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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기도

골로새서 신윤식 목사............... 조회 수 1607 추천 수 0 2013.02.23 23: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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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골1:9-14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 http://onlycross.net 

제목 : (3강) 사도의 기도 
본문 : 골 1:9-14

 

<본문>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 1:9-14)

 

 <설교>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대개는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 그것이 곧 십자가를 믿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믿는 그 믿음이 내게 있는 나의 모든 의를 무너뜨렸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피로써 증거하신 십자가의 의 앞에서 여전히 자신의 의가 살아있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행하는 일이 믿음의 증거물이나 열매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믿음의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골로새 교회에 있었던 문제였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믿음은 할례도 행하고 절기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에바브라가 전한 복음과는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말한 대로 믿음은 인간의 행함, 즉 할례와 절기를 지키는 것 등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독교는 할례를 행하지 않습니다. 또한 할례는 구약의 율법적 행위라는 것을 현대 교회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할례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율법에 매인 것이고 또한 복음이 아니라며 배척할 것입니다.

 

 그런데 절기 부분은 딱 부러지게 율법이라고 말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 교회가 유월절이나 희년 등은 지키지 않지만 맥추절, 추수절과 같은 절기는 지금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말씀한 율법 그대로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맥추절, 추수절은 하나님이 말씀한 절기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애매모호한 모습입니다.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은 받아들이고 별 유익이 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끝난 구약의 율법이고 그림자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례나 절기를 떠나서 교회가 신자에게 강조하는 행위, 즉 믿음은 기도하고 성경보고 십일조 하는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율법과 상관이 없는 말입니까?

 

 여러분이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믿음의 증거가 신자의 행위로 나타나야 하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신자는 십자가가 중심이 아니라 자기 행위가 중심이 된 복음과는 다른 길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 교회가 빠져있는 오류이기도 합니다.

 

골로새의 거짓 선생들은 실천과 행위를 동원하여 신자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실천과 행함이 없거나 부족하면 믿음이 아닌 것으로 여기도록 합니다. 사도는 이러한 골로새 교회에 서신을 보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도의 서신을 통해서 복음이 무엇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확실히 정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9절을 보면 사도는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의 기도의 내용은 가장 먼저 골로새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그 지혜와 총명이 채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신자의 지혜와 총명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진다면 신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는 신자의 지혜와 총명으로 말하고 있고, 골로새 교회가 그러한 지혜와 총명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자신의 뜻이 다스려짐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뜻이 다스려진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위한 신자로 존재함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즉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고, 그 기도에 응답받는 것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됨으로써 무엇보다 자신의 뜻이라는 것이 무너져야 할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와 총명은 신자로 하여금 자기의 뜻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나, 인간의 정성과 열심을 보시고 인간의 뜻을 이뤄주시는 하나님은 성경과 상관없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우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자기 기쁨을 위한 삶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라는 기도를 이어서 하는 것입니다. 주께 합당히 행함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와 총명으로 인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이 아닌 것은 내 기쁨과 내 만족을 위한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행하고 절기를 지키는 것, 즉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지금의 신자들이 기도하고 십일조를 하는 등, 실천과 행함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여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에 대한 인간의 상식에 의한 생각일 뿐입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께 접근해 가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유대인이 할례를 고집하는 것이 신앙으로 여겨지십니까?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기도하고 십일조 하고 성경 보는 것 등은 신앙의 행위라고 여기실 것입니다. 물론 ‘할례와 그것은 다르지 않느냐?’라고 하겠지만,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신앙의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기도하고 헌금하는 것 등의 행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결국 할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와 십일조를 하는 것 등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과연 성경의 어떤 구절이 그와 같은 구분을 하고 있습니까?

 

 기도하고 성경보고 십일조 하는 것이 구약에 없던 행함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할례나 절기를 지키는 것과 같은 구약의 행위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폐지가 되고, 기도하고 성경을 보고 십일조를 하는 행위가 새롭게 추가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행위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구약의 유대인들이 실천해 오던 것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위를 어느 것은 폐지되어 사라지고 어느 것은 신앙의 행위로 보전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와 총명이 없는 무지함이라는 것입니다.

 

 10절을 계속해서 보면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말합니다. 모든 선한 일은 우리가 행하는 착한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시는 모든 일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그 어떤 일도 선하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설사 우리가 고통과 실패의 길을 가게 된다고 해도 그 또한 하나님의 선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선한 일에 맺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복음을 아는 것이고 그로 인한 감사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되고, 그 선하심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삶에서 보게 되는 순간 맺어지는 것은 감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사도는 골로새 교회가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자기의 실천과 행함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머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 맺어지는 열매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일의 결과이지 우리의 행함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선한 열매를 맺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을 우리가 해야 할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1,12절을 보면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바울의 기도를 보면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기도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기뻐하고, 자라가고, 열매는 맺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기도를 보면 골로새 교회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는 분이 있고, 열매를 맺어 자라가게 하시는 분이 있고,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신 분이 있고, 골로새 성도로 하여금 성도의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시는 분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기도입니다.

 

 바울의 기도에는 자신의 뜻이 없습니다. 다만 기뻐하게도 하시고 자라고 열매를 맺게 하시고 기업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그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말합니다. 이러한 기도 안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행하고 지킨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임을 아시겠습니까? 오히려 우리에게서 행하시고 일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지 않는 것임을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아는 것이 지혜고 총명입니다. 그래야 다른 복음이 어떤 것인가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14절을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말합니다. 이 일에 우리의 행함과 실천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행하심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무엇이 다른 복음인가를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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