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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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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곤주 목사 |
참고 : |
<새언약교회 김곤주 목사의 빌립보서 강해 28>
제 목: 그리스도 안의 참 평안
부 제: 하나님의 평강
본 문: 빌립보서 4:6-7
제가 호주에 처음 지낼 때 호주 할머니 댁에서 머물렀는데 그 할머니 성함이 베티입니다. 베티 할머니는 밝고 명랑하신 분으로 동네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활동하실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서 책임있게 감당해 오시는 아주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인입니다. 그 베티 할머니의 집은 좀 낡고 오래된 집이었는데 그 집의 화장실 문을 열면, 정면 벽 위에 이런 성경 구절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Let the peace of God rule in your hearts.” 골로새서 3장 15절에 나오는 말씀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베티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가운데 그분이 살아오신 인생의 사연들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이 성경 말씀이 베티할머니께서 인생의 시련을 만날 때마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늘 마음에 두었던 말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 전체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돼라.” 이 말씀을 좀 바꾸어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십시오. 하나님의 평화가 당신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당신의 마음을 잘 통제하십시요. 또한 우리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몰아가는 환경과 세상으로 인하여 마음의 평화가 깨지지 않도록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서는 ‘마음의 평화를 잘 유지하라’는 명령의 말씀 혹은 권면의 말씀으로 주어져 있지만, 반면에 요한복음 14장 27절을 보면 이러한 마음의 평화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다시 말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내가 너희에게 줄테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4장 6-7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평화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 누릴 수 있는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빌립보서 4장 6절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는 말씀은 우리가 염려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실 세상을 살면서 걱정을 안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때로는 밤잠을 설칠 만큼 심각한 걱정을 할 때가 있고, 더 많은 경우에는 잠시 머리를 스쳐가는 걱정거리들이 우리의 인생에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느 미국 대학 심리학팀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람들의 걱정거리 중 40%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들이고 나머지 30%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짜 걱정할 만한 문제는 8%밖에 되지 않지만, 그것도 심각하게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걱정과 염려로 인해서 우리는 쉽게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잃어 버리고 살아갈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걱정과 염려를 계속 마음에 품고 살아가면서 결국 마음과 영혼이 병들어 가게 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전서 5장 7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한글 성경은 ‘맡기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원문에는‘에필립토’ 즉 ‘던지다’는 더 강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도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즉 ‘당신의 모든 걱정거리를 주님께 던져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라고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여러분의 걱정거리들을 주님께 과감하게 던져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6장 25-30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우리 교회 홈페이지 선교 소식을 보면 아이보리 코스트라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호주인 제넷의 선교 편지가 있습니다. 제넷은 제가 몰링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같이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호주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깝게 지냈던 분입니다. 그 제넷의 편지 내용 가운데 애완용으로 기르던 자신의 고양이 ‘키티’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그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키티는 내가 빗자루를 내려놓는 즉시 자신에게 줄 음식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키티는 약 15초 정도의 시간을 나에게 준다. 그리고 나서는 ‘야옹’ 하고 울기 시작한다. 그런데 약 30초가 지나도 음식이 나타나지 않으면 키티는 더욱 크고 날카로운 소리로 ‘야옹’ 하고 운다. 종종 예상치 못한 일로 내가 약 45초가 지나도록 음식을 갖다 주지 않으면, 그때부터 키티는 내 곁에서 빙빙 돌거나 펄쩍펄쩍 뛰면서 거의 절망적인 소리를 내면서 울어댄다.
