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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여기(지구)에 와 있나?

빌립보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141 추천 수 0 2009.12.07 21: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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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2:13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3. 2. 성찬주일설교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더불어 '나는 왜 여기에 와 있나?'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가 회의가 있어서 어느 호텔에 가니까 로비에서 저의 옛 친구를 만났습니다. 아주 반갑게 서로 포응을 하고 등을 두드리고 오래간만이라고 서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대뜸 하는 말이 "야~ 너 오랜간만이다. 어 여기 왜 왔어?" 그래서 "나 여기 회의가 있어 왔어." 그리고 제가 "너는 왜 왔어?" "그저 은퇴하고 어영부영하면서 살다보니 차라리 차나 한잔 마시러 왔지"
나는 그 친구 말이 심상치 않게 들렸습니다. "어 너 왜 왔지?"하는 말이 "어 너 지구에 왜 왔지?" 그말로 들렸어요. "아 나는 사명이 있어 왔어. 교회를 세우고 세계선교를 하려고, 너는 왜 지구에 왔지? "나 별 볼일 없이 그냥 왔다 갔다 하며 세월을 허송하다 여기까지 왔지." 삶의 목적도 의미도 가치도 모르고 떠도는 구름 같이 떴다지다 하는 삶은 정말 비극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기독교계의 지도자인 존 맥스웰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간단히 구분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과 비전'이 명확하고, 성공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 지금만 보는' 사람들이라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명확히 압니다. 목표의식이 분명할수록 인생은 선명해 지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도 의미도 모른 채 흐르는 물 위의 나무토막처럼 부유하는 삶은 종국적으로 비극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이 우리 삶의 원인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삶의 원인이 됨을 알아야 우리 인생의 목적도 방향도 가치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에서 적은 아메바 그를 통해서 세포분열을 해서 진화론적인 논리에 따라서 살다가 죽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계시지 않고 모든 것이 우연히 이뤄진 것입니다. 우주도 우연히 자연도 우연히 인생도 우연히 진화해서 이뤄졌다고 한다면 인간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는 허무하기 짝이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3절에는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얼마나 기분 좋습니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알찌어다. 우리는 그가 만들었고 그가 기르는 백성이요 그가 기르는 양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명명백백하게 맑고 밝고 환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를 기르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찬양하고 섬기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요, 가치요, 의미가 되는 것을 너무나 잘 알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생물에서 아메바 거기에서 세포분열해서 우연히 인간이 되었다면 우리는 존재의 의미도 가치도 목적도 아무것도 없는 죽은 나무토막이 물에 넘실거려 떠내려가는 우연에 불과하고 마는 것입니다.
진화론이란 일반적으로 생물의 진화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분야를 말합니다. 그런데 최근 과학의 영역에서는 진화론에서 제시하는 화석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조립되거나 조작된 것이 있다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전남대의 조정일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진화론 저서도 무생물에서 생물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며, 각 생물체들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추정적인 문구로 일관한다." 심지어 현대 물리학의 대가인 아인슈타인조차도 종교 없는 과학은 무력하다고 말했었습니다. 독일의 물리학 교수인 한스 페터 뒤르는 「신, 인간, 그리고 과학」이라는 책 서문에서 "양자물리학자들은 물질이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요소가 아니라 물질 이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라고 말하면서 "20세기 물리학자들은 다시 신학자들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말했었습니다. 오늘날 과학도 양자학을 들어가서는 이 세상 물질적 건너편에 놀라운 영적인 힘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 정도까지 된 것 입니다. 1차원 2차원 3차원의 물질적인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학을 통해서 보면 4차원에서 오늘 11차원까지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질과 완전히 초월한 하나님의 영역까지 오늘날 과학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자들도 자연 과학을 연구한 결과 세계 존재의 근원에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 우리 삶의 원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천지와 만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때에 나는 생명이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많은 입양아들이 언제나 질문하는 것은 "나는 누구냐?"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혹은 구라파에서 자라서 그곳 사람 같은데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얼굴이 다르고 모습이 다릅니다. "나는 누구냐. 내 뿌리가 어디냐!" 그래서 자기를 버리고 돌보지 않는 부모를 찾기 위해서 멀리 한국까지 찾아와서 "나의 부모를 찾아 주십시오." 외치는 부르짖음을 우리는 듣고 신문에 읽습니다. 왜냐, 자기를 찾자니까 뿌리가 있어야 찾는 것입니다. 뿌리를 모르니까 자기의 정체성이 확립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되면 우리 삶의 뿌리가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뿌리를 알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담대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다. 