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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문화, 변혁의 주인공

히브리서 김필곤 목사............... 조회 수 1744 추천 수 0 2009.10.24 1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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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히11:8-10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 케네디 2세가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에 가다가 그만 추락하여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패트릭 케네디는 가난하지만 신실한 신앙을 가진 아일랜드 이민자였습니다. 그러나 신대륙에 와서 밀주(密酒, 술집)와 청과상 등으로 돈을 벌어 아들을 하버드 대학에 보내어 결국 대통령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계는 끝임없는 사고와 불행이 있달았습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형 조셉 케네디는 29세에 2차대전 중 피격돼 시신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누나 로즈마리 케네디는 정신발달 미숙과 뇌수술 실패로 인해 1941년부터 병원신세를 지고 있고, 여동생캐슬린 케네디는 28세 프랑스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케네디 2세의 동생인 패트릭 부비에이 케네디는 조산아로 태어나 아버지가 암살되기 석달 전 죽었습니다.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42세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예비 선거 운동을 벌이다 암살되었고,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데이비드 케네디는 약물과용으로 숨졌으며 데이비드의 동생 마이클은 39세로 콜로라도주의 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가계는 3대에 걸쳐 암살, 사고 등으로 10명이 요절하였습니다. 이번에 케네디 2세가 사고를 당함으로써 케네디 전대통령 부부의 직계자녀 중 살아 남은 사람은 큰딸 캐롤린 하나 뿐입니다. 이번에 사망한 케네디 2세는 대통령에 출마하면 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기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나이로 부인과 함께 한줌의 재로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이런 가계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언론을 보니까 의견은 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존 F 케네디 2세의 죽음을 보고 미국인들은 "하나님은 케네디가(家) 사람들의 성공과 명성을 질투하는 것인가?"라고 질문하고 있고 유럽의 신문들은 '케네디가에 또 저주 내리다' '또 한사람의 케네디가 저주로 죽다' 같은 중세기적 제목으로 케네디 2세의 사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케네디가의 성공과 명성을 질투한다는 쪽은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이고 케네디가에 저주가 내렸다는 시각은 그 책임을 케네디 가에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질투하여 그 가정에 그런 불행이 닥쳐 왔을까요? 아니면 유럽인들의 시각처럼 저주를 받은 것일까요? 시기하였다면 무엇 때문에 시기하였을까요? 대통령,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사를 낸 미국인의 왕족 가문이 되어서일까요? 저주하였다면 청교도 신앙을 가진 그의 할아버지가 밀주를 하여 부자가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대통령이 되어 공립학교에서 기도하고 성경공부하는 것을 금해서 그랬을까요?
최근 베스트 셀러 1위가 된 책이 있습니다. 메릴린 히키라는 분이 쓴『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라는 책입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난, 조상의 술버릇으로 인한 패가 망신, 가정 대대로 내려오는 혈기와 폭력, 조상 대대로 물려받고 있는 유전적인 질병. 대다수의 사람들은 운명으로 여기지만 메릴린 히키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고 정의하고 이런 저주들이 후손에게까지 전해져 내려가며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시각으로 보면 저주입니다. 할아버지가 믿는 사람으로 술장사를 하였고 아버지가 공립학교에서 기도를 못하게 하고 성경공부를 못하게 하여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속단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가계의 저주의 피가 흘러 죄를 대물림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5장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이전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조상 때 모든 것은 다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모르고 살 때 행하던 모든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다 십자가에 못박아 장사지내었다는 말입니다. 완전히 새롭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 2장20절 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과거에 예수 모르고 살았던 옛 자아 완전히 십자가에 주님이 돌아가실 때 나도 함께 죽었습니다. 갈3:13을 보십시오.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았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해야 할 저주를 다 받으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고 저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8)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케네디 가가 정적 믿음이 있다면 결코 저주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왜 믿음의 사람이 환란을 당합니까?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환란은 여러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을 저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반복할 때는 징계하여 고치십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잠 3:12)" 사랑하는 모세도 잘못하면 징계합니다. 다윗도 잘못하면 징계하였습니다.
둘째는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신앙인 부부인 모 도지사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신앙있는 권사님들이 옷 사건으로 수난을 당하였습니다. 대우 창업주가 요즈음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가계의 흐르는 저주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사탄의 시험입니다. 욥의 가계처럼 시험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께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훈련을 시키는 과정에서 가계에 어려움이 올 수도 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다섯째는 자연적인 것입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 5:45)"
예수님께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죽은 18명을 통하여 교훈하시기를 회개치 않으면 너희들도 이와같이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사건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교훈받아야 합니다.
