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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약4: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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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충웅 목사 |
참고 : |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야고보서 4장 8-10 절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우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서 4장8-10)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가까이 합니다. 명예를 가까이 합니다. 세상을 하나님 보다 더 좋아 합니다.인간에게는 끊임없이 떨고 있습니다. 등 뒤를 따라붙는 불행은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네가 누구냐?”고 물으면 획 돌아서면서 욕망이란 놈이 언제나 느물거리며 히죽이 웃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잠자는 숲 속의 남자라는 소설의 한 장면입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기쁨을 채워줘야 하는 육체를 가진 존재입니다. 자기의 삶을 위해서 몸을 파는 여자도 있습니다.
여기는 군에서 제대한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취직을 위해 위업 원서를 냅니다. 그런 번번이 실패 합니다. 그는 스물다섯 나이에 비참한 삶의 그늘진 곳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백수입니다. 지금도 이런 비극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원서도 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지방 대학의 현실입니다. 이러다가 지방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합니다.
전에 누군가 카우보이 연예인인 윌 로져스를 당황하게 하고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48시간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 하겠습니까?” 현명한 로져스는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한번에 한 가지씩 하겠소.” 몇 년 전에 ‘시간낭비’라고 불리는 장난감이 나왔습니다.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그것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주님과 함께 시작합시다. 사람은 나름대로 계획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 하였습니다. 새벽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루를 주님께 드리십시오. 계획의 세부적인 것 까지 보고 하십시오. 그 시간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십시오.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행복 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사람은 다 불행합니다. 하루의 계획을 짜 보십시오. 하나님과 만남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어떤 환경보다 가장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창조 하실 때 마음에 빈 공간을 남기신 것입니다. 거기에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공간을 채우게 하신 것입니다. 그 빈 공간을 하나님만 채우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삶이 모든 부정적인 요소를 뿌리 채 뽑아야 합니다. 이래야 우리가 변합니다. 새롭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자 합니다.
I. 손을 깨끗이 하라
복음의 결론은 정죄가 아닙니다. 마음과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주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으면 다 해결 됩니다. 하나님을 그를 환영 하십니다. 방종의 값싼 즐거움이 입맛 쓴 슬픔으로 변합니다. 지금까지 따르던 소망이 허무하게 재로 변합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고 합니다.
어느 참회의 글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아니하고 버려두었고 우리가 마땅히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을 했사오니, 우리 안에는 건전함이 없나이다.” 여기 없다는 “건전”은 곧 우리가 정신생활을 자연적으로 지배할 능력이 없이, 갈피를 못 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정신적 감각이 마비된 것을 말 합니다. 회개란 희망을 가지고 자기를 반성, 가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손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이것은 행동을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이래야 합니다.
사실은 당시에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반드시 손을 씻었습니다. 늘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세가 발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예배의 중요함을 잘 압니다. 경건하게 드려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성실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탕자 이야기를 잘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무조건 아들을 사랑 합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 모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잘 압니다. 그 아들이 나가서 실패 할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보내 줍니다. 그에게 자유의지대로 하게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가 계획하는 뜻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려는 탕자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조건 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나 집에 맏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집을 떠날 필요도 없는 패배자입니다. 동생에 대한 반감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불평에 따른 판단과 비난, 아버지의 기쁨을 나눌 수 없는 마음입니다. 분개하고 원망하는 마음입니다. 동생만큼이나 맏아들은 치유와 용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포용 역시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늘 위로가 필요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늘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이 없어야 합니다. 늘 우리는 품위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II. 마음을 성결케 하라
이 말씀은 내적 성결을 말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마음이 건강하면 삶이 깨끗합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생활이 더럽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 하신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늘 우리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옛 로마 격언에 ‘항해사가 어느 항구로 향하는지 모르면 어떠한 바람도 좋은 바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한 일” (빌3:13)을 위하여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일을 다 하리라 기대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주로 우리가 가장 즐겁게 하는 것,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하십니다. 일이 즐거움이 될 때 우리는 더욱 유능하게 됩니다. 단조롭고 고된 일을 할 때에 마음이 그 일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 지를 잘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우리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받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이 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 하십니다.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다 모릅니다. 사람은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모릅니다. 그런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 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우리 늘 진실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쓴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우리에게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에 쓴 뿌리가 있습니다. 이 뿌리를 뽑아야합니다. 뿌리는 기르지 않아도 잘도 자랍니다. 밤사이에 많이 자라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합니다. 우리가 받은 상처와 행한 잘못을 그 분에게 자백하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고통에서 건져 주십니다. 쓴 뿌리를 뽑아내야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세요. 숨겨진 죄는 오랫동안 은밀하게 숨어 있지 않습니다. 쓴 뿌리는 늘 마음에서 자랍니다. 괴로움과 더러움을 낳습니다. 그러니 쓴 뿌리는 심각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런 것은 미리 미리 뽑아야 합니다. 마음이 얼마다 중요하다는 가를 우리는 잘 압니다.
