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용서의 동기

빌레몬서 박상훈 목사............... 조회 수 1975 추천 수 0 2011.07.25 08:00:57
.........
성경본문 : 몬1:19-21 
설교자 : 박상훈 목사 
참고 : 승동교회 

용서의 동기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너는 이 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19-21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라함 링컨의 얼굴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링컨의 얼굴을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잘생긴 얼굴입니다. 우선 이마가 시원하게 트여 있습니다. 너무 넓지도 않고 또 너무 좁지도 않고 시원할 정도로 활짝 트여있습니다. 또 이마 밑에 있는 눈썹은 남성답게 아주 강하고도 진하게 나 있습니다. 그 밑에 있는 눈은 적당한 깊이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눈 아래에 있는 콧날은 막힘이 없는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뻗어있습니다. 콧날 밑에 있는 입술, 특별히 아랫입술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리만큼 도톰하게 돋아있습니다. 뺨에는 군더더기 살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두 귀는 얼마나 잘 생겼는지 모릅니다. 큼지막한 것이 보기만 해도 복이 절로 굴러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구레나룻 수염과 턱수염은 얼굴 전체의 균형을 그렇게 잘 잡아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링컨은 태어날 때부터 큰 인물이 될 좋은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링컨이 처음부터 사람들이 알아줄 만큼 좋은 얼굴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하루는 뜻밖에도 시골의 한 어린 여학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링컨 아저씨, 저는 아저씨를 좋아하는 학생입니다. 저는 언제나 아저씨가 훌륭하게 되기를 바래요. 그래서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아저씨를 위해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동네 어른들은 아저씨가 너무 못생겨서 모두 싫대요. 그래서 아저씨한테 표를 찍지 않는다고 하니까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어요? 사실 아저씨는 너무 못생겼거든요. 광대뼈는 툭 튀어나왔고, 눈은 쑥 들어갔잖아요. 거기다 턱은 주걱턱이라서 왜 그렇게 뾰족한지 보기만 해도 불안스러워요. 그래서 제가 여기에 아저씨를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여학생은 링컨에게 양편 뺨과 턱에 수염을 한 번 길러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 뾰족한 턱이 감춰질 것이고 또 얼굴 전체가 잘 조화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링컨은 그 말을 듣고서 수긍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수염을 길렀습니다. 링컨은 완전히 달라진 얼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해서 당당히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링컨의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열린 마음이었습니다. 어린 소녀의 제안까지도 하찮게 생각지 않고 그것을 잘 받아들여서 자기에게 유익되게 행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였습니다. 정적 가운데 그를 몹시도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반대당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그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에드윈 스탠턴(Edwin Stanton)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성품이 아주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독설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놓고 링컨을 비난했습니다. 아주 심한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링컨의 얼굴을 한 번 보십시오. 그 얼굴이 도대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될 얼굴입니까? 저는 고릴라를 잡기 위해서는 아프리카로 가야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링컨의 고향에 가면 얼마든지 고릴라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링컨을 고릴라 같은 사람이라고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자기 행정부를 조직하면서 놀랍게도 자기를 그토록 비난했던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임명했습니다. 과거에 자기를 비난했던 그의 모든 잘못들을 깨끗하게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질을 높이 평가해서 국방장관에 임명했던 것입니다.
과연 스탠턴은 링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링컨을 잘 도와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습니다. 뒤에 링컨이 암살을 당했습니다. 그때 제일 슬퍼했던 사람이 바로 스탠턴이었습니다. 그는 링컨의 시신 앞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누워 있습니다. 이제 그의 이름은 인류역사상 영원히 기념되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용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기 마련입니다. 용서에는 큰 감화력이 있습니다. 용서받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용서에 있는 것입니다. 나와 너와의 관계가 아름답지 못합니까? 화목하지 못합니까? 용서에 인색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 속에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오네시모가 있다면 깨끗이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왜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해야만 하는지 용서의 동기를 몇 가지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해야 하는 동기를 깨닫고, 우리의 오네시모를 깨끗하게 용서하고 마음의 평안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편의상 오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빌레몬 자신이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내가 많은 빚을 탕감 받았다면 내 형제의 적은 빚 정도는 탕감해 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19절 말씀입니다.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이미 바울은 18절에서 오네시모가 자기 주인 빌레몬에게 진 빚을 바울이 대신해서 변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사실을 19절에서 다시 한 번 반복했습니다. 자기가 대신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여기에 삼중의 강조적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나”라고 하면서 일인칭대명사를 사용했습니다.
둘째로, “바울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셋째로, “친필로 쓰노니”라고 하면서 자신의 친필로 썼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바울은 비천한 종 오네시모를 위해서 자기가 대신 빌레몬의 채무자 입장에 선다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자기가 빌레몬에게 해야할 도리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바울은 빌레몬에게 조심스럽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19절 하반부 말씀입니다.
“너는 이 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빌레몬이 바울에게 빚진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빌레몬이 바울에게 무엇을 빚졌습니까? 빌레몬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옥의 형벌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빌레몬에게 있어서 사도 바울은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진 빚과 빌레몬이 바울에게 진 빚을 한 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진 빚은 기껏해야 물질적인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은 바울에게 생명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빚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것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말해 보았자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갚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네가 내게 진 영원한 생명의 빚을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너도 너의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진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보다 쉽게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많은 빚을 탕감 받았으니까 형제의 적은 빚은 탕감해 주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침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 주방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가다 보니까 식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쓴 메모가 그 위에 적혀 있었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청구서
1. 이번 주에 아빠 구두 닦아드린 값-5,000원
2. 엄마심부름 세 번한 값-3,000원
3. 쓰레기 두 번 내다버린 값-2,000원
합계-10,000원.”
어머니는 빙긋 웃으면서 그 밑에 답장으로 몇 자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청구한대로 지갑 속에서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어 메모지 옆에 두었습니다. 잠시 뒤에 아들이 일어났습니다. 눈을 비비면서 그는 자기가 쓴 청구에 대해 어머니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식당 앞으로 왔습니다. 보니까 자기가 청구한대로 만원 짜리 지폐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자기가 쓴 청구서 밑에 어머니가 답신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읽어나가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1. 너를 열 달 동안 내 뱃속에 넣고서 데리고 다닌 값-무료
2. 너를 그 동안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데 들어간 값-무료
3. 네가 아플 때 밤새워 기도하며 눈물 흘리며 너를 간호한 값-무료
4. 이외에도 너에 대한 나의 진정한 사랑까지 전부 무료.”

