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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1: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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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8.10.26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
나의 축복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다.
히11:17-19
하나님이 명령을 내립니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쳐라.”(창22:2). 이 아들이 어떤 아들입니까? 뒤늦게 낳은 외동아들 아닙니까? 아이가 잉태했다고 하시면서 이 아이가 장차 후손을 크게 퍼뜨려서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 주겠다고 축복 했던 그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아들을 바치라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었을까요? 아브라함이 뭔가 하나님의 눈 밖에 나는 짓을 한 탓일까요? 욥의 친구들은 재앙을 당하는 욥에게 그런 식으로 추궁하지 않았습니까? 네 잘못이 없다면 이런 재앙이 생길 리 없다고 말입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에 대해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자신이나 부모 혹은 조상의 죄가 있을 거라 했습니다(요9:2).
다행히 창세기에선 아브라함의 잘못이 추궁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창세기의 전언은 더 문제적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시험’이었다는 데 말입니다. 그러면 이 시험의 정답은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하나님이 약속한 더 큰 축복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창22:17).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의 태도는 세세손손 칭송의 대상이 되어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히11:17-19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습니다. 더구나 약속을 받은 그가 그의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일직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삭에게서 네 자손이라 불릴 자손들이 태어날 것이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릴 수 있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유하자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약2:21)
하지만 이것을 축복으로 여기고 행복해 한다면, 아브라함은 참으로 비정한 아버지입니다. 또 그런 명령을 내린 하나님도 비정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같으면 청문회를 열어 비정한 아버지와 하나님을 소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을 겁니다. 그래서 마틴 부버라는 철학자는 아브라함이 들었던 건 하나님의 소리가 아니라 악마의 소리였다고 했습니다.
여하튼, 아브라함은 이튿날 아침 짐을 꾸려서 나귀에 싣고, 아들 이삭과 종 둘을 데리고 떠납니다. 사흘을 걸어 하나님이 명한 모리아 산이 멀찍이 보이는 곳에 도달합니다. 이 산은 훗날 솔로몬이 예루살렘성전을 지은 바로 그곳이라 알려진, 그래서 축복의 장소라는 그곳입니다(역하3:1). 그 산 아래에 종들과 나귀를 두고, 그는 아들과 둘이서 산에 오릅니다.
한참을 가다가 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제물은 어디에 있나요?” 아마도 아들은 집을 나서든 그 날부터 사흘 동안 내내 궁금했을 것이고, 불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비의 비장한 모습에 눌려서 묻지 못했을 겁니다. 겨우겨우 아들이 묻자 아비가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다.” 물론 이 무뚝뚝한 대답이 그의 속 마음은 아니었겠지요. 아들을 죽여야 하는 아비로서는 말입니다. 마음은 새카맣게 타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아비는 아들에게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죽음을 준비할 틈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비는 그 사흘간 처절한 고뇌의 행보를 하면서도 아들 목숨의 존엄함을 위해서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곳에 도착해서 돌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준비해온 장작을 그 위애 펼쳐 놓았습니다. 창세기에는 그런 다음에 아들 이삭을 다짜고짜 묶어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고 담담하게 묘사합니다(창22:9).
이삭은 아비의 이 갑작스러운 행동에 왜 저항하지 않은 것일까요?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겨를이 없었던 이삭이 말이죠. 산을 오를 때 장작을 메고 갔다는 정황으로 보면 대략 21-22세 정도는 되었을 거라고들 짐작을 합니다. 이 정도 나이면 아버지를 완력으로도 제압할 힘이 있는 나입니다. 아니면 도망이라도 칠 수 있지 않았겠어요? 요세푸스는 이삭의 나이가 25였다고 유대고대사에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혼절시켜서 정신이 없게 만든 다음에 묶어서 장작더미에 올려놓았을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비는 칼을 두 손으로 잡고 하늘을 향해 쳐들었습니다. 어쩌면 아들은 공포에 찬 눈으로 아비를 바라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눈이 서로 마주쳤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질끈 외면하려고 감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삭은 아버지를 향해 비명을 질렀을 수도 있겠지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개입을 합니다. 참 영화 같은 장면이죠? 결국 아비가 아들을 살해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다른 제물, 짐승으로 제물이 대체되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다시 약속 받습니다(창22:16-18).
그런데 말입니다.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창22:19)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브엘세바 쪽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데리고 간 종들과 그들이 떠난 곳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와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또 있습니다. 아들 이삭은 어디로 사라진 것입니까? 제사 드리러 가는 길에는 수동적이지만 존재감이 있었던 이삭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공리에 제사를 마친 이후에 이삭은 왜 등장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 구절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여러 사상가들과 해석가들은 이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어려워합니다. 그 중 일부는 이 구절을 실마리삼아 ‘이삭의 상처’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삭이 돌아오는 길에 없었고, 그것은 이삭이 받은 상처 때문이라는 거죠. 어떤 해석에는 이 사건으로 인해 이삭은 다리를 절었고, 아비에 대한 분노를 평생 지우지 못하며 살았다고도 합니다. 현대의 트라우마 연구자들에 의하면 한 번 혹은 여러 번의 희생자 체험을 하여 무의식에 깊은 상흔이 새겨진 사람은 자주 공포심과 분노를 조절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주변과의 관계단절 상황에 놓인다고 합니다. 이것을 아르헨티나의 사회학자 다니엘 파이어스타인은 ‘간적접 희생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로 인해 아브라함도 이삭도 동시에 희생자의 상처를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다른 동네로, 이삭은 아예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게 모두 그 ‘축복’을 위한 배후의 희생인 것이지요.
아마도 이삭이 이때의 상흔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면, 그로 인해 그의 어미, 식솔, 이웃 까지도, 심지어는 가축까지도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보도로 보면 이 사건 직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창23:2). 혹자는 이 죽음을 아브라함의 제사 사건이 낳은 또 하나의 부산물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축복했다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가족들이 희생한 대가로 획득된 것입니다.
성서는 일방적으로 아브라함만의 믿음과 축복을 기억하고 칭송합니다. 이삭이 받았을 충격과 배신감, 평생을 좌우했을 그의 상흔, 그리고 그 상흔 때문에 일어난 관계의 단절과 파행, 그로 인한 간접적인 희생자들은 기억되거나 보상되지 않습니다. 그 ‘위대한 순종’으로 인해 축복이 주어졌다는 바로 그 이야기는 이삭의 상처를 망각하게 했고, 그로 인해 발생했을 모든 고통의 소리들을 침묵하게 했습니다. 희생자의 안전과 생명이 전제되지 않는 축복이 아직도 우리안의 최종목표로 설정되어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의 축복을 노래할 때 이를 위해 희생한 우주와 자연, 나 외의 사람들의 수고와 배려, 힘의 균형을 잃고 눈물 겹 게 양보했기 때문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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