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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3: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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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본문: 빌립보서 3: 12- 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미국 뉴 저지주의 상원 의원인 모르우씨가 뉴욕시를 떠나는 기차를 탔을 때 그는 기차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차표를 제시하기를 기다리던 역무원이 「모로우씨,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상원의원이신데 설마 표를 안 사셨겠어요. 그러나 후에 표를 찾으시면 우편으로 보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모로우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어려움은 그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가는 행선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기차표를 지금 꼭 찾아야만 합니다.」 미상원의원 모로우씨는 정확한 행선지를 모른 채 기차에 탔던 것입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삶의 분명한 목표가 없이, 인생을 아무런 계획성도 없이 살아가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시세에 따라 이리저리 요동하면서 살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쉬임없이 지금도 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종착역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자는 운전을 열심히 하되 목적지 없이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운전자가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자입니까? 열심히 달리고 또 기름을 새로 채워 달리지만 목적지를 모르는 채로 달리는 운전자,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운전자가 되기를 결코 바라시지 않습니다. 옛날에 어느 시골노인이 서울 사는 딸네 집을 찾아왔습니다. 몇 년 사이에 어찌나 변했는지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아서 노인은 당황해 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친절한 젊은이가 노인에게 도와드릴 것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딸네 집을 찾아왔는데 도무지 어느 집인지 모르겠다고 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젊은이는 주소도 모른다는 노인의 말에 난처해져서 그럼 혹시 딸네 집에 다른 집과 달랐던 무슨 특징이 없었던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한참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 치며 「이제 됐다.」 싶은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있었지, 있었고말고. 내가 그때 기억해 두기를 잘했지. 우리 딸네 집 담장 위에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네.」 노인은 보이는 것이 영원하리라는 생각으로 표적을 삼았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비 본질의 것들에 현혹되어 삶의 목표를 그것에 둘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천국, 사랑, 믿음, 소망 그러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크리스천 삶의 목표들입니다. 우리가 잘못 된 삶의 목표, 헛된 꿈들은 결국 삶을 절망으로 이끕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무관한 것일 때 다 헛되고 무익한 것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야고보서4:14-16)「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1:24) 한 나그네가 여행 중에 날이 저물자 대궐처럼 큰 집 앞에서 하룻밤 묵기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집주인은 정중하게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집은 여관이 아니니 저 건너편 여관에나 가보십시오.」 그러자 나그네가 주인에게 질문을 하면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이 큰집에서 몇 대가 살았습니까?」「16대째 살고 있다오.」「그렇다면 그분들이 다 생존해 계십니까?」 「허 어리석은 소리하지 마시오. 모두 세상 떠난 지 오래 되었소.」 그러자 이 나그네가 반색을 하며 「그렇다면 이 집이 여관방과 같지 않습니까? 대대로 자고 가고 자고 가기를 16대나 하였으니 저도 하룻밤만 자고 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주인은 어쩔 수 없이 하룻밤만 묵는 것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이 잠시 거쳐가는 곳이라면 목적지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처량하고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얼마 전 교회에 나온 할머니 한 분의 말씀이 기억납니다.「이제는 이 세상보다는 저 세상의 일이 더 문제입니다.」 여관 주인의 상냥함과 여관의 아름다운 분위기에 사로잡혀 가야 할 목적지를 잊어버리고 눌러 살려고 한다면 참으로 한심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출구를 빠져나갈 때 새롭게 가야 할 최종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인생은 준비의 연속입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는 것은 내일의 안정된 삶을 위함입니다. 결혼하는 이유도 오늘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생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준비하며 사는 삶이 인생인데 영원한 내세를 준비하지 못하고 산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삶입니다. 사도바울은 인생의 목표가 뚜렷했습니다. 본문에서 그는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와 복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우리 크리스천은 세상 사람처럼 헛되고 무익한 것을 좇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고, 세월을 아껴 하나님 나라 확장과 주님께 영광돌리는 일을 생의 목표로 두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104세 된 할아버지와 99세가 된 할머니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영감, 하나님이 우리를 잡아갈 장부에서 이름을 빠뜨린 모양이에요.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을 보면 장부에 명단이 빠진 것이 분명해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눈을 부라리며 말을 막았습니다. 「쉿, 하나님 들을라! 아무 소리 말어. 하나님이 들으시고 아차 하고 장부를 본 다음 우리를 다 잡아가면 어쩌려고 그래.」 죽음 이후의 세계는 새로우면서도 무한한 세계입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영생이 있음을 말씀합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하나님께서 흙으로 육체를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영혼)를 불어 넣으심으로 최초의 인류인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눈에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영혼(마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인간은 한 번 태어나고 반드시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육체는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히 늙어 죽습니다. 하지만 영혼은 물질이 아니므로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늙거나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합니다.누구든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천국에서 영원히 사느냐? 지옥에서 영원히 사느냐? 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나의 몫입니다. 어린이가 엄마 품에서 자라야 행복하듯이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행복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번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책으로 장식된 방안에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탐구해 보았지만 알 길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왔다가 오디로 간단 말인가?」 그는 견디다 못하여 방문을 박차고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그의 머리속에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라는 의문이 쉬임 없이 외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번민한 나머지 향방 없이 헤메다가 지나가던 사람과 이마를 맞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대낮에 길도 모르는가?」 「예, 바로 길을 몰라서요.」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단 말이요?」 「예, 바로 그걸 몰라서.」 「참 이상한 사람이로군!」 이 이야기는 독일의 베를린 대학교의 철학교수였던 쇼펜하우어의 어느 날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하나의 우스운 이야기로, 또는 흥미 없는 이야기로 지나치시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쇼펜하우어만이 아닌, 길을 모르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갈 곳도, 길도 알지 못한 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갈 곳을 분명히 알고, 가야할 길을 가고 있습니까?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당신은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당신의 친한 친구가, 당신의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 곁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몸은 무덤에 묻혔지만 그는 어디로 갔습니까? 당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당신은 어디로 갈까요? 영원히 말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참 길이십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음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기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로마서 4:25).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로운 분으로서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베드로전서3:18).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그리고 천국을 향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 기도: 사랑의 주님, 나의 달려갈 목표와 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달려갈 길이 향방 없는 자처럼 내 달음질과 수고가 헛되지 않게 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적극적인 마음으로 살도록 해주소서 목표를 향해 서두르지 말고 거기서 돌아서지도 말고 희미한 과거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슬퍼하지도 말고 숨겨진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지도 않고 내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기쁨에 찬 마음으로 주님을 푯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해주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갈릴리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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