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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3: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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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샛별교회 |
<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
지난주일 오후에 종로 5가 전철역에서 기독교 회관으로 가는 길에 있는 ‘에브리데이 크리스마스 카페(Everyday Christmas Cafe)’에서 ‘에브리데이 크리스마스 교회’가 설립예배를 드렸습니다. 담임목사님이신 김용호 목사님은 오랫동안 문화선교의 꿈을 가지고 기도하다가 마침내 ‘에브리데이 크리스마스 카페’라는 브랜드로 문화선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MA)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있다가 90년대 중반에 문화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비전을 이루기까지는 난관도 많았고 먹는 문제 해결도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은 먹을 것이 없어 집에서 나와 목사님 부부가 무작정 한강 둔치를 거니는데, 마침 누군가 잔치음식을 남기고 그냥 떠나서 그 음식을 싸가지고 가서 아이들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힘든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금년 4월, 목사님을 만나 위로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사님! 용기를 잃지 마세요. 분명히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있을 겁니다. 작게라도 개척선교를 시작해보세요. 저희들도 힘써 돕겠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다시 선교의 비전을 새롭게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너무 어렵게 사는 목사님을 보고 친형님이 도와주어서 그동안 품고 있었던 ‘에브리데이 크리스마스 카페’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업 예배를 드리던 날, 목사님은 “그가 쓰시겠다!”는 제목으로 주님에게 쓰임 받았던 나귀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그 예배에 참석했던 한 권사님이 목사님의 문화선교의 비전을 듣고 감동받아 자신의 재산 중 10분의 1정도인 100억원을 헌금하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극적인 반전이었습니다.
지난주에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스타벅스가 9000개 있는데, 스타벅스가 있는 자리에는 에브리데이 크리스마스 카페도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10000개의 가맹점을 내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데 그들을 찾아와야 합니다.” 저는 약간 허황된 것 같은 비전을 들으면 “아멘!”을 잘 안하는 성격인데, 그날은 저도 모르게 “아멘!”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열매를 주시기 전에 먼저 비전을 주십니다. 비전이 있는 곳에 반전도 있고 발전도 있습니다. 비전을 향해 나갈 때는 시련도 있고 인내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거룩한 비전을 놓지 않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감사와 기쁨과 땀을 가지고 달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비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비전을 포기하지 않으면 거룩한 비전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 성공적인 인생 경영 방법 >
오늘 본문에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 고백을 보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몇 가지 원리를 교훈 받게 됩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경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뚜렷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은 인생의 설계도입니다. 설계가 없으면 건물을 짓지 못하듯이 비전이 없으면 성공적인 인생은 건축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내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리라!”고 하면 행복한 가정이 될 가능성은 현저하게 높아지고, “나는 내 자녀를 위대한 인물로 키우리라!”고 하면 위대한 자녀가 될 가능성도 현저하게 높아집니다. 사람이 불행하게 사는 가장 큰 이유는 뚜렷한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이슈타인이 뉴욕에서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승무원이 승객들에게 표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인슈타인이 주머니에서 기차표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평소에 알던 승무원이 다가와 “박사님! 염려마세요. 저는 박사님을 믿어요. 표를 안 찾으셔도 됩니다.”하고 말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약 30분 후에 승무원은 표를 다 걷고 돌아왔는데 그때까지 아이슈타인은 통로까지 살피며 열심히 표를 찾고 있었습니다. 승무坪?다시 말했습니다. “박사님! 이제 그만 찾으세요. 저는 박사님을 믿어요.” 그때 아이슈타인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믿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지금 문제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예요. 나는 지금 오늘 강연 장소가 어딘지 갈 장소를 잃어버렸어요.”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에게 무엇보다 큰 문제는 갈 장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물질적인 축복에 대한 욕심은 다들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축복을 위한 거룩한 비전은 별로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이란 영적 축복의 비전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비전이 없는 사람에게 특별한 축복의 바람을 일으켜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뚜렷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비전을 가졌습니까? 본문 10-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사도 바울의 비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는 것을 삶의 최대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그는 본문 12절에서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께 잡혔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무엇에 잡혔느냐에 따라 그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나쁜 것에 잡히면 잡힐수록 영혼은 자유를 빼앗깁니다. 반면에 예수님께 잡히면 잡힐수록 영혼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사람은 언제 예수님께 잡힙니까? 대개 고난과 시련을 통해 주님께 잡힙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고난 중에도 감사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으로 영혼의 가장 치명적인 독약인 교만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난을 통해서 잡혔으면 이제 본문 12절 말씀처럼 ‘잡힌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잡으려는 능동적인 삶’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처럼 ‘잡힌 삶’이 ‘잡으려는 삶’으로 변하는 것이 축복의 키포인트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처음에는 로마 군병에 의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능동적으로 십자가를 추구해서 결국 그 가정은 복된 가정이 되었고, 그의 두 아들은 나중에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가 됩니다. 우리도 구레네 시몬이나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가 채우겠다는 능동적인 비전을 가지고 살면 우리의 삶에도 극적인 반전과 발전이 있게 될 것입니다.
