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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일, 앞에 있는 것

빌립보서 김경재 목사............... 조회 수 2383 추천 수 0 2011.12.17 18: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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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3:10-14 
설교자 : 김경재 목사 
참고 : 201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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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오직 한 일, 앞에 있는 것

(빌립보서 3장 10-14절)

2011년 10월 16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김경재 목사 (삭개오 작은교회 원로목사)

 

Ⅰ. 들어가는 말

 

약 열흘 전, 2011년 10월 5일 우리시대의 뛰어난 IT 산업계의 창조적 과학자이자 기업인 스티브 잡스가 56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 세계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가 이룬 업적과 삶의 의미를 추모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원인의 직접적 원인이 췌장암이었다는 것이 보도되었을 때, 제 맘엔 두 가지 의미가 빨간 색연필로 밑줄이 쫙 그어졌습니다.

 

첫째는 시편 139장 13-14절 이 생각나면서 유기체 몸 생명 메커니즘의 신묘함에 인간은 더 경외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함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3-14). 소위 IT산업의 천재적 인물로서 21세기 인류문명을 몸의 실핏줄과 신경망처럼 가까이 느끼고 대면하며 살도록 변화시킨 스티브 잡스가 막상 그의 몸의 한 작은 기관 ‘췌장’의 고장을 치료하는 백신을 만들지 못하고 타계했구나! 라는 안타까움 이었습니다. 생명기술공학(BT)이나 정보기술공학(IT)이 20세기 후반에 인류문명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인간의 과학기술은 임간 몸을 포함한 자연의 신비를 모두 이해하고 제어하기엔 아직도 멀었으니 좀 더 겸손해야 하겠고 좀 더 과학자들의 연구에 응원을 더해야겠구나 라는 각성이 들었습니다.

 

둘째는, 그가 그의 췌장암과 싸우면서 그의 삶을 항상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 앞에서 깨어 살면서 별세하기 6년 전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행한 메시지의 마지막 말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기존질서를 당연한 것이거나 불변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내가) 곧 죽을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삶에서 큰 선택을 할 때 나를 돕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죽음 앞에선 모든 외부의 기대, 자존심, 당혹, 실패의 두려움 같은 것은 사라지고, 오직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나는 늘 ‘언제나 갈망하는 자세로 언제나 우직한 자세로’ (Stay hungry, stay foolish) 살려고 스스로 노력해왔습니다”

 

 

II. 바울의 간절한 바람의 편지

 

오늘 설교는 스티브 잡스의 별세소식을 들은 이후, 한 그리스도인의 맘속에 계속해서 미세하게 들려온 바울의 속삭임에서 잉태되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13)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서 각성해야 할 것은, 설교제목 그대로 사도가 말하는 오직 한 일, 그 일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지난 일들에 집착하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그 앞에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의 문제입니다.

