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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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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7.3.5주일 여의도순복음교회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장 1~2절)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무슨 일이든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비바람이 불어도 건축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신앙생활을 건축물에 비유하는데, 튼튼한 건축물을 지으려면 기초를 잘 다져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려면 재료가 필요한데, 그 재료가 바로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1. 생각
우리의 믿음이 자라려면 믿음의 재료가 되는 생각을 잘 다스려야 됩니다. 너의 생각이 너의 삶의 근원이 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을 따라서 살게 됩니다. 하루 동안에도 수많은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중심이 되는 생각을 보시고 그것을 진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의 가장 큰 장애물은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은 언제 생겨납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미리 바라볼 때,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밤에 예수님을 함께 모시지 않고 자기들끼리 배를 저어서 건너가는데 파도가 다가왔습니다. 파도가 높이 치고, 물이 배에 들어와서 가라앉게 되매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십니다. 제자들은 유령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태복음 14장 27절)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거든 저를 물 위로 걸어오게 하소서.’라고 말하자 예수님이 걸어오라고 했습니다. 배에서 나온 베드로가 물 위를 몇 걸음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온 바람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자 곧장 물에 빠졌습니다. 물에 허우적거리며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가 ‘예수님 살려주십시오!’라고 고함을 치니까 예수님이 베드로를 붙잡아주면서 ‘믿음이 약한 자여, 왜 의심하느냐?’라고 주님이 꾸짖었습니다. 험난한 바다뿐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도 무서운 파도가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세상살이에 문제라는 파도가 와서 우리를 파탄에 빠뜨리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바라보면, 두려움의 바다에 빠지고 맙니다. 믿음이란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어떠한 위기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 담대한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75세가 되도록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2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각이 아브라함의 삶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75년이나 살았던 곳에 다른 생각이 들어오니 다른 생각을 따라서 고향산천을 떠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을 말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힘듭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하면서도 모여 앉아가지고서 부정적인 생각을 나눕니다.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의 생각을 하지 믿음을 떠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방치해놓으면 큰 시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 ‘깨진 유리창이론(Broken Windows)’라는 이론이 있는데, 이것은 건물의 유리창 하나가 깨졌는데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그 유리창을 갈지 않고 방치하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가면서 다른 유리창도 하나 둘 깨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유리창이 깨지기 시작하면, 그 가운데 정돈된 물건들이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그것을 바로 해놓지 않으면 사회 전체의 영적상태와 정신적 상태가 어지러워져서 범죄율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깨어진 유리창처럼 우리 마음에 그대로 내버려 놓습니다. 그러면 그 부정적인 생각이 점점 더 파괴적으로 마음에 들어가서 나중에는 아주 흉악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각은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항상 정결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모여서 부정적인 말을 하더라도, 부정적인 사건을 읽었을지라도, 여러분 스스로 마음속에는 그 생각을 담아서 가지 말고 “주님 보혈에 다 맡깁니다. 힘이 없고 무능하니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주님 보혈에 의지하니 저를 정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께 맡기고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2. 꿈
생각만 다스려서 우리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생각을 다스리기 위해서 성경 말씀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고, 그 다음에는 마음속에 꿈을 가져야 됩니다. 제가 계속 꿈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꿈은 마치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한 음식을 요구하는 자녀의 손에 들린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그릇을 가지고 와서 내미는 자녀가 음식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무엇을 구할 때 꼭 그릇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아합 왕 시대에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큰 가뭄이 들게 합니다. 모든 백성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엘리야가 사르밧 지방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나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고, 또 떡 한 조각을 주어 먹게 하시오”
사실 이 여인의 집에는 한 움큼의 밀가루와 몇 방울 기름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자녀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이제 굶어죽기를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여인에게 마지막 그릇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 때 이 여인은 하나님의 종의 말에 순종하여 음식을 만들어 대접을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 흉년의 때가 다 지나갈 때까지 가루 통에 가루가 끊이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에게 은혜를 안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담는 내일을 우리 마음속에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방종하게 되고 결국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꿈을 마음속에 품기만 하지 말고, 꿈을 소원을 두고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소원과 꿈은 거의 같은 말입니다. 소원을 가진 사람이 꿈을 꾸고 꿈을 꾸는 사람이 소원을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하시기를 원하시면 주님이 소원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줍니다. 소원이 꿈입니다. 마음속에 꿈을 부어주십니다. 시편 71편 14절에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망을 품고, 나는 꿈을 품고 주님께 부르짖겠다는 것입니다.
