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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성숙된 신앙 생활

야고보서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843 추천 수 0 2009.11.07 16: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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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약3:1-12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소설 '깊이에의 강요'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 공으로 한 여류 화가가 등장합니다. 열심히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어느 평론가가 작품을 구경한 후 그림에 대하여 평가를 합니다. 그 평론가는 "당신 작품은 재능도 보이고 마음에도 와 닿으나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 는 말을 합니다. 이 화가는 재능도 보이고 마음에 와 닿는다는 말은 다 잃어버리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말에만 마음이 걸렸습니다. 그녀는 깊이라는 두 글자에 집착을 합니다.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깊이'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자신의 몸을 술과 약물로 혹사시킵니다. 아름다웠던 모습은 고뇌와 집착으로 엉망이 되어갑니다.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린 그녀는 결국 '깊이' 없는 자신의 그림들을 전부 찢어버리고 1백 39m의 높이에서 오래 팽개쳐 두었던 몸을 던져버렸습니다.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대부분 말이라는 것은 한 번 말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씨가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자라 말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가 어느 때는 사람에게 활기와 용기, 힘, 기쁨, 소망, 행복을 주는 생명의 씨 역할로 심어질 경우가 있고 어느 때는 절망과, 우울, 슬픔, 고독, 포기 등의 사망의 씨로 심어질 때가 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말은 한 번 하면 시공(時空) 속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하는 말이든 상대가 있어 하는 말이든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든 말은 사람의 마음 밭에 떨어져 씨가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극단적인 예를 우리는 얼마 전 부모를 죽인 한 대학생의 사건에서 생생하게 목격하였습니다. 그는 정신 이상자가 아니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제가 아는 분입니다. 한때 저와 함께 문학 동인 모임에 나와 작품을 쓰시고 시집도 내신 분입니다. 이대를 나오셨고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3년 전까지만 해도 모 교회 전도사님으로 봉사하신 분입니다.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신문에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살해 동기는 말에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로부터 무시와 모멸을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S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을 꾸짖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했습니다.“평소 아버지는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시하며 꾸지람을 계속하고 어머니는 청소년기부터 밥을 못 먹게 하는 것은 물론 머리가 나쁘다고 구박해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습니다. 또 지난해 12월 군대를 제대한 뒤 “스스로 돈을 벌어 복학하라”는 아버지 말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말의 씨가 사람의 마음에 떨어지면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 그 말의 위력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1. 말의 위력
1) 혀는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 줍니다(4).
오는 성경 5절에 보면 그 큰 배를 키 하나가 움직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배일지라도 키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말을 하게되면 사람은 그 말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물론 말에 주술적인 능력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심어지면 사람은 그 말을 아무리 무시하려해도 그 말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부정적인 언어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부정적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수치심을 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죄책감을 배우고 관대함 속에서 자란 아이는 인내를 배우고, 격려의 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세상이지만 어떤 안경을 쓰냐에 따라 세상이 파란게도 노랗게도 보이는 것처럼 어떤 말이 마음에 떨어지냐에 따라 그 인생의 방향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사소한 한 마디가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 극단적인 예사 유고의 티토 대통령입니다.
유고의 작은 시골마을 천주교 성당에서 신부가 미사를 집행할 때에 수종드는 아이가 잔을 떨어뜨려 포도주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신부는 그 아이의 뺨을 때리면서 "다시는 제단에 나타나지 말아라."하며 꾸짖었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커서 대통령이 된 티토라고 합니다. 신부가 다시 미사를 집행하였는데 다른 수종드는 아이가 또 잔을 떨어뜨려 포도주가 엎질러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커서 신부가 되겠구나."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바로 유명한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사실까>(THE LIFE OF CHRIST)를 쓴 풀턴 쉰 신부라고 합니다.

2) 혀는 내 소유를 파멸시킬 수도 있습니다(5-6).