다만 비전을 가질 때 한 가지 꼭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전과 욕심을 혼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전과 욕심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만 보면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있고, 욕심은 ‘내 영광’에 관심이 있습니다. 둘째, 비전은 ‘더 사랑하려고 세운 목표’이고, 욕심은 ‘더 자랑하려고 세운 목표’입니다. 그 두 가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업에 크게 성공한 한 교인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돈을 많이 벌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겠다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근육무력증으로 5년을 누워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뛰었는데 제가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합니까?” 그렇게 원망과 불평으로 세월을 보내자 그의 병에는 아무 차도가 없었습니다.
병이 5년째 접어드는 어느 날, 그는 큰 발견을 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마음에 큰 욕심이 있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개인적인 영광을 추구했던 자신의 본 모습을 깨닫고 그는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자신에게 병을 주신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때부터 신기하게 근육에 힘이 생기면서 병상에서 일어나 사업을 크게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비전의 가장 큰 적은 비전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욕심입니다. 그러므로 욕심과 비전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욕심을 비전으로 포장하는 일도 주의하고, 비전이 욕심으로 흐르는 일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기본 바탕을 가지고 비전을 가질 때, 항상 머릿속에 맴돌고 꿈에서도 그 생각을 할 정도로 뚜렷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비전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2. 비전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전을 뚜렷하게 가지면 무엇이 생깁니까? 그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이 생깁니다. 그런 행동이 없으면 그 비전은 신기루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됩니다. 행동과 실천과 땀이 없는 비전은 망상입니다.
본문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고 이루었다 함이 아니고 그저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푯대에 반드시 도달해야 한鳴?생각하지 않고 다만 푯대를 향해 나아가는 행동을 중시했습니다. 그처럼 우리의 비전도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전을 가지고 땀 흘리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본문을 보면 ‘좇아간다’는 말씀이 12절과 14절에 두 번이나 나옵니다. 또한 본문 13-14절에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상을 위해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뒤를 바라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고 비전을 따라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후회되는 어떤 일을 했다면 그 일을 발판과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나가면 됩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승리할 때도 패배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때 승리했다고 승리만 돌아보고 자만하지 말아야 하고, 한때 패배했다고 패배만 돌아보고 한 맺혀 살지 말아야 합니다. 크게 보면 승리했다는 사람보다 패배했다는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앞날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아무리 불행했어도 말씀과 기도를 붙들고 최선을 다해 나가면 우리 앞에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길이 예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비전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선택의 순간에 제일 먼저 할 일은 과거를 버리는 일입니다. 과거에 아주 좋은 체험을 했어도 그 체험만 붙들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체험을 했으면 그 체험이 현재도 나타나도록 새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처럼 체험이 행동으로 승화되지 않으면 어떤 좋은 체험도 의미가 없습니다.