III. 경건한 슬픔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늘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1. 슬퍼하라(탈라이포레인) 이 말씀의 뜻은 먹을 것은 다 떨어지고, 폭풍우 속에서 은신처를 찾을 수 없는 군대의 비참한 상태를 말 합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는 것은 낭비적 사치와 나약한 평안에서, 자발적 절제입니다. 그는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사치와 안일로 생의 표준을 삼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학자를 내는 것은 지성의 훈련입니다. 경기자를 내는 것은 신체의 단련입니다.
2. 애통하라(펜데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죄를 애통하라는 것입니다. 늘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애통 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정말 자기의 잘못을 잘 뉘우치면 사회는 깨끗합니다. 어느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합디다. ‘도부돈법’이라는 신종어가 있답니다. 이 말은 어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1. 도망가고, 2. 붙잡히면 그 사실을 부정하고, 마지막에는 법대로 하시오 한답니다. 그만큼 거대한 사건에 잡혀가는 사람들이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이북에 단돈 1달러도 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얼마 있으면 다 드러날 것을 이렇게 거짓 말 해서 되겠습니까? 이렇게 사회는 부정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들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경건한 슬픔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슬픔이란 세상이 사치와 안일로 살아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애통하라는 말의 펜데오는 웃음을 애통으로 바꾸라는 말입니다. 즐거움을 조심으로 바꾸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기독교인 생활의 첫걸음을 묘사합니다. 기독교인은 자기 죄를 지고 하나님과 직면 할 때 시작 되는 바 그것은 사실 슬픈 경험입니다. 웨슬레가 킹스L 광산의 광부들에게 전도 할 때 눈물이 그들의 검은 얼굴에 줄을 지었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리스챤 생활의 끝이 아닙니다. 무서운 죄를 지고 하나님과 직면 할 때 시작 되는 바 그것은 사실 슬픈 경험입니다.
무서운 죄를 깨달은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늘 실수를 합니다. 그런 그 실수를 실수로 알고 곧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집 부리다가 더 큰 어려움을 당합니다.
3. 울지어다(클라이오) 이 말은 ‘동정한다’라는 말입니다. 동정의 눈물이란 뜻입니다. 세상의 부요와 시치에 잠들어 있는 어리석은 사람을 향한 경고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만한 그런 멋진 세상이 아닙니다. 늘 애통하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눈물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경고를 하십니다.
맺는 말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람은 어리석어요. 정말 미련합니다. 늘 우리는 애통하는 심정으로 살아야합니다. 사람은 죄를 짓고 삽니다. 사람은 다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은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이는 생활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성결해야합니다.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그 생활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우리는 회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회개는 미루면 미룰수록 손해를 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활할 것을 반성합니다. 이런 삶이 정말 잘 사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이해도 그런 삶을 살아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박충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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