우연히 된 것도 아니고 사탄의 것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도 아니다. 너는 내 것이다." 이와 같은 확실한 뿌리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시편 139편 16절에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하루가 되기 전에 내 일생이 벌써 하나님이 설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순종하면 하나님이 설계한 대로 인생을 살게 되면 평탄하게 무사하게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이 설계한 것을 저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과도 부딪히고 자기와도 부딪히고 세상의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레이 프리처드 목사가 쓴「생각을 뛰어넘는 기도」라는 책에는 믿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레이 프리처드 목사는 자신의 교회 성도 한 사람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전화를 받고 뛰어 갔습니다. 중환자실에 도착하자 80세가 넘은 노인에게 폐와 심장으로 통하는 막힌 혈관을 뚫기 위하여 강력한 혈액 용해제를 투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약은 아주 강력해서 잘못하면 뇌졸중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을 보자 그 환자는 노구의 손으로 목사님의 손을 잡으며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을 보니 힘이 나네요." 그에게 상태를 묻자, 그는 산소마스크를 쓴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내 주치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지요." 주를 믿으니까 생명이 위급에 도달해도 내 주치의가 예수님이니까 예수님께서 알아서 해주신다는 확신이 생기고 얼마나 평안한 것입니까?
1981년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총을 맞아 암살당할 뻔했을 때, 그의 담임목사는 대통령의 손을 잡으며 물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각하!" 레이건 대통령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깊은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저에게는 구세주가 계시잖아요." 지금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숨이 헐떡 거리면서도 그의 마음에는 구세주가 있으니 예수님이 돌보아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위기의 순간에 평안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삶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알 때 죽음도 담대하게 대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한때 남미에서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만을 건너오다가 거대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폭풍우가 얼마나 심했던지 비행기가 완전히 한쪽의 종이에 불과했습니다. 많은 독일 간호원들이 저의 뒤에 탔는데 고함을 지르고 울부짖었습니다. 베개가 공중에 날고, 그릇들이 날고, 물건들이 이리 흔들리고, 저리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 비행기는 곧 추락할 수 밖에 없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조종사가 마이크를 통해서 "이중에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기도해 달라"고 그렇게 방송을 했습니다. 정말로 저도 수첩을 끄집어내놓고 우리 가족들 사진을 보았었습니다. 사진을 만지면서 안녕히 계시라고 내가 이제 먼저 가겠다고 정말 다급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냐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다. 죽을 때가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절대로 죽지 않게 만드신다.' 그러한 신념이 마음 중심에 생기더라구요. 내가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나는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어찌하든지 얼마나 큰 폭풍우가 다가와도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겨서 내가 평안해서 그 어려운 가운데 그 부르짖는 승객들을 향해서 "여러분 잠잠하십시오. 이 비행기는 추락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게 외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모두 다 내 얼굴만 쳐다보더라구요.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비행기가 무사히 안착했는데 그것이 지그도 내 영혼 속에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명명백백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별로 관심이 없지만 위기를 당할 때는 내 뿌리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러므로 사람들마다 한번은 극한 위기에 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인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죽을 때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절정에 도달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마다 죽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쥐고 몸부림을 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 아버지요 아버지께로부터 왔다가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두려움 중에도 평안하게 눈을 감을 수가 있고 천국으로 향해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뿌리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서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왜 왔냐. 우연히 아메바에서 진화된 인간으로써 원숭이에서 사람이 되어왔다고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면 나를 세상에 지으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8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보냄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연히 던져진 주사위가 아닌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셔서 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확을 갖게 하기 위해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왜 내가 오늘 여기 왔습니까? 우연히 온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보내주신 것입니다.