아들은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의 뜻을 쉽게 헤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쓴 청구서 밑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미 다 지불되었음. 그래서 만원은 되돌려드립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지고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부모, 가족, 형제, 자매, 이웃에 대한 사랑의 빚을 우리는 엄청 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오네시모가 우리에게 진 적은 빚은 우리가 마땅히 용서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할 때 바울 자신이 그것으로 인해서 큰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게 되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할 때 우리 주변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우리와 더불어 기뻐합니다. 또 그들이 마음에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복수하는 심정으로 헐뜯고 비난하고 욕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마음 아파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다른 성도들의 마음에 기쁨을 주고 평안함을 주어야지 마음에 고통을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20절 말씀입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지금 빌레몬은 사도 바울에게 영원한 생명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질적으로 갚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빌레몬으로 인하여 기쁨을 얻기를 바라고, 그리스도 안에서 빌레몬으로 인해 평안함을 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빌레몬이 그것을 들어줄 수 있습니까?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만일 빌레몬이 사도 바울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않고 가혹하게 대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 때문에 바울의 마음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할 때 다른 성도들이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두가 더불어 평안한 가운데 든든히 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하려고 하고 계속해서 비난하고 헐뜯게 되면, 그것을 듣고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평안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고통이 더해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만달란트의 빚을 진 종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1달란트는 6천데나리온이었습니다. 1데나리온은 장정 한 사람이 하루종일 일한 품삯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1데나리온은 약 오만원정도에 해당되는 돈일 것입니다. 10,000달란트×6,000데나리온×50,000원=3조원입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그 당시에는 더 값어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종에게는도무지 값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종은 왕에게 말했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참아주시옵소서. 내가 갚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종의 모습을 보면서 왕은 불쌍히 여기고 그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종은 엄청난 돈을 탕감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왕궁 밖에서 동료 종을 한 사람 만났습니다. 그의 동료는 그에게 일백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이었습니다. 일백데나리온은 500만원입니다. 3조에 비하면 500만원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으면 자기 동료의 적은 빚 정도는 탕감해 주고 용서해 주는 것이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동료의 목을 쥐고서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여러분, 그때 누가 그것을 보고서 왕에게 가서 그 사실을 그대로 고해 바쳤습니까? 그의 동관들이었습니다. 그의 동료 종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강퍅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심히 아팠습니다. 심히 민망해서 그 사실을 왕에게 다 고해 바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 말을 듣고 일만달란트의 빚진 자를 다시금 잡아서 감옥에 넣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우리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다른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고 마음에 평안을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면서 복수하고자 하는 심정을 가질 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하나님, 저 형제가 저래서는 안되는데 마음이 너무 강퍅합니다. 그의 마음을 바꾸어 주시옵소서.”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께 계속해서 고해 바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시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오네시모를 기꺼이 용서함으로서 주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다른 성도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평안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명장 가운데 한 사람인 웰링턴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부대에 상습적인 탈영병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에게 벌도 주고 훈계도 했지만 도무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웰링턴은 그 상습적인 탈영병을 총살시키기로 했습니다. 전 장병이 모였습니다. 웰링턴 장군은 무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몹시도 아픕니다. 우리는 저 병사를 선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괴롭지만 어쩔 수 없이 저 병사를 총살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 탈영병을 잘 아는 친구병사 한 사람이 조용히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웰링턴 장군에게 자기가 한 마디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장군의 허락을 받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군님, 장군님이 저 병사를 위해서 모든 방법을 써보셨다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직도 한 가지 써보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 병사를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과연 웰링턴은 훌륭한 장군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벌벌 떨면서 무릎을 꿇고 있는 탈영병에게 웰링턴 장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 네 친구의 말이 옳구나! 우리가 너에게 용서해 보지 않았구나. 네 친구의 말에 따라서 이번에는 너를 전적으로 무조건 용서하기로 한다.”