작은 불씨이지만 그 불씨가 많은 나무를 태우게 되는 것처럼 말은 순식간에 우리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쌓은 권력과 명성, 재물을 하루 아침에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말한 마디 잘못하여 정치적 권세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중국의 고사성어 중에는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치밖에 안되는 바늘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술자리에서 헛소리 한번 잘 못했다가 물러난 장관, 말 한마디 잘 못했다가 물러난 권력자들을 우리는 종종 보며 살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 잘하면 천냥 빚도 갚지만 말한 마디 잘못하면 이혼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엄청난 경제적인 손해를 보기도 하고 고귀한 직분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납깁니다. 끔직한 살인 기계 역할을 했던 지존파 김기환씨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가 법정 최후 진술에서 털어 놓은 것은 17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그 때였다는 것입니다. 1977년 창 밖에 눈이 허옇게 덮여 있는 한 겨울날 초등학교 교실에서 그는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생님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욕을 듣고 따귀를 맞고 벌을 서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형장으로 가기 위한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 "재판장님, 저는 그때부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모두 죽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그의 가슴에 사망의 씨로 박혀 한 시골 아이를 처절한 인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말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3) 말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고 결정해 줍니다(3).
재갈을 조그마한 것이지만 말의 행동을 결정해 주고 통제하는 것입니다. 말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 같지만 말함으로 자신이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말에 따라 살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잠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인간의 행동은 그의 언어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은 말의 재갈처럼 배의 키처럼 산불의 불씨처럼 힘이 있고 파괴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데 우리가 이 말을 어떻게 다스리고 잘 활용하여 성숙한 신앙인답게 언어생활을 할 수 있을 까요? 오늘 본문은 그 답을 몇가지 주고 있습니다.

2. 해결책
1)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마음이 바뀌어지면 말도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타락한 언어의 속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6-8).-변화
6절부터 나오는 말씀은 혀의 부정적인 면들입니다.
(1)혀는 불이요 불의(악)의 세계라고 말씀합니다(6절)-말은 그만큼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데 본질적으로 악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불이 온 산을 사르듯이 혀(거짓과 비방을 통 하여)가 우리 온 몸을 더럽힙니다. 혀는 몸 전체를 더럽힙니다. 혀는 진리의 세계 아니라 불의의 세계입니다.(요 7:18, 롬2:8; 살후2:10,12) 이 말은 "허위와 기만의 세계"라는 뜻입니다. 거짓말과 비방을 일삼음으로써 진정한 신앙인의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악의 세계라는 말입니다. 혀 자체가 하나의 작은 세계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악이 혀라는 도구 속에 축소판으로 함축되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악이 혀에 집중되어 있는 연고로 혀란 모든 종류의 악의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혀는 삶의 수레바퀴를 불살라버립니다. 혀는 어느 누구, 그 무엇 앞에서도 중상 모략하는 그 본성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혀의 세력 앞에서 인간은 무력할 뿐입니다. 영원히 끌 수 없는 지옥불과도 같은 것입니다. 삶 전체를 망치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합니다.
(2)혀는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7-8上): 능히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아주 단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통제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온갖 종류의 짐승과 새와 기는 것과 바다의 생물은 사람에게 길들여질 수 있고 또 길들여져 왔습니다. 그러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혀는 스스로 제어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3)혀는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없이 우리 혀가 내어 놓는 모든 것은 수치와 악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롬3:13은 다음과 같이 불신자들을 향해 말 한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이것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말의 근본적인 속성은 죽이는 것이고 파멸시키는 것이고 분열시키는 것이고 힘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연구가 한사람이 하루에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의 수를 조사해 보았답니다. 남자가 하루에 사용하는 어휘 수는 약 1만 2000개이고, 여자는 약 2만 5000개라고 합니다. 일생동안 말을 하는 시간을 합하면 13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데 그 말 중에 우리가 하는 말이 얼마나 선한 말 살리는 말 용기를 주는 말을 할까요? 자연적으로 놓아 두면 부정한 말, 악한 말, 저주하는 말, 죽이는 말, 상처주는 말, 음란한 말, 호색하는 말, 비판하는 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남을 칭찬하기 보다는 헐뜻기를 좋아 합니다. 남의 자식은 아무리 잘 되어도 칭찬하기 싫고 내 자녀는 아무리 미워도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이지라도 내 것은 좋게 말하고 싶고 남의 것은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언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새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옥토가 되어야 한다.