왜 성도에게 체험보다 열매가 중요합니까? 가끔 영적 체험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씨네티 목사님은 “병적인 혼란 현상을 종교적 체험으로 오해하는 것처럼 교회와 영혼에 피해를 주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를 위한 행동과 열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구원받은 사람다운 행동이 나타나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과거의 체험을 계속 우려먹는 삶에 있지 않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이 주신 더 좋은 미래와 더 좋은 삶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미 일어난 상황에 대처하거나 벌어진 상황에 반응만 하는 것은 믿음의 내용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처럼 비전을 따라 행동하면 가장 든든한 친구가 생깁니다. 바로 ‘시간’이란 친구입니다.
시간은 땀을 결코 배반하지 않습니다. 땀이 없이 술수로 살면 시간은 그 사람을 등지지만 땀을 가진 행동으로 살면 시간은 그 사람의 편이 되어줍니다. 삶은 긴 호흡으로 승부하는 것입니다. 소신껏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10년이나 20년 후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처럼 길게 보고 비전을 가지고 줄기차게 달려가면 언젠가 소중한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3. 비전을 끝까지 고수해야 합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이 말씀은 좋은 생각과 좋은 일을 포기하지 말고, 무엇보다 믿음의 삶과 거룩한 비전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미국에서 제일 많이 쓰는 영어 표현 중의 하나가 “Keep going!(계속 가세요!)”이라는 말입니다. 좋은 일이라고 확신하면 계속 그 일을 고수하고 “Keep going!”해야 합니다. 사람의 삶은 항상 좋게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때로 힘든 시련을 만납니다. 그때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비전을 향해 중단 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언제나 시련이 있을 때는 그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날, 록펠러의 친구가 록펠러에게 찾아와 광산에서 금을 캐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산을 하나 샀는데 알고 보니 속은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파도 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돈은 점점 떨어지고 광부들은 임금을 독촉했습니다.
그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광산 한 쪽 모퉁이에 털썩 주저앉아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자신의 삶이 너무 억울해서 한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저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신실한 어머니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도 열심히 했고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거지가 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까?”
그렇게 하소연을 하다가 점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위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돈을 벌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을 목표로 세웠지만 실제灌?돈을 벌어 자기를 과시하려는 것이 목표였음을 깨닫자 곧 원망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로 변했습니다. 그때 마음이 뜨거워지며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 음성을 듣고 그는 자기가 주저앉은 땅을 한 번 더 파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그 땅에서 금 대신 원유가 터졌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터지면서 원유도 터진 것입니다. 그처럼 어려울 때는 포기할 때가 아니라 회개의 눈물을 터뜨릴 때입니다. 회개의 눈물이 터지면 축복의 샘물도 터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거룩한 비전과 믿음의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곧잘 믿다가 조그마한 난관이 오면 쉽게 낙심하거나,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으면 금방 기도를 포기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충성을 포기하고 그만 둘 궁리부터 합니다. 그러나 시련이 와도 비전을 붙잡고 끝까지 나가면 마침내 “네 믿음이 크도다.”고 하시면서 은혜와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지난 7월 초에 저의 사랑칼럼 원고를 베스트셀러를 많이 내는 한 일반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일주일 후에 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기독교 서적은 출판할 계획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실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시 유명한 한 기독교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습니다. 그 출판사에서도 약 일주일 후에 출판 계획이 없다고 연락해왔습니다. 또 실망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며칠 후에 새벽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이런 음성을 주셨습니다. “너무 실망하지 말고 미션퍼블릭에서 직접 출판을 해보라!” 그 동안 미션퍼블릭에서는 약간의 후원금을 받고 목사님들에게 온라인으로 설교파일을 제공하는 일을 주로 해왔는데, 이번 기회에 책 출판으로 사역을 확대해보라는 음성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책 출판 계획은 했지만 비용문제 등 여러 문제점 때문에 다른 출판사를 노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원고가 퇴짜를 맞고 실망했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출판을 해보라고 용기를 주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직접 출판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책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고가 퇴짜 맞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다른 아무 광고도 하지 않고 저희 홈페이지에서만 광고했는데 곧 2쇄를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요삼일육선교회를 통한 선교사 후원사역과 문서선교 사역에 재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9월 달에 나온 수익금도 이번에 잠깐 방문하신 아프가니스탄의 이영동 선교사님에게 후원금을 전달하는 등의 용도로 전액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우리는 어떤 한 길이 막혀도 그것 때문에 더 좋은 길이 열림을 믿고 거룩한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사업에 실패했습니다. 그분이 말합니다. “그것 때문에 제 교만이 깨지고 하나님 앞에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백을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렇게 고백하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면 그 실패는 비전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 비전은 인생을 멋지게 만듭니다 >
우리는 거룩한 비전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가끔 보면 어느 한 가지 일을 이루고 나서 “이제 됐다!”고 하면서 그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런 안주가 없어야 합니다. 하나의 비전이 이루어졌으면 새로운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을 향해 나가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 대가가 결국 축복의 씨앗이 됩니다.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감리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기 전에 목사님과 잠깐 대화를 나눌 때 교단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희 교회가 천 명쯤 되어도 교단에 가면 별로 힘을 못 씁니다. 그러나 목사님 교단은 한국에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은 힘들어도 삶의 의미와 보람은 훨씬 클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목사님이 한국에서 좋은 복음주의 교단을 새로 시작한 선구자처럼 기억되어서 오히려 좋으실 겁니다.”
