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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믿음의 대상

히브리서 김남준 목사............... 조회 수 2179 추천 수 0 2012.12.14 0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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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히12:2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그리스도 믿음의 대상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Ⅰ.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혜와 능력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에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하셨으나 창조물들을 통해서는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고, 구속을 통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죄가 들어오기 전에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증거는 만물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후에는 창조세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뚜렷이 알 수 있지는 못했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구약을 살았던 수많은 인물들이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은 흔적들이 나옵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행적을 열거한 후에 사도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2a)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바라보자”는 것은 “믿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가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물을 보는 것처럼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의존의 마음을 가지고 보는 그러한 바라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A. 믿음의 본질(本質)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가 바로 믿음의 주, 다시 말해 믿음의 대상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조와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보여주셨고, 또 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절대의존과 사랑이 그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처럼 우리에게 나타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렇게 탁월하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우리는 어떤 의무가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위해 그리스도를 그렇게 탁월하신 분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다면 거기에는 그 탁월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인간을 향해 가지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탁월성에 대한 인간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의무 안에서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참된 자리로 돌아갈 수 있고, 거기에서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탁월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는 첫 번째 의무는 바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믿음은 이성적으로 추론할 때 이해될 수 없는 초자연적 사실에 동의하고 그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해서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되어 있어야 하고 예수와 상관없이 끊어진 믿음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본질을 우리는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타(他)길 포기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본질은 먼저 그리스도외의 구원의 길을 전적으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구원은 내가 지은 죄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인간이 행복하게 되는 것 모두를 의미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보다는 더 나은 또 다른 삶을 살고자 해서, 지금 행복하다면 그 행복한 상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고민하고 애씁니다. 그것이 그 사람들에게 일종의 구원인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사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자 갈구하며, 자신이 원하는 그것이 자신의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고 그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생을 행복하게 하고자 하는 구원에 대한 열망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길을 모두 포기하는 것입니다.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그리스도 예수 외에 다른 곳에서는 어떤 가능성이나 기대들을 모두 포기하는 것입니다.

 

2. 의지의 동의

 

그리고 오직 참된 행복의 길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리스도 예수,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게 될 때, 자신의 의지가 믿음에 동의를 합니다.

 

3. 마음의 인정(認定)

 

그렇게 주님을 믿게 될 때 자신의 의지가 이 믿음에 동의를 하고 그것이 마음에 영향을 미쳐서 그 사실을 마음깊이 인정하게 됩니다. 그 고백이 “아멘”입니다. 그래서 그 주님이 나의 행복을 위한 유일한 길이고 나의 참 소망이라고 깊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음 전체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와서 그분이 나의 인생의 행복을 위한 유일하고 참된 길이며 다른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을 곳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믿어지는 것입니다.

 

4. 절대의존(絶對依存)

 

마지막에 생기는 믿음의 본질은 그 예수께 대한 절대의존의 마음입니다. 예전에는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예수가 아니었습니다. 돈을 믿었고 나의 건강을 믿고 혹은 권력, 혹은 내 실력을 믿으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만이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고,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면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 자체가 심한 고통이요 형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그분께 대한 전적인 의존의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의존의 마음은 자기를 향한 의존의 마음이 깨어질 때 절실하게 생겨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자기깨어짐” 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의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아니면 자기 자신입니다. 돈, 권력을 의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나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우리들이 당신께 절대적으로 의존하길 원하실까요? 절대의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적으로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순종하지 않는 이유는 그 순간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자기 자신의 방법을 더 많이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피조물보다 상하고 깨뜨려진 마음, 그래서 주님만 온전히 의존하는 마음, 그것을 더 아름답다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B. 믿음의 대상

 

