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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믿음

히브리서 배장섭 목사............... 조회 수 159 추천 수 0 2023.08.27 15:5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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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히11:22 
설교자 : 배장섭 목사 
참고 :  

요셉의 믿음       

본문말씀 히브리서 11장 22절 

 

 1. 서론 

 우선 먼저 22절에 보면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7년 흉년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식솔들이 요셉의 배려와 보살핌을 받아 애굽의 초원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양들을 먹이기 좋은 고센으로 내려가 살다보니 그 식솔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게 되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그들을 배려해 주던 요셉도 이제 나이가 많아 죽음이 임박하게 되자, 죽기 전에 야곱의 모든 가족들에게 ‘훗날 그 고센 땅을 떠나게 되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데, 그 때 자기 유골을 그냥 애굽에 두지 말고 꼭 자기 유골도 함께 가져가서 가나안 땅에 이장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히브리 기자는 믿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브리 기자가 말한 믿음은 어떤 믿음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행함을 부정하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오늘은 ‘요셉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계속해서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봄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요.

 

 2. 본론

 요셉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냥 단순히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심지어 유골이 애굽에 묻혀 있으면 부활하지 못하고, 반드시 가나안 땅에 묻혀야 부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요구한 것은 아니고, 물론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예루살렘 성전 가까이 묻혀야 부활을 빨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을 미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볼 때 그런 뜻으로 요구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창세기 15장에 보면 타는 횃불 언약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내려 간 후에 400년 이후에 비로소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아브람에게 약속하셨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비록 아직 약속의 기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애굽 땅에 묻힐 수밖에 없지만 유골이라도 하나님이 약속의 땅에 묻히고 싶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더 확신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

 출애굽기 13장 19절에 보면 약속하신 4백여 년이 지난 후 출애굽할 때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어더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야곱의 유골조차 그냥 그곳에 두고 나왔지만 요셉의 유골만큼은 가져 간 이유가 뭐라고요?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즉 ‘반드시’가 중요한데, ‘방문하다’는 ‘파카드’를 중복하여 절대형을 한 번 더 쓰면서 맹세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만큼 확신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요셉은 다른 그 어떤 형제나 심지어 야곱보다 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깊이 체험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통하여 주셨던 그 비전이 어떻게 성취되는 것을 너무 명확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요셉만큼은 하나님은 그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시는 약속의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그 삶을 통하여 체험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아마 훗날 요셉의 이런 부탁이 모세는 말할 것도 없고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도전이 되지 않았겠는가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는데, 요셉의 유골을 들어 나오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유골까지 가져 가야 되다니’라고 귀찮게 생각했겠습니까? 아니면 ‘오셉이 믿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정말 믿을 수 있는 약속에 신실하신 신이 맞구나’라며 감격했을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런 믿음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약속을 좇아 살아갈 용기가 생기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런 믿음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정확한 약속의 내용입니다. 

 만약에 그 약속이 단 하나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신은 믿을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왜? 믿어 봤자 속아 손해 보기 쉽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참 신이냐 아니냐를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데, 놀라운 사실은 신약성경을 연구해 보면 바로 그런 사실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님 역시 하나님 보내신 참 메시아가 틀림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점을 정확하게 주목할 수 있어야 거짓에 속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을 선뜻 바칠 수 있는 그런 흔들림 없는 불굴의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 24장 44-45절에 보면 예수님이 무조건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신 연후에 그 다음 46-48절에 보면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메시아 관련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메시아 관련 예언의 말씀의 성취에 근거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메시아가 맞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 역시 약속에 신실하신 믿을 수 있는 신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진위여부를 분별할 수 있는 종교는 오직 유일하게 유대교와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똑 같은 하나님을 믿는 이슬람도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유대인 중에서 그런 사실을 주목하지 못한 유대인들이 많더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지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에 그런 사실을 주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분별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런 가르침을 받지 못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조차 메시아 관련 예언의 말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별하지 못하고 약속의 메시아를 이방인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버림으로 버림 받게 되는 비운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데, 저는 여러분이 이런 사실을 반드시 주목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신앙생활하는 거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그냥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 전 정명석을 재림주로 섬기는 JMS 신도들이 “확인되지 않은 여론 재판에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며 성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명석을 위하여 데모하는 뉴스를 봤는데, 그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미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그 분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왜? 

 저는 혹 도움이 되실 분들을 위하여 제 주일 설교문을 페북에 올리는데, 몇 달 전에도 죄의 유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하여 정명석과 관련된 피가름의 교리를 다루었던 적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제가 정명석을 옹호한다는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해명을 해 줘도 JMS를 옹호했다는 장문의 논문을 써서 올린 것을 봤는데,^^ 그것을 보고 제가 ‘아니 어떻게 이렇게 오해할 수 있는가’ 정말 어처구니 없었지만 그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사람들이 성경도 이렇게 오해하는구나!’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새겨들어야 됩니다. 그런 오해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선 진위여부를 따지기 전에 상대방이 말하려는 말의 의미부터 먼저 정확하게 바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런 연후에 진위여부를 분해야 되는데, JMS 측에서 왜 억울하냐?