그때 나는 키티에게 말한다. ‘키티, 나를 믿어. 내가 언제 한번이라도 너를 굶긴 적이 있니? 너는 내가 항상 너를 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잖아. 왜 오늘은 너에게 음식을 안 줄 것처럼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니?” 이 내용은 제넷 선교사가 ‘키티’를 통해서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바로 키티와 같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마치 갈릴리 호수에 일어나는 풍랑과 같이 뜻하지 않은 큰 어려움들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갈릴리 호수는 요르단 계곡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호수라고 하기에는 워낙 넓고 깊어서 갈릴리 바다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갈릴리 호수 주위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산 위의 찬 공기가 급속히 냉각되어 내려오면 예상치 못한 큰 파도와 돌풍이 갑작스럽게 발생한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4장 38-39절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다가 이러한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때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은 큰 풍랑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풍랑과 파도를 꾸짖어 잠잠케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파도와 풍랑을 만날 때 우리는 두려워하고 염려하면서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파도와 풍랑을 잠잠케 하셨던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 속에서 만나는 거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실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빌립보서 4장 6절은 우리가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을 때 어떻게 감사하면서 기도가 나올 수 있습니까? 그게 과연 가능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돌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하나님의 주권을 알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고,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자녀로 만들어 가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아갈수록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클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할 수 있고 그 결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4장 7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은 영어 성경에서 번역하고 있는 것처럼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즉 ‘우리의 모든 이해를 초월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세상 사람들이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마음 가운데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들인 그리스도인들 만이 누릴 수 있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한 마음의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신 후,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평화는 본문 7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을 때 누리게 되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걱정과 염려가 찾아올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염려하는 대신에 QT 책을 집어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거나 혹은 성경을 직접 읽으면서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걱정과 염려가 찾아올 때 염려하는 대신에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이상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쾌락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육체적인 쾌락과 도박 등에 빠져서 처절한 환멸감을 느끼는 악순환을 거듭했고 자신의 삶에서 참 만족을 얻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촌을 산책하면서 한 농부를 보았는데 그의 얼굴에 평화가 넘쳐 보였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당신은 어떻게 이처럼 얼굴에 평화가 넘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늘 기도하면서 주님과 교통함으로써 마음에 평안을 얻고 삽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톨스토이는 그후부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의 죄를 예수님께 맡기고 마음에 깊은 평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그의 나이 55세에 기록한 <신앙론>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지난 55년을 살아오는 동안 약 15년을 빼놓고는 기쁨이나 행복이나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았다. 내가 18세 되던 해, 한 친구는 내게 찾아와서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나를 설득했고, 나는 그 설득에 매료되어 기독교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안식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종교가 속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내 나이 55세, 나는 신앙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진정한 안식을 발견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인생의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불리는 성령 안에 우리가 머물러 있을 때 참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를 보면 처음 세 가지가 ‘사랑, 기쁨, 평화’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 14 장17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층만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에 임할 때 우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 청년이 외국에 나갈 기회가 생겨서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다 위를 통과할 때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장대 같은 비가 비행기 창문을 부딪치는 소리를 듣던 이 청년은 놀라서 스튜어디스를 불러서 자신의 불안함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러자 스튜어디스는 웃으면서 “지금은 폭풍우를 뚫고 가지만 잠시 후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 성층권으로 들어갑니다. 성층권은 온도가 일정하고 기후의 흐름이 약하기 때문에 비행기가 편안하게 갈 수 있으니 안심하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높여 햇빛이 보이는 성층권으로 들어서자 고요하게 순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도 마음의 성층권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더 깊이 들어가고 기도 생활이 더 깊어질수록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성층권과 같은 영적인 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성층권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성령의 충만함 속에 거하게 되면 그때는 우리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마음에 임하는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종종 걱정과 염려가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의지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염려와 걱정거리들을 몰아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걱정과 염려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성령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참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제 목: 그리스도 안의 참 평안
부 제: 하나님의 평강
본 문: 빌립보서 4:6-7
제가 호주에 처음 지낼 때 호주 할머니 댁에서 머물렀는데 그 할머니 성함이 베티입니다. 베티 할머니는 밝고 명랑하신 분으로 동네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활동하실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서 책임있게 감당해 오시는 아주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인입니다. 그 베티 할머니의 집은 좀 낡고 오래된 집이었는데 그 집의 화장실 문을 열면, 정면 벽 위에 이런 성경 구절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Let the peace of God rule in your hearts.” 골로새서 3장 15절에 나오는 말씀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베티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가운데 그분이 살아오신 인생의 사연들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이 성경 말씀이 베티할머니께서 인생의 시련을 만날 때마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늘 마음에 두었던 말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 전체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돼라.” 이 말씀을 좀 바꾸어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십시오. 하나님의 평화가 당신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당신의 마음을 잘 통제하십시요. 또한 우리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몰아가는 환경과 세상으로 인하여 마음의 평화가 깨지지 않도록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서는 ‘마음의 평화를 잘 유지하라’는 명령의 말씀 혹은 권면의 말씀으로 주어져 있지만, 반면에 요한복음 14장 27절을 보면 이러한 마음의 평화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다시 말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내가 너희에게 줄테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4장 6-7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평화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 누릴 수 있는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빌립보서 4장 6절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는 말씀은 우리가 염려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실 세상을 살면서 걱정을 안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때로는 밤잠을 설칠 만큼 심각한 걱정을 할 때가 있고, 더 많은 경우에는 잠시 머리를 스쳐가는 걱정거리들이 우리의 인생에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느 미국 대학 심리학팀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람들의 걱정거리 중 40%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들이고 나머지 30%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짜 걱정할 만한 문제는 8%밖에 되지 않지만, 그것도 심각하게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걱정과 염려로 인해서 우리는 쉽게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잃어 버리고 살아갈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걱정과 염려를 계속 마음에 품고 살아가면서 결국 마음과 영혼이 병들어 가게 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전서 5장 7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한글 성경은 ‘맡기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원문에는‘에필립토’ 즉 ‘던지다’는 더 강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도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즉 ‘당신의 모든 걱정거리를 주님께 던져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라고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여러분의 걱정거리들을 주님께 과감하게 던져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6장 25-30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우리 교회 홈페이지 선교 소식을 보면 아이보리 코스트라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호주인 제넷의 선교 편지가 있습니다. 제넷은 제가 몰링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같이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호주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깝게 지냈던 분입니다. 그 제넷의 편지 내용 가운데 애완용으로 기르던 자신의 고양이 ‘키티’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그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키티는 내가 빗자루를 내려놓는 즉시 자신에게 줄 음식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키티는 약 15초 정도의 시간을 나에게 준다. 그리고 나서는 ‘야옹’ 하고 울기 시작한다. 그런데 약 30초가 지나도 음식이 나타나지 않으면 키티는 더욱 크고 날카로운 소리로 ‘야옹’ 하고 운다. 종종 예상치 못한 일로 내가 약 45초가 지나도록 음식을 갖다 주지 않으면, 그때부터 키티는 내 곁에서 빙빙 돌거나 펄쩍펄쩍 뛰면서 거의 절망적인 소리를 내면서 울어댄다.
