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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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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하용조 목사 |
참고 : |
하나님의 음성듣기
히1:1~3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과 모양으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몇몇 사람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제자들도 들었고,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사람들도 설교를 들었고, 눈빛을 보고, 악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정확히 표현한 성경말씀이 히브리서 1장 1~3절입니다. 저는 오늘 히브리서 1장 1절 말씀을 극대화 해서 구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는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내일 말씀드릴 ‘예수님의 음성듣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사망에서 생명으로
요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던 구약시대의 방법이 아니요, 신약시대 예수님의 방법도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음성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왕, 제사장, 예언자 등 특별한 사람이 말씀을 들었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후에는 말씀을 듣는 대상의 제한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동양인이나 서양인,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 어른이나 아이, 늙은이나 젊은이 등 누구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오십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성령을 사모하는 자는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기도할 때, 오늘 이 밤에 성령님을 사모해서 모인 여러분에게 성령님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
바람은 공간에 옵니다. 불은 사람에게 임합니다. 오늘 이 공간에 성령의 바람이 불기 바랍니다. 이곳에 성령의 바람이 불면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성령의 인격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령의 바람이 임하면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납니다. 성령의 불은 머리 위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은 자기의 의지와 지성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내 인격 전체에 그 불이 임하는 것은 성령 세례가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방언과 신령한 은사들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들이 나타나기 바랍니다. 이런 역사가 나타나면 더러운 귀신들이 숨어있다가 발작을 합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없어지듯이, 성령님이 오시면 내 안에 있는 어둠의 생각, 부정적인 생각, 죽음의 생각, 병든 생각들이 견디지 못하고 빠져 나갑니다. 내 안에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사탄의 생각은 우리를 흥분시키고 극한으로 몰고 갑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영적 분별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자칫 마귀를 따라 잘못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은사는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아무리 이상해 보이는 은사라 해도 말씀에 근거한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말씀에 기초하지 않으면 은사로 서로 싸우고 경쟁합니다. 교만해지고, 자랑하고,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은사가 모두 성경적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기를 축원합니다. 단순한 감정이나 흥분, 단순한 영적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풍성한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 평강 가운데 들리는 음성
여러분 안에 있는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더러운 인격, 생각들이 깨끗해 지기를 바랍니다. 말만 하면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평안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말을 들을 때 사랑이 생기고 용서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새 방언을 말하십시오. 성령님이 오시면 사탄의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어가 생기고, 내 입에는 축복의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생명의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내가 결심하는 것과 다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느껴지느냐’ 입니다. 어떤 사람은 돌맹이 같아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기 계시면 그냥 좋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힘들어도 하나님 말만 들으면 마냥 좋습니다. 죽어도 좋고, 손해를 봐도 좋습니다.
‘무장 해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장 해제를 하는 것입니다. 닫혔던 창문을 열고 햇빛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왕이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괴롭혀 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모든 것을 내려 놓습니다.’ 이렇게만 말해도 순식간에 요동하던 마음, 불안한 마음, 우울한 마음이 변해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평강이 있을 때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싸우면 하나님과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높일 때 그분의 음성이 들립니다. 관계가 회복되어야 음성이 들립니다.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에 놀라운 영적 평화와 기쁨과 찬양이 흘러 넘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방해물 제거하기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믿음의 선배들이 가르쳐 준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하고 결혼해야 하는지, 이 병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사업이 어려운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기도하십시오. 기도하기 전에 장애물을 제거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괜찮습니까? 그러면 괜찮습니다. 사랑의 주파수가 맞고, 믿음의 비밀 코드가 맞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어 있는 사람은 구하기 전에 회개하십시오. 혹시 하나님과의 관계는 좋지만 여러분 안에 숨은 죄가 있습니까? 고백하십시오. 사탄의 유혹이 있습니까? 물리치십시오. 구하고 있는 것의 동기를 점검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구하고자 하는 것을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 99%는 성경에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가장 방해되는 것은 상처와 교만입니다. 마음에 쓴 뿌리가 있거나 상처가 있으면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도 병들면 입맛도 없고 잘 안들리고 안보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잘 보고 잘 듣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은 판단을 정확하게 합니다. 감정이 혼란스럽고, 이기심이 있고, 동기가 불순하면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잠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기도의 최대 응답은 포기입니다. 내려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응답을 미리 결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묻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또 묻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응답이 나올 때까지 기도합니다. 기도를 너무 많이 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안 되는 것을 내 맘에 들 때까지 조르는 것입니다. 안 되면 금식을 합니다. 순종하면, 포기하면 쉬운 것을 자꾸 어렵게 합니다. 여러분에게 포기의 축복, 순종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초보자일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 느낌이 없고 눈 감으면 캄캄한 분들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매일매일 조금씩 기도를 계속하면서 성경을 보고, 사물을 관찰하십시오. 그럴 때 우연이 아닌, 감정이나 느낌이 아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알게 됩니다. 걱정말고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는 세미한 음성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뒤를 따라갈 때마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있고, 내가 할 수 없는데 된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붙잡으십시오. 신앙 생활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잡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가 17년을 지나면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음성을 듣기 위한 몇 가지 전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기본적인 몇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신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말씀을 듣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모르면 말씀을 오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신관들이 있습니다. 그 신들과 하나님과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 수 있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능력입니다. 말씀은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말씀이 하나님 자신이고, 말씀이 예수님이고, 말씀이 성령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말씀대로 됩니다. 창조, 구원, 성경도 말씀입니다. 사랑, 진리, 공의도 말씀입니다. 정의가 무엇입니까? 저마다 정의의 잣대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말씀이 정의입니다. 이것도 사랑이고 저것도 사랑입니까? 사랑의 기준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분별하지 못해서 그렇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 하듯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신음소리도 아십니다. 그리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어떤 때는 심판하기도 하십니다.