어느 날 공원 청소부는 날이 기울자 서둘러 청소를 마치고 공원을 떠나려고 하는데 벤치에 한 사람이 앉아 있어서 이 사람을 내보내야 되었습니다. 청소부가 벤치에 앉아서 턱을 고이고 있는 그 사람을 보고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내가 누군지를 몰라서 생각하는 중에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디서 왔어요?" 그러니까 "그것도 잘 몰라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허. 이 사람봤네. 지금 공원 문을 닫아야 되겠는데 어디로 가야될 것입니까?" "글쎄요 그것을 알았으면 벌써 여기서 떠나지 않았겠습니까? " 공원 청소부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한 이는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였습니다. 여러분 나는 과연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이러한 질문은 바로 우리 삶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 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삶의 원인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온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은 누구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여기서 뭣하오?" "주를 위해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여기에 있소." "당신은 어디로 가요?" "천당으로 가오."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자기의 정체성이 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를 만드신 이유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왜 만드셨을까요?
여러분, 여러분도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분들이 대다수 많지 않습니까? 자식을 왜 낳습니까? 사랑하고 행복하고 장래 소망을 위해서 자식을 낳잖아요. 자식을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고생스럽습니다. 똥, 오줌 가려내고 온갖 못된 짓 하는 것 견뎌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기른다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고 행복해지고 또 자식에 대한 소망이 헛될지라도 장래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자식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부부간의 사랑의 유대도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라 자식들은 야훼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잠언 23장 18절에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하고 행복하고 장래소망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고 장차 천국을 상속으로 주시려는 목적 때문에 여러분을 세상에 태어나게 만드신 것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 우리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야~ 이렇게 놀라운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좋아서 기쁨을 이기지 못해요.
하나님이 나같이 못난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 보혈을 믿고 구원 받은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우리를 가만히 보고 사랑하여 머리를 끄덕끄덕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박수를 치고 이리로 오너라. 이리로 오너라. 기뻐하신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러한 우리 하나님이 우리 친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에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복 받은 자들이여 창세부터 하나님 아버지가 정성들여 예비한 새나라와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상속으로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실 때 우리에게 사명을 주고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2대 계명인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가지 거대한 계명은 우리에게 들려서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로 3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이 땅에 살면서 울면서 불행하라고 보낸 것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기뻐하고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하게 인생을 살라고 보내셨지 슬프고 땅을 치고 통곡하고 고통을 당하라고 보내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마귀가 오는 것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오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마귀는 어떠하든지 우리를 슬퍼하고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 12절로 13절에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노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뻐하고 낙을 누리고 사는 것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24절에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라"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수고한 것 기뻐하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맛이 있어야 돼요. 마시는 것도 즐겁게 마셔야 돼요. 일도 수고하는 것도 기쁨과 즐거움이 되어야 돼요. 하나님은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모든 것이 다 그 가운데서 기쁨을 갖고서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불행하기를 원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이 다 먹고 마시고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부모의 마음이거든 하물며 천상 하나님 아버지가 여러분을 보내실 때 여러분이 수고하고 일하는 것조차 행복과 기쁨을 가져오고 즐거움으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3. 사명과 달란트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낼 때 모두다 달란트를 주어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면 하나님의 달란트가 무효가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되면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사용해서 열매 맺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없이 인간이 꾀를 내어서 사는 것은 종국에는 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127장 1절로 2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
보세요. 내가 인생의 집을 짓는데도 하나님 없이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집을 지으면 지어 놓아도 헛수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이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하고 고통스러워 집짓는 목적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나라를 세워도 그 나라가 아무리 부강해져도 소용이 없는 것은 독재자가 다스리므로 고통과 괴로움이 그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부귀도 영화도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안 지켜 지는 것입니다. 명예와 부귀와 영화와 권세가 오면 그것이 더 인생을 타락하고 부패하고 절망적이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차라리 산나물 먹고 초가삼간에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좋았는데 돈 벌고 지위가 있고 명예가 있고 권세가 있으니까 그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타락하고 방탕하므로 말미암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것은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돈은 사람으로 하여금 부패하게 만들고 하나님 없는 권력은 부패권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부귀 영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속적으로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돈도 하나님이 계셔야 돈이고, 지위도 하나님이 계셔야 지위고, 명예도 하나님이 계셔야 명예가 되고, 좋은 집도 하나님이 계셔야 아름다운 집이 되고, 성도 하나님이 계셔야 지켜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는 모든 일은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일생을 살아서 70, 80 살고 죽을 때 뭘 가지고 가는 것입니까? 