케네디 가계를 보면서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자신있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 가정의 문화입니다. 진보적인 기질이 있는 가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험심이 강하고 사고도 많다는 것입니다. 권력 지향적이다 보니 저격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농부이면 저격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인 이면서도 법을 어기며 미주를 팔아 돈을 번 할아버지처럼 분명한 신앙적 삶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세속적인 신앙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스캔들에 휩싸였습니다. 가정의 문화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질이나 성격, 모습, 습관들이 자녀에게 그대로 유전되듯이 가족 문화 역시 자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정 문화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후손들이 복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가족의 문화를 변혁시킨 주인공이 되어 그 후손들에게 복받는 인생길을 열어 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복한 가정 문화로 바꾸는 주인공이 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 중심의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8,9).-촛점, 하나님

역사 속에 나타난 가족 문화의 흐름을 보면 자연 중심에서 사람 중심, 사람 중심에서 물질 중심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사머니즘적이고 토테미즘적이다가 조상 숭배, 사람 숭배로 기울어지더니 이제는 물질 숭배로 변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물질이 중심이 뇌고 물질로 즐거워하고 물질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들을 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대대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수24:2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수 24:2)"
그러나 그는 부르심을 받고 과감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우상중심의 가정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인류의 3대 조상이 나옵니다. 첫 조상은 아담입니다. 둘째 조상은 홍수 심판후 새시대의 첫조상이 된 노아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첫조상이 된 아브라함입니다. 결국 아담도 범죄하여 그 가계에 원죄의 씨를 심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노아도 홍수를 통하여 구원받았지만 결국 술취하여 자식들을 저주하고 그의 후손이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가계를 새롭게 변혁시키는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습니다. 대대로 우상을 섬기는 문화 속에서 짐승처럼 살텐데 이제 완전히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왕자처럼 복받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창12:2-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얼마나 큰 복을 받았습니까?
우리도 이제 예수를 영접하였으니 가정의 문화를 바꾸어 복받는 가정,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 참으로 중요합니다.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님을 섬기시던 유계준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장로님은 열심히 교회를 섬기느냐고 그의 자손들에게 별다른 재산을 남겨 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섬기는 일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유장로님의 8남매 중 아들과 사위는 모두 장로님으로 장남은 국립의료원 원장 사위는 이한빈 부총리 둘째는 부산의대 학장, 셋째는 부산에서 병원장, 넷째는 유기천 서울대 총장, 다섯째는 시카고 시립병원 근무, 여섯째는 캘리포니아에서 병원장, 장녀는 용산 누가 병원 원장,차녀는 뉴욕 생화학 연구원 재직 그리고 이후에 자손들의 수가 129명에 이르고 있는데 그들 가운데 80%가 의료계에 종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가정의 문화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Jonathan Edwards(조나단 에드워드)는 하나님을 그의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모신 성도로, 경건한 여성도와 결혼하여 1,394명의 후손을 두었습니다.
그 중 13명은 대학 총장, 65명은 대학 교수, 3명은 미국 상원의워느 3명은 주지사, 30명은 판사, 100명은 변호사, 그 중 1명이 유명 법대학장이고, 75명은 군장교, 5명은 대도시의 시장이 되고, 1명은 미국 재무성 감사관, 1명은 미국 부통령, 기타는 모두 선교사, 목사로 국가와 세계를 위해 공헌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같은 시대에 살았던 MAX Jukes (맥스 죽스) 무신론자로써 하나님 믿지 않는 여성과 결혼하여 560명의 자손을 두었는데 그 중 310명은 거지로 죽고, 150명는 범죄자 였는데 그 중 7명이 살인자, 100명이 술주정뱅이였고, 그 후손 중 여자들은 절반이상 창녀가 됐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가계를 만들고 싶습니까? 나 한 사람 영향력 참으로 중요합니다. 좀더 복스런 가문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의 초점이 하나님께 맞추어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지향하는 가정문화로 바꾸었습니다.(8,10)-지향점, 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무슨 말씀을 주십니까? 참으로 행복한 가계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그가 살고 있는 도시는 우상의 도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문화입니다. 그가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쉽게 변화시킬 수 없는 우상 종교에 세뇌되신 분이십니다. 그이 친척들고 우상문화에 젖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새 시대 새가계의 주인공으로 사용하실 때 그곳에서 그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 문화를 바꾸라고 말씀하시기 보다는 그곳을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는 곳은 티그리스강 유프라데스강 유역으로 문명의 발생지입니다. 그러니 그곳을 떠나는 것이 쉽겠습니까? 가나안과는 비교도 안되는 기름진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결국 국경지대인 하란에서 머물렀습니다(창11:31). 그것은 바로 그 아버지 데라 때문입니다(행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행 7:4)"
본토는 떠날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떠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곳을 떠납니다. 그러나 친척인 조카 롯을 또한 떠내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그이 나이 75세입니다. 아들같이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때로는 극단적인 결정을 하여야 합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7)"
결국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아버지와도 조카와도 헤어지게 하였습니다. 집안 싸움을 통해서입니다(창13:7).
