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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3: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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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2년 6월 23일 주일설교 |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제목은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라』라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항상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우울하던 어떤 자매님이 어느날 제게 왔는데 굉장히 명랑하고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가 하루는 너무나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워 교회에 기도하러 가는데 대낮에 자기 뒤에서 여러 가지 요란한 소리가 댕그렝 댕그렝 슥슥 슥슥하고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돌아 보니까 꿈도 아닌데 대낮에 환상가운데 온갖 깡통 쓰레기 잡동사니가 줄에 매달려 끌려오는데 그 줄이 자기 목에 메어 있더랍니다. 돌아봐도 또 있고 돌아봐도 또 있고 눈을 딱 감아봐도 또 있고 또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겁게 그것들을 끌고 교회와서 앉았는데 자기 뒤에 그 쓰레기 잡동사니가 산더미처럼 가득히 쌓여서 뒤에 있더랍니다. 그때 주님께서 “너는 왜 그많은 쓰레기 잡동사니를 목에 걸고 다니냐? 진정으로 회개하고 다 청산하라” 그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통곡을 하며 불신앙을 회개하고 모든 죄를 고백하니까 어디에서 부르는지 회오리바람이 확 불어오더니만 그 쓰레기 더미 그 깡통 이 모든 것이 다 날라가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게 되더랍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심신이 날라갈 듯이 깨끗하고 즐겁고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 다 사라지고 그날이후 기쁘고 평안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수있게 되었다는 간증을 하는 것을 제가 들어 보았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이 자매님의 간증처럼 우리는 지나간 과거의 삶의 쓰레기, 잡동사니를 마음에 가득히 쌓아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서 마음의 모든 번뇌와 고통이 안 따를 수가 없지요. 모든 과거를 다 목에 줄에 묶어 놓고 그것을 현재 끌고 다니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롭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과거의 죄와 뿌리를 철저히 회개하고 청산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죄책의 쓰레기 더미를 끌고 다니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면 다시 기억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죄를 기억하고도 늘 용서한다고 하면서 마음에 잊어버리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10장 17절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전지전능 무소부지 하신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면 하나님의 기억속에서도 이것을 지워 버린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죄책으로 말미암아 그는 사도의 자격이 없다고 마음에 결정을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완전히 버렸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가서 다시 옛 직업으로 돌아갔습니다. 낡은배를 끄집어내어 수리하고 그물에 먼지를 털고 다시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는다고 그물을 던져도 마음이 그리스도를 배반한 죄책으로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에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새벽에 안개가 뿌옇게 끼었는데 저 모래사장에서 한분이 서서 고함을 쳤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무엇이 있느냐?” “아무것도 없습니다.” “배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그때 요한이 말하기를 “주님이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너무나 반갑기도 하지만 양심이 가책이 되어 그냥 배를 타고 주님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물속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물속에서 헤엄쳐서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걸어서 나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배를 타고 나올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가슴에 죄책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구운생선 주시고 떡을 주시고 먹고 난 다음 베드로를 복구시켰습니다.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주를 사랑하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또 그 다음 “베드로야 네가 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느냐?” “주여 사랑하나이다.” “내 양을 쳐라” 세 번째 또다시 “베드로야, 네가 이 모든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너무나 베드로가 마음에 충격을 받아서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한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세 번 주님을 사랑한다고 긍정하게 하시고 그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복구시켜 주셨습니다. 죄책에 눌려서 인생을 포기하고 옛날 직장으로 돌아간 베드로를 주님께서는 그 죄책에서 용서하시고 마음을 가볍게 해서 다시 불러 일으켜 오순절 날 이후에 한번 쓸기 위해 3,000명씩 회개시키는 위대한 사도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과거의 죄와 불의를 짊어지고 죄책에 짓눌려 방황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 죄책에서 해방되길 원하기 때문에 과거에 죄와 실수를 가슴에 담고서 다니는 여러분 되지 않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과거에 미워했던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동안 그 미워하는 사람은 우리의 가슴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우리를 괴롭힙니다. 내가 미워하면 그 사람이 멀리 떠나면 좋겠는데 내 가슴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항상 독을 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나는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말씀하는 것을 텔레비젼에서 들어서 봤습니다. 그분하는 말이 자기는 미워하는 사람을 그냥은 보낼수가 없어서 기도실에 들어가서 언제나 자기 앞에 걸상 하나를 갖다 놓고 그 걸상에 미워하는 사람이 앉아 있다고 생각해서 그를 쳐다보고 온갖 욕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죽일놈, 살릴놈하고 온갖 욕을 다하고 난 다음 나중에는 “내가 자네를 용서하네” 그러고 걸상을 치워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걸상을 치워 버림과 함께 마음속에 미워하는 사람의 모습도 용서로 치워 버리고 말면 마음이 깨끗해진다고 한번 그렇게 해보라고 그렇게 교훈을 하는 것을 텔레비젼 설교에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던 마음속에 미워한다는 그 쓰레기더미를 치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는 이상 우리의 마음속에 부담은 끝이 없습니다. 