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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사람

빌립보서 김동호 목사............... 조회 수 2892 추천 수 0 2012.01.24 17: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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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3:1-12 
설교자 : 김동호 목사 
참고 : 2010.7.18 

1.jpg욕심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사람.

빌 3:1-12.


‘성취동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성취하려고 하는 동기가 강한 사람이 무엇을 하든 잘 한다라고 할 때 쓰는 말입니다. 공부든, 사업이든, 운동이든 나름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다 성취동기가 남보다 강한 사람들입니다.


‘성취동기’라는 말을 그냥 쉽게 풀어쓰면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욕심’이라는 말은 좀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욕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욕심이 잉태 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성경에 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욕심’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는 말은 ‘의에 남다른 욕심이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욕심에는 두 종류의 욕심이 있습니다. 하나는 의에 대한 욕심이고 다른 하나는 불의에 대한 욕심입니다. 하나님이 부정적으로 말씀하신 욕심은 욕심 그 자체라기보다는 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욕심을 버린다고 의에 대한 욕심까지 버린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불의한 것에 대한 욕심을 갖는 것도 문제이지만 의로운 것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 또한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에서 부정적인 면을 제한다면 저는 욕심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뭔가 건강한 활력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베개 하고 누었으니…….’ 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욕심 없이 깨끗한 것은 좋아 보이나 사람이 왠지 무기력 해 보입니다. 세상에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팔베개 하고 누워 허송세월을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죄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죄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무조건 욕심 없이 누워 있는 것 그 또한 심각한 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욕심이 없었다면 세상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는 욕심 때문에 사람도 발전을 하고, 세상도 발전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욕심을, 좋은 말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쏟아내는 열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몇 십 년을 공부합니다. 그 공부의 양은 정말로 엄청납니다. 꿈을 위하여 투자하는 돈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이룹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투자하여 이루는 사람들의 꿈 또한 상상을 초월합니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과 물질의 몇 십 배, 몇 백 배 아니 몇 천 배를 이루어냅니다.


사람은 하늘을 날지 못하지만, 날고 싶어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연구하고 노력하여 세상의 어떤 새 보다도 빨리 그리고 멀리 날아다닐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물고기보다 헤엄을 잘 칠 수 없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고 투자하여 세상의 어떤 물고기보다 빨리 그리고 멀리 물위와 물속을 다닐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여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성공하여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치른 대가를 생각하면 저들이 누리고 있는 축복된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성공하여 꿈을 이룬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이 지나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치는 것이 오히려 못 미치는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원인과 동력이 끝없는 욕심이기 때문에 저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성공의 끝이 없습니다. 이 끝없는 성공과 발전의 욕망이 말 그대로 과유불급의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열심히 노력하고 투자한 사람과 그렇지 않고 대충대충 자신의 인생을 산 사람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생각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여 많은 것을 남긴 사람과 자신의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여 꿈을 이루고 성공한 사람이 누리고 사는 상과 축복에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천박한 자본주의자(자본주의가 천박하다는 것이 아니라)도 아니고 싶습니다.


사회주의는 발전이 없습니다. 성공과 성장과 발전의 엔진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회주의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공과 성장과 발전이 개인적인 야망과 욕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무한질주하는 것 같아 보이는 자본주의도 결국은 성장하다가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욕심이 없으면 사회주의의 몰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욕심이 자신과 세상을 이끌도록 무한정 내버려두면 결국은 자본주의도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누구보다도 성취동기가 강했던 사람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누구 못지않게 노력하고 투자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소위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뒤 사람이 변하였습니다. 완전히 180도 변하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변하였는가를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있습니다. 그것은 말도 못할 희생과 노력으로 얻은 세상적인 자랑과 성공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바울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180도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정말 완전히 거듭났습니다.;