모든 것이 헛되고 허무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계셔야 사는 것이 가치가 있고 열매 맺고 귀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의 길을 쫓아야지 인간의 길을 쫓아 살면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사야 55장 8절로 9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라"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높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우리의 살길을 설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 대한 인생설계도를 가지고 계세요. 하나님이 설계도를 발견하고 그대로 인생의 집을 짓고 인생의 성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건축자가 집을 짓는데 주문한 집주인의 설계도를 따라 집을 짓지 않고 마음대로 지어 놓으면 대가를 받지 못합니다. 허물어 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인생들이 하나님이 계획한대로 인생을 살지 않고 하나님 설계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살다가 인생이 파멸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기술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한국 최고의 기술자가 되기를 원해서 공업학교에 들어가서 기계과에 들어가서 기계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폐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는 의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최고의 의사가 되어 나도 살고 남도 살리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열심히 의학공부를 했습니다. 그 길도 하나님의 길이 아니어서 막혔습니다. 나중에는 내가 생각도 아니하고 꿈도 꾸지 아니하고 우리 가문에도 없고 우리 전대미문의 목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계획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로써의 오늘 50년의 세월을 목회했는데 돌아볼 때 얼마나 하나님이 신기하고 능력 있게 저를 이끌었는지 내 생각한 것보다 더 달리 나의 계획한 길보다 달리 완전히 다른 길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생각을 알까요? 먼저 우리 인생들에게는 하나님이 나침반을 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나침반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면 내 마음속에 소원이라는 나침반이 있어서 내가 가면 '이 길이 아닌데.. 이 길이 아닌데.. 이 길이 아닌데..' 자꾸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 길로 갈까요?' '그 길도 아닌데.. 그 길도 아닌데..그 길도 아닌데..' 얼토당토 안한 길이 생기는데 그 길로 가면 나침반이 아무 말도 안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인생을 살면서 '그건 아닌데.. 아닌데..' 그런 말이 들릴 때가 많은 것입니다.
치과 의사가 목사가 된 사람들의 말들어 보니까 치과 의사 공부를 해서 병원을 세워서 환자들의 이빨을 고치는데 늘 손끝에서 '이것은 아닌데.. 이것은 네가 할 일이 아닌데..' 하도 아닌데 해서 '하나님 뭘 할까요?' '신학교에 들어가서 주의 종이 되어라.' 그래서 버리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주의 종이 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갖고 사는데 자꾸 집에서 애놓고 살면서도 늘 마음속에 '이게 아닌데.. 네가 사는 것은 이게 아닌데..' '주님 이게 아니면 뭡니까? 나는 남편 모시고 애들 데리고 행복하게 사는데 왜 자꾸 이게 아닌데 합니까?' '이게 아닌데... 너는 주의 종이 되어야 되는데..' 하도 그래서 지역장, 구역장을 하다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서 주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맞았어. 맞았어.'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라는 간증도 들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나침반이 있어요. 나침반이 우리가 아닌데로 가면은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렇게 말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받으면 아무 말도 안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길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된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로 8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길이 무엇입니까? 그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이 반드시 열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자기가 계획한데로 살다가는 나중에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의 나침반을 주셔서 하나님의 길로 이끌어 가도록 하고 구하면 그 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정 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강제로 구하게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생활 속에 환난과 고난을 통해서 인생을 실패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5절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자기 목숨을 자기가 구하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뛸 때는 하나님이 길을 몰랐으나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자기 길이 좌절되고 자기의 꿈이 좌절될 때 하나님의 뜻이 알려질 때가 많은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생길을 예비해 놓았는데 우리가 헛길로 자꾸 가면 하나님이 고난에 부딪히게 해서 깨어지게 해서 앉아서 자기 마음의 나침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사업에 낙심해서 올데 갈데 없게 만들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감옥에 밀어 넣어서 감옥에 앉아서 하루 종일 생각하게 만들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병상에 드러누워서 자기 인생길을 생각하게 만들고 좌우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길을 간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요셉과 모세도 같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써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채색 옷을 만들어 입혔다는 것은 가족 중에 아버지가 후계자로 삼으려고 할 때 특별히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 채색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과 요셉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종으로 팔렸고 애굽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종살이 하고 3년 동안 감옥살이 했었습니다. 그 고통을 통해서 요셉이 깨달은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 길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대로 되는 것을 알고 의지한즉 하나님이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삼은 것입니다. 나중에 말하기를 형들이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변하여 오늘날 모든 사람을 살리는 애비가 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모세도 자기의 생각대로 40세가 될 때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써 당당히 나와서 노역장에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변호하고 애굽 사람을 쳐 죽였으나 이것이 들통이 나서 아라비아 광야로 도망쳐서 미디안땅에 와서 40년 동안 목동생활을 했습니다. 생각해 볼 때 너무나 허무한 세월입니다.
