액까지 기부를 한다고 합니다. 교회에 절반을 헌금하고, 나머지 절반은 여기저기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내 주변 사람들로부터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들로부터는 '당신이 내 아버지여서 행복했다'는 말을, 아내에게서는 '당신이 내 남편이어서 행복했다'는 말을 듣고 싶답니다. 그리고 정말 어려울 때부터 함께 해 온 하청업체 사장님들이 10년, 20년 후에 '당신과 함께 일해서 행복했다'고 한다면 원이 없겠답니다.
2. 돈을 벌려면 선한 일에 열정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1)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일하라는 것입니다.
수고하라는 말은 피곤해지기까지 일하라는 의미입니다. 게으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잠 21:25)”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잠 6:9-11)”
게으르면 결코 경제생활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잠 12:27)”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 10:4)”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얼마나 수고합니까?(고전4:12; 살후3:8; 갈4:19)
디모데를 보십시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빌 2:22)”
에바브라 디도 역시 수고한 사람입니다.(빌2:25)
수고는 괴롭지만 그 대가가 있습니다. 낙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 3:13)”
복을 받게 됩니다.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신 12:7)”
상급을 주십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딤후 2:6)”
하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우리의 수고와 인내를 하나님께서 알아 주십니다.(계2:2; 창31:42)
2) 선한 일에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정을 가지고 부지런해도 악한 일이면 안 됩니다. 도둑놈은 열심히 하면 안 됩니다.강도는 열심히 하면 안 됩니다. 사기꾼은 열심히 하면 안 됩니다. 유용한 일, 이로운 일, 좋은 일, 정직한 일, 명예로운 일에 열심을 내어 수고해야 합니다. 선한 일에 열정을 내어 수고해야 합니다.
현대사회를 경쟁 사회라고 합니다. 쓸데 없는데 열정을 내서는 안됩니다. 돈 버는 열정을 내야 합니다. 부당한 방법이 아니라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손이 아닙니다. 내 손으로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에 수고하는 것입니다. 게으르지 않고 열정을 내는 것입니다. 돈을 터부시하지 말고 돈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래야 돈이 따라 옵니다. 그렇다고 돈을 섬기고 돈을 사랑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면 얼마나 할 일이 많이 있습니까? 지난 주도 필리핀에서 학교를 건축하는데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몇통의 메일이 왔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6000만원 빚 때문에 힘들다고 50만원만 도와 돌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돈이 없어 못합니다. 우리가 돈으로 좋은 일 할 것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러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선한 일을 하여야겠다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돈 맡은 탁월한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열정이 차이를 만듭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열정 포트폴리오"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넬슨 만델라, 지미 카터, 달라이라마를 위시한 세계적인 기업가, 정치가, 학자, 작가, 음악가, 크고 작은 기업의 CEO들, 퓰리처상이나 아카데미상 수상자들, 교사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 노벨상 수상자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성공한 전 세계 200여 명의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지속적인 성공 비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0년에 걸쳐 이들을 인터뷰한 결과 저자들은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행동과 사고방식의 패턴을 찾아냈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점을 도출해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열정'이었다고 합니다.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자신에게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구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이루는 사람들은 대부분 열정의 사람들입니다. 30년 전에 호주머니에 겨우 50달라 미만의 돈을 가지고 시카고에 발을 디뎠던 리글리(Wrigley)는 현재 매년 수천만 달라 어치의 츄잉 껌을 판매하고 있는데, 그의 개인 사무실 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액자에 걸려있다고 합니다. "위대한 일이란 열심 없이는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기업가 폴 마이어가 대학을 중퇴하고 세일즈맨이 되었는데 늘 장사에 실패하였답니다. 그래서 그는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성공했는지 한번 조사를 해 보았는데 그 결과 다음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첫째 성공하는 사람들은 모두 열심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둘째 강하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으며, 셋째 인간관계에 있어 매우 친절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열정은 세상에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대표적인 공통점입니다.
3. 돈을 사용하는데 구제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왜 열심히 선한 일에 수고하여 돈을 벌라고 말씀합니까? 그 이유도 단순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입니다. 개인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상 왕국을 건설하고 향락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게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경제 생활에 다른 점입니다. 남을 위해 돈을 번다는 것입니다. 돈 벌어 남 좋은 일 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4-25)” 신비의 진리입니다.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구제가 풍족한 삶과 윤택한 삶을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풍부한 물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주 인색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겨우 자기 자신만 먹고 사는데 급급하고 조금 나아가면 자신의 아들 딸에 국한 되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수성가하여 부자가 된 한 장로님이 계셨답니다. 아주 인색하였답니다. 폐암 진단을 받고 조금 남을 위해서도 돈을 써야하겠다고 생각하고 장님과 구두닥이 소년을 도왔답니다. 삼남매가 있었는데 장남은 개인 병원을 운영했고 차남은 대기업 차장, 장녀는 부자집으로 시집을 갔답니다. 자식들에게 재산 싸움하지 말라고 30억원쯤 하는 상가 건물은 장남에게, 15억원짜리 아파트는 차남에게, 5억원가량의 금융 자산은 부유한 시댁을 둔 외동딸에게 주라고 유언장을 적었답니다. 임종을 앞두고 3남매를 불러 재산 분배 계획을 말하고 싸우지 말라고 당부했답니다. 장래가 끝나자 동생들은 "유언장 형식이 잘못됐다"면서 법적 효력을 문제 삼았답니다. 민법에서 규정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필로 기재하고 날인'해야 효력이 있는데 아버지가 쓴 유언장에는 단지 유언 내용과 이름만 있을 뿐 날짜와 날인 등이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남과 딸은 장남을 상대로 법원에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을 내며 싸웠답니다. 자식들이 서로 원수가 된 것입니다. 이 때 욕심꾸러기 장로님은 천국문에서 심사를 받았답니다. 천사가 직업을 물었답니다. "의류 제조 회사를 경영했습니다." 천사가 물었답니다. “어째서 너는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길거리의 불쌍한 장님에게 백 원을 준 적이 있습니다."
