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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성경의 기록이 서로 다른 이유/외.

히브리서 궁극이............... 조회 수 32 추천 수 0 2023.06.09 14: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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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히9:4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했는데, 왜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주신다고 하는 거냐? 성령을 예루살렘에서만 받는 거냐? 다른 곳에서 받는 것은 성령이 아니냐?

 

 

이방 땅에는 우상이 많은데 예루살렘은 주님이 처음부터 부활 때까지 주로 사역하신 곳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전하고 이적 기사를 행했기 때문에 이곳의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 사상에 젖어있을 것이고, 그리고 모여서 기도하는 사도들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빠를 것이니 이곳에서 성령을 받으라는 거다.

 

 

사도들이 다른 지방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곳에서도 성령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받는 성령과 다른 거냐? 같다. 그러면 다른 지방에서는 어떻게 성령이 받아지는 거냐?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은 주님의 오심과, 사심과, 죽으심과, 부활 승천에 대한 것이니 이 말씀을 귀담아들을 때 주님의 정신과 사상과 인격에 감화가 되어서 성령을 받는 거다.

 

 

사도는 일반사회에서 직책을 맡기듯이 맡기는 게 아니라 주님의 나심과, 사심과,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실 때까지의 정신과 사상이 영감적으로 들어있는 사람이요, 이것을 전하는 사람을 사도라고 한다. 교회에서 안수를 하거나 투표를 해서 직분이나 직책을 맡기는데 진정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인정이 있어야 한다. 신학교에서 목사를 세운 것과 하나님이 세운 것은 다를 수가 있다. 교회의 일꾼을 인본주의로 세우면 부작용이 생긴다. 마귀 집, 무당 집, 강도들의 집이 된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진짜 강도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에게 강도라고 했다. 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물욕심으로 성전 안에서 장사를 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곧 성도들의 신앙을 죽이는 짓이라서 강도라고 하신 거다. 장사는 물건을 돈과 바꾸는 거다.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일종의 장사라고 할 수 있는데, 성경구절을 읽어놓고 사람을 하나님의 온전으로 인도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복 복하고 물질 축복 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세상 것으로 바꾸는 것이라서 강도다.

 

 

장사를 하면 일반적으로 이윤을 남겨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세상 식으로 말을 하면 장사인데 이윤을 남겨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입어지게 하는 게 이익을 보는 장사다. 그런데 성전 안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는 목사들이 세상의 이해타산을 가지고 가르친다면 성도들의 영에 손해를 입히는 것이라서 이건 영적인 생명을 사냥하는 강도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고 했는데, 성경을 물질로 바꿔쳐서 교훈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더러운 귀신이 들린 거다. 하나님은 불타질 것을 가지라고 하지 않는데 귀신 들린 자들은 여러 가지 방편을 쓰면서 불타질 세상 것을 가지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간사성이다.

 

 

교인들을 보면 옳은 말씀을 해줘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고, 옳은 것을 안 배워서 옳은 것을 모르는 경우도 있고, 옳은 것을 배웠는데도 다른 짓을 하는 경우도 있고, 가르치는 사람이 잘못 가르쳐서 옳은 것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교회 인도자라면 원칙상 하나님의 본질의 주님의 의사를 전해야 교인들에게 적중성의 믿음이 들어간다. 안 그러면 차라리 목회를 안 하는 게 낫다. 안 한다고 해서 주님이 뭐라고 하지 않는다. 교회의 교훈은 사람이 영적으로 죽느냐. 사느냐? 생명이냐. 사망이냐?’로 나눠지는 중차대한 거다.

 

 

신실한 성도가 믿음을 지키느라고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면 하나님께서 갚으신다. 반면에 하나님께 물질을 드렸지만 마음속에 도둑이 들어있으면 이 사람은 신앙이 죽는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다가 즉사했다.

 

 

엘리사의 생도 게하시가 엘리사로부터 문둥병을 고침 받고 돌아가는 나아만 장군에게 달려가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받아왔다. 나아만 장군으로서는 자기가 고침 받은 게 고마워서 게하시가 달라고 한 것을 기꺼이 줬다. 예수를 믿어도 게하시처럼 육적인 개념의 소원 목적을 가진 자는 마음속에 물질적인 욕심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오면 물질을 취하기 위한 수단 방법을 쓰게 된다. 물질성으로 들어간 신앙은 얼마 안 가서 썩은 냄새를 풍기게 된다. 수도꼭지에 필터를 달면 깨끗한 물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 속에 말씀의 정수기가 있으면 세상 것이 자기의 눈과 코와 입으로 들락날락할 때 잘 걸러낸다.