40에 도망쳐서 80이 되어서 이제는 머리도 백발이 되고 허리도 굽고 기력도 쇠하고 눈도 어두워졌을 때 하나님이 찾아와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오랜 고난을 통해서 자기 길이 깨여지고 자기 길이 막혔을 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길을 알고 인생을 살아야 인생이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의 길은 아무리 목적을 두고서 열심히 일을 해도 목적에 도달하고 난 다음에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성공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성공을 하고 난 다음에 너무 허무맹랑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 큰 부자들이 마약중독자가 되는 사람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성공하고 난 다음에 방탕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성공의 참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까 너무나 허무하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소설 가운데 「외투」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을 샀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가난한 사람의 목적이었습니다.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돈을 모으고 모아서 좋은 외투 한 벌을 샀습니다. 너무 좋아서 자기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외투를 입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강도를 만나서 그만 외투를 도둑당하고 만 것 입니다. 외투를 빼앗기자 그의 인생도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나는 외투 한 벌을 사기 위해서 여태까지 돈 모으고 고생을 하고 애를 썼는데 외투를 빼앗기고 나니 이제 삶의 목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쓸쓸히 병들어서 죽어간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로 된 이야기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잠시 있다 사라지는 인간의 길을 따라 간다면 너무나 허무하고 맹랑한 외투 한 벌로 말미암아 인생을 망치는 이러한 사람처럼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낼 때 모두 다 달란트를 주어서 보낸 것입니다. 한 달란트 혹은 두 달란트 혹은 다섯 달란트라는 재능을 주어서 보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전혀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바보도 말은 잘 합니다 여러분. 바보라고 완전히 바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말은 잘한다 구요. 바보도 재능 있다구요. 우리 동리에 제가 자랄 때 바보가 있었는데 그러나 장가들어서 아들딸도 낳고 무슨 재능이 있느냐. 나무 해오는 재능이 있더라 구요.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서 집에 오면 아내가 그것을 시장가서 팔아서 먹고 사는데 그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더라구요. 여러분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나게 했을 때 하나님은 다 재능을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4절로 15절에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라
하나님이 재능을 주셨는데 재능을 사용해야 발전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준 사람은 열 달란트를 만들었고 두 달란트는 네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만 한 달란트 준 사람은 땅에 파묻어 놓은 것입니다. 사용함의 법칙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사용하면 점점 발전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도태 되어서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근육도 여러분 자꾸 사용하면 근육이 튼튼하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육을 사용하지 못하면 근육이 시들어 지는 것입니다.
어떤 정신병 환자가 항상 앉아서 눈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몇 년이고 눈을 가리고 있어서 나중에 손을 억지로 떼서 보니까 그 눈이 곪았습니다. 눈을 가리고 안 사용하니까 눈이 몇 년 만에 곪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탐험가들이 동굴 속에 탐험해 들어가면 그곳의 생선을 발견하는데 눈이 멀은 생선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어둠속에서 눈이 필요 없으니까 눈이 어두워져 버리고 눈이 없는 생선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영어교육이 우리 한국에 돌풍처럼 불어오는데 영어교육이 특별한 것 없습니다. 자꾸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어는 재주가 아니라 습관인 것입니다. 자꾸 사용해야 돼요. 저는 외국에 가서 공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영어를 정식으로 공부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습관적으로 혼자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생각할 때 영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어로 생각하고 하루 종일 영어로 말하고 일기를 적을 때도 영어로 적고 늘 영어 속에 살면 그것을 늘 사용하면 자꾸 능력이 늘어나서 나중에 자유롭게 영어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어도 계속해서 일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제가 일본어로 요사이 설교하지 않지만 나 혼자는 일본어로 늘 생각하고 말하고 일본어로 글을 적기도 하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늘 사용하면 다섯 달란트가 열 달란트가 되고 두 달란트가 네 달란트가 되고 발전합니다만 파묻어 버리면 녹이 끼어 버리고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중에 이 달란트 받은 사람을 불러서 회계를 할 때 다섯 달란트는 열 달란트 가져오고 두 달란트는 네 달란트 가지고 왔는데 한 달란트 가져간 사람이 한 달란트 그대로 가지고 오니까 대노하셔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있는 사람에게 줘라."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조차 빼앗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이 하루만 피아노 안쳐도 자기가 알고, 이튿날 두 번째 피아노를 안치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사흘 피아노를 안치면 온 청중이 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늘 계속해야 돼요. 목사가 휴가를 가서 설교를 안 하면은 그 다음부터 설교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설교도 계속해서 해야 성령이 넘쳐흐르지 설교를 하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면은 하루라도 전도하지 않으면 전도하는 은사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면 자꾸 전도하는 은사가 주어져서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모든 사람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3절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할지어다 하고"
많은 것을 맡기는 것은 적은 것을 사용할 때 그렇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
한 달란트 가지고서 돌아온 종에게 그렇게 꾸짖고 그것을 빼앗은 것입니다.
