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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히브리서 배장섭 목사............... 조회 수 238 추천 수 0 2023.06.24 20:52:33
.........
성경본문 : 히11:5 
설교자 : 배장섭 목사 
참고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본문말씀 히브리서 11장 5절

 

 1. 서론 

 

 어느 초등학생이 자기 엄마보고 ‘북한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나 어쨌다나? 그 어린 초등학생이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북한의 실체를 알면 정말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 학생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정말 천벌 받아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천국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배나 지옥 자식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어떤 오래된 교회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예수님이 정말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이 아니고 단지 잠깐 기절하셨다가 깨어나셨다고 했다나 어쨌다나^^ 저는 그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왜?

 아니 그렇게 믿을 것 같으면 목회는 왜 하는 것일까요? 하기야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늘려 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만 그런 거짓에 속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속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신칭의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지만 저는 성경에도 없는 그런 거짓 사상이 무려 지난 5백여 년 동안 지배해 왔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어차피 믿을 것 같으면 훗날 땅을 치며 통곡하고 싶지 않다면 어떤 주장을 하든지 간에 반드시 성경에 비추어 살펴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히브리서 11장 5절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 봄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요. 

 

 2. 본론

 

 우선 먼저 히브리서 11장 5절 말씀에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죽음이잖아요?^^ 에녹처럼 죽지 않고 들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에녹이 그와 같이 죽지 않고 들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믿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브리 기자가 말하는 그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본문의 말씀만 가지고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창세기 5장 21절에 보면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라고 말씀하신 연후에 그 다음 22절에 보면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다음 24절에 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바로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신칭의에서 말하는 그런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요사이 자칭 재림 예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그 당시에 하나님이 사람처럼 이 땅에 계셨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지요. 

 간단하게 말하면 내 맘대로, 나의 원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보면 비록 예수님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할지라도 그 고난의 십자가를 놓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기 위하여 수시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헤아리기 위하여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 30절 말씀은 구원의 서정 구절로 너무나 유명하지만 그 앞 29절 말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사실 진짜 중요한 것은 바로 29절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하신 목적은 단지 죄를 용서해 주실 목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고, 만약에 단지 죄를 용서해 주실 목적이었다면 굳이 그 사랑하는 아들을 고난의 십자가를 지개 하실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냥 용서해 주시면 그만이지! 그리고 그렇게 죄를 용서해 주시면 굳이 하나님이 노아 홍수 사건 때 사람들을 물로 심판하실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죄 용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새로운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것이지 진짜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도록 할 목적으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 안에 ‘십자가의 도’도 함께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만 십자가의 도를 좇아 사셔야 되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보여 주셨던 바로 그 ‘십자가의 도’를 좇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보면 단순히 ‘십자가’가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뭐라고요? ‘십자가의 도’가 그렇다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좇아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사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에녹이 죽지 않고 들림 받은 사건이 우리 피부에 깊이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당시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굉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자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노아 홍수가 언제 일어나느냐 하면 계산을 해 보면 신기하게도 에녹이 나은 그 아들 므두셀라가 죽는 해에 일어나는데, 그 때는 이미 이 세상에 사람들이 많이 번성한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독생자 아들을 아낌없이 주실 그 사랑의 하나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은 당시 이 세상이 얼마나 죄악이 관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처럼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는 삶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에녹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런 시대에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일까요? 

 물론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유대 전승이나 어떤 구약 신학자에 따르면 에녹이 언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느냐 하면 그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인데, 그것은 어쩌면 그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낳은 후 180도로 바뀐 것이지요. 왜?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이름이 주는 의미가 상당합니다. 아니 우리도 부모님이 이름을 지을 때 그 자녀가 그 이름의 의미처럼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짓곤 하는데, 그와 같이 성경 인물들 같은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런 경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에녹이 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면 “창을 든 자”입니다. 왜 그렇게 지었을까요?^^

 당시에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자 이제 부락, 부락 단위로 살게 되었고 나라를 이루어 살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자기들끼리 잘 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고 어떻게? 다른 부락을 침략하여 다른 사람들이 이룬 부를 갈취하는 전쟁이 곧잘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침략 당하지 않기 위해서 부락에서는 용사를 시켜 창을 들고 그 입구를 지키게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침략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우선 먼저 그 창을 든 용사를 죽여야 되겠지요.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저 창을 든 자가 죽는 날이 바로 그 마을은 끝이다’라는 속담 비슷한 말이 당시 유행할 정도로 창을 들고 마을 지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의미로 에녹이 자기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에녹에게 아들과 관련하여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에 대한 사실을 알려 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실제로 므두셀라가 죽는 해 노아 홍수가 일어나게 되는데,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녹이 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심판의 무서운 경고가 담긴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그런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가인의 경우처럼 하나님이 이 에녹에 대해서도 경고의 말씀을 하셨을 수도 있는데,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경고의 말씀에 무감각해지기 쉽기 때문에 제가 볼 때 이 에녹은 상당히 지혜로운 사람인지라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고, 가슴 깊이 새기기 위하여 그 아들의 이름을 경고의 메시지가 있는 이름으로 지으면서 마음이 헤이해질 때마다 아들을 보며 각오를 다지고자 그렇게 한 것은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30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긴 시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는 상당히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실제로 성경에 보면 구약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신약 성경에서도 죄에 대한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무수히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런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왜? 이신칭의에 속아서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이 죄를 짓는 것을 볼 때 도저히 말씀을 좇아 살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신칭의가 맞다고 생각한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죄에 대하여 별의 별 희한한 합리화를 다 하는데, 히브리서 12장 4절에 보면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라고 책망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죄 지어도 괜찮다는 뜻입니까?  

 심지어 빌립보서 3장 12절에 보면 이신칭의를 주장했다는 바울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그 다음 13-14절에 보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고 고백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이신칭의를 주장한 것입니까? 죄 지어도 괜찮다는 뜻입니까? 

 빌립보서 2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라고 말씀하신 연후에 그 다음 말씀에 보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고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일반 성도들이야 또 그렇다 치더라도 성경을 연구하고 전해야 하는 신학자나 목회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경고의 말씀을 무수히 접하게 되는데, 도대체 이런 말씀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신칭의 때문에 곤비해서 넘어질 뻔 했습니다. 왜? 정말 이신칭의가 맞다면 성경은 믿을 수 없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신을 믿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닐 수 없잖아요. 그래서 만사를 접어 두고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제일 정확무오 말씀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됩니다. 그 ‘경외’라는 말이 바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고의 말씀을 절대로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3. 결론

 

 이제 시간관계상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흔히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만이 은혜라고 생각하고 그런 신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그것은 정말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왜 죄를 그렇게 혐오스럽게 생각하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불행하게 되는 것을 보고 싶어서?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죄가 들어오면 반드시 피차 불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불행하게 되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왜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난하기 때문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가난하면 좀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재물이 많으면 무조건 좋을 것 같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장롱에 수천억이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 돈 그냥 놓아두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런 돈이 없다보니^^ 문을 잠그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재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형제끼리 재산을 놓고 싸울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유명한 문인은 ‘부자가 행복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까지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을까요? 

 거기에는 단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이 요한복은 13장 34절에서 명하신 것처럼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신 이유는 그래야 더불어 함께 행복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더불어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디 영적 사기꾼들에게 속지 마시고, 성경의 바른 진리를 깨달으시므로 저 천국의 영광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더불어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시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되셔서 훗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잘했다 칭찬 받을 수 있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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