 

 

성경의 족보 장을 보면 성경마다 족보의 순서가 다르기도 하고, 빠진 것도 있는데, 이것은 성령님께서 성경 기록자들에게 잘못 가르쳐줘서 그런 거냐? 대상3:에 다윗의 아들들이 나오는데,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이냐? 이 성경을 볼 때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이냐?’ 하는 것에 큰 비중을 둘 게 아니라 문제는 왜 그렇게 각각 다르게 쓰였는지를 알면 된다. 부모에게 여러 형제가 있어도 부모의 마음에 더 담고 있는 자식을 먼저 말을 한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보실 때 하나님의 입에서 어느 성도가 먼저 나올까?’ 하는 면을 생각하라.

 

 

표면적으로 보면 마:의 족보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의 족보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이 족보를 서로 맞춰보면 내용이 다른데, 이것은 성경마다 우리에게 주는 계시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이라서 어느 게 맞고 어느 게 틀린다고 말할 수 없는 거다. 역대기의 족보도 그렇다. 각 성경이 같은 사건이나 사람을 놓고 다르게 기록이 되기도 하고, 빠진 것도 있고, 붙여진 것도 있는데 이런 것은 각각 그것대로 보면서 각 성경이 나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계시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족보만 아니라 성경의 내용도 각기 다른 것도 있는데, 만나를 담은 항아리 안에 만나와 두 돌판과 싹 난 지팡이 들어있는데, 이 항아리가 히:에는 법궤 안에 있다고 했고, 구약에서는 법궤 앞에 놓으라고 했다. 이것을 둘 중에 연대적으로 앞선 구약에 기록된 법궤 앞에 있다고 한 게 맞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계시를 못 보는 눈이다. 법궤 안에 들어있다고 한 것과, 법궤 앞에 있다고 한 것은 깨닫게 해 주는 뜻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거다.

 

 

그러면 각각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구약에서 법궤 밖에 놓으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늘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상기하라는 의미이고, 신약에서 법궤 안에 있다고 한 것은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싹 난 지팡이와, 두 돌판과, 만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된 것이니 우리 속에 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임했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그래서 영적으로 보면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들어있는 법궤다.

 

 

구약에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넜는데, 법궤는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게 되어있고 법궤 안에 십계명 돌판이 들어있으니 이것을 계시적으로 보면 성도는 말씀을 중요시하고, 하나님 제일주의, 천국 복음주의 사상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다. 이 정신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사상과 같다.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도 법궤를 중심으로 살면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그런데 본문이 기록된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법궤가 없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구약 때 전란 통에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법궤가 없어졌다. 법궤가 없는 것을 신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마음에 하나님의 소원 목적이 없는 것을 말한다. 즉 법궤가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거다. 말씀이 있어야 성령님이 역사가 되는 건데 이들은 법궤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을 못 한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전란 통에 없어진 법궤가 왜 없어졌는지를 계시의 눈을 가지고 봐야 했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은 예수부터 믿는 사람이 드물다. 교회에 나오면서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서 점차적으로 예수님으로 실상화 된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법궤가 없으니, 즉 말씀이 없으니 율법을 문자대로 지킨다고 했지만 율법 안에 들어있는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 율법을 문자대로 지키려고 하면 사실은 계명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다. 왜냐? 율법은 의인이라야 지킬 수 있는 건데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율법을 다 지키신 거다. 지금도 성경 문자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사와 뜻을 못 받는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교회의 이런 교훈을 들으면 우리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세상을 판단하고도 남는 수준인데 왜 세상의 판단을 받느냐? 세상에게 판단을 받는 이유는 도덕성이나 인격성이 세상사람들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사람들보다 못한 사고방식으로 살면 죄를 지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된다. 이러면 예수를 믿고도 심판은 심판대로 받는다. 영의 눈이 아니면 이것을 못 본다. 우리가 과거처럼 세상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자기의 생명이 통째로 마귀의 밥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야 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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