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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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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7.2.12 주일 여의도순복음교회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장 12절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특히 ‘말’이 중요합니다.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 조금 주고 그 대가로 몇 배나 많이 받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입술의 말도 되로 주고 말로 받습니다. 부부싸움을 한번 해본 사람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을 하면 돌아오는 말은 더 독한 말로 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 비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입히는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서로 상대 간에 말을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말을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유익을 가져오고 행복을 가져옵니다.
잠언 18장 20절은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 구절을 “사람은 말 한마디 잘해서 만족을 얻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과 비슷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선한 말, 좋은 말로 대접하면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고 다 같이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 입술의 말은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말을 주의해서 잘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말을 잘 사용하는 것일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일상생활에 잘 이용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1. 말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창조주를 성경에는 말씀이라고 불렀습니다. 창조주는 창조하는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을 말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마음속에 솟구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3절로 4절에 보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야훼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 오세 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이 야훼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하는데, 아브라함이 75년 동안 살았던 정든 고향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의 간증을 들어 보면 그는 하나님이 번개와 천둥처럼 자기에게 다가와서 믿음을 주실 줄로 생각을 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천둥이 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씀을 읽고 나서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음이 자라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이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가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에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시편 33편 6절로 9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이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성경말씀인 것입니다. 그 성경말씀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하나님 말씀을 맡은 우리들은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를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계신 곳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셔서 당신의 창조적인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놓고 이를 따라서 창조하며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계실 뿐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를 옷 입고 직접 나타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1절로 2절에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우리가 보고 알게 만들어 주셨으며 예수님이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면 말씀을 찾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 죽은 것처럼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6절로 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제 용서하신 예수님인데 동일하게 오늘 날도 용서해 주시고, 어제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쳐주셨는데 오늘도 그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시고, 어제 주님께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는데 오늘날도 믿고 기도하면 귀신이 쫓겨나가고, 어제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는데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문제에서 해결해 주시고, 어제 성도들을 인도해 주신 예수님은 오늘날도 ‘내가 길이다. 문제를 해결할 길이 내게 있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우주에서 우리를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읽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아무리 외워도 변화를 받지 못하면 효력이 없습니다.
D.L. 무디는 “성경은 정보를 위한 책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책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정보를 얻어서 우리 지식을 쌓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렵고 불안할 때 말씀을 읽으면 용기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말씀을 읽으면, 꿈과 소망을 얻게 됩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이 변화를 받고, 삶의 환경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꿈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다 크고 작은 꿈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그 꿈을 성경을 읽었다가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꿈을 주시는데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소원을 주시는데, 그 소원이 바로 꿈입니다. 하나님이 그 꿈을 통해서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말씀은 믿음을 줍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흔한 말씀이 어째서 나에게는 없냐?”고 물으면, 하나님 말씀을 많이 연구해야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면 그가 마음속에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말씀을 읽고 꿈을 얻으면 꿈이 믿음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믿음은 꿈을 이루어 주시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해야 되며, 말씀이 주는 믿음을 마음에 믿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20절에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치료하는 영도 말씀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1절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아가는 말씀이 이렇게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입술을 통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5절로 16절을 보면,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야훼께서 밤새도록 큰 동풍을 보내시어 바닷물이 물러가고 마른 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 하시는게 좋을 텐데 왜 모세를 통해서 모세에게 부탁을 하십니까? 오늘날도 하나님이 직접 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직접 변화를 가져오면 좋겠는데 여러분을 통해서 변화를 가져오고 기적이 나타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여러분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과 전쟁할 때, 여호수아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수 10:12)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을 멈추게 하셔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대개 간청하는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이 일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저 일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그러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해서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믿음 가지고 “될지어다!” 환경과 운명을 향하여 명령하는 명령의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업아 번창하라! 너희 병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 지어다! 슬픔은 떠나가고 기쁨이 내 마음을 점령하라!” 명령하는 기도를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기도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주시옵소서. 저렇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모세가 “하나님 홍해수를 갈라지게 하시옵소서. 백성들이 무난히 걸어가게 하시옵소서.” “아니라. 네가 손에 있는 지팡이를 내밀어서 홍해수야, 물러가라 고 호령을 하라” “그 하나님 직접 하시지 왜 나보고 시키십니까?”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 하나님이 여러분께도 꼭 같은 말을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문제가 답답한 문제가 생겨서 괴로울 때 “자꾸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만 하지 말고 기도하고 고개를 들어 그 문제를 향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문제는 박살이 나라! 해결될 지어다!” 그것을 수십 번을 수백 번을 반복을 하십시오. 그 말씀이 나가는 횟수에 따라서 파괴력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자매님 한 분이 뇌수술을 하러 병원에 갔는데, 내가 조금 전에 병원에서 기도를 해주게 되었습니다. “자매님, 이제 수술하러 들어가니 살아서 나오기를 바라고 정신이 있을 동안에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너희 뇌 암은 물러갈 지어다!’ 그 말을 할 수 있거든 수만 번이라도 하십시오.” 그리고 그는 수술 받으러 들어가고 우리는 창문 밖에서 손을 흔들면서 “이 암은 물러갈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암은 물러갈지어다!”라고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이 내게 나와서 “목사님께서 무슨 말을 했기에 자꾸 입으로 중얼거리는데 정신이 어지러워서 수술을 잘 못하겠으니 조용히 하라고 말을 좀 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요. 그래서 하나님께 간구할 뿐 아니라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라도 명령하는 기도를 하는 성숙된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 때문에 성경을 주셨습니까? “너희는 몰라도 괜찮다.” 그러면 성경은 왜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당신의 뜻을 성경을 읽어서 깨달아 알고 미리 나가서 하나님 앞서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우리나라에 중대한 재판을 하는데 자꾸 모른다는 대답만 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 성경에 기록한 말씀 뭐냐?” “모릅니다.” “이 성경으로 명령을 좀 하라.” “나는 못합니다.”
