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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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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하나님 말씀과 뜻에 순종하자
본문: 히5: 8- 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근원이 되시고"
스펄전이 브리스톨에서 제일 큰 세 군데의 침례교회에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고아원을 위해서 300파운드를 모금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스펄전은 예정대로 300파운드를 모금했습니다. 집회를 끝내고 와서 피로한 몸을 쉬려고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300파운드를 조지 뮬러에게 주거라!" "그렇지만 주님, 이 돈은 런던에 있는 우리 고아원의 불쌍한 고아들을 위해 꼭 필요한 돈인 걸요!"
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그 300파운드의 돈을 조지 뮬러에게 주어라." 결국 스펄전이 순종하자 잠이 소르르 왔습니다.
그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조지 뮬러를 찾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돈 300파운드를 자네에게 주라고 하시더군." "오, 제가 주님께 요청한 금액이 바로 300파운드였습니다."
스펄전은 곧장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책상 위에는 편지 한 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열어보니 300기니의 영국 금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기쁨에 넘쳐 소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300파운드에다가 300실링의 이자까지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심령을 평화롭게 하고 또 큰 축복과 은혜를 선물로 가져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28:1)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제자를 삼기 위한 시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관문은 '배추 심기' 였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장이 배추 뿌리를 하늘을 향해 심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제자가 되고 싶어 찾아온 두 청년이 밭으로 갔습니다. 한 청년은 수도원장의 말씀대로 배추 뿌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심었고 한 청년은 수도원장의 말씀과 반대로 배추 뿌리가 땅을 향하도록 심었습니다. 수도원장은 배추를 심어 놓은 모습을 살펴보고는 두 번째 청년을 불러 말했습니다.
"청년처럼 똑똑한 사람은 혼자서 사십시오. 당신은 선생으로서의 자격은 있을지 모르지만, 제자로서의 자격은 없습니다."
순종은 제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하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신앙이 좋았고 선정을 한 여왕인데 종종 궁궐을 빠져 나가서 서민들과 사귀고 대화하길 즐겼습니다. 어느 날은 한 과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이 과부는 믿음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는 안하고 서로 기도하고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신앙의 교제의 꽃을 피웠습니다. 여왕이 그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일찍이 아주머니를 찾아 준 손님 가운데 가장 고귀한 손님이 누구입니까?" 그 말에 대한 답변이 여왕이라는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이 아주머니가 너무도 신앙이 좋기 때문에 여왕이라는 말을 안하고 나의 생애의 최고의 손님은 우리 주님이라고 고백을 하면 자기도 그렇다고 하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그런 기대 때문에 물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여왕님께서 찾아 주신 것이 최고의 영광입니다. 내 생애 최고의 손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왕이 실망하여 "예수님이 아주머니를 찾아 주신 것이 아닐까요?"라고 물었더니, 대답이 "예수님은 손님이 아닙니다. 내 주인입니다. 처음부터 계신 분입니다. 나는 그 분을 위해 존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여왕이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주인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은 주님께 맡기는 생활이고 주님이 내 속에서 사시는 생활입니다. 주님의 손에, 주님의 품에 자기를 내어 던져 버리고 맡기는 생활입니다. '조각가가 돌을 깎고 다듬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내듯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마음대로 다듬고 깎아서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기도가 평생의 기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최근에 나에게 깊은 감동과 충격을 준 분이 계신데 그는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치과의사입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그는 조용히 자신을 굴복시키기로 결정을 하고 재산을 하나하나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그렇게 정성 들여 가꾼 산과 별장을 포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 대한 꿈도 포기하고 여러 가지 미래의 계획도 포기했습니다. 그의 주위 사람은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꼭 예수를 그런 식으로 믿어야만 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그에게는 중국의 연변에 있는 조선족에 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그분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직 평생 나를 위해서 이만큼 살아왔으니 후회가 없습니다. 이제 주님의 뜻대로 나의 남은 생애를 바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선택과 결정은 결코 내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나는 그분을 볼 때마다 위대한 설교 자체를 만나는 것 같은 큰 충격과 감동을 받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기다림 속에서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어 이제 그는 고국을 떠나서 가족들과 함께 소리 없이 빛도 없이 조용히 순종하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온통 그 분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 이것이구나. 바로 이것이 믿음이요 순종하는 삶이구나"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순종과 책임, 그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되어야 함을 믿습니다.
영락교회 이철신 목사의 글(만남 4월호)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이며 화가인 미켈란젤로는, 일생동안 ‘피에타’를 조각해서 4점을 남겼습니다. ‘피에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어머니 마리아가 품에 안은 장면입니다. 그중에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가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아름답고 화려하면서 섬세한 작품이고, 예수님과 마리아의 신체 비율을 가장 완벽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말년에 제작하다가 미완성으로 남은 피에타가 있는데, 밀라노의 스포르차 성(城) 미술관에 있는 론다니니의 피에타입니다. 섬세하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거칠고 단순합니다.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 슬프고 비참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주권에 전적으로 순종한 예수님과 마리아를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조각가는 작품을 구상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돌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채석장에 가서 돌을 고르고 결을 따라서 깎아냅니다. 조각가는 돌을 볼 때 볼 때, 그 속에서 천사를 보고, 돌 속에서 천사를 끄집어냅니다. 돌을 잘라내고, 깎아내고, 갈아서, 천사를 끄집어냅니다. 돌은 조각가의 의도와 계획을 모릅니다. 그러나 돌이 조각가에게 불순종하면 돌 그대로 있고, 조각가에게 순종하면 예술작품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과 계획에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만들어 가십니다. 때로는 잘라내고, 깎아내고, 갈아냅니다. 그 다음에 씻고, 광을 내고, 색칠을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과 계획을 모릅니다. 단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과 계획에 순종할 뿐입니다.