여러분, 1997년에 두 여인, 바로 테레사 수녀와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죽었습니다. 전 세계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서 좋은 교육을 받고 수녀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차 여행 중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인도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3만 6천 명의 부랑자들을 돌보며 어린이 집을 세워 고아들과 미혼모를 돕고 정신박약아들을 돌보았습니다. 나환자촌을 지어 나환자들을 돌보는 등 평생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똑같은 여자인데 다이애나 황태자비도 좋은 가문에서 출생하여 좋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찰스 황태자와 결혼하여 궁전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황태자비로서 좋은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정불화로 다섯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고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황태자와 이혼한 이후 염문을 뿌리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똑같은 여성에게 다른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테레사 수녀에게도 달란트를 주었고 황태자비에게도 달란트를 주었엇습니다. 그런데 테레사 수녀는 사명을 다 따라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지만 많은 결실을 맺고 이 땅을 떠났습니다. 반면,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뚜렷하고 확실한 자신의 사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이 땅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호화로운 다이애나보다는 늙고 초라한 테레사 수녀를 기억하며 그의 삶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다이애나비를 보고는 잘했다 칭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테레사를 보고는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많은 것으로 맡기겠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벤저민 리턴버그는 "자신의 잠재능력을 개발하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만 살아가는 것은 실상 일종의 자살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쓸모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교회사 가운데 17세기경에 잊지 못할 한 인물이 있습니다. 굉장히 존경을받고 신령한 사람 사람으로써 나중에 수도원 원장까지 되었는데요. 그는 성직자도, 위대한 저술가나 지위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신도로서 한 수도원의 부엌에서 섬기는 일을 하던 사람으로써 그 이름은 '니콜라스 헤르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로렌스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항상 일상의 작은 일들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을 나타내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수도원을 찾은 방문객들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매일 부엌에서 청소하고 그릇 씻고 음식 만드는 일만 하는데 그것 때문에 불평한 일이 없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음식을 만들면서 계속 기도합니다. '이 음식을 먹는 자에게 하나님의 평강을 채우소서.' 청소할 때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하소서.'하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 외에 남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를 '부엌의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로렌스 형제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꼭 큰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나는 후라이팬의 작은 계란 하나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뒤집는다. 그 일도 끝나고 더 할 일이 없으면 나는 바닥에 엎드려서 하나님을 경배한다." 얼마나 로렌스 형제가 성령이 충만했는지 나중에 수도사들 조차도 로렌스 형제에게 가서 기도를 받기를 원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고 그 신령한 소문이 온 천하에 퍼져나간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부엌에서 일만 했습니다. 불 때고 부엌 청소하고 그릇 씻고 음식 만들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그 순간순간에 이게 내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그릇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깨끗하게 닦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엌을 깨끗하게 청소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불을 잘 때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많은 수도사들을 살찌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사명을 다한 결과에 하나님이 그를 높이사 그로 하여금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은 여러분 평범한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 열매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집에서 밥 짓고 청소하고 애들 기저귀나 갈고 이 인생이 무슨 인생이냐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게 주신 은사면 하나님 이것을 기쁘게 합니다. 남보다 더 즐겁게 음식을 만들고 더 집을 반들반들 청소하고 자녀들을 더 잘 기르는 어머니가 되었다면 놀라운 축복받은 어머니요,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나중에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될 것인 것입니다. 