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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탁월성

골로새서 김남준 목사............... 조회 수 1906 추천 수 0 2012.12.14 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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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골1:16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8-01-14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그리스도의 탁월성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

 

우리는 인생의 많은 문제들을 인생 안에서 풀어보려고 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또 그 중심으로 해결책을 찾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문제 해결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입니다.

 

I. 세계와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혼자서 창조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그리스도를 통해 흘러 내려옴으로써 이 세계가 창조된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뿐만 아니라 창조된 세계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것도 그리스도를 통하여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것, 예배, 헌신, 기도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봉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도 그리스도를 통하여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흔적이 묻어나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어두워진 눈을 지닌 인간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희미하게 볼 뿐입니다. 벌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따오려고 하는 수많은 꽃들이 지닌 꿀을 창조세계에 묻어난 하나님의 흔적이라고 한다면, 그 벌꿀이 소복이 담겨있는 벌집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보며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계가 형성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심,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 행하신 구원, 이 세상을 향해서 베푸신 자비와 사랑을 발견하게 될 바로 그 때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잘 아는 것이 바로 세계를 아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의무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라고 우리에게 영혼도 주시고 지성도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II. 사람의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는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창세에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계셨고 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몸으로서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A. 부활 이전
하나님은 아담의 육체와 영혼을 불멸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늙고 부패하는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아름답고 불멸하는 육체를 입고 창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합니까? 모든 육체가 불멸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 때 아담이 입고 있던 그 육체를 입고 오셔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죄 없으신 예수님이지만 죄인들이 입은 육체를 입고 오셔야 하겠습니까? 물론 전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담의 불멸할 육체를 입고 오지 않으시고 죄인들이 입고 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패하고 마지막에는 죽음에 삼킨바 되는 그런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30세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33세 정도였다는 것이 기본적인 학설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 8:57)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예수님을 오십으로도 보일 수 있다는 뜻인데, 예수님께서 30세밖에 안됐는데 50세처럼 보이니 얼마나 고뇌로 가득 찬 인생을 사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점점 부패에 종속될 인간의 육체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8)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 없으신 그분이 당신에게 어울리는 불멸할 몸을 입으시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패하는 비참한 죄인들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자원하는 낮아지심

 

첫째는 자원하는 낮아지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빌 2:6)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본체라는 것은 하나님과 동등한 본질, 즉 본질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본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많은 사람과 천사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 아니라 죄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자기 힘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참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였기에 스스로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되신 것을 사람의 몸속에 감추시고 한없이 낮아지셨고 불멸의 아름다운 육체 대신 시간이 흐르면 부패하고 결국은 죽음에 삼키우게 될 비참한 죄인들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2.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심

 

둘째는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히브리서 5장 8절은 ‘그가 아들이시라도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분이 무언가를 배운다고 하면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이고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분이 하나님이실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더군다나 인간은 죄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는데도 순종을 잘 몰랐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시면서도 동시에 사람이신 것을 설명해주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인간에게는 인간의 본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 안에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가지신 하나님의 본질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영혼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완전하게 가지고 계시면서 다 활용하실 수 있었습니다. 인간으로 해야 할 모든 일을 하시면서도,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다 알고 행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본질과 사람의 본질 모두 가지고 있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와서 죄인을 위해 봉사하고 종처럼 섬기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본질을 다 사용하지 않기로 스스로 포기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아실 수 있는 하나님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로 가리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예수님의 어릴 적을 가리켜 키와 지혜가 자라갔다고 한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는데 이것은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이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멸시와 핍박을 받는 것, 진리와 말씀을 가르칠 때 영혼들이 변화되는 것, 병든 자를 바라보는 연민의 마음, 이 모든 것들은 육신을 입고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순종하고 복종하며 사는 삶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배워나가셨다는 뜻입니다.

 

3. 죽으시기 위함

 

셋째로 죽으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아담의 몸을 입고 내려오셨다면 죽으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십자가도 지실 수 없었습니다. 불멸의 몸을 누가 죽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지고 대신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일을 위해 오셨는데 만약에 불멸의 몸을 입으셨다면 죽으실 수 없고, 죽으실 수 없다면 그 일을 행하실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필멸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인간의 본질로서 고통을 당하시고 인간의 몸으로서 죽임을 당하여 피를 흘려 대속 제물로 죽으신 것입니다.