본문 12절의 우리말 번역은 헬라어 본문이 전하려는 의미를 손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아주 강하게 의역한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를 원문을 직역하는 형식으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원문에 가깝게 번역된 뉴 옥스퍼드 주해 성경에 따르면 “내가 이미 획득한 것도 아니고 온전하게 이미 이룬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내 자신의 것이 되도록 서둘러 쉬지 않고 나아간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가 나를 그분의 것으로 이미 삼으셨기 때문이다”(직역)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 신앙은 과거의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따로 있고, 그를 믿는 신앙인이 따로 완전 분리되어 있어서 예수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해 내 죄가 사함 받았다는 교리를 머리로서 인정하는 그런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도 내가 죽은 다음 언젠가 내가 다시 되살아 날 것이라고 믿는 미래적 기대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성화 능력 안에서 한번 비췸을 받았다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이제 그 옛 생명 안에서 싱싱하게 작동해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는 체험’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바르게 ‘믿음’을 이해한다면, 우리 한글성경번역 곧 본문의 철저한 의역이 틀린 번역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이, 곧 바울의 에게도 붙잡아야 할, 성취되어야 할 삶의 오직 한 일, 그것이 궁극적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신앙은 바로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부활을 믿는 것은, 미래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죽음의 세력 혹은 죽임의 세력을 극복하면서 부활의 권능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고난의 대속을 믿는 다는 것은 ‘밀양’이라는 영화가 고발하듯이 용서해주어야 할 당사자는 제외된 채 죄인과 자비하신 하나님과의 협상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죄의 권세를 철저하게 이기시려고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의 사랑의 고난, 정의의 고난, 대리직의 고난, 치유의 고난, 승리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의 핵심을 총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 그가 과거에 그렇게 자랑스러워하였고, 자기존재감의 근거로 삼았던 출생가문, 높은 학문경력, 로마의 시민권, 각종 철학적 율법적 지식, 자신의 추구하던 이상과 이념을 모두 ‘배설물’처럼 여기고 도리어 참 생명에 방해되는 것들이라고까지 여기며, 얻고자 한 ‘오직 한 일’은 무엇인가요?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큰 야망을 각자 품고 사회에로 첫발을 떼고 나서는 전도양양한 유능하고 패 기찬 학생들에게 다소 어울리지 않는, 좀 분위기가 무거운 자기 고백적 말을 한 것과 통합니다. 잡스는 20대 애플 컴퓨터 회사를 창설한 이후, 줄곧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이렇게 자문자답했다고 합니다. “만약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아니 의사로부터 남은 삶이 이제 열흘이나 일주일 정도 된다고 최후통첩을 받았다면, 수첩에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겠다고 스케줄 잡아놓은 그 일을 꼭 할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개인 컴퓨터, 핸드폰, 아이폰을 가장 단순함, 아름다움, 인간적인 기계로 만드는 데만 전념을 했듯이 우리 삶도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의 키워드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사람처럼 오직 추구해야 할 ‘한가지 일’이란 것이 예수 잘 믿는 일이랄지, 교회 열심히 봉사하는 일이랄지, 기독교를 세계에 더 넓게 전파하기 위해 세계선교에 힘쓰는 일이랄지 그런 구체적 ‘신앙적 경건행위‘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일의 형태는 각양각색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겉으로 보기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지극히 사소한 개인적인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자기 재산을 가지고 후손들이 다투지 않게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유서를 변호사를 불러 남기면서 한 몫 크게 떼어 그렇게 잘 실천하지 못했던 장학 사업이나 자선사업에 쓰도록 재산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예술가나 작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미완성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평생 풀지 못하고 원한품고 지냈던 일가친척, 직장, 교인에게 용서하고 화해를 청하는 일 일수도 있습니다. 죽기 전에 하고픈 오직 한 가지 일이, 남겨놓고 가는 마누라가 고생 할 것을 생각하면서, 부엌구조를 고쳐주고 세탁기 한 대를 사주고 가는 일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한 것은 죽음을 하루나 열흘 앞둔 사람이 주식시장 동향을 살피면서 주식투자 품목을 고르는데 신경을 집중한다든지, 자기 죽은 다음 묘비 비석의 크기와 묘비명의 내용이 자기 명예를 깎아내릴 염려 없는지 신경 쓴다든지, 남은 시간을 자연의 아름다움과 은혜 입은 감사한 일을 생각하지 않고 직계후손에게 권력과 부를 변함없이 전승되도록 비밀 마피아 단을 조직하고 떠나는 일 같은 것은 안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번잡한 것을 단순하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가볍게, 죄책감을 벗어버리는 참회의 고해성사를,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원망이나 결핍감을 갖고 살았던 지난날을 회개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등이 마땅한 자세일 것입니다.

 

그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 예수가 말씀하셨던 ‘다 이루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않을 터이요,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 내말에 거하는 자는 진리를 안다.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한다’등등 여러 모양 말씀으로 언표 하셨던 그것, 곧 ‘영원한 생명’을 붙잡는 일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직업이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직 한 가지 일만 있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오직 그 한 일’을 향하여 가는 작은 골목길이요 방편들이 있을 뿐입니다.

 

 

III. 오늘 한국교회와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점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현시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지 분별할 눈이 조금 뜨이는 것 같습니다.

