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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 산에서 시온 산으로!

히브리서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357 추천 수 0 2009.08.05 20: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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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히12:18-24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38503 

emoticon2004. 9.5.                    

시나이 산

오늘 본문은 누가 보아도 쉽게 분간할 수 있도록 두 대목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 대목은 18-21절로서 주로 출애굽기과 신명기의 하나님 현현에 대한 묘사이고, 다른 하나는 22-24절로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희망하고 있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묘사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두 가지 묘사를 대비시키고 있는 이유는 시간이 흐르면서 흔들리고 있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을 바르게 세워나가려는 데 있습니다. 과연 이 두 신앙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무슨 이유로 히브리서 기자는 시나이 산과 시온 산의 차이를 대비시킴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세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18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갔던 그 시나이 산은 아닙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신자들이 여전히 시나이 산을 그리워했다는 뜻이겠지요.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평생 시나이 산에 신앙의 토대를 두고 살아왔다고 한다면 아무리 새로운 신앙의 세계를 맛보았다고 하더라도 시나이 산을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흡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영도로 애굽을 탈출한 다음, 광야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애굽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일종의 복고주의라 할 수 있는 이런 경향은 인간들에게 거의 본능적으로 주어진 것 같습니다. 한 사회가 변혁과 혁명으로 나가는 길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전혀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내용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옛날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정서적으로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사회가 패러다임의 변화기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해방 이후에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별다른 학문적 배경이나 정치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겠지요. 해방 이후 60년 가까이 남한 사회를 지배하던 일제 식민의 권위주의가 근본적으로 허물어지는 과도기입니다. 이 과도기를 통해서 이 나라에 새로운 삶의 내용과 질서가 세워질 수 있을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변화가 일반 대중에게 주는 불안감입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북한이 남한을 지배하게 되는 거 아닌가, 이러다가는 시장경제가 훼손되고 사회주의가 들어서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 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주 구체적인 장애 요소로서 이런 변화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가, 대학교수, 법관, 검찰, 군장성, 고위 언론인,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한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은 대부분 이런 변화를 싫어합니다. 한 사회의 변혁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일입니다.

이런 복고적인 현상은 개인에게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어렸을 때 받은 교육과 형성된 정서는 변하기 쉽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삶의 세계에 대해서 눈을 뜨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 통용됩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면 살아왔던 그런 삶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극단적으로 고착화하면 일종의 자폐증을 앓는 사람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시나이 산의 현상

초기 교회 신자들이 유혹을 받았던 시나이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내용은 출애굽기 19장에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광야생활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구체적으로 계시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받게 되는 상황이 매우 이채롭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나이 산에 오를 때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했습니다(출 19:12). 그 산에서 천둥소리, 번개, 짙은 구름, 나팔소리 같은 현상이 임했고, 시나이 산 아래의 진에 기다리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현상을 일곱 가지로 설명합니다. 산, 불, 구름, 암흑, 폭풍, 나팔소리, 굉장한 음성이 그것입니다(18,19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현현하시고 율법이 수여된 거룩한 시나이 산에는 사람도 접근할 수 없고, 짐승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모두가 죽습니다. 모세마저도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떨린다”고 고백했습니다(신 9:19). 하나님의 거룩함이 가득하다고 알려진 이 시나이 산 전승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 속에 강렬한 빛으로 새겨졌습니다. 일종의 화산 폭발과 지진이 동반된 이런 자연재해야말로 고대인들에게 신의 현현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인간이 실제로 두려움을 느낄만한 가시적이고 폭발적인 현상이 우리의 심층에 있는 종교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히브리서 공동체가 시나이 산의 전승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지난 8월22일 주일 오후에 우리는 동해 바닷가를 다녀왔습니다. 망망한 바다를 마주대하면 우리가 얼마나 왜소한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눈으로 그것을 대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느낄 수 있겠지요. 여러분은 은하수를 보십니까? 별을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이 있다면 우리는 우주에서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 2-3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태양처럼 행성을 거느린 별은 45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는군요. 이런 거대한 우주는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어떤 거룩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을 내뿜은 시나이 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으로 믿었다는 사실은 그럴만합니다.