용서가 없으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막힙니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기도가 막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3절로 15절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 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 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용서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이웃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나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가 막히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움이란 이 쓰레기 더미를 우리는 하루속히 용서로써 처치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마음속에 두려움을 내어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나 삶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두려워 떨고 있는 이상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한국축구가 과거에 내내 구라파에 가서 졌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은 그 마음속에 구라파 축구에 대해서 공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벌써 축구 해보기도 전에 벌벌 떨어서 백전백패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축구가 달라진 것은 거스 히딩크가 오고 난 다음에 거스 히등크가 한국축구인들의 가슴속에서 두려움을 제하여 준 것입니다. 자신을 넣어 준 것입니다. 한번 자신이 들어오니까 폴란드도 포르투갈도 이탈리아도 그 죽을 고생을 했지만은 스페인도 물리친 것입니다. 축구선수들만 고생한게 아니라 우리도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좀 편안하게 해주면 좋겠는데... 아이 이제 독일전은 좀 편안하게 해주면 좋겠어요. 또 고생할 것 생각하니까 아에 끔찍합니다. 제가 울산에 성회를 가는데 성회 첫날 6월 25일날 상암동에 축구경기가 있으니까 울산에서 무슨 주문 오느냐, 설교를 빨리 마쳐 달래요. 그래서 제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 부흥회 첫날부터 축구경기가 있으니 사람들의 마음이 전부다 축구경기장에 가 있습니다. 어떻게 축구경기장에 있는 그 마음을 주님께 돌이켜서 빨리 설교를 마칠까 지금 궁리를 하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 도움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속에 두려움의 덫에 걸려 있으면 다시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 두려움의 덫에서 빨리 우리가 해방되어 나와야 되요. 어떻게 해방되어 나옵니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의지하면 두려움을 씻어 버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91편 2절로 6절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성경구절입니다. 저의 마음이 두려움에 붙잡힐 때마다 이 성경구절을 대하면 주님이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여러분 이 말씀을 우리가 읽고 마음에 외우고 묵상하면 어떠한 두려움의 덫에서도 해방되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요, 요사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셔서 그가 나를 붙들어 주시고 지켜 주시고 덮어 주시니 두려워 할 것이 무었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루속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음속에서 여러분은 두려움의 쓰레기 더미를 청산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민족적인 열등의식, 타인과 자기를 비교해 보고 열등의식을 가지는데 이 열등의식을 빨리 청산해야지 이것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 한국은 일본에 36년 동안 일본에 식민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마음속 깊이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열등의식이 미움으로 변화되어서 사사건건이 일본을 우리가 삐뚫어진 눈으로 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우리의 열등의식에서 하루속히 해방되어서 우리 마음속에 미움을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열등의식이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오늘 미국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원조를 받고 미국사람들에게 의지하여 살았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트레이크에서 스케이트 대회때 진 것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것 잊어 버려야 돼요. 열등의식을 제켜 버리면 이러한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마음에 좌절합니다. 자기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좌절하니까 그 다음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대적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열등의식의 쓰레기 더미를 제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열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난사람, 못난사람 없습니다. 왜, 우리가 모두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떤 여선생님이 제게 인터넷 편지를 보냈습니다. 자기는 인류학교를 못나왔고 가정도 부하지 못합니다. 학교 여선생으로 들어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나은 학교를 졸업하고 가정배경도 좋아서 학교에도 좋은 담임을 했는데 자기는 좋은 담임을 하지 못했다고 너무나 마음에 좌절되고 열등의식으로 미칠 것 같다. 내가 보니까 그가 맡은 과가 그렇게 열등한 과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다, 교장도 교감도 선생들도 자기를 무시한다고 스스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가운데 제게 그 편지를 썼습니다. 그래서 난 그 여선생님에게 “자매님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어떠한 곳에 있어도 열등히 여기지 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지나간 과거를 가지고 왜 따지느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은 죽어 버렸고, 장사지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았으니 새사람처럼 생각하라.” 그리고 제가 이 성경 구절을 주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로 10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그리고 토를 달았습니다. “자매님! 보세요. 당신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 로얄 패밀리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인데 어찌하여 열등의식을 느낍니까?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적인 행위이니 앞으로는 감사하고 열등의식을 느끼지 말라”고 말했었습니다. 그 다음 또한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주님께 맡기고 번뇌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염려하고 근심한다고 안돼요. 주님이 네가 근심한다고 키를 한자나 크게 할 수 있겠느냐? 네 머리털 하나도 검고 희게 못하는데 왜 염려하느냐고 말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최선을 다해야 돼요. 할수 없는 일은 맡겨 버려야 돼요. 내 힘으로 할수 없으니까.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할수 없는 일은 주님께 맡기고 잊어 버려야지요.