이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눈 감고 성경을 환상으로 보지 않기 바랍니다. 이상하게 성경을 해석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이단이 생기지 않고, 신앙이 극단적으로 가지 않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이 위대한 신관을 놓치면 모슬렘이 되고, 여호와증인이 되고, 문선명이 됩니다. 이들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에 기초하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놓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합니다. 이럴 때 얼마나 많은 피해와 인격적 파탄이 오는지 모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공의와 거룩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털끝만큼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면 죽였지 죄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행동을 하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공의의 하나님만 있다면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용서와 사랑이 있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 본질상 진노의 자식, 부패한 인간을 사랑하사 하나님께서는 죄 없다고 하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이 공의와 사랑의 양면성을 성경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완전함이 거룩입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 원하시고, 우리가 복을 받기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이해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정확하게 들립니다. 이런 것이 아니라면 인위적인 소리, 욕망의 소리, 사탄의 소리가 되기 쉽습니다.
▶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 모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기억해야 할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구원받은 사람, 성령 받은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기도할 때 ‘주님, 사랑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저는 참으로 성령님을 사모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두 번째는 성숙의 문제입니다. 인격이나 신앙이 미숙하면 상대방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사람이 하는 말을 개가 알아들을 수 있을 까요? 마찬가지로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을 알겠습니까? 모릅니다. 믿음이 성숙하지 않고 인격이 성숙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자기 수준으로 밖에 이해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 인격, 지성의 성숙이 중요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음성이 들렸을 때 끝까지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단계를 잘 표현하는 모델이 창세기 1장부터 11장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불행한 대화가 많이 있습니다.
죄를 짓고 난 후, 아담과 하와와 하나님과 한 대화를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3장 8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겁이나 숨습니다. 진리는 진리가 환영합니다. 불의는 절대로 진리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거짓은 정직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여러분에게 없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도 똑 같습니다. 여러분 안에 죄가 있으면 성령의 역사를 피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합니다. 들려도 듣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성령님의 역사를 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하고 물었을 때 아담이 자신의 죄를 고백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니다. 그런데 변명을 했습니다. 여자를 주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여자도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이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죄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변명하고 숨어버립니다. 이것이 첫번째 대화 모델입니다.
두 번째는 가인과 아벨이 나옵니다. 예배 때문에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4장 9절을 보니까 하나님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가인은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가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대화가 삐걱거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문제를 제시할 때 울며 고백하기 바랍니다. 용서를 구하면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잘못하지 않았다고 우기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 넘기기 때문에 대화가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 대화 모델은 하나님과 노아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6장에서 세상을 다 쓸어버리기로 결정합니다. 인간이 싸우고 시기하고 서로 죽이는 불행한 모습으로 변하니, 하나님은 징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택해 대화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음성
이렇게 대화하시던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아브라함을 찾으십니다.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저주스런 인간과의 관계를 하나님은 구원하는 관계로 만드시기 위해 믿음의 조상을 만드십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믿음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형편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믿지 않았고, 신뢰하면서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조상을 만들어야 먼 훗날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올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브라함이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 가운데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삭과 야곱도 그렇게 하셔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틀을 만드셨습니다. 야곱 같은 사람은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도 만나주셔서 구원을 약속하시고 꿈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는 좀 다른 계통의 사람입니다. 요셉은 메시야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만나주셔서 애굽에서 자신의 백성을 이끌어 내시고, 구원의 드라마를 보여주십니다. 이후 여호수아를 보내주셔서 가나안 땅 점령이라는 모델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사사기를 통해 인간의 형편없는 정치, 경제, 사회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모델을 제시하십니다.
분열된 이스라엘이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십니다. 역사의 혼돈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음성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클라이맥스는 자기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어 하나님 스스로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죽고, 부활의 영광 가운데로 이끄신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신 것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순절로 이어집니다. 이런 기초 위에서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 성령이 인격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가 이 자리에 있으며, 우리의 미는 무엇인지,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 원하시는지 이번 집회를 통해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의 음성이 여러분 개인에게 전달되기를 축원합니다.
하용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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