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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골3:2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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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9.6 ⓒhttp://www.john316.or.kr |
골로새서(19) 변화의 주체가 되십시오
(골로새서 3장 22절-4장 1절)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가장 기본 원리입니다(22절). 물론 상전이 잘못된 명령을 내리면 때로는 “아니오!”라고 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순종하려는 기본자세는 잃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부모님이 틀린 요구를 하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부모님에게 말대꾸하고 대들면 안 됩니다. 순종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의사를 분명히 밝히십시오. “아버님! 죄송합니다. 그것만은 못하는 것을 용서하세요. 대신 어떤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것은 불순종이 아닌 순종입니다.
심지어는 나쁘고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기본적으로는 순종해야 합니다(벧전 2:18). 주인 및 고용주와 상사에게 순종하는 것은 굴종이 아닙니다. 때로는 종이 주인보다 더 지혜롭고 능력이 월등할 수 있고 하급자가 상급자보다 더 탁월할 수 있지만 그래도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질서 문제이지 우열 문제나 능력 문제가 아닙니다. 권위에 순종하는 것은 불명예나 수치나 인격과 체면의 손상이 아니라 오히려 권위를 얻는 첫걸음입니다.
특히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 보는 데서만 잘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이 본다고 생각하는 두려운 마음과 성실함으로 맡은 일을 감당하십시오(22절). 많은 성도들이 축복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 때문이라기보다는 대개 자신의 무책임과 태만 때문입니다. 만족과 태만은 다릅니다. 땀이 없는 만족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대개 땀을 통해 주어지고, 또한 땀 흘려 얻는 것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나태와 게으름은 내일의 희망과 내일의 자신을 무덤에 묻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야 합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23절). 사람을 의식하고 일하면 지속적으로 잘하기도 어렵지만 점점 영혼도 허전해집니다. 반면에 힘든 일도 주님께 하듯이 하면 기쁘게 감당이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야!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네가 자랑스럽구나! ‘최선을 다하는 것(Doing your best)’이 ‘최선이 되는 것(being the best)’보다 더 중요하단다.”
< 변화의 주체가 되십시오 >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 몫으로 남겨두십시오. 너무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도 마십시오. 비교하면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 왜 저는 이렇게 못 삽니까? 왜 저 부부처럼 화목하게 살지 못합니까?” 그렇게 비교하면 자신은 더 부적합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남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부르지 않고 자기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하라고 부르셨습니다.
특히 일할 때 돈을 목적으로 일하기보다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으로서 주님께 하듯 일하십시오. 그래서 직장과 일터를 신중히 잘 선택하고 그렇게 선택했으면 그 직장과 일터에 있는 동안은 주인과 상사를 주님처럼 섬겨주십시오. 그러면 자기만 손해 보는 것 같고 그런 삶을 도전하는 사도 바울이 마치 주인과 상사 편만 드는 것 같지만 사실상 그것이 바로 자신이 진정으로 축복받는 길입니다(24-25절).
사도 바울은 종의 윤리를 말한 후에 이어서 주인의 윤리로서 종들을 착취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고 사람답게 살도록 배려하라고 도전합니다(4:1). 그처럼 거듭난 성도는 삶과 태도가 변해야 합니다. 그때 주위환경과 사회도 변화됩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복음으로 로마의 각종 우상숭배가 제거되었고 목숨을 거는 격투기가 폐지되었고 노예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결국 자유와 평등과 인권의 신장도 믿음과 말씀의 산물입니다.
성도의 삶에는 그런 선한 변화가 나타나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역주행 중입니다. 미국을 보십시오. 기독교 국가였던 미국은 지금 그 중심 사상이 실용주의 및 배금주의 사상입니다. 또한 극도의 개인주의와 자유와 법치를 가장한 이기주의 및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탐욕주의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노력만큼 대가를 얻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노력한 것보다 천 배 이상 가져가려는 자본가의 태도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금융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남보다 머리 좋은 것을 이용해 불법으로 떼돈을 버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그런 유사한 어둠의 역사가 천만 성도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왜 잦아들지 않습니까? 복음이 삶으로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예수님 닮은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또한 인생관과 역사관과 윤리관과 직업관도 차원 높게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 변화의 선봉과 주체가 되십시오. 남 탓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변하면 남도 변하고 사회도 변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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