여러분 잠자리에 들어 갈때는 옷을 입고 들어가지 않잖아요? 노숙자 이외에는 잠자리에 들어갈 때 옷을 벗어 놓고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처럼 하루가 지나가든 그 날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염려와 근심은 벗어버리십시오. 주님께 맡겨 버리고 그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경에는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라고 말한 것입니다.뒤에 것은 잊어버리지만 또한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과거에 살았던 삶을 떠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미래의 삶을 향하여 나가라.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지향적인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과거 지향적인 인간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 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연히 과거를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라. 축복은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크고 작은 미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불신의 과거 삶을 떠나 십자가 대속의 미래의 삶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미래의 꿈을 항상 안고 살아야 돼요.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약속을 주신것처럼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미래 축복의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와 의와 하나님의 영광을 항상 바라보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저녁에 잠자러 들어갈 때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언제나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충만하게 용서와 의와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삶을 가지고 언제나 희망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거룩함과 성령충만한 삶을 늘 바라보고 희망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거룩하고 더 성령충만하게 만들어 주시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셔라. 너희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리라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내일 더욱 거룩해 지고 더욱 성령이 충만해 지고 더욱 은혜로 넘치게 될 것이라는 그런 꿈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항상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치료와 생명을 주시는 것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내 병을 바라보고 나의 연약함을 바라보고 고통과 괴로움을 느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병들고 고통스럽지만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일의 하나님께서 치료와 건강을 줄 것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바라봄의 법칙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입니다. 내일의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희망이 없을지라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왔을 때 가나안에는 강한 민족들이 수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으로 보이는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 아브라함은 놋(조카)조차 떠나가 버리고 혈열단신, 군사도 무기도 없는데 그 가나안 땅에는 칠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가많고 군대가 있고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손 든 아브라함을 보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내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일을 바라보고 희망을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중에 아브라함에게 약속대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85세가 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밤중에 불러내어서 하늘에 별들을 헤아리게 하시고 내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육체적으로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경험적으로 생각하면 자식을 낳을 수 없습니다. 85세된 노인이 75세된 아내에게 어떻게 자식을 낳습니까? 현재나 과거를 바라보고 좌절하면 갈 길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늘에 별들을 헤아려 보고 미래지향적으로 꿈을 가져라. 내 자손이 저처럼 많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마음에 꿈을 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더 기다렸다가 100세가 되어서 90살이 된 아내를 통하여 이삭을 얻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가 어떠한 위험한 병에 걸렸을지라도 하나님의 치료가 십자가를 통하여 넘쳐 나오는 것을 바라보고 믿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말하기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했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였음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약속이 십자가에서 넘쳐 나오고 있으므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일의 치료와 건강을 주실 하나님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십자가를 통한 축복과 저주에서 해방될 것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춤춰야 되는 것입니다. 왜, 지금은 내가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한 어려운 지경에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나에게 가나안땅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는 것은 십자가 대속의 은총을 통해서 주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는데 왜 현재를 바라보고 열명의 정탐꾼처럼 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성벽은 높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라. 우리가 들어가서 점령하지 못하리라는 불평과 원망과 공포와 부정적인 말을 합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그 땅은 진실로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그 땅의 주인은 떠나갔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들어가서 점령하자고 강하고 담대하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우리의 내일에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될 것입니다. 성경에 약속은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은혜의 약속이 있는 이상 이를 쳐다보고 우리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십자가를 통한 승리와 부활과 천국을 바라볼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삶은 일장지춘몽입니다. 언제 우리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오늘 이렇게 나이먹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사라지는 안개니라. 모든 인생은 풀과 꽃과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야웨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 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죽어요. 