총살형에서 사면시켜주었습니다. 그 병사는 바뀌었습니다. 그 뒤로 그는 장군에 대해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 충성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부대원들의 마음도 아프게 하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전 장병들의 사기가 완전히 충천했습니다. 그들은 똘똘 뭉쳐서 그 당시 무적의 군대였던 나폴레옹 군대를 워털루전쟁에서 무찌르고 큰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기꺼이 용서해 줄 때 우리 모두는 주 안에서 평안한 가운데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우리를 쳐다보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아픔을 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이 빌레몬이 기꺼이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으면 우리는 즐겨 순종해야 합니다. 누가 그 말씀에 대해서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21절 말씀입니다.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순종은 누구에 대한 순종입니까? 바울에 대한 순종일까요? 아닙니다. 8∼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바울은 빌레몬에게 결코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사랑으로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순종의 대상은 바울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물론 빌레몬은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또 예수님의 산상수훈도 그는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 6:14∼15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 하시리라.”
또 빌레몬은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의 대화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와서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잘못을 범하면 몇 번까지 용서하리이까? 일곱 번까지 용서하리이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일곱번 뿐만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지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내용도 빌레몬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너의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 빌레몬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미 사도 바울은 5∼7절에서 빌레몬을 여섯 가지로 칭찬했습니다. 빌레몬에게는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선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용서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함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바울은 빌레몬에게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기대하는 것보다도 빌레몬이 훨씬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행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했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고 벌을 주었을 것 같습니까? 물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빌레몬이 사도 바울의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빌레몬서가 성경에 남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빌레몬서가 성경에 들어있다는 자체가 빌레몬이 기꺼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때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편지를 읽고서 오네시모를 기꺼이 용서했습니다.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말대로 오네시모를 사랑받는 형제로서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영원히 종의 몸에서 자유케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원하는 대로 오네시모를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되돌려 보냈습니다. 갈 때는 노자를 후하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의 뒷바라지를 잘 할 수 있도록 돈도 듬뿍 쥐어주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자유의 몸이 되어서 로마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사도 바울의 종이 되어서 감옥에 있는 바울의 뒷바라지를 끝까지 충성스럽게 잘 하면서 그의 복음사역을 도왔습니다.
뒤에 바울은 네로 황제의 핍박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바울의 뒤를 이어서 오네시모도 역시 네로 황제의 핍박때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도 네로 황제의 핍박때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주를 위해서 순교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도 바울의 말대로 그 세 사람은 영원토록 하늘나라에서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형제로서 함께 거하는 사이가 된 것입니다. 바울의 말대로 빌레몬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기대보다도 더 많은 것을 행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해야 합니까? 오늘 바울은 그 동기를 세 가지로 일깨워주었습니다.

