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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4: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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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http://je333.com |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소아마비를 앓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 대통령, 경제 대공황을 극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장애인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악성 베토벤은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작곡가 중의 작곡가였습니다. 아무도 베토벤을 청각장애인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할 뿐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도 역시 그를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무학자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노예를 해방한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할 뿐입니다. 존 버니언도 감옥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로 기억할 뿐입니다. 아인슈타인과 에디슨을 지진아나 무학자로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최고의 과학자와 발명가로 기억합니다.
모두 역경을 극복한 위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뒤집기의 명수’들입니다. 그들은 악한 환경을 이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국에 ‘민들레는 화단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민들레만큼 어느 환경에서든지 잘 적응하고 꽃을 피우는 식물도 드물다는 것을 뜻합니다. 민들레는 화단 즉, 잘 조성된 환경만을 고집하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위치에서 프로 정신을 갖고 사명을 다하는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은 자신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민들레와 같은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이런 고백이 가능한 것은 능력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빌4:13) 환경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흑인 최초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미국 동부 사립명문교) 총장이 된 시몬스 박사. 그는 1995년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톱클래스 대학인 스미스대 총장이 됐습니다. 언론은 ‘고등교육계의 ‘재키 로빈슨’(미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이 탄생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2001년 7월 아이비리그 대학인 브라운대의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의 삶은 책 한 권, 책상 하나 없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최고 명문대의 총장까지 됐습니다. 1945년 인종차별이 심한 텍사스 동부 시골에서 소작농 아버지와 하녀였던 어머니의 1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가난과 차별을 딛고 하버드대에서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가 환경만을 탓하고 있었다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환경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낸 많은 인물이 있습니다. 특히 요셉은 형들의 배반과 종으로서의 피곤한 삶, 그리고 억울한 누명 등 사람이라면 견디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낸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요셉의 사명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요셉은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8)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일에 프로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환경을 탓하기 전에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면 어떠한 환경도 이겨낼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환경에 태어나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건강하게, 편안하게, 팔자좋게 살다가 가는 것이 아닌줄 압니다. 시련 많고 장애물이 많은 험난한 환경을 잘 대처하고 극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사도바울의 생애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복음선교를 위해서 숱한 고생을 하신 분입니다. 고후 11:23에서 "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감당하기 어려운 온갖 고초를 모두 겪으면서 산 사도 바울이였습니다. 이와 같은 역경에서 온갖 고난을 경험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10~13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주의 도우시는 은혜 안에서 어떤 환경, 어떤 경우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사도바울의 존경스러운 고백입니다. 우리도 읽고 기억하고 본 받아야할 교훈입니다.
첫째, 신앙인은 역경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죄 많은 세상을 살다보면 질병도 있고, 실패도 있고 잘못되는 경우가 왕왕있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당면한 시련과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신앙인들은 역경과 고난을 잘 대처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바이킹은 현재의 노르웨이 입니다. 바이킹은 10세기에 독일과 영국, 프랑스, 스페인 연안을 휩쓸고 북미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들은 추운 기후와 거칠고 좁은 땅과 인구과잉이라는 악조건에 굴하지 아니하고 배를 만들어 세계 그 어디에도 진출했습니다. 개척을 하고 무역을 하고 삶의 지경을 넓혔습니다.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한 족속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아프리카 최남단을 "폭풍의 기슭"이라고 불렀습니다.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물결이 흉흉한 바다였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포르투칼의 탐험가 "바스코가마"가 이곳에 도전하여 성공적으로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희망봉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바스코가마"가 이곳을 지나고 나니까 세계에서 가장 잔잔한 인도양이 있고 아름다운 해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항해하는 배들이 이곳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에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든 때도 있고 어려움도 당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경우도 있고 때로는 사면초가와 백척대간에 선 것 같은 답답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시며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약5:13에서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7절에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도 형들에게 버림당하고, 애굽까지 팔려간 요셉도 출애굽한 모세도 재난당해서 적신이 된 욥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과 역경에서 믿음으로 견디고 극복하고 이겨낸 분들입니다.