 

첫째, 지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하는데,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인 형국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옳지도 않고 좋지도 않지만, 과거사에 집착할 만큼 붙잡혀있는 개인과 공동체는 병적인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사적으로 냉전시대가 끝난 지 언제인데 아직도 한국 사회는 좌우이념논쟁으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삼류정치인들이 판을 칩니다. 근본주의 신학 교리와 진화론 논쟁이 끝난 지 언제인데, 한국 기독교는 17세기와 19세기 초에서 바늘이 멈춘 시계를 거실에 걸고 살고 있는 종교집단과 같습니다.

 

둘째, 내가 혹은 우리가 이미 얻었다고 이미 온전해졌다고 자만하면서, 상대적인 성취와 부분적인 성취를 절대시하면서 타자를 업신여기거나 자기기만적 자기만족 속에 스스로 빠져있습니다. 예수께서 가장 경계하셨던 바리새파 사람들의 실족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독교진리가 경고하는 인간의 두 가지 병은 교만병과 태만병입니다. 교만병은 이미 다 이루었다고, 역사는 더 이상 기대할 필요 없다고 단정하면서 삶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태만병은 교만병과 정반대 같지만 미래의 새로움을 보지 못하고 현실에 절망하거나 안주하면서 희망을 포기해버리는 죄라는 점에서 동전의 앞뒤와 같습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뉴욕 리버티광장의 시민의 목소리는 현재 지구촌의 문명적 삶의 스타일이 보다 인간답고, 생명가치가 존중되는 문명으로 전환되어야 할 카이로스가 도래했다는 시대의 표징입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같은 시대, 같은 지구촌, 같은 역사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인간 중에 많은 사람이 기본생존의 어려움에 부대끼고 있는데, 수 백 만원 한다는 명품핸드백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한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자유로운 사회의 징표도 아니고 개인의 취향이거나 고급문화를 용인하는 라이프스타일 문제가 아니라, 문명이 병들었다는 증표일 뿐입니다.

 

셋째, 우리사회와 한국교회 문제의 핵심은 한 가지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일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유능한 일이고, 옳은 일이라는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성은 번잡함이나 복잡함보다 진리에 더 가깝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부지런함과 섬세함을 꾸짖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마르다를 옳다고 칭찬한 것입니다. 마르다가 너무 많은 것을 염려하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MB정부가 들어서서 국운이 일취월장 번영하는 단계라고 확신해서 그런지, 지나치게 세계 온갖 대회를 다 한국에 끌어드리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성공한 한국 대형교회들은 교회당을 크고 장엄하게 축성하고, 예배를 웅장하고 거창하게 드리고, 신도숫자가 많으면 그런 것들이 곧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는 복음주의교회의 표징이라고 착각합니다. ‘오직 한가지 일’을 잊어버리고 ‘여러 가지 일’을 벌리려는 유혹에 넘어가 있습니다.

 

‘오직 한가지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일상적인 삶의 중요성을 소홀하게 대한 다는 것이 아니라, 무성한 잎과 꽃에 취하지 않고 뿌리와 알곡열매를 중시하는 농부의 맘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좋아하는 것은 잎과 꽃을 아름답게 가꾸어서 사람의 미적 감각을 즐겁게 하려는 원예가의 맘입니다. 농부의 맘은 뿌리가 튼튼하고 씨앗이 영그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예가의 맘은 꽃모양이 풍성하고 씨는 없고 당도 높은 과즙이 많은 과일생산이 좋은 것입니다.

 

농부와 원예가는 우리 생활 속에 다 필요하고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만 문명과 사회와 종교가 전환기의 위기에 처할 때, 마땅히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할 우선적인 선택은 원예가의 맘이 아니고 농부의 맘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강연의 마지막 말 “Stay hungry, stay foolish!”은 시대와 문명전환기에 사는 깨어있는 영혼들이 경청해야 할 키 워드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사회의 삶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여 변혁과 새로움의 모험이 아니라 안정과 더 큰 지속적 번영이 중요하다는 입장과, 문명과 사회적 라이프스타일은 변혁되어야하고 새로움의 모험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는 두 가지 입장이 대별되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투표행위가 정당의 이해관련에서 이뤄질 땐 정치행위이지만, 정당이나 사회계급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생명, 평화, 정의’의 관점에서 이러질 땐 신앙행위가 됩니다. 그 선택과 판단 또한 여러분의 몫이요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의미 있고 아름다운 가을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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