자기의 분야에서 하나님 사명을 쫓아서 최선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구두 닦는 사람은 그것이 자기 사명인 것을 알면 최선을 다해서 예수님의 구두를 닦는 마음으로 구두를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청소하는 사람은 그것이 주님 보내신 사명 줄 알고 하나님의 궁전을 청소하듯이 깨끗이 청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활용하게 되고 하나님이 거기에 보태어서 30배, 60배, 100배가 되도록 축복해 주고 만족한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름 없는 풀이 없고 사명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의 사명을 찾고 그에게 충성할 때 우리는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내가 말단사원으로써 내가 잘한다고 해서 누가 나를 인정해 주겠느냐고 생각하면 큰 오해인 것입니다. 말단 사원으로써 회사에 들어갔으면 그곳이 하나님이 보내신 곳입니다. 내가 가는 곳과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과는 다릅니다. 내가 하나님 섬기는 사람으로써 주님께 의지하고 살면서 그 길이 열려서 직장을 얻었으면 하나님이 나를 그 직장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직장은 내 직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장인 것입니다. 상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충성을 다하고 열심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한 달란트를 두 달란트로 네 달란트로 열 달란트로 자꾸 축복을 해서 승진을 하고 올라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사명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생각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늘 탐욕만 가지고 높은 자리만 바라본다면 나중에 가지고 있던 달란트도 다 빼앗기고 허무맹랑하게 되고마는 것입니다. 인생을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비극을 가지고 끝마치고 말지만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사는 사람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이 세상에 이름 없는 풀이 없습니다. 그처럼 사명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당신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사도행전 22장 10절에 있는 말씀대로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는 눈이 부셔서 장님이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꿇어앉아서 말했습니다. "주님 무엇을 하오리까?" 사울은 자기의 사명을 몰랐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사울을 인도에서 바울로 만들어 주시고 세계 선교를 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난 다음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조차 아끼지 않는다. 사명을 알았기 때문에 목숨을 바치고 달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명을 알면 목숨을 바치고 사명에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가대원 여러분은 주일날 교회 와서 찬양을 드리는 것이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그러면 목숨을 바치고 결사적으로 노래 불러야지 그냥 장난으로 불러서는 안 되잖아요. 예배드리는 여러분은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을 알고 이것이 내 인생의 사명 중에 하나라 알면 교회 와서 졸지 않고 열심히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야 될 것 아닌 것입니까? 모든 일에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자꾸 우리에게 복을 주는 것입니다. 사명을 다하지 않고 복만 달라고 하면은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이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하나님이 목적이 있어서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큰 목적이든 적은 목적이든 내 사명을 받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섬기면 하나님이 일을 많이 했다고 축복해 주시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에 다섯 달란트 받아서 열 달란트 만든 사람이나 두 달란트로 네 달란트 만든 사람에게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 사명에 착하고 충성된 것을 바라봤지 많이 돈 벌었다. 적게 돈벌었다. 그것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조용기 목사가 세계 최대의 교회를 목회했다고 "내 아들아 세계 최대의 교회를 목회했으니 상 받으라." 안하십니다. 내가 큰 교회를 맡을 수 있도록 달란트를 주었는데 그 달란트에 착하고 충성되게 봉사했느냐 게으르고 나태하게 했느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큰 교회는 하나님이 그 능력을 주었으니까 큰 교회를 할 수 밖에 없지요. 제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오직 내가 충성되고 착하게 하나님 달란트를 사용했느냐 안했느냐 그것을 하나님이 내게 물어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을 맡았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할 만하기 때문에 달란트를 주신 것이요 여러분의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맡았던지 착하고 충성되게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결과는 큰일을 한 사람이나 적게 일한 사람이나 하늘에 가서 영광은 똑같이 나누고 똑같은 칭찬을 받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다같이 고개숙여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습니까? 내가 왜 지구에 와 있습니까? 이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섬기는 사람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 사명 없이 바람 부는데로 물결 치는데로 사는 불쌍한 인생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은 나무토막같이 물결에 흔들리며 떠내려가는 자가 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내가 인생의 부르심과 목적을 알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 성하든지 쇠하든지 그 목적을 향해서 달려가서 주님께 칭찬받고 영광 받는 우리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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