 

첫째로, 나 자신이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 형제의 적은 빚은 탕감하면서 사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둘째로, 내가 나의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어야지 내 이웃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평안하게 합니다. 그러나 나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고통을 받습니다.

 

셋째로, 내가 나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지금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즐겨 우리가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자꾸 생각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너희의 오른편 뺨을 치느냐?”
억울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왼편 뺨을 돌려대라.”
“누가 너희의 속옷을 달라고 하느냐?”
손해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겉옷까지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너희로 하여금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느냐?”
져주는 마음으로 십리까지 동행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억울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손해보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져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살면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책임지는 것보다 만왕의 왕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면 그보다 더 안전한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억울하게 사십시다. 손해보면서 사십시다. 져주면서 사십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5 빌레몬서 훨씬 더 나아진 사람 몬1:14-25  강승호목사  2024-06-15 113
14 빌레몬서 타인의 가슴에 감사를 몬1:1-7  강승호목사  2022-10-24 166
13 빌레몬서 멘토를 기쁘게 하는 삶 몬1:20-25  이한규 목사  2019-07-17 198
12 빌레몬서 오네시모를 받아들이라 몬1:9-17  강승호 목사  2018-01-18 294
11 빌레몬서 복을 부르는 감사 원리 몬1:1-7  이한규 목사  2017-01-31 768
10 빌레몬서 하나님의 용서, 성도의 사랑 몬1:10-18  김남준 목사  2013-07-16 2613
9 빌레몬서 나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라 몬1:1-25  민병석 목사  2012-05-10 2317
8 빌레몬서 화평케 하는 자 몬1:8-16  박상훈 목사  2011-07-25 2919
7 빌레몬서 용서의 방법 몬1:22-25  박상훈 목사  2011-07-25 2389
» 빌레몬서 용서의 동기 몬1:19-21  박상훈 목사  2011-07-25 1975
5 빌레몬서 용서의 길잡이 몬1:15-18  박상훈 목사  2011-07-25 2160
4 빌레몬서 사랑을 인하여 몬1:8-14  박상훈 목사  2011-07-25 2204
3 빌레몬서 바울처럼 빌레몬처럼 몬1:4-7  박상훈 목사  2011-07-25 2843
2 빌레몬서 오네시모를 용서하라 몬1:1-3  박상훈 목사  2011-07-25 2786
1 빌레몬서 인간화해의 길 몬8:20  정용섭 목사  2010-02-23 2390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