말은 결국 마음의 표현입니다. (잠언 15:4)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마음의 자아가 왜곡되고 깨어진 거울처럼 되어있다면 그 마음의 자아에 반사되어 나오는 말은 자연히 왜곡되고 깨어진 말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더러움에 내어버려둔 마음"(롬 1:24), "상실된 마음"(롬 1:28),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둔 마음"(롬 1:26)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꾸어 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되면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게 되면 우리의 언어는 자연스럽게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데레사 데케이루의 작품에 한 여주인공이 나옵니다. 원치 않은 결혼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밥먹는 모습도 싫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남편이 밥을 먹을 때 되지 처럼보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우리의 언어는 바꾸어 지는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말을 제어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고 금방 미국 사람처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생활 습관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언어에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2)언행일치의 생활을 추구하여야 합니다(1-2).-온전
오늘 본문은 선생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선생은 선호하는 직분입니다. 그런데 왜 선생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까? 오늘 성경은 그 이유를 두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1절에서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더 큰 심판이라는 것은 심판의 차등성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더 조심하라는 경고성 교훈입니다. 마12:36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심판의 날이 오면 각자가 지껄인 쓸 데 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하리라. 네가 한 말 에 따라 너는 옳은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하고 죄인이라는 판결을 받게 되기도 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해도 차라리 연자 맺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났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2절에서 우리가 다 실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자신도 포함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면 아무래도 말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말에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문자적으로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씀이겠습니까? 그러면 아무도 선생이 되지 않으면 누가 가르칩니까? 성경은 교사를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까?(롬12:6-7; 고전12:27-29; 엡4:10-14)
야고보서는 행함에 대하여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지금 3장 1절 부터는 성숙된 신앙 생활에서 말과 행함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행함이 없이 말만 많이 하는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현대어 번역에서는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남의 결점을 들추어내는 일에 열을 올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다 많은 과오를 범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판단력을 가져야 할 우리 교사들이 악을 행한다면 더 큰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약 3:1)"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말만 많이 하고 행함이 없는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선생은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사명 속에서 살지만, 그것을 다 실천하면서 가르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야고보는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말로만 선행을 말하지 말고 행함으로 선행을 실천하라는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보편적 원리는 바로 언행일치의 성숙한 언어생활을 하라는 교훈입니다. 말하기는 어떤 면에서 쉽습니다. 남을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행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말한 만큼 살 수 만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만 많이 하려고 하면 늘 실수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적게 한다하여도 말한만큼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즈음 모정당 386세대에 국회의원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혁을 말하던 사람들이 구 세대와는 다르다고 말을 많이 하던 사람들이 광주에 가서 자기들끼리 낮에는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하고 저녁에는 그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술집 아가씨들과 술 파티를 하였다고 합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전 총선시민연대 대변인 장원교수가 여대생을 성추행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부산대에서 강연을 마친 뒤 동동주 40잔 가량을 마신 뒤 2차로 소줏집에서 또 술을 마시고 총선연대에서 함께 일했던 여학생을 불러 함께 호텔에 투숙 성추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고소한 오양은 장씨에 대해 "시민운동을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도덕군자인 것처럼 행세했지만 이중성격을 지닌 파렴치한 인간이다. 총선연대와 국민들이 속았다"라고 말하는 것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화려한 말파티 보다는 말한 만큼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자신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며 마구 비난하는 것보다는 말없이 그의 약점을 보완해주고 자신은 비난받지 않을 사람으로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는 것이 훨신 성숙된 언어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3) 이제 죽이는 언어가 아니라 살리는 언어 생활로 훈련되 되어야 합니다(9-12).
우리는 예수 믿고 나서도 끊임없이 사탄이 유혹하기 때문에 틈만있으면 한 입으로 저주도 하고 찬양도 합니다. 예수 믿지 않은 때는 찬양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찬양하고 사람을 살리는 언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1)혀의 이중성-변화된 혀
한 입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을 저주합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옵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 이유를 11-12절에서 말씀합니다. 첫째는 샘이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물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물을 내는 샘이면 단물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화가 나무가 감람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말은 크게 나누면 두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죽이는 모습으로 혹은 살이는 모습입니다.
