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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염려를 가지라

빌립보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131 추천 수 0 2008.11.25 21: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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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4:6-7 
설교자 : 박찬희 목사 
참고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교회 

거룩한 염려를 가지라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의 인생은 어찌 보면 염려와 근심의 연속인 듯합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참으로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 예배하러 여기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마음은 수많은 염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차! 가스레인지에 압력솥을 올려놓고 왔는데 이를 어쩌지?" "금년에도 장사가 잘 안되면 어떻게 하지?" "작은 애가 수능시험을 잘 못 보면 어떻게 하지?" "금년에도 '명퇴' 소리 듣지 않고 보낼 수 있을까?" "밀린 공과금을 어떻게 내지?" 한없는 염려와 근심이 우리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예배할 때만이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려 하여도 우리의 마음 문은 근심과 염려라는 자물쇠로 꽉 잠겨 있습니다. 오늘은 이 염려의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근심의 자물쇠를 따는 열쇠를 찾아보겠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탈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몇 일이 멀다하고 그들의 입국소식이 들려옵니다. 옛날에는 그들의 입국이 온 나라를 뒤끓게 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일상적인 뉴스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북을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남쪽 땅을 밟았습니다. 그 온갖 고난을 헤치고 결국은 대한민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 중 한결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한에 가면 근심도 걱정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남한은 낙원은 아니어도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남한은 '따뜻한 남쪽 나라'일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부의 보호기간을 지내고 정착하여 새 삶을 시작하게 되면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당황하고 근심합니다. 염려합니다. 지나온 자신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의 경쟁에 휘말립니다. 그 파도 속에서, 살 길이 막막하여 걱정과 근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세상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에는 걱정이 있고 근심이 있게 마련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운명지어졌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 높은 자나 낮은 자, 늙으나 젊으나 저마다 염려 덩어리를 몇 개씩이나 목에 달고 힘겹게 인생을 살아갑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인생의 수고로움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들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근심 없이, 염려 없이 지낼 날이 없습니다. 인생은 참 고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본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 어떻게 우리가 염려해야 할 산적한 문제 가운데 살면서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염려와 근심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본문을 가만히 살펴보면 염려와 근심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주님 안에 있지 않을 때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틈을 타고 사탄이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려움에 처할 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 같아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근심하며 하나님 없는 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염려와 근심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10:22을 보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예레미아 애가 3:33에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단호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염려와 근심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도 아닙니다.

 

염려와 근심은 우리가 얼마나 멀리 하나님과 떨어져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잣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집을 떠나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집 떠난 탕자가 되는 일 없이 늘 근심만 하였듯이,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은 염려하고 근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염려 없이 살고 싶습니까? 근심 없이 살고 싶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는 거할 곳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쉼을 얻으십시오.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 밖에 없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앞에 여러분의 모든 짐을 내어놓으십시오. 맡기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쉼을,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내가 염려함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 염려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해결될 수 있는 길을 놔두고, 왜 자꾸만 내 생각, 내 경험을 의지해 절망합니까?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은 그 문제가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서 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내 문제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자신은 죽고 우리 안에 주님이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내 문제는 주님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지금 내가 염려와 근심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주님 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열쇠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 한올까지도 다 세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지혜를 가지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열쇠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요 6:30). 무슨 말씀입니까? 문제 해결의 열쇠가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열쇠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열쇠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다른데서 열쇠를 찾으려 하지말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그 넓은 품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시 107:9을 보면 시편기자는 근심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에 그가 구원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약하여 늘 증거를 찾습니다. 보이는 것들을, 세상의 지혜를, 그 방법과 능력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근심부터 합니다. 하나님을 잊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내미는 손을 붙잡지 않습니다. 세상 것에 얽매여 하나님을 등뒤로 밀어냅니다. 연약함을 탄식하면서도 능력주시는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다. 귀가 무뎌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아니 듣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눈 앞에 세상의 넘실대는 파도가 있어 하나님을 보지도 못합니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눈을 가려 어두움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죄의 정죄, 그 그늘이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의심의 구름이 우리 마음 속을 채우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지만 삶은 세상의 권세를 잡은 자, 사탄에게 눌려 있습니다.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주 실망하고 자주 근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늘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를 독려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2)

 