 

B. 부활 이후

 

1. 부활체의 영광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그야말로 불멸할 몸으로 찬란하게 변화되셨습니다. 이것은 부활체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감추셨을 때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지만, 영광을 드러내실 때에는 사울이 그리스도의 빛을 발견하고 엎드러져서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찬란한 영광입니다. 부활하시기 전 이 지상에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본질을 인간의 본질로 감추셨으나, 부활 후에는 그 감추인 것을 걷어 버리시고 찬란하게 하나님으로서의 본질이 드러나도록 영광스러운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도 지상에 계신 것 같은 그런 그리스도의 모습을 만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 인성의 은혜 제거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리스도는 비록 육신으로는 이 죄 많은 인간들의 몸과 똑같은 것을 입으셨고 낮아지셨지만, 순간순간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질을 보여 주셨습니다. 폭풍이 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들을 내어 쫓았던 일들은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질이 그 분의 섬김을 통해서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분의 초라한 육체 뒤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으로서의 본질을 발견하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고, 예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믿음의 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을 발견하고 그분을 믿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사모하게 되고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사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III. 율법과 죄아래 오심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때는 율법 아래에 있는 때였습니다. 여기서 율법은 ‘지키면 복을 받고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가 함께 들어있는 삶과 죽음의 계명을 말합니다. 이렇게 율법을 주시면 사람들은 율법을 보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벌을 받을 짓인지, 복을 받을 짓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은 하고 싶더라도 저주 받을만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은 힘들어도 복을 받을 일은 행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목적을 따라 살게 하여 이 세상의 질서를 잡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중심으로 해서, 십자가 이전은 율법아래에 있는 때이고 십자가 이후는 은혜아래 있는 때입니다. 그 분기점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은혜의 시대에 오시지 않고 율법 아래에 있을 때 오셨을까요?

 

우선 율법의 요구를 담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인간을 당신의 대리자로 창조하셔서 위로는 하나님을 알고, 아래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알아보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 세상을 잘 가꿀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임무를 부여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의 임무를 통해 창조세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자신의 위치에 감사하는 대신,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면서 창조세계의 질서가 모두 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아무렇게나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계획을 가지고 창조하셨고,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을 성령 안에서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하늘에 떠있는 커다란 우주로부터 시작해서 작은 미생물 하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을 성령 안에서 연결한 것이 마치 수많은 전구를 전선으로 수없이 연결해 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이 충만한 것이 가득 흘러가서 꽃 한 송이에서도, 발아래 돌 하나에서도, 푸른 바다와 하늘에 있는 아름다운 별들에서도 찬란히 드러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과 첫 번째로 관계를 맺고 있는 피조물이 인간이었습니다.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니까 하나님이 창조세계에 연결된 그 선을 통해서 흘러들어가던 창조주로서의 당신의 영광을 모두 거두어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어지고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져서, 자연만물로부터 위협을 받는 비참하고 초라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고 인간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소외되고 결국엔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립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다 파괴하고 관계를 깨뜨려놓았으니 인간의 죄의 크기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만큼 지옥의 형벌 또한 큰 것입니다. 영원히 형벌을 계속 받아도 끝나지 않을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한히 큰 죄를 인간은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짐승들을 통해서 제사를 지내고 그 짐승들을 통해서 잠시 죄를 용서해주셨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죄의 용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죽은 것이지만 그 죄를 짊어지신 분이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무한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죄 값을 지불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를 위해 율법의 요구를 모두 감당하시고 죽으신 것이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이 세상 인간이 고안해 낸 형벌 가운데 가장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지속되는 고통을 참으며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서 인간들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한 몸으로 당하시며 십자가에서 철저히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죽음 아래 복종된 더러운 인간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비천한 강도들과 함께 매달려 악한 무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으며 형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형벌과 고통 그리고 그 심판의 크기는 무한한 것이었지만, 그리고 한 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그분이 너무나 고귀하신 분이고 하나님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을 한 몸에 지니신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이셨기 때문에 그 모든 인간의 죄악을 짊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시고 율법 아래 태어나게 하신 이유는 율법 아래서 정죄 받을 인간들을 위해서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이신 그분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율법의 요구를 감당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못 박혀 죽으신 이유입니다. 죄 때문에 창조주도 잊어버리고 창조의 목적도 상실하고 짐승처럼 먹고 마시며 쾌락에 빠져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다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인간들의 무질서한 방황을 차마 보실 수 없어서 그분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신앙을 삼위일체교, 하나님교, 성령교라고 하지 않고 기독교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비참하게 찢어진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필멸할 수밖에 없는 형벌가운데 있는 인간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들을 다시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이 구원사역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이 종교를 그리스도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IV. 결론

 

그러면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지식과 은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하는 것을 나의 지성으로 명확히 알고, 그것이 가슴으로 내려와 뜨거운 감동을 받는 것, 이 두 가지가 만나는 것입니다. 뜨거운 사랑의 감동이 없고 머릿속에서만 지식을 갖는 것도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분을 아는 지식은 하나도 없는데 마음에서 뜨거운 감정만 일어나는 것도 그분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명료하게 알고 그것이 내 마음속에 뜨거운 감동을 불러 일으켜서 예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이 교회가 눈에 보이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세상에 비천한 종의 형체를 가지고 내려오신 이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지금처럼 살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창조의 목적을 떠나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죄에 노예된 인간들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누구든지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이 어두운 세상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랑과 생명을 달라고 은혜와 지식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방황하고 창조주도 몰라본 채 제멋대로 인생을 살면서 찢기고 할퀴어진 인간들을 위해서 치료자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간절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00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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