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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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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3.01.27설교 열린교회 |
우리를 사람으로 지으심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I. 본문해설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첫 번째로 투옥되었던 61년과 63년 사이에 쓰여졌다. 그는 감옥에 있던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옥중서신이라 불리는 네 권의 서신서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하였고, 에베소서는 골로새서와 함께 그리스도와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기록하고 있다.
II. 세계를 창조하심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이 모든 피조세계는 하나님께서 뭔가 불편과 부족함을 느껴 그것을 채우기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 천재성을 가진 위대한 예술가들이 각기 그림과 음악, 조각 등으로 자신들의 재능을 표출하는 것은 그들 안에 예술혼이 충만해 넘쳐난 결과이듯, 이 창조세계는 하나님 안의 완전함과 충만함이 드러난 결과이다.
III. 인간을 창조하심
A. 만물의 존재 목적을 통합함
이 세상에는 인간보다 크고 센 힘을 가진 동물들이 많지만 인간은 매우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다른 피조물에 비해 특별하고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목적은 위로는 하나님을 알고, 옆으로는 인간을, 아래로는 이 모든 창조세계를 알아 만물의 존재 목적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건물을 짓는 학문을 건축학이라 하고, 영어로는 Architecture이다. 두 개의 희랍어 결합으로 만들어진 이 단어는, 원리, 근본, 원천의 뜻을 가진 아르케와 기술, 기예라는 말의 테크네가 합쳐진 것이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치는데, 각 과정의 전문가들은 그 분야만의 테크네를 가지고 있다. 땅을 파는 테크네, 기초를 놓는 테크네, 기둥과 벽을 세우는 골조를 만드는 테크네, 그 외에도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그 분야의 테크네를 갖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각기 그 분야에서는 뛰어난 테크네를 가졌지만, 다른 사람의 테크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때문에 건물이 완성을 위해서는 건물주의 제작의도에 맞게 여러 개의 테크네를 통합해 하나의 건물을 완성하는 제 삼의 테크네를 필요로 하는데, 이것이 곧 아르케 테크네, Architecture이다.
기독교 신앙은 인생이라는 집을 짓는데 필요한 건축학을 가르쳐 주는 것이 목표이다. 학생으로 사업가로 군인으로, 그 역할에 맞게 각기 공부하는 테크네, 돈 버는 테크네, 전투하는 테크네를 가지고 있을 때, 이 모든 것을 사용해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인간으로 지으신 그 의도대로 살 수 있을까를 가르쳐준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자신도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를 위한 건축자이시고, 인간은 그 하나님의 창조 의도를 알고 창조된 모든 것들을 사용해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건축자이다.
B.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
창 1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다. 형상과 모양이라는 두 단어는 의미 차이 없는 반복이다. 우리의 형상과 모양은 두 가지를 내포하는데, 하나는 자연세계 속에서 만물의 법칙들을 깨달을 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과 또 하나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었던 원의의 자질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원의의 자질은 산산이 부서져 거의 그 흔적이 없지만 자연적인 능력은 그대로 남아, 타락했음에도 학문과 물질문명에 위대한 진보를 이뤄냈다. 에베소서 4장 24절은 이 원의의 자질을 의로움과 지식, 거룩함, 이 세 가지로 제시한다. 타락과 함께 파괴됐던 이 자질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는 순간 우리 안에 회복시켜 주신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으로 회복된 형태이기 때문에 일생을 살면서 성화의 길을 걸어 의로움과 지식, 거룩함에 있어 온전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IV. 피할 수 없는 근원적 질문
인생의 성장단계마다 욕망하고 추구하는 것들이 변한다. 갓난아이 때는 엄마만으로 충분했지만, 유아기를 지나 자라면서 장난감에 집중하며 놀이에 빠지게 되고,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닐 때쯤에는 친구 사귀는 것이 가장 큰 기쁨으로 느껴진다. 대학도 들어가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젊음을 발산하고 즐거워하며 쾌락에 빠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생활한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그 이후로 인생의 황혼기를 맞기까지 인생의 각 구간마다 그것이 전부인 듯 느껴지는 인생의 목표는 계속 변하게 된다. 그리고는 70이 넘어 고독해졌을 때,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뭘 위해 살아왔나 회의에 빠진다. 인생의 구간마다 붙들었던 목표들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가 아니라 어느 시기 동안에만 유효했던 착시현상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아주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 전체를 걸 정도로 항구적인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고 우리 인생의 사용 설명서를 확실히 파악하지 않으면 바람처럼 사라져 가는 것들이 영원한 것인 것처럼 붙잡으려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고, 일생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IV. 적용과 결론
기독교 신앙은 일체의 진지함과 숙고를 요구한다. 여러분들은 왜 사람으로 태어났는가? 하나님은 무엇에 쓰시려고 여러분들을 사람으로 만드셨을까? 우리를 사람으로 지으신 것은 선한 일을 위해 힘쓰기 위함이다. 이 선한 일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과 우리를 지으신 그 의도를 충분히 구현하면서 사는 삶이다. 인생의 모든 불만족과 비참함의 궁극적인 원인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깨닫고 회심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복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해 승리자가 되고 그래서 얻는 모든 이 세상의 자원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목적대로 돌아가게 이바지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 안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잠시 이 세상에 살다가 늙고 죽어가는, 소멸하는 사람들이지만 순간을 살아도 영원에 잇대어 살 수 있는 지복의 사람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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