이제는 세상에 파묻히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상을 이끌고 가는 삶입니다. 돈을 벌도 돈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지식을 쌓으도 지식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명예도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산상 보훈을 통하여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가장 관심을 가진 부분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가정이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땅이 아닙니다.
세상에 안주한 아담이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그의 후예들을 보십시오. 창세기 4장에 가면 많은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결국 편함을 추구할 수는 있습니다. 그대신 죽음도 그많큼 확장되는 것입니다. 라멕을 보십시오. 어떻게 변합니까? 폭력과 선정, 허위로 특징지어주는 세속문화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인본주의가 좋은 것같지만 결론은 이곳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이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할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명확한 목적을 가진 가정 문화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힘없이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인들이 불신자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죄악의 낙'도 신자의 '영적 축복'도 두 가지를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신세로 살아갑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기쁨이나 실컷 만킥하고 살지요. 그런데 그것도 아닙니다. 미지근하게 늘 죄의식만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있으면 족합니다. 너무 욕심 때문에 세상의 집착 때문에 슬픈 가정을 만들지 마십시오.
주님이 산상보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내가 책임을 지신다는 것입니다.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쓸 것 입을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공부도 하시고, 사업도 하시고 결혼도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정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에밀 부르너는 "인류사의 발전은 진보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종말이 올 것을 믿는 곧 타세계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3. 말씀의 원리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17). -원리, 말씀.

요즈음 현대인의 삶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초현실주의-인문주의-실용주의-실존주의-다원주의 등 사상이 흐르면서 마지막 남는 것은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유익의 원리입니다. 둘 째는 편리의 원리입니다. 세 째는 만족의 원리입니다.
유익하고 편리하고 만족을 준다면 아무것이라고 좋습니다. 가정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말씀이 아닙니다. 어느 학자의 말도 아니고 어느 정치가의 말도 아닙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나 자식이나 며느리나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복종하는 가정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이 가라는데 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라는 곳에서는 멈추는 가정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아브라함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식을 바치라고 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반항할 수 있습니다. 불쌍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 인격적이고 비 합리적이고 모순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들을 잡아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 이성에 맞습니까? 그것도 약속의 아들이 아닙니까? 도덕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앙적으로 생각해도 약속으로 주시고 다시 거두어 가신다니 말이 됩니까?
우리가 우리 가정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 판단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말씀의 원리를 무시하면 그 아들도 그렇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 대표적인 예사 에돔 가문입니다. 에서 가문입니다. 에돔은 에서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들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금도 호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주를 자초하였습니다. 일곱 선지자를 통하여 징벌이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곧 이사야(34:5, 63:1-6), 예레미야(49:7:22, 애 4:21,22), 에스겔(25:12-14, 35:1-15), 아모스(1:11,12), 요엘(3:19), 말라기(1:2-4), 그리고 오바댜입니다. 듣지 않습니다. 무시합니다. 에돔 족속의 후예가 바로 헤롯입니다. 헤롯은 그 저주를 끓지 못하고 어린 예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는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했고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3대인 헤롯 아그립바는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4대인 아그립바 2세 앞에는 바울이 나타나서 저주를 끊을 기회를 하나님은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거절했고 지금은 저주에 삼킨바되어 헤롯 가문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를 끝으로 에돔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영원히 끊어져 버려 오바댜의 예언같이 되었다"(옵 1:10,)고 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잃었습니다.
지난주 뉴스위크지를 보니까 "신도 떠나고 신자도 떠나는 유럽 기독교"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영국에서는 11%가 예배에 참석하고 독일에서는 12%가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인은 교회에서 결혼하면서 "내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해서 내 결혼 생활이 더 오래 지속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결혼식 날 만 필요할 뿐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해해 주고 자신들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위해 교회에 간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증권 시장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사회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고 정부에서 자신들의 삶을 충족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삶에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21세기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피리를 불고 호곡을 하여도 사람들은 장단을 맞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씀을 지킴으로 증거로 보여줍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정의 문화를 바꾸어야할 주인공이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가정 문화를 하나님 중심의 문화로 바꿉시다. 우리의 가정 문화를 하나님 나라 지향 문화로 바꿉시다. 우리의 가정 문화를 말씀의 원리 문화로 바꿉시다.
아브라함은 가정 문화를 바꾼 주인공이 되어 그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영혼이 잘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가계에서 탄생했습니다. 육신의 건강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으며 175세를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재물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318명의 군대를 양성했습니다. 그 이름이 창대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자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가정 문화를 변혁하여 우리도 복받는 인생을 살고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가정 문화를 남겨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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