그 목사님 말을 듣고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실 저도 장로교나 감리교처럼 안정된 교단에서 목회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소속으로 있으면서 한국에 선교중심적인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후원하는 중간기지 역할을 하는 비전을 가지고 달리는 것도 현재는 힘들지만 나중에는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전은 언제나 현재보다 나중이 좋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크고 부요한 주는 알래스카 주입니다. 그 땅은 미국 본토의 5분의 1이고, 우리나라 남한의 15배가 넘는 크기의 땅입니다. 그 땅은 1876년 당시 존스 대통령 때 러시아로부터 720만 불에 샀습니다. 처음에 그 땅을 사려고 할 때 미국 의회는 반대했습니다. 한 의원은 국무장관 씨워드(William Seward)에게 “정 얼음덩어리가 필요하면 미시시피강의 얼음을 깨다가 네 안방에 채우라!”고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씨워드는 설득했습니다. “우리는 눈 덮인 땅이 아니라 저 눈 밑에 깔려 있는 보고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때가 아닌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그 땅을 사야 합니다.” 결국 그 땅을 사서 정부와 의회의 공동조사단이 탐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땅에는 금과 무진장한 지하자원과 엄청난 원유가 매장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미국은 엄청난 양의 원유를 수입하면서도 알래스카 땅의 엄청난 원유는 극히 일부분만 개발한 상태입니다. 미래의 자원이 고갈되었을 때 후손들이 먹고 살도록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씨워드 같은 사람입니다. 요새 가늠할 수 없는 꿈의 크기를 가진 대조영에 관한 사극이 남자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대조영 같은 큰 영적 비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이런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1) 언제나 약속시간보다 늦게 오는 사람; 2)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이 없고 혼자만 즐기는 사람; 3) 남의 뒤만 따라다니고 남의 앞에 서서 헌신할 줄 모르는 사람; 4) 말할 때 확신이 없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 5) 언제 봐도 지루하고 권태로운 얼굴을 한 사람; 6) 남의 허점이나 잘못을 보면 흥분하며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
한 마디로 비전이 없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삶이 아무리 생각한 대로 펼쳐지지 않아도 마음속의 비전만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가장 멋진 인생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비전입니다.
왜 소설 ‘돈키호테’가 지금도 온 인류의 사랑을 받습니까? 돈키호테가 가진 대담한 꿈 때문입니다. 돈키호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비전을 버리지 않으면 최소한 버림받는 인생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소중한 비전을 가질수록 소중한 사람이 되고, 위대한 비전을 가질수록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인생을 살면서 꼬리가 되기보다는 머리가 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누가 머리가 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달리는 사람이 머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어떤 시련이 있어도 비전을 포기하지 말고, 한 가지 비전을 이루면 다시 새로운 비전을 품고 열심히 달림으로 이 땅에서 열매 많이 맺고, 하나님 앞에서 큰 상급 받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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