1.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여기에 하나님의 탁월한 지혜가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그 절절한 사랑을 한줄기 빛처럼 찬란하게 보여주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녹아내리게 해 결국은 죄를 떠나고,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하나님만 의존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그리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하늘에 계실 때에는 죽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으로는 구원을 얻는 신앙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오르신 것,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든지 그분이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나를 심판하실 것을 굳게 믿을 때에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는 것이, 믿는다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기를 포기하지 않은 채 믿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계명대로 살고자 한다면 이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지 않았더라면’, ‘아무 희망이 없는 자기 같은 인간을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치르신 그 희생과 고난이 없었더라면’이라고 생각할 때, 자기를 전적으로 포기하고 어두움 가운데 찬란하게 드러난 예수의 사랑과 은총을 굳게 붙들게 됩니다. 이때 주님의 계명은 더 이상 어려운 계명이 아니라 가벼운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명의 무게가 아니라 자기사랑이라는 욕망의 무게 때문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 앞에 깊이 깨뜨려지고 예수님이 내 마음에 충만하게 오시면 의무가 너무나 가벼운 것이 됩니다. 십자가를 벗겨주셨기 때문에 가벼운 게 아니라, 주님을 향한 절대의존과 자기를 의존하지 않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볍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2. 성경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반드시 성경에 대한 신앙과 나뉘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그 분이 나의 구주가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믿음은 성경 진리에 대한 믿음을 함께 가지고 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11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따라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2a). 무슨 뜻입니까? 그렇게 믿음으로 죽어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대상이 아직 오시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였는데 그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온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그분을 믿는 것은 더욱더 분명합니다. 그것을 성경이 증거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제사와 생활에 대해서 증거했는데 그 제사는 예수 오실 것을 알리는 제사였고, 그 생활이 오실 예수를 바라보며 준비하는 삶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시고 증거를 남기신 분이시기에 예수를 믿고 성경을 믿는 이 두 가지는 나누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은혜를 받게 되면 제일 먼저 사랑하게 되는 것이 성경입니다.

 

II. 그리스도 믿음의 유익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를 굳게 믿을 때에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겠습니까?

 

A. 율법으로부터 구속

 

율법은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죄를 지적하고 벌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율법을 우리 몸 바깥에도 새기시고 우리 마음 안에도 새기셨는데 우리 몸 밖에 새기신 것은 십계명이고 우리 마음 안에 새기신 율법은 양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지은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율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율법에 따라 심판을 하시고, 율법을 본 적이 없고 자신의 양심을 따라 산 사람은 그것으로 율법 삼아 그들의 죄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속해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크기가 무한하기 때문에 무한히 형벌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 율법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믿을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하나님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주 흉악하고 처참하게 죽으셔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짊어지신 우리의 죄악이 너무나 악질적이고 큰 분량이었기 때문에 무한한 희생을 지불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그 죄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그렇게 대가를 지불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의를 획득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義)입니다. 우리가 믿는 그 순간에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르고 예수께서 소유하고 계신 그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으나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불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 모든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B. 죄로부터 구속

 

두 번째는 죄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죄로부터의 구속은 자유로 나타납니다.

 

1. 신분의 자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 전까지는 신분 그 자체가 죄의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으로 당신의 자녀를 만드셨는데 죄의 종, 즉 하나님과 원수된 사이인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향한 적개심과 원수의 감정을 가지고 태어나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악하게 본뜨면서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온 우주의 중심이 자기인 것처럼, 자신의 행복이 이 세상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것이 죄의 종입니다.

 

죄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장 좋아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순종할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끊임없이 사랑하게 되면 마음에서 끊임없는 감동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자기사랑의 감동입니다. 자기사랑에 감동이 되면서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는 정신적 자원들이 생겨나고 그러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떠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신분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 순간에 하나님이 죄의 종이라는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이동시켜 주는 것입니다.

 

2. 상태의 자유

 

두 번째는 상태의 자유입니다. 죄의 종인 인간들은 영혼이 죄에 점령되어 있었고 영혼에 어두움이 가득하고, 지성은 눈멀고, 의지는 하나님 앞에 복종하지 않고, 감정은 고르지 못해 욕망에 따라 출렁거리는 아주 불안전한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마음의 평안이 없고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해도 나를 사랑하는 한계 안에서는 자유로운 것 같은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하면 내 안에서 억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면서 살아갈 때에는 아주 자연스럽고 억압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떨치고 하나님께로 갈려고 할 때에는 고통을 느끼는 겁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릅니다. 영혼이 그러한 상태였는데,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이 한순간에 자유롭게 하시고 성령이 놀랍게 찾아 오셔서 죄의 힘보다 더 강한 은혜의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윤리의 표준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이고 우리에게 주시는 자유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예수께 묶어서 우리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예수께서 사셨던 삶의 질을 이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C. 하나님과의 교통(交通)

 

이때에 그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교통이 주어집니다. 인간은 계속적으로 음식을 먹어서 영양분을 섭취하여야 건강을 유지하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가 계속적으로 음식의 공급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영혼도 하나님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를 통해서 생명과 사랑을 끊임없이 공급받음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기대하셨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이런 것들이 끊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셔서 회복시키는 것은 처음 가졌던 그 통로를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지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흘려보내시는 진리, 생명과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영혼이 참으로 살아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생명과 사랑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교통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시련과 고난이 가득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망으로 가득해도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얼굴을 구하면 어느 한순간에 주님이 나의 마음을 확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진리가 내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내’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나와 하나 되었던 또 다른 내가 싫어지고, 또 불신하게 되면서 예수님과 하나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평강, 놀라운 은혜 그리고 놀라운 기쁨이 그때에 밀려듭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맛볼 수 있겠습니까?