죽인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말은 그 말이 비수가 되어 상대방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용기를 꺽어 버립니다. 삶의 소망을 없애버립니다. 신앙 생활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열심을 떨어뜨립니다. 소극적이 되게 합니다. 비판적이 되게 합니다. 혀로 동료 신자의 인격을 훼손시키는 일에는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합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꼬집으며 장황하게 열거합니다. 의로운 분노라는 미명하에 동료 신자들을 향해 분노 발산합니다. 주일날 혀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입술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동료를 비난합니다. "할 수 없다, 안된다"라는 부정적인 말. 불평, 험담, 원망, 비밀누설 같은 야비한 말을 합니다. 감정을 상하게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고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고 비현실적이고 황당무계한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습니다. 대안이 없다면 차라리 비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패려한 자의 말과 말장이의 말(잠16:28)로 자기 의지만 고집하는 말버릇과 가시가 있는 말. 남을 흉보는 말(잠26:22), 저주하는 말이나 교만한 말 그리고 거짓말(시59:12), 과격한 말(잠15:1b), 악하고 더러운 말(엡4:29-31), 형제를 비방하는 말(약4:11) 이런 말을 뿌리면 그 말에 의해 나타나는 열매는 무엇이겠습니까?

살리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의 말, 세워 주는 말, 위로의 말,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인 말을 합니다. 믿음이 담긴 말을 합니다. 꿈이 담겨있습니다. 섬김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용기를 주는 말을 합니다. 향기가 있습니다. 향기 나는 언어는 무례하고 거친 말. 불평과 원망의 말, 욕설과 누추한 말이 아닙니다.(엡4:29). 향기로운 말, 그것은 듣는 이를 즐겁게 하며, 매력이 있는 맛난 말입니다. 감사하는 말(엡5:4)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말(엡4:25). 선한 말(엡4:29) .칭찬하는 말, 용기를 주는 말, 선행을 격려하는 말, 상대방을 세우는 말이 신앙인의 언어입니다. 유순한 말(잠15:1a; 25:15), 은혜로운 말(골4:6)로 이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입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며 칭찬하는 말(사50:4, 창50:21)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이 말의 열매는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말에는 창조성이 있습니다. 왜곡된 말이 던져지면 왜곡된 현상이 나타나고, 온유한 말이 던져지면 온유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한 폴란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소년은 음악학교에 입학했으나 교수로부터 매우 비관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네 손가락은 너무 짧고 굵다. 유연성도 부족하다. 다른 악기를 택하도록 하라" 소년은 다른 악기에 몰입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소년은 만찬회에서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날 무렵 한 신사가 소년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너는 피아노에 탁월한 소질을 갖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라" 소년은 중년신사의 격려에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이 노신사의 이름은 안톤 루빈스타인이었습니다. 소년은 그날부터 하루에 일곱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피아노의 천재'로 불리는 잔 파데레우스키입니다. 실패한 배드로를 찾아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배드로는 일평생이 변하였고 바울은 예수님을 통하여 부름을 받고 생이 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말을 듣고 그들의 삶이 변하였습니다.

우리의 말 중 우리의 자녀, 부부, 성도들의 생명 속에 파고들어 생명의 씨앗의 역할을 하는 말은 얼마나 되고 사람의 마음 속에 파고들어 사망의 씨앗의 역할을 하는 말은 얼마나 될까요? 생명을 주는 말을 하려면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먼저 그 말이 사실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단순히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자신의 계산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축소, 확대, 왜곡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미국 정신과 의사 제럴드 젤리슨 박사는 사람들이 평균 8분에 한번씩 거짓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해 있기 때문에 언어 관습이 거짓말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내 자랑 같지만"으로 운을 떼는 사람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자기 자랑이고 "이런 말씀드리고 싶지 않지만"으로 얘기를 시작하면 꼭 그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약하고 악하므로 늘 자기방어와 자기 이익을 챙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거짓말은 자신도 모르게 싹트게 됩니다.
둘째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상대에게 유익을 주는 말이 아니라면 일부러 혀끝을 가볍게 던져서는 안됩니다. 사실일지라도 어떤 말은 상대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씨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 그것이 사실이고 상대에게 유익을 준다고 하더라도 공동체의 덕을 살리는 말이 아니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잠언 18:21절은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에베소서4:29)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10-11절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며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에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쫒으라"고 했습니다.


언어에 성숙된 신앙 생활/약3:1-12/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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