성도여러분, 어떤 재난과 역경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말씀의 지혜와 믿음의 힘으로 잘 극복하고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둘째, 신앙인은 순탄할 때에도 잘 처신해야 합니다. 사람은 잘 안될 때에 처신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잘 될 때에 처신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타락한 곳은 소돔성이나 아골골짜기가 아니었습니다. 지상에서 유일한 낙원,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고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고해와 같은 세상에서 온갖 고초를 감수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왕상 11장에 솔로몬이 난국에서는 지혜롭고 능력있는 왕으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승리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말년에 타락하고 큰 과오를 범했습니다. 후비700, 궁녀300을 거느리고 살면서 각종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사론의 여신 아스다롯, 암몬사람의 신 밀곰, 모압인의 신 그모스를 섬기게 했습니다. 실로 주께서 책망하셨습니다. 나라가 양분되었습니다. 아들 로호보암왕은 유다지파와 벤냐민 지파만을 거느린 적은 유다 나라를 남쪽에 세웠습니다. 신하 여로보암왕은 10지파를 거느리고 큰 나라 이스라엘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돈 없고, 가난하고 어려울 때 잘못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 많고 잘되고 편안할 때에 범죄하고 타락하고 잘못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고생을 모르고 편안하고 자유롭고 배부른 젊은 이들이 복에 겨워서 탈선하고 잘못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국민 소득 1000불 3000불 5000불 할 때까지 모두 근면 성실하게 살면서 비행이나 범죄율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살기가 좋아졌습니까. 자가용 타고 아파트에 살며, 컴퓨터, 휴대폰, 카드사용하며 얼마나 편리해 졌습니까. 그러나 정신적 고통은 가중되고 윤리나 도덕적인 타락, 범죄행위는 늘어만 갑니다. 인간은 편안하고 잘 될때에 처신을 잘하고 성실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살전 5장3절에서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고 하고,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가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 지라" 고 했습니다. 편안하고 범사가 잘 될 때에 겸손하고 처신 잘하고, 대처 잘 하시기 바랍니다.
중국에 문화혁명이 일어났을 때 말을 잘 그리는 화가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가 문화혁명을 만나 그림은 못 그리고 대신 말을 좋아했다고 해서 마구간을 치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불평과 원망이 가득 차서 화를 내면서 일을 하다가 차츰 말들과 정이 들어 기쁨으로 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이에 어언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문화혁명도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이상한 것은 7년 동안 붓을 놓았는데도 그의 그림은 여전히 힘이 있고 특별히 말의 모습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생동감이 넘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었는가 생각해 보니 그가 문화혁명 동안에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어도 말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말들의 생리를 피부로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이론적으로만 알고 말을 그렸는데, 이제는 체험하고 말을 그리니 더 뛰어난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환경들은 결코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그 환경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또 그 분은 뜻을 따라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환경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려운 환경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낙망하고 잘못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도 환경을 극복하는 훌륭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항상 주의 말씀과 지혜를 사랑하고 가까이 하므로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살 수 있도록 악한 환경에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어떤 어려운 환경도 주님을 의지하고 극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옵소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고통의 환경에서(룻 1:19-22)
인생길에서 고통이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마는, 대부분의 경우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잘못 생각하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가 쉽습니다.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사람들은 좌절하거나, 절망하기 쉽습니다. 머리로 아는 고통과 생활에서 느끼는 고통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을 때는 없는 사람들의 사정을 잘 모릅니다. 또 있을 때는 고통이 어쩌구, 인생의 고난이 어쩌구 말들은 잘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이 그런 경우를 당하면 모두 당황해집니다. 저는 요즘 그런 형편에 처한 교우들의 가정을 보면서 아침마다 대도의 기도를 드립니다. 저들이 낙심하지 않고, 신앙으로 재기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의 환경에서 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들인다'고 한 성경의 말씀처럼,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흘린 눈물은 신앙으로 극복할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들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비로운 힘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필요하고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신앙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재물이 떨어지면 그런 것이 정작 고통스러운 환경으로 주어질 때 좌절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믿다가도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전 30대 주부가 빚을 지고 가출한 남편 없는 가정을 꾸려나가려다 아무리 애를 써도 빚을 갚을 길이 없고 삼남매를 키울 힘이 없어, "나 안 죽을래, 나 죽기 싫어" 하는 어린 것들을 밀쳐 떨어뜨린 그 심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뉴스를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지난날의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 여자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그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신앙적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아닙니다. 과학적 지식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얻어진 신비로운 위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즉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은혜의 힘' 입니다. 고통의 환경에서 문제를 해결한 대표적인 여인이 있습니다. <나오미>는 그 이름의 뜻처럼 '불행한 여인' 이었습니다. <나오미>처럼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약속의 땅인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경제적 문제로 남편을 따라 '모압'으로 이민 갔으나 거기서 남편과 두 아들을 먼저 앞세운 고통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남편 죽고, 아들 둘 장가들였는데, 손자들도 없이 다 죽었으니 이렇게 복 없는 여인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도 이런 여인이라면 박복한 여인, 불행한 여인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절망스러운 환경에서 신앙으로 극복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오미>의 신앙을 우리가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는 어떻게 고통스러운 환경을 극복하였을까?