 

D. 그리스도를 닮음

 

그렇게 하나님과의 교통에서 생명과 진리를 공급받으면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흘러들어온 진리가 예수의 진리이고, 그렇게 흘러들어온 성령이 예수의 성령이고, 흘러들어온 사랑이 예수를 통해 주어진 사랑이고, 공급받은 생명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변해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계속 생각하고, 그분 앞에서 자기가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깨뜨려지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자기가 사랑 없는 것 때문에 깨뜨려지면서 변화되어 갈 때 그 모습이 예수를 닮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E. 창조목적을 따라 살아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또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유한하고 끝이 있는 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계시는 효과를 끊임없이 이 세상 가운데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된 세상이 계속해서 번성하게끔 법칙들을 통하여 또 다른 의미의 창조를 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금도 다스리고 통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영향과 효과를 이 세계에 미치시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하나님과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당신과 닮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로써 끊임없이 하나님 자신을 반복하고 생성하고 전사하고 발현시켜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신 효과를 계속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과 정신이 당신을 가장 많이 닮을 때 그 안에서 하나님도 가장 기뻐하시고 인간들도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타락한 인간과는 다른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품으면서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사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우리와는 다른 영혼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부어주시는 진리와 은혜의 감동을 받고 그 앞에 자기를 끊임없이 자기를 깨뜨리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예수의 모습을 닮게 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영향을 끼치시고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끊임없이 확장시켜 죄인들을 구원하고, 그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고 당신 닮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런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났지만 우리는 잊어버리고 그리스도는 늘 기억해 그분을 통해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발견하며 감동하게 됩니다.

 

이제껏 자신이 지은 모든 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악과 부패, 이 모든 것들이 절망스럽게 느껴졌는데 그것을 캄캄한 배경으로 삼아 영광스러우시나 겸비하게 오시고, 높으시나 낮은 분으로 오시고, 통치하시는 주시나 겸손히 섬기기 위해서 오시고, 자족하는 분이시나 의존하면서 아버지를 향하여 사셨던 예수님의 그 생애가 한 줄기 빛처럼 찬란하고 아름답게 그 사람 앞을 그리고 지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꽉 붙들게 되고 예수를 닮고 사랑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수 닮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계속 변화해 감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적 생명과 사랑이 이 안에 넘쳐서 주님이 모든 세계를 아름답게 완성하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안에서 인간이 행복하며 주님을 의존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예전에는 항상 자기 밖에 몰랐던 사람들이 변합니다. 예전에는 자신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크게 뻗어나가서 늘 다른 사람들의 원과 부딪혔습니다. 한 번 부딪히면 이 갈등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 사람도 원을 그리면서 뻗어나가고자 하고, 저 사람도 뻗어나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되면 자기사랑을 십자가 앞에서 내려놓고 깊이 회개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돌아갑니다. 은혜에서 멀어져 잠시는 자기사랑의 원을 그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고 깨트려지면 십자가 사랑 안으로 통합되면서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원을 다시 그립니다. 그렇게 사랑의 질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III. 결론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들을 이 세상에 흩어져서 제각각 살게 하지 않으시고, 한곳으로 모으시는데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진리, 생명과 사랑을 충분히 받고 세상에 나가서 그 예수의 정신을 가지고 예수 닮은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미치면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은혜에서 멀어지면 또 와서 말씀을 듣고 다시 하나님 앞에 깨트려지고 다시 회개 하고 그러면서 또 다시 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효과를 세상에 끊임없이 생명과 사랑을 펼치면서 살게끔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생명과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부르심이 우리의 창조목적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으로 우리가 창조목적으로 돌아가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세상으로 조금씩 바꿔가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그리할 수 없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로 하여금 그러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굳게 붙드십시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십시오. 그것이 인간 본분,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200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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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브리서 역사를 책임지는 말씀 file 히13:5-8  강종수 목사  2006-09-1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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