때로는 잘라내고, 깎아내는 고통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께 선한 의도와 계획이 있음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더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어서 아름다운 작품이 됩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버려지고 파멸하게 됩니다.
순종이란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 고난을 지나서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말할 수 없이 수치스럽고 비참한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여 하늘 영광을 차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죽이는 것이 부활의 영광을 얻는 길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구주이시고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죽인 것같이, 우리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선한 의도와 계획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죽이는 사람만이 부활의 영광을 얻을 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면, 믿음대로 은혜를 받고 영광을 얻게 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가 죄에 오염된 것처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순종으로 인류 구원을 이뤘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았기에 그 가족은 재앙의 날에 구원의 방주 안에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순종과 불순종은 결코 자기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 나라와 인류와 관계된 중대한 문제 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면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삶을 살기를 열망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순종하는 자의 뒷모습을 보여 주어, 다른 이들을 순종의 자리로 이끕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하나님 앞에 돌이키지 않고 불순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사람들의 애곡 소리를, 그 영혼들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탄식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그 곳에 들어가 첫째도, 둘째도 순종하는 백성이 되라고 거듭 당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를 기업으로 삼은 백성인 우리에게도 순종을 요구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순종을 통해 주위의 가족과 친구들이 아울러 구원받아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형식적인 신자 백 사람의 영향력보다는 진실한 신자 한 사람의 영향력이 탁월합니다. 한 사람의 순종, 그것이 관건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위해 여러분을 순종의 제물로 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창세기 22장 1절부터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명령도 순종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 세 번째 명령, 마지막 명령은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100세나 되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에 모래알과 같이 번창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주신 아들인데 번제로 잡아 바치라고 하니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핑계 대지 않고, 반항하지 않고, 아들을 데리고 3일 길을 가서 장작더미 위에 아들을 묶어 놓고 칼을 들이댔습니다. 이 아들을 낳을 수 없을 때 낳게 하신 하나님이 태운 재에서 다시 살리실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믿음으로 이미 결단을 내렸습니다.
창세기 22장 16~17절에 보면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고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고, 22장 12절에 보면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일수록 그 시험이 어려운 것 같이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을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을 사람일수록 하나님은 어려운 명령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사실 가장 사랑하는 독자를 번제로 드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순종했고, 아들을 바칠 각오를 했는데, 하나님은 산양을 준비해 두었다가 대신 드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시험해 보신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큰 복을 주실 사람에게 보통 사람이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실 때가 있습니다. 제일 귀한 것, 제일 사랑하는 것, 하나밖에 없는 것, 내 생명과 같은 것을 바치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그것은 안됩니다.」 하고 불순종하면 하나님도 실망하시고 축복의 손을 거두시고 맙니다. 아브람을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면 아브람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도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길을 알지 못하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것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이라도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그 밖의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순종할 것이냐, 아니면 거절할 것이냐는 오늘 그대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외면치는 않으십니까? 그 분 앞에 「예」라고 대답하기를 망설이진 않나요? 선택의 순간에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사막에 길을 만드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1장 2절에 보면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열하룻길이었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져 바다를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도착한 곳이 호렙산이었습니다. 호렙산은 시내산이라고도 불립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2년 정도 머물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거룩한 말씀을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민족은 「말씀공동체」 또는 「언약공동체」가 됩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자, 이제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행진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지 2년째인 2월20일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합니다. 호렙산에서 가나안 땅 남쪽 경계 지점까지 가자면 도중에 세일산을 지나야 합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가데스 바네아, 가나안의 남쪽 경계입니다. 여기까지 가는 데 열하루면 됩니다.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길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이때부터 저 유명한 광야생활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두 번째로 가나안 진입을 시도할 때는 가나안 남쪽에서가 아니라 동쪽에서 들어갑니다. 세렛 시내를 건넌 것이 가나안 진입의 시작이었습니다.
신명기 2장 14절에 이것을 설명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년 동안이라」 보통 광야 40년이라고 말하는데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치면 40년이고 1차 진입이 실패한 때부터 2차 진입을 시도할 때까지 계산하면 38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열하루면 갈 수 있는 길을 38년이 걸려서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면 11일만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앙과 불순종에 사로잡히면 38년도 걸리고 40년도 걸립니다. 세 가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 믿음을 갖는 것,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뜻대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 주님이 말씀하시면 믿음으로 순종하는 아브람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세상의 부요함보다 주님을 더욱 좇아 살기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즉각 순종함으로 확신과 평안을 누리며 진정한 복을 가족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듣게 하옵소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날마다 믿음이 깊어지게 하옵소서. 믿음의 확신으로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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