1) 그는 고통의 원인을 신앙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오늘 나의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하였는지를 신앙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의 환경에서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비관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나오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오미의 자기 반성을 보게 됩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라는 말을 보면, 그때야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남편 있겠다, 두 아들이 있겠다, 무슨 걱정이 있었겠습니까? 사실 모압 땅으로 간 것은 흉년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풍족한 삶을 꿈꾸면서, 하나님 없는 이방 나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 중에는 신앙적 문제로 가는 것보다는 더 풍요로운 꿈을 그리면서 즉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 보려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정작 꿈도 이루지 못하고 남편 죽고 두 아들 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나오미>의 형편이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빨리 깨달아야 할 일이 이것입니다. 고통이 왔을 때 말씀을 떠나 내 생각대로 무엇인가 해보려다가 당한 고통이 아닌가 하는 것을 빨리 발견해 내야 합니다. <요나>도 풍랑 중에 이것을 얼른 깨달았습니다. 이 풍랑은 나로 인한 풍랑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바다에 던짐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또 다른 길을 예비해 두었습니다. 큰 물고기를 예비해 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었습니다.
2) 그는 처음 자리로 되돌아왔습니다. 깨달았으면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습니다.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하는 데는 회개와 함께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회개>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제 자리로 되돌아가는 행위인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 인간적인 계획과 이성(理性)적인 판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자리로 되돌아왔습니다. 경제적 문제로 떠났던 자리에서 다시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왔습니다. 신앙인이 신앙을 떠났던 자리에서 되돌아오는 행위가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긍휼하신 하나님이기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합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인간의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당신의 아들을 죽는데 까지 내어 준 사랑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바로 이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회개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3) 돌아온 그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복을 내렸습니다.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온 <나오미>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렸습니다. 남편 없이 따라온 며느리 룻을 통하여 인생의 기쁨과 풍요로움의 만족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보아스>를 만나게 하였고, <보아스>에게 은혜를 주어 <룻>을 아내로 맞아들이게 하였습니다.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세상으로 나가지 말고, 예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보십시오.
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습니다. 죽음은 절망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그 절망스러움을 갖고 나아왔습니다.
②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그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예수님께 나아와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병이 나을 줄 믿었습니다. 그 절망스러운 병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③ 중풍 병으로 누워있는 친구를 침상채 메고 와서 지붕을 뚫고라도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이 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고통의 자리에서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도 인생 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직도 신앙의 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없이 나간 길에서는 풍랑이요, 좌절이요, 절망스러움이지만, 다시 돌아오면 생각지 못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불행이 없습니다. 신앙의 사람에게는 비극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삶은 예술입니다. 삶의 예술가이고 삶의 창조자입니다. 어디에서나 그는 환경의 노예가 아닙니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6)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도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고전14:15)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3:17) 고통스러운 환경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이 되십시다.
2. 묵상 및 토의
0 내가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을 환경탓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0 나는 지금 세상에 취해 있지는 않은가? 죄악이 만연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고 있는가?
0 나는 세상에 대해 비겁하지 않은가? 나는 매일 매일 새로워지고 있는가?
0 나는 이 죄악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이 있는가?
0 나는 세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신차리고 있는가?
0 나는 세상을 되돌아보는 일은 없는가?
0 나는 이 땅의 영화만을 사모하지는 않는가?
0 나는 세상을 보지 않고 주를 보며 살아가는가?
0 나는 나의 죄를 인정하고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는가?
0 나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기 위해 나에게서 변화되고 새로워져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0 주님의 푯대를 향해 신앙을 지키며 나아갑니까? 어떠한 환경도 기쁨과 감사로 맞이합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열정과 끈기
아인슈타인은 일곱살 때 겨우 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늦둥이였다. 베토벤은 음악 교사로부터 ‘음악에 전혀 소질 없는 아이’로 평가 받았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담임은 그를 ‘교사생활 12년에 이처럼 멍청한 아이는 처음’이라고 평했다. 월트 디즈니는 한때 신문기자로 재직했는데 편집국장은 그를 향해 ‘자네는 아이디어도, 글재주도 없으니 스스로 사표를 쓰라’고 종용했다.
영국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윈스턴 처칠은 6학년을 두번 다닌 학습지진아였다. 세계적인 기업가 울워드는 점원노릇을 하던 20대 초반에 가게 주인으로부터 ‘사업에 소질 없는 무능력자’라는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최악의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열정’과 ‘끈기’다.