3. 믿음
그리고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알면 그 다음에는 내 마음속에 행동에 옮기는 믿음이 있는가? 살펴봐야 되는 것입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나? 네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느냐? 네가 어떤 믿음을 가졌느냐? 매일 네가 믿음에 사느냐?’ 그것을 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칭찬하셨으나 믿음이 없는 자는 꾸중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20절로 22절에 열두 해 혈루병을 앓는 여인이 군중들의 뒤에 섞여 와서 예수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옷자락만 만지면 열두 해 혈루병이 나을 것을 믿었는데, 그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보시고 그 여자를 발견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고쳤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깨끗이 나아서 집으로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마약 알코올 중독 치료센터에서 실시하는 치료 프로그램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바로 외모를 바꿔주는 것입니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마약중독자로서, 수염이 덥수룩하고, 머리를 빗지 아니하고, 옷도 아주 험하게 입고 있는데, 이 사람들의 수염도 깨끗이 깎아 주고, 머리를 정결하게 만들어주며, 옷도 깨끗한 옷을 입히고 아주 신사로 만들어서 그 사람들을 거울 앞에 세워놓습니다. 그런데 반응들이 놀랍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입니다. “저게 난 줄 몰랐습니다.”, “너는 저런 사람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매일같이 변화된 자화상을 보여줘요. 그러면 대다수의 사람이 다 변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워진 자화상을 본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어 다시 건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가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보혈로 죄인인 내가 의로운 사람이 되고, 채찍에 맞으신 공로로 질병을 앓지 않고 낫게 되고, 예수님이 저주와 가난을 대신 짊어지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형통하고 축복을 허락하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다음 주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영생 복락을 주신 것을 깨닫고, 주님 보혈로 청결하게 하셔서 성령을 주셔서 성령을 모시고 살도록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마음속에 매일 생각하면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 되겠냐는 것입니다. 그건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히 변화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그냥 지식적으로만 알지 말고 변화를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무시기 전에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마음속에 모시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함으로 신앙이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갔을 때, 로마의 백부장이 와서 자기 하인이 죽어가니 와서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십시다. 백부장의 집에 가서 병든 하인을 거쳐주겠습니다.”라고 말씀하자, 백부장이 예수님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주님, 주님이 감히 우리 집에 올 수가 없습니다. 군대에서는 높은 사람이 부하를 보고 명령하면 그 명령을 준행합니다. 하인도 내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하인입니다. 주님이 나보고 ‘너 종은 나았다’고 말씀하시면 내 종은 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힘들게 오시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무릎을 탁 치면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에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 못 봤다. 내가 가지 않아도 말씀 한 마디로만 그 쪽에 하면 나을 것이라고 믿는 이 사람의 믿음이 참으로 크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로마 백부장을 축복하시고 ‘당신의 종이 나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백부장이 집으로 가보니 종이 나아서 주인을 섬기러 나와 있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 생활 속에서 큰 믿음을 사용하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주님을 바라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믿음을 주신 것은 “네가 내 이름을 무엇이든지 가지고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놀라운 약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7절로 10절에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했으며,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학문이 아니고 생활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겨자씨만한 하나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비록 겨자씨만큼 작더라도 믿음이 있으면 삶을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고 하나님이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결하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미암는다고,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께서 들어서 믿음이 생기면, 그것으로 변화를 믿으십시오. 변화를 가져옵니다. 기적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4. 말
그 다음에 우리 신앙이 자라려면 말과 선언인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꾸고 믿음을 가지면 그것이 주위를 변화시키고 창조를 가져왔다는 선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21편 2절에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입술에 요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귀에 들리도록 선언을 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시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살아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결론
제가 일전에 어느 인터뷰를 하는데 TV아나운서가 저보고 “목사님, 믿음이 무엇인지 간단히 말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그 아나운서가 허허허 웃으면서 “그야 계란이 박살이 나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요. 계란이 박살이 안 납니다”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계란을 가지고 바위를 치면 바위가 박살이 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이 깨진다는 것은 3차원적 생각이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어진다는 것은, 이것은 4차원적인 기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무엇이냐?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위가 깨어져야 그 믿음이 믿음이지, 바위가 안 깨어지면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아나운서가 고개를 까딱 거리면서 “그것 쉬운 줄 알았더니 쉽지 않네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여러분, 믿음을 쓰면 그것이 기적을 산출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칠 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절대로 안 나을 사람인데, 주님 말씀을 하니까 병이 오는 것이 아니라 도망쳐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기적을 믿습니까?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그런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저런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고요?” 그러게, 그런 사람이 구원을 받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기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가슴속에 꿈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참으로 놀라운 신앙생활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펼치면 기적이 가득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성경에서 기적을 제외한다면 표지 두 장밖에 남는 것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두 껍데기 안에 기적만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지식, 종교적인 의식이 아닙니다. 우리 변화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고, 병든 사람이 약을 먹고 고침을 받고 새로워지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흑암에서 광명으로, 무에서 유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이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쓰고 오셔서 믿음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죽으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한 분을 마음속에 모시고 성경을 들고 기도하여 성령을 믿으면 여러분은 달라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냥 우리에게 믿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보고 믿고 나아가겠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성장시켜 주시옵소서. 이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누리고 살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삶이 주님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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