바울은 전에 귀히 여기던 세상의 모든 자랑과 욕심을 모두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욕심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욕심을 버린 사람이 아니라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적인 것에 대한 욕심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욕심으로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여전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바울의 모습을 오늘 본문 12절에서 14절 사이의 말씀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위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지난 2월 달 저는 북한이 화폐개혁에 실패하여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쌀값이 10 이상 올랐고 쌀값이 오르자 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쌀을 시장에 내놓지 않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벌써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누가 쌀 300톤만 사주면 그것을 무상으로 풀지 않고 시장에 풀어 쌀값을 내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담스러웠지만 그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도전했습니다. 우리교회 게시판에 ‘내팔자’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내용은 돈을 모아 북한에 쌀을 사서 보내 그것을 시장에 풀어 북한의 쌀값을 내려보자는 황당한 내용이었습니다. 설교 원고를 작성하면서 확인해 보니 어제까지 4,411명이 그 글을 보았고 116명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총 1,897명이 601,422,840원을 헌금하였습니다. 3억 원을 모으려고 목표했던 일인데 순식간에 곱절을 모금한 것입니다. 아마 저는 평생 이 일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베트남 햅찹쌀 760톤을 사서 북한에 보냈습니다. 아이들을 위하여 학용품도 사서 보내고 분유도 한 컨테이너 사서 보냈습니다. 학용품과 분유는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니 크게 어렵지 않았으나 760톤의 쌀을 북한에 보내 그것을 판매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길을 통하여 결과적으로 판매허가를 받았고 천안함 사건이 터지기 전 결국 그 쌀을 북한에 실어 보낼 수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약 절반 정도를 팔았습니다. 쌀은 원가 이하에 팔았고, 북한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북한 돈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니 환차손도 많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투자한 금액에 절반이나 회수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기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상과 기도가 적중하여 여하튼 지금 우리 쌀이 들어간 그곳은 쌀값이 다시 거의 원상태로 떨어졌답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를 기점으로 삼으면 쌀값이 1/8이 되었답니다. 쌀이 760톤이나 갑자기 들어오게 되니 쌀값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쌀을 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 무모한 도전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졌습니다.


돈이 우리의 욕심이었다면 우리는 망한 것입니다. 돈이 반토막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욕심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욕심은 돈 욕심 때문에 사람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쌀을 풀지 않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쌀을 풀게 하고, 쌀값을 떨어지게 하여 다만 몇 사람의 생명이라고 건져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꿈이었고 희망이었고 욕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와 같은 우리의 욕심을 성공적으로 채웠습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그의 시편 4절에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 하나이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순식간에 몇 억 정도의 돈을 손해 보았는데도 쌀값이 떨어져 많은 북한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주는 기쁨 때문에 배부릅니다. 정말 다윗이 말이 옳습니다. 장사를 잘 하여 몇 억 원을 돈을 순식간에 번 것보다 더 기쁘고 배부릅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적인 기준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어느 정도 성공한 교회입니다. 자신의 꿈과 욕심을 이룰 수 있는 사이즈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 못지않은 좋은 예배당도 지을 수 있고 그것을 이용하여 좀 더 큰 사이즈의 교회로 발전할 수도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바꾸었습니다. 우리의 성공을 우리의 욕심을 채우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공과 그 성공의 힘을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욕심을 채우는데 쓰기로 하였습니다. 바울이 욕심을 개인적인 욕망과 야망을 채우는데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로 바꾼 것처럼 우리 교회도 부족하지만 그렇게 한 것입니다.


가끔씩은 섭섭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보다 적은 교회들이 크고 훌륭한 예배당을 짓고 이런저런 불편 없이 교회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솔직히 샘이 나기도 합니다. 아직도 덜 거듭나서 그런겁니다. 아직도 그와 같은 것에 대한 미련과 욕심이 다 없어지지 않아서 그런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교회가 선택한 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세상에서도 성공한 많은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저는 저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저들의 능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로마시민권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들이 바울처럼 거듭나서 저들의 관심과 욕심을 개인과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로 바꿀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저들의 성공과 능력이 이 땅에 하나님의 의와 뜻을 이루는데 집중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성공한 교회입니다.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가진 교회입니다. 교인들 중에도 성공한 사람이 많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힘들이 주를 위하여 집중된다면 우리 한국교회는 한국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우리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아직도 거듭나기 전의 바울 즉 사울과 같은 수준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와 교인들의 욕심이 교회와 교인 자기 자신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뜻을 두고 욕심을 품은 교회와 교인들이 아직 많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를 믿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욕심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욕심을 버리지 마십시오. 욕심 없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욕심 없다고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베게하고 눕지 마십시오. 절대로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십시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더 큰 욕심을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성공하십시오. 고지를 정복하십시오. 복을 받으십시오.


그런데 그 욕심이 중심과 목적을 자신에게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십시오. 하나님께 대하여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것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울 한 사람 때문에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행하신 일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이 사도행전이지 사실은 사도행전이 아니라 바울행전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사도행전의 대부분의 역사는 거의 다 바울의 선교여행을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은 전에 자신을 위하여 공부하고 자신을 위하여 출세하려고 하였던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으로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거듭난 이후 그의 욕심이 더 커졌습니다. 그의 욕심이 자신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바뀌자 전에 자신을 향하여 품었던 모든 욕심이 다 배설물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성공이 다 배설물처럼 여겨질 만큼 큰 욕심을 그는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 욕심을 이루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는 높은 뜻 교회입니다. 높은 뜻 교회란 뜻을 우리에게 두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욕심을 자신에게 두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교회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뜻과 욕심을 세상과 자신에게 두지 말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욕심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사람이 되십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이 되십시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과 같이 하나님께 욕심을 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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