못하는 증인들이 왜 자꾸 하나님께 짐을 맡깁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함께 너와 동행하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선물을 성경으로 주신 것은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고 명령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변화가 다가오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이 말씀 속에 있는 창조의 능력을 충만히 깨달아야 됩니다.
인도에서 일평생 헌신한 스탠리 존스 선교사님이 중풍으로 입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풍으로 누워 있는 동안 그는 간호사에게 특이한 부탁을 했습니다. “간호사님, 제가 잠에서 깰 때, 내 곁에 오셔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고 명령을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 간호사가 선교사님이 잠에서 깨어나려고 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못 일어나니까, 방에 들어올 때마다 그 환자에게 간호사는 명령을 했습니다. 하루는 정말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고함을 치고 난 다음에 간호사가 기겁을 하고 뒤로 쓰러져 주저앉았습니다. 선교사님이 “예”라고 하면서 일어나 앉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창조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말씀으로 죽음을 물리치고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 총독부에서 인도의 지방 부호에게 자동차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인도 부자가 자동차를 선물로 받아놓고 이게 뭔지 모릅니다. 쓰다듬어도 보고, 두들겨도 보고, “이거 희한하다. 이걸 나에게 선물로 줬는데 어찌할지를 모르니까 소 두 마리를 끌고 오라.” 힘찬 소 두 마리를 끌어서 거기다가 멍에를 씌웠습니다. 두 마리를 차에다 연결해서 “이랴~” 차 뒤에 올라 앉아가지고서 핸들 잡고 “이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그러면서 동네에 자랑하기 위해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나는 이렇게 좋은 구루마를 가지고 있다.”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 때 영국에서 공부를 한 학생들이 와가지고서 “아유~ 선생님 이것은 올라타서 소로 끌 것이 아니라 소 몇 백 마리를 끌고 갈 수 있는 힘 있는 자동차입니다.” 그래서 소 두 마리는 다 집어치우고 거기에 기름을 넣어서 엔진을 걸어 페달을 누르니까 ‘부릉~’합니다. 사람들이 기겁을 합니다. 소처럼 ‘음메~’ 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차가 달리니까 무서운 힘이 생기지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선물을 주면 소를 주지 말고 자동차를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소보다 더 멋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엄청난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제가 응답하겠고 너에게 할 길을 보여주겠다고 하십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여러분에게 무수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소 두 마리를 걸어가지고 끌려가는 건 인도 부호의 경험같이 그런 경험을 하고서 살면 안 됩니다. 오늘 이 설교를 여러분만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듣고 계십니다. “너 말 잘했다. 내 아들 딸들이 내 말을 몸에 적용해서 말을 사용하도록 가르쳐라.” 그렇게 제게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물로 주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사용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앞으로 쓰인 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마음에 있는 말씀이 입으로 나오면, 입 밖으로 나오면 에너지가 되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챨스 스펄전 목사님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사용하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그냥 구경하라고 주신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박물관의 골동품처럼 다루지 말고 매일 위로의 근원으로 삼으십시오. 매일 위로와 근원의 능력이 말씀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고 적용함으로 그 말씀의 유익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십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실까요?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걸음을 인도하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따라서 기적적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하신 것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가 성경에 직접으로 간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능력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광명한 빛을 쫓아 걷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에 넘치도록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축복을 주셨으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명령해서 하나님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랑일은 바다에 떠있는 배에서 “바람아 바다야 잠잠하라!” 명령하시니까 바닷물이 잠잠해졌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이 “왜 믿음이 없느냐?” 꾸짖으셨는데 제자들이 모여가지고서 “우리 주님 모시고 가는데 웬 바람이냐? 잠잠하라. 고요하라.” 말이라도 한번 해봤으면 좋았을 것인데 기도의 반쪽은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한번 시험해 볼까요? “이 고난은 내게서 떠나가라.” 고난은 나의 이익을 위해서 보내는 것도 되니까 전체 대표가 안 되겠지요.
귀신보고 말해보십시다. “너희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 “하나님이여, 나를 귀신의 속박에서 놓여주시옵소서.” 그러고는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나에게서 떠나가라!” 그렇게 하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시원해지는 것입니다.
좌우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천지를 운행하는 비밀 책을 우리에게 주셔서 안 믿는 사람은 읽어도 뭔지 모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예수님께 밤에 찾아와서 전혀 모른다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 “영으로 난 사람이야 성경을 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오해하지 말라.”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아무리 읽어도 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이것을 읽으면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셔서 이것을 가지고 성공저인 삶을 살다가 천당에 오라는 하나님의 책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성경을 연구함으로 자자손손이 위대한 기적을 체험하며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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