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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골로새서 한태완............... 조회 수 3503 추천 수 0 2007.11.07 17: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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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골3:12-14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3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관공서에 가보면 사무실에 '역지사지(易之思之)"라고 쓴 액자가 걸려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란 말은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입니다. 즉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처지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공무원들이 정말 그런 마음으로 민원처리를 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편안해 질것입니다. 또한 '역지사지'의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이 세상의 수많은 범죄가 줄어들 것이고, 인간들 사이의 다툼과 분쟁도 대부분 해소될 것입니다. 도둑들이 도둑 맞은 사람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어떻게 도둑질을 하겠습니까? '역지사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애지중지 키워온 남의 소를 끌어가며, 정성들여 가꾼 남의 밭에 있는 무와 배추를 뽑아가며, 수 년동안 공들여 기른 남의 밭의 인삼을 뽑아가며, 말리려고 도로 위에 널어놓은 피 땀 흘린 벼를 진공 호흡기까지 동원해 싹쓸이 할 수 있겠습니까? 사기꾼들이, 사기를 당해서 쓰라린 상처를 입는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어떻게 사기를 치겠습니까? 살인자들이, 상대방이나 그 가족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어떻게 감히 살인을 하겠습니까? '역지사지'의 마음은 가정에서도 필요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내가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부부갈등은 사라질 것입니다. 부모자식 간에도, 형제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역지사지' 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이기주의'는 그 반대인데 오늘 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계층간, 지역간, 계파간, 정파간의 모든 갈등과 대립은 '역지사지'가 아닌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상대방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상대방의 아픔, 슬픔,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들의 유익과 이익만을 위해서 투쟁합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인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멀지않아 자신도 존재하지 못하는 세상이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위대한 '역지사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편히 의자에 앉아 인간들을 내려다 보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낮고 낮은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 가운데 사시면서 죄인들이 그 죄 때문에 얼마나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지를 몸소 체휼하시고, 마침내는 그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한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아카페 사랑',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 사랑을 나누어 받은 것입니다.그 사랑을 품고 있으면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마음을 들여다 보십시오. '역지사지'의 마음이 있는지 ~ .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 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히 13:3)

한 교회의 지도자라면 최소한 교회의 성도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도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전혀 관심이 없는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자기의 주장만을 할 뿐입니다.
교회내에 분쟁이 없고, 교회가 성장하려면 목회자는 평신도의 처지와 입장에서 항상 생각해야 하고, 평신도는 목회자의 처지와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분쟁은 자기 중심의 잣대로 판단하므로 생기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어느 날 해와 달이 만났습니다. 해가 달을 바라보며 "나뭇잎은 초록색이야"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달이 나뭇잎은 은빛이라고 우겼습니다. 이번엔 달이 먼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잠만 잔다." 그러자 해가 달에게 잘못 알고 있다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게 움직인다구."
해의 말에 달이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왜 땅은 늘 그렇게 조용한 거지?" 그랬더니 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누가 그러니? 땅은 언제나 시끄럽기만 한데."
어느새 해와 달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바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람은 둘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허허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쓸데없는 다툼을 하고 있구나."
"낮에는 해의 말대로 나뭇잎은 초록색이란다. 사람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땅도 시끄럽지. 그러나 달이 뜬 밤에는 모든 것이 변해 땅은 고요해지고, 사람들고 잠을 잔단다. 나뭇잎은 달빛을 받아 은빛이 되지. 늘 우린 이렇게 자기가 보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우길 때가 많단다"

개구리는 연못이 운동장이고, 올빼미는 밤이 낮이고, 지렁이는 땅속이 갑갑하지 않습니다.

하루는 당나귀가 등에 짐을 잔뜩 싣고서 개울을 건너다 그만 발을 헛디뎌 개울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본시 당나귀는 물과는 거리가 먼 짐승입니다.게다가 물에 빠졌으니 등에 있던 짐이 물에 흠뻑 젖어 굉장히 무거웠을 것입니다.그래서 어쩔 줄 몰라 허둥대고만 있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개구리가 빈정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런! 덩치 값도 못하는 녀석이구먼.우리는 매일 물 속에 살아도 이렇게 침착한데 겨우 물에 한 번 빠졌다고 저렇게 호들갑을 떠나” 개구리는 늘 물 속에서만 사니까 당나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러나 당나귀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오해(5)가 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세 번(5-3)을 고쳐 생각해 봅시다.그러면 이해(2)가 되는 것입니다.이해를 두 번 하면(2+2) 나도 모르게 사랑(4)하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도록 노력합시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헤아릴 때 닫혔던 문도 열리고 함께 사는 길도 열립니다.

성숙한 이해관계를 갖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차이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첫째, 무지에서 생깁니다. 저도 한때 저와 다른 것은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저의 문제는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의 문제였습니다.
둘째, 그것은 미숙의 문제였습니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숙한 생각입니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할 때 우리는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미숙한 생각 때문에 관계가 깨어지고 나누어집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은 오히려 다양함을 맛보게 하는 축복된 선물입니다. 다른 것은 서로의 다른 점을 보충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해할 때 우리의 관계는 놀랍게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경우에 서로를 고치려고 합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고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기 위해 만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돕기 위해 만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노력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먼저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면 변화는 그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다양합니다. 재능도 다르고, 성품도 다르고, 취미도 다릅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공동체 정신의 꽃입니다. 이해는 사랑과 용서의 출발점입니다. 작은 이견(異見) 앞에서도 조급하게 화를 내는 자에게 지혜는 머물지 않고, 반대자를 귀찮다고 무조건 잘라내는 자에게 행복은 머물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현재의 친구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 줄 아는 ‘마음과 생각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있는 사소한 차이를 ‘배타와 편견의 구실’로 삼지 않고 ‘사랑과 이해의 도전’으로 볼 때 행복의 샘은 바로 우리 곁에서 넘쳐흐르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신 주님, 제가 맺는 인간관계가 편협하지 않는지 돌아봅니다.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판단이 아니라 분별을, 괄시가 아니라 선대를 통해 모든 사람을 존귀히 여기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주위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거짓에 속아 그들을 비판하는 마음을 품지 말게 하시고 진실된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본받게 하소서. 제가 속한 공동체를 주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그러함으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주께서 제게 주신 은사를 다른 이들을 섬기는 데 사용하길 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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