그러나 우리가 관만 바라보고 상여만 바라보고 소리없는 공동묘지만 바라보면 절망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건너편에 부활이요 생명인 예수를 바라보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는 그 말씀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 건너편에 우리를 위한 아름다운 땅이 있는 것을 압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 계신곳에 우리도 같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광의 천국보좌에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나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보고 우리는 관을 극복하고 상여를 극복하고 무덤을 극복하고 그 뒤에 있는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고 희망차게 전진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주신 전인구원을 항상 우리는 마음속에 바라보아야 돼요.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이 말씀을 한시라도 마음속에 잊어버리지 말고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라볼 목표가 있습니다. 언제나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가득히 가슴에 품고 내일을 향해서 살아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라고 말한 것입니다.쫒아가라. 게으른 개인이나 민족은 잘사는 법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게으른 자에게는 하나님이 축복을 안주시지 않습니까? 우리 축구도 보십시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뛰니까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주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어제는 측은해서 볼 수가 없어요. 아닌게 아니라 죽든지 살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해보자. 아예 결사적인 도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승리를 주시지 피곤하다고 몸도 사리고 아꼈으면 아무것도 안됐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항상 신령한 양식을 부지런히 먹어야 돼요. 우리가 신앙이 특출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늘 먹어야 돼요. 베드로전서 2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신앙이 자라려면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시간이 바빠서 나는 몸이 피곤해서 나는 성경이 읽고 싶지 않아서 안 읽는다. 이렇게 게으른 사람은 영적으로 난쟁이가 되고 자라지 못합니다. 항상 우리는 기도에 힘써야 됩니다. 예레미야서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부르짖지 안는데 하나님이 응답합니까? 부르짖어야 응답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돼요. 앞을 향해서 나가면서 부르짖어야 돼요. 여러분 월드컵에서 선전한 우리 크리스챤 축구 선수들의 말을 제가 들어 보았습니다. 황금같은 헤딩골로 성공시킨 안정환은 경기후에 그 부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머리에 공을 얹혀 주신 것 같더라.” 그 장모와 부인은 열렬한 크리스챤입니다. 부인은 독실한 신앙인이라 매일저녁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금식하며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남편이 골을 넣을 때 하나님이 옆에 계심을 느끼고 눈물로 감사 기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요. 푯대를 향해서 뛰어가는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머리에 공을 얹혀 주시는 것 같더라. 대 이탈리아 전에서 우리 골키퍼인 이운재 선수는 연장전 후반에 이탈리아 선수의 결정적 강슛을 이운재 골키퍼는 손살같이 튀어올라 왼손으로 무서운 속력으로 날아오는 공을 쳐내서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 부인에 의하면 경기 때마다 집에서 출석교회 성도들과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응원하고 기도를 하는데 이운재 선수는 이탈리아와 경기가 끝난후에 그에게 전화하기를 “골을 쳐낼 때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인도하더라.”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야 하나님이 응답을 하시지 기도도 안하고 가만히 관망하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지는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성령님과 동행해야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고 성령을 보내겠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돕는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돕는 성령이 계시므로 어떠한 때라도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성령충만을 간구하고 성령과 함께 동행할 때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것을 참아야 됩니다. 성격이 참지 못하면 안돼요. 무슨일이든지 쉽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번 축구를 통해서 보지 않습니까? 끝까지 참아야 승리의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라는 고린도전서 13장 7절을 우리의 미간에 새겨 놓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참지 못하고 너무나 믿지 못하고 너무나 바라보지 못하고 너무나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성공하는 사람들의 비결을 보면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니 결과에 성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겁쟁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강하고 담대하게 믿어야 돼요. 여호수아 1장 6절로 9절에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것보세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고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이것은 우리가 할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두려워하고 놀라 하려면 그렇게 선택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겠다고 선택하면 우리가 마음을 강하게 담대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하게 하고 담대하는 마음을 선택해서 살아가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히브리서 12장 1절로 2절의 말씀을 늘 기억해야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과거를 벗어 던져 버려 과거를 던지고 미래는 어떻게 할까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됩니다. 과거는 던져 버리고 미래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다음 푯대를 향해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며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은 벗어버리고 십자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바라보고 확실히 믿고 하나님의 축복의 상을 위하여 전력으로 좇아갈 때 우리의 삶은 의미있고 가치있고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생이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님께서 오늘 귀한 교훈의 말씀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바울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부르신 상을 받기 위하여 질주해 간다고 말했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 우리들도 뒤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던져 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죄책도 미움도 그리고 염려와 근심도 열등의식과 좌절감도 낭패와 실망도
과거의 것은 다 청산해 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미래 십자가를 향하여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열심히 기도하고
성령께 의지하고 전력으로 노력해서 뛰어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같이 계셔서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는 자에게 놀라운 성경의 결과를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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