시온 산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시나이 산에서 경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신앙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2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 뒤로 계속 이렇게 이어집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잔치가 벌어져 있고, 또 하늘의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가 계시고 아벨의 피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 앞에서 시나이 산과 대비되는 시온 산의 장소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몇몇 산들이 거명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예루살렘 자체를 의미하는 상징적 장소라고 보아야 합니다. 기원전 6세기에 바벨론에게 함락당한 예루살렘을 회복하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운동이, 또는 기원후 70년경에 다시 로마에 의해서 함락되었던 예루살렘을 회복하자는 운동을 ‘시오니즘’이라고 하는데, 그 단어가 바로 이 시온을 뜻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본문에서 나열하고 있는 여러 상징적 용어들은 시온 산을 해명하고 있습니다. 시온 산은 하나님의 성(城)이고,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이러한 상징들을 세목별로 살펴보는 것도 흥미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 시간에 그것을 뛰어넘어가고 그런 상징이 말하려는 근본을 짚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본문을 읽을 때 이미 간파하셨겠지만, 시나이 산에서 벌어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 현현의 자연현상인데, 반해서 시온 산과 연관해서 등장하는 용어들은 완전히 영적인 세계를 가리킵니다. 분명하게 구별되지요? 불, 구름, 폭풍은 시나이 산의 현상이고, 하나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 속죄의 피는 시온 산의 사건으로 구별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사건에서 하나님을 인식한 반면에 초기 기독교는 영적인 사건에서 하나님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의 세계가 전혀 영적이지 않았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미 창조 사건 때부터 하나님의 영이 활동하셨고,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이런 하나님의 영과 연결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구약도 하나님을 영적으로 해명하고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 세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에 기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종교 심리의 극대화가 곧 우상숭배였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요소들로부터 완전히 결별하고 순전히 영적인 세계에만 집중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시온 산의 영성

그런 영적인 세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계속해서 상징적 용어를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와 그의 계시를 언급하는 이유도 역시 영적인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전혀 차원을 달리한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 바로 기독교 선교가 감당해야 할 딜레마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좀더 확실한 것을 요구하는데 반해서 기독교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단지 상징과 비유로만 해명해야 한다는 딜레마 말입니다. 히브리서를 받아 읽어야 할 교회 신자들은 이런 딜레마를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시나이 산의 거창하고 그럴듯한 것을 좇아가야겠다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 산”이라는 히브리 기자의 충고를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듣습니까?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잘 믿고 있으니까 이 충고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우리가 바른 신앙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적으로는 역시 시나이 산을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 말이 단순히 대교회 지향적이라고나 아니면 우리가 너무 세속적으로 산다는 차원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시온 산’이 말하고 있는 그 영적인 세계를 우리가 거의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사태가 문제입니다. 흡사 음악을 하기는 하지만 음악의 깊은 세계를 모르고 형식적으로만 따라가듯이, 시를 쓰기는 쓰되 그 시의 세계를 모르고 단지 언어유희에 머물러 있듯이 우리는 시온 산의 영적인 세계를 별로 알지 못합니다. 이 말은 곧 신앙의 표면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지 그 깊이로 들어가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교회가 언젠가부터 ‘영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그런 문제의식은 옳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것만으로는 교회 공동체의 존재론적 토대를 구축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의해서 영성을 강조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영성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별로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찬양을 뜨겁게 부른다거나 큐티를 집중적으로 한다는 식의 개인적 경건주의를 영성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조차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지만 이런 신앙은 여전히 문제를 풀어낼 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신앙태도는 초기 기독교부터 지금까지 교회 공동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통치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에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신앙생활이 또 다시 지루해질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다른 방법론을 찾아 나서겠지요.

여러분, 우리는 시나이 산이 아니라 시온 산에 와 있습니다. 이 시온 산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시는 곳입니다. 여기에는 흑암도 없고, 폭풍도 없고, 불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하늘의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있습니다. 아직도 이게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나요?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하는 불과 구름과 폭풍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았던 한 인간 예수의 사건에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나팔소리와 광음이 아니라 베들레헴의 초라한 구유에서 나셨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거기에 바로 우리 모든 인류가 누리게 될 미래의 생명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구원과 생명의 세계를 늘 생생하게 느끼고 희망하는 사람은 결코 시나이 산에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종교현상, 그런 정치적 힘으로 상징되는 시나이 산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영적인 생명이 숨어 있는 시온 산으로 옮겨왔습니다. 그 시온 산의 신비한 세계가 여러분의 삶에 또렷하게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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