주위의 혹평을 오히려 자극제 삼아 매진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어떤 난관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 예화(2): 꿈이 있는 자에게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꿈은 목사와 박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하고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했다. 사람들은 소년이 자신의 꿈을 말할 때마다 비웃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배구실력을 인정받아 운동선수로 중학교에 편입했다. 그리곤 학업에 정진해 한양대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시험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했지만, 그는 꿈을 꾸었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일곱 번째에 합격해 유학길에 올랐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에겐 작은 성경과 7달러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는 뜨거운 신앙과 열정으로 최선을 다했고 후에 미국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낯선 환경을 극복하고 하루 20시간씩 공부한 그는 미국에서 목사와 한국 최초의 체육학박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지금 영동그리스도의교회 담임이며 한양대 교수인 <이강평>씨가 바로 그다. 역경은 꿈과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 투지를 자극하는 윤활유가 되지만, 나약한 사람에게만 잔인하게 꿈을 불태워 없애 버리는 휴발유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밥보다 더한 것,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예부터 사람은 쌀독 속의 쌀이 떨어져서 죽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의 꿈(소망)이 떨어져서 죽는다고 했다. 어떤 건물을 짓든지 조감도가 필요하듯,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삶의 조감도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으로 기다릴지니라” (롬8:24-25)
* 예화(3): 고통중에서도
열일곱 살 때 수영을 하다가 목이 부러진 조니라는 소녀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된 적이 있습니다. 소녀 조니는 하루아침에 전신마비 장애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불타오르는 재활의지와 주위의 도움을 통해 입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글을 쓰고 또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하곤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쓴 『조니의 신앙』이란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은 나를 완전히 절망에서 끌어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휠체어의 인생으로부터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말씀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마비로 인한 내 모든 시련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제게 임한 것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고통 뒤에 이유를 두셨고, 그것을 알고 나니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의 고통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이유를 가지고 계십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기도하면서 기쁨을 찾아내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69:21)
* 예화(4): 하나님의 곳간 열쇠
증권회사에 잘 다니던 김모 집사님이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었다. ‘돈버는 길’이 보여 퇴직을 자청하고 독립했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사업은 잘 되었고 골프와 여행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언제든지 환경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장 돈이 벌리니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돈버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 주식거래제도가 바뀌면서 하루 아침에 김집사님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당장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배달 중국집을 열었지만 그것도 실패로 돌아갔고 다시 창업할 용기도 없었다. 선물투자를 시작했다가 많은 손해를 보고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말씀이 들리지 않았고 양육이 안 되어서 무모한 투자를 일삼았다’고 했다. 가끔 부인을 따라 큐티 모임에 얼굴을 보이긴 했지만 집사님의 목적은 사업이 잘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막히고나니 돈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걸 후회하며 교회에 오게 되었다. 교회에 온 후에도 집사님은 하는 일이 안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한다. 일도 안 되는데 교회에서 양육을 받으라고 하니 공동체가 귀찮고 싫었다. 그럼에도 그나마 주일을 지킨 것이 은혜여서 진짜 조여드는 환경이 오게 되니 설교 말씀이 이슬비의 은혜로 조금씩 뚫고 들어갔다.
깐깐해 보이던 집사님의 얼굴이 누구보다 편안한 얼굴로 바뀌었다. 이제는 수요일, 주일이면 누구보다 일찍 와서 예배 세팅을 하고, 그토록 거부했던 양육 훈련을 받으며 목자로서 섬기는 자리에까지 하나님께서 세워주셨다. 하나님의 곳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나님의 곳간 열쇠는 곧 ‘힘든 사건’이다. 그가 힘든 사건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곳간 안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이 집사님처럼 일이 안 되는 사건을 통해 말씀을 깨닫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 말씀을 전하고 나눠줄 수 있다. 때마다 하나님의 곳간에서 새 것과 옛 것, 신구약 말씀을 마음대로 내어오는 사람이 된다(마13:52). 성경을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얻은 내 재산으로 가능하다.
교만한 사람에게 겸손을,슬픈 사람에게 위로를,어리석은 사람에게 지혜를 내어주는 부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재산 목록이다. 어떤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재산목록(성경)을 꼼꼼히 읽고 묵상해야 필요할 때 그 재산을 꺼내어 쓸 수 있다. 힘든 사건으로 하나님의 곳간을 열며 말씀의 재산을 보고, 내어 쓰고 내어주는 영적 부자가 되자.
* 예화(5): 요동치 않는 믿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자들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바다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에 따라서 그 위험은 작아질 수도 있고, 이겨나갈 수도 있습니다. 조그만 배를 타면, 너무 많이 흔들립니다. 멀미가 나고 어지러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항공모함과 같이 큰 배를 타면, 바다가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생각할 때, 배를 믿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배가 크면 클수록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다라는 환경이 두렵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는 길을 유유히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가 작으면, 바다라는 환경의 지배를 확실히 받습니다. 또 즉각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느낍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도 가기 힘듭니다. 우리의 믿음이 크면 클수록 바다와 같이 험난한 환경이 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4, 찬송: (342장) 어려운 일 당할 때
1.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2. 성령께서 내맘에 밝히 비춰주시네 인도하심 따라서 주만 의지합니다
3. 밝을 때에 노래며 어둘 때에 기도와 위태할 때 도움을 주께 간구합니다
4. 생명 있을 동안에 예수 의지합니다 천국 올라가도록 의지할 것 뿐일세
[후렴]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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