25년 전에 조오련이라는 수영선수가 대한해협을 수영으로 횡단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횡단을 성공한 후에 한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20년 후에 다시 한번 도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약속은 2000년 8월에 이뤄졌습니다.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그 일을 이뤄냈습니다. 아주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는 방송국의 협조를 얻어 대한해협을 횡단하기 위해 팀을 구성했습니다. 그 구성원들은 최종원이라는 50대 연극배우, MC 유정현, 아직 신혼이었던 탤런트 이훈, 여린 10대 여가수들, 수영선수, 주부, 장애인 등이었습니다. 이들 중 베이비복스라는 10대 여 가수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물에 뜨지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수영의 달인 조오련씨에게 배운대로 충실히 따라했습니다. 그 결과 이번 횡단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멋지게 헤엄을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6M를 넘실대는 파도도 뚫고 헤엄쳐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50대인 최종원씨는 엄청난 파도 앞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 처지다가 겁을 집어먹고는 자꾸만 안전망을 잡습니다. 보다못한 조오련씨가 그의 옆으로 뛰어듭니다. 이것 저것 가르쳐 주고 격려합니다. 배에 타고 있던 동료들이 응원합니다. 용기를 얻은 그가 다시 도전합니다. 조오련씨가 그의 곁에 있는 것을 알고 힘을 얻은 것입니다. 그가 이미 대한해협을 자기보다 앞서 건넜음을 알고 또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지켜 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염려와 근심을 떨쳐내고 드디어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비록 힘이 부치고 포기하고 싶어도, 그 짠 바닷물을 먹어도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미 건너갔던 분이 옆에 있기에, 그가 도와주고 있기에, 그가 지켜줄 것을 믿었기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해협을 건넜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의 짐을 먼저 지고 가셨습니다. 주님이 극복하셨습니다. 주님이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어디쯤이 깊은 물인지, 어디쯤에서 바람이 거센지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 주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험난한 인생의 길을 주님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 주님께서 지금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가십니다. 바울 사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고 자신있게 선언했습니다. 이 확신에 찬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있을 때 새 삶은 시작됩니다. 새 세계가 열립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시다. 그리고 주님이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섭시다. 주님이 하라면 그대로 하면 됩니다. 주님이 곁에 계시는데 왜 의심합니까? 왜 근심합니까? 왜 두려워합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힘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 끌려다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주권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헤쳐 나갑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만한 힘을 다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헤쳐 나가면 됩니다. 걱정과 근심에 짓눌려 있던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6)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니 그 말씀대로 행하여 평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오늘 본문의 명령은 간단합니다. '기도' 하고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되 '감사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직 내 앞에 놓인 문제가 첩첩산중인데, 갚아도 갚아도 빚이 늘어나는데, 나를 짓누르는 문제가 한 둘이 아닌데,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감사하라는 것일까요? 참으로 막막하기 만 한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이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알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뤄놓으신 것을 볼 수 있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라는 대로 증거가 나타나기에 감사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감사하는 기도, 이런 믿음으로 드리는 간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하나님이 감동하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다", "나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신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나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무장된 사람은 두려움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깁니다. 유혹과 핍박이 와도, 환란과 질고가 삶을 엄습해도 이겨냅니다. 근심과 걱정을 던져버립니다. 염려를 주께 맡깁니다. 믿음을 가집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서 행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읍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따놓은 당상'이란 말이 있지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이뤄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아가고 계십니다. 그의 능력과 자비를 힘입어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것, 의심하는 것은, 염려하는 것은, 근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그것은 능력이 됩니다.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참된 기도와 간구는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내용은 이런 사람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대단한 신앙의 위인들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염려가 한가지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염려는 세상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염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염려'란 무엇입니까? 고후7:10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거룩한 염려, 거룩한 근심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러내 놓는 것입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1:10-11)

 

여러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위해 살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더 말씀을 잘 들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까?" 이런 염려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참으로 복된 분들입니다. 우리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어떻게 하면 그 뜻을 좇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 안에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어떻게 하면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허락된 단 한가지 염려입니다. 고후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일꾼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10)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 붙들어 매어두십시오. 마음과 생각이 세상에 있으면 세상의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주님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그의 삶을 지켜주십니다. 이러한 사람이 갖는 것이 '거룩한 염려'입니다. '거룩한 염려'는 복이 됩니다.

 

여러분! 세상의 염려와 근심을 버리고 '거룩한 염려'을 가집시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근심하고 염려합시다. 죽이고 멸망시키는 세상의 근심이 아니라 살리고 세우고 새로 태어나는 '거룩한 염려'에 몰두합시다. 그리하여 이 해에는 근심의 바다, 염려의 해협을 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에 들어갑시다.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지혜,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염려를 가지고 그 분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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