그때 나는 키티에게 말한다. ‘키티, 나를 믿어. 내가 언제 한번이라도 너를 굶긴 적이 있니? 너는 내가 항상 너를 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잖아. 왜 오늘은 너에게 음식을 안 줄 것처럼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니?” 이 내용은 제넷 선교사가 ‘키티’를 통해서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바로 키티와 같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마치 갈릴리 호수에 일어나는 풍랑과 같이 뜻하지 않은 큰 어려움들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갈릴리 호수는 요르단 계곡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호수라고 하기에는 워낙 넓고 깊어서 갈릴리 바다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갈릴리 호수 주위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산 위의 찬 공기가 급속히 냉각되어 내려오면 예상치 못한 큰 파도와 돌풍이 갑작스럽게 발생한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4장 38-39절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다가 이러한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때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은 큰 풍랑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풍랑과 파도를 꾸짖어 잠잠케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파도와 풍랑을 만날 때 우리는 두려워하고 염려하면서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파도와 풍랑을 잠잠케 하셨던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 속에서 만나는 거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실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빌립보서 4장 6절은 우리가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을 때 어떻게 감사하면서 기도가 나올 수 있습니까? 그게 과연 가능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돌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하나님의 주권을 알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고,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자녀로 만들어 가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아갈수록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클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할 수 있고 그 결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4장 7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은 영어 성경에서 번역하고 있는 것처럼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즉 ‘우리의 모든 이해를 초월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세상 사람들이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마음 가운데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들인 그리스도인들 만이 누릴 수 있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한 마음의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신 후,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평화는 본문 7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을 때 누리게 되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걱정과 염려가 찾아올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염려하는 대신에 QT 책을 집어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거나 혹은 성경을 직접 읽으면서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걱정과 염려가 찾아올 때 염려하는 대신에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이상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쾌락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육체적인 쾌락과 도박 등에 빠져서 처절한 환멸감을 느끼는 악순환을 거듭했고 자신의 삶에서 참 만족을 얻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촌을 산책하면서 한 농부를 보았는데 그의 얼굴에 평화가 넘쳐 보였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당신은 어떻게 이처럼 얼굴에 평화가 넘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늘 기도하면서 주님과 교통함으로써 마음에 평안을 얻고 삽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톨스토이는 그후부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의 죄를 예수님께 맡기고 마음에 깊은 평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그의 나이 55세에 기록한 <신앙론>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지난 55년을 살아오는 동안 약 15년을 빼놓고는 기쁨이나 행복이나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았다. 내가 18세 되던 해, 한 친구는 내게 찾아와서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나를 설득했고, 나는 그 설득에 매료되어 기독교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안식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종교가 속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내 나이 55세, 나는 신앙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진정한 안식을 발견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인생의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불리는 성령 안에 우리가 머물러 있을 때 참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를 보면 처음 세 가지가 ‘사랑, 기쁨, 평화’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 14 장17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층만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에 임할 때 우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 청년이 외국에 나갈 기회가 생겨서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다 위를 통과할 때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장대 같은 비가 비행기 창문을 부딪치는 소리를 듣던 이 청년은 놀라서 스튜어디스를 불러서 자신의 불안함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러자 스튜어디스는 웃으면서 “지금은 폭풍우를 뚫고 가지만 잠시 후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 성층권으로 들어갑니다. 성층권은 온도가 일정하고 기후의 흐름이 약하기 때문에 비행기가 편안하게 갈 수 있으니 안심하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높여 햇빛이 보이는 성층권으로 들어서자 고요하게 순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도 마음의 성층권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더 깊이 들어가고 기도 생활이 더 깊어질수록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성층권과 같은 영적인 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성층권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성령의 충만함 속에 거하게 되면 그때는 우리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마음에 임하는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종종 걱정과 염려가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의지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염려와 걱정거리들을 몰아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걱정과 염려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성령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참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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