 그 이유는 피가름 교리 때문인데, 그들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 단순한 불순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와가 시탄과 성관계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죄가 유전되기 때문에 그렇게 유전된 죄를 없애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거룩한 메시아와의 성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JMS 입장에서는 정명석이 여자들을 건드리는 것이 성추행이 아니고, 거룩한 구원 행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 피가름의 교리가 옳으냐는 것입니다. 정명석과 성관계를 가질 수 없는 남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것만 봐도 피가름의 교리는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에 빠져 서울대생들을 비록해서 수많은 지식인들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식인들을 보고 또 빠져 들어가고, 물론 정명석이 그것을 노리고 제일 먼저 서울대생들을 상대로 포교활동을 벌였지만 어쨌든 그런 지식인들이 빠진 것을 보면 정말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입식 교육의 맹점입니다. 우리나라가 특히 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별력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도 나름 누구 못지 않게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여러 주석이나 강해설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신학책들과 논문집을 비록해서 역사, 철학, 문학, 경제, 경영, 무역, 회계, 천체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책을 읽든지 예외 없이 절대로 함부로 믿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진위여부를 분별해야 됩니다. 그것은 성경도 결코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성경의 진정성을 분별하기 위해서 원문을 중심으로 신구약 성경 전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조사하고 연구했는데, 성경만큼 완벽한 책은 없습니다. 

 물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원 복음’이 어쩌고 무엇을 갖다 붙였다느니 그런 주장을 하는데, 그것은 제가 볼 때 문학책조차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주장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증명의 방법조차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거나 뭔가를 읽어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는데, 성경은 구구절절이 증명의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명하여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종교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주목하지 못하다보니 유대인들이 버림 받게 된 것이고, 기독교가 변질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 보세요. 기독교에서는 이신칭의는 신성불가침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신칭의만큼 성경과 정반대 되는 교리도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것은 아예 볼 것도 없는데, 이신칭의 영향을 받으신 분들 중에는 가나안 정복 때 정탐꾼들을 숨겨 주고 맹약했던 붉은 줄을 창문에 단 그 붉은 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라합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치려고 했는데, ‘그 이삭이 예수님의 예표로서 아브라함 역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 구약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들을 전부 예수님께 갖다 붙여서 구약 시대에도 오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해석 방법을 가리켜 구속사적 해석 방법이라고 하는데, 그런 주장이나 피가름의 교리와 무엇이 다릅니까? 

 이런 성경 오해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거기서 말씀하시려는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놓쳐 버리는 무조건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기 쉬운데, 제가 바울 신학을 공부하면서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중에 최악이 이신칭의 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는데, 아니 어떻게 순종을 부정하고 불순종을 종용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 생각해 보세요. 

 이신칭의란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좇아 사는 것이 율법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을 모르는 상태에서 로마서에 보면 바울이 율법 행위를 부정했습니다. 그러면 옛 언약에서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반대가 무엇입니까? 불순종이잖아요. 순종 아니면 불순종 아닙니까? 그것 말고 다른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율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에 보면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율법주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살인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도적질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여러분 그 정도 분별도 안 됩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바로 이신칭의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리폼드 신학 교사를 역임하셨던 J. Gresham Machen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죄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죄 지어도 괜찮습니까? 예수님이 죄 용서를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 이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살게 할 목적으로 용서해 주시는 것이지 죄를 지어도 괜찮도록 할 목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28장 18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 연후에 그 다음 19-20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기케 하라----”고 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보면 새 언약 백성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믿기만 하고 세례도 새 계명을 좇아 살 필요가 없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의 말씀을 좇아 약속을 지키시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게 되면 그가 아무리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할지라도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등학생 정도의 분별력만 있어도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아니 이런 말씀들이 무슨 깊이 생각해야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까? 저는 신학자들이 성경을 읽는지 안 읽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면 이런 말씀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일까요? 

 

 3. 결론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마태복음 23장 15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고, 바울이 로마서 10장 2절에 보면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신 연후에 그 다음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책망하셨던 것처럼 기독교는 지극정성 무조건 열심히 신앙생활하기만 하면 되는 종교가 아닙니다. 복음의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한 잘못된 가치관에 근거한 열심은 스스로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 오히려 역으로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거역하는 신앙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복음의 바른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하는데, 어떤 분들은 또 이신칭의를 주장하면서 또 다른 한편 술 마시는 것은 죄니,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죄라고 정죄합니다. 제가 볼 때 그것은 성경을 너무 몰라, 물론 그것은 새 언약도 모르고 이신칭의도 제대로 모르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런 식으로 믿으면 안 됩니다. 만약에 술이 죄라면 예수님도 술을 마셨을 뿐만 아니라 성찬 때 사용하는 것이 포두주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닙니까? 

 마태복음 15장 17절에 보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락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술은 죄가 아닙니다. 다만 그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되면 그것이 곧 죄가 되는 것이지요. 

 아무튼 자꾸 길어지는데, 부디 복음의 진리를 바로 깨닫아 바른 복음의 진리를 좇아 신앙생활하시므로 단 한번 뿐인 천하보다 귀한 영혼 후회함이 없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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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히브리서 나의 축복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다. 히11:17-19  허태수 목사  2019-05-05 348
321 히브리서 예수님과 4차원 세계 히11:3  조용기 목사  2019-05-03 174
320 히브리서 믿음, 바라는 것들의 실상 히11:1-3  조용기 목사  2019-04-09 1017
319 히브리서 신앙의 기적은 담대함에서 히10:35  강종수 목사  2019-03-06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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