"그 뿐인가?" "아뇨, 물론 또 있어요. 지난주에 병원에서 구두닦이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는 얼어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또 백원을 주었습니다!" 천사는 옆에 있는 기록 담당자에게 물었답니다. "기록되어 있나?" 기록 담당자는 장부를 뒤적여 그런 사실이 있었음을 확인하여 주었답니다. 천사는 질문을 계속하였답니다. "그 밖에는?" "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만..."
천사가 기록담당자에게 물었답니다. "이 사나이를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나?" 그러자 기록 담당자가 대답하였답니다. "이 백 원을 돌려주고, '지옥으로 가라!' 고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도행전 교회에 그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경제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까?(행2:44,45 ;4:32-37 11:29)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도르가를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입니까?(행9:36) 고넬료를 보십시오(행10:1-6) 얼마나 경쟁력있는 경제 생활을 합니까?
어제 신문을 보니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떼돈 버는 톱스타들, 김장훈을 베껴라”라는 기사였습니다. 정치권에서 최근 '김장훈법'이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기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노후에 생활이 어려워질 경우 국가가 생활보조금을 지급하자는 법안입니다. 교회 전도사님의 아들인 가수 김장훈은 연예인 활동 중에 모두 100억원 가까이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예인 중에는 한 해에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을 벌면서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을 안내거나 적게 내려고 했다가 적발되기도 하고 도박으로 수 십억원씩의 거액을 탕진해 돈 버리고 몸 망치는 스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 경쟁력은 얼마나 쌓아 놓았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주었느냐가 문제입니다.
구두쇠 마음을 가지지 말고 아끼지 않고 나누어 주어야합니다(신15:10; 잠3:27) 외식하지 말고 선전하지 말고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마6:1-4) 소자 하나를 예수님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마25:40)
세상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곳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성장과 분배로 마찰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성장과 분배인데, 분배의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곳곳에서 대학 등록금· 비정규직· 중소기업· 빈민· 무상급식 등 각 분야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전체 자영업자 572만 명 중 100만원도 못 버는 '허울만 사장'인 사람이 300만명이라고 합니다. 2008년에 새로 창업한 사람이 101만 명이었는데 폐업한 사람도 79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대기업이 떡볶이·치킨 등 골목 상권까지 휩쓸어가는 승자독식 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상징인 923만 가구 중산층은 점점 감소되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빈곤층은 5가구당 1가구꼴(20.9%)인 352만가구, 922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일을 해도 점점 더 가난해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OECD 회원국 평균 빈곤율(10.6%)의 두 배나 됩니다. 일해도 먹고살 수 없는 사람 382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청년들 가운데 100만명 이상이 학원을 다니며 일자리를 찾고 있거나 구직을 포기한 실업자라고 합니다. 사회역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학 교수는 그의 책 <수준측량기: 더 평등한 사회는 왜 더 건강한가>에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유아사망률도 높고, 살인율과 10대의 임신 비율이 높으며, 학업성취도는 낮고, 정신건강이 좋지 못하고, 장수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빈곤을 탈출하고 부를 축적했지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어 신음 소리가 통곡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나눔이 무엇보다 절실할 때입니다. 함께 사는 상생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입니다. 나눔이 성공이 되고 나눔이 경쟁이 되는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입니다. 나눔은 손해가 아닙니다. 미국 자선가인 찰스 피니는 "돈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한 젊은이가 추운 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마침 한 소녀가 구걸을 하는데 남루한 행색에 한 끼도 못 먹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걸 보고만 계십니까? 대책을 세워 주세요." 잠시 후 응답이 들렸습니다. "나는 대책을 세웠노라. 내가 너를 만들었고 또 너를 그곳에 보내지 않았느냐?" 나눔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6:18)"
그러면 망하는 것 아닙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잠 11:24)”라고 말씀합니다. 오히려 더 부해진다는 것입니다. 경제 경쟁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범사에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잠 22:9)”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단4:27) 경제 경쟁력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외우시기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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