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鏡設-새해의 화두

야고보서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145 추천 수 0 2014.03.25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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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약1:19-27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http://sungamch.net 

鏡設-새해의 화두
약1:19-27
*이 원고는 이해의 마지막 날, 자정 예배에 할 원고입니다.


본시 이 말 ‘경설’이라는 언어는 이규보의 한문 수필제목입니다. 그 뜻은 ‘거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나는 2103년과 2104년의 경계에서 어제를 성찰하고 내일을 꿈꿀 때 ‘거울’즉 ‘경설’을 그 화두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우선 이규보의 ‘경설’중 한 토막은 이렇습니다.

거사가 거울 하나를 갖고 있었는데 먼지가 끼어서 흐릿한 것이 마치 구름에 가리운 달빛 같았다. 그러나 그 거사는 아침저녁으로 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가다듬곤 하였다. 한 나그네가 거사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든지, 아니면 군자가 거울을 보고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거사의 거울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고 때가 묻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항상 그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얼굴이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은 맑고 아른아른한 거울을 좋아하겠지만, 얼굴이 못 생겨서 추한 사람은 오히려 맑은 거울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기 때문에 맑은 거울 속에 비친 추한 얼굴을 보기 싫어할 것인즉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깨쳐 버릴 바에야 먼지에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먼지로 흐리게 된 것은 겉뿐이지 거울의 맑은 바탕은 속에 그냥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을 만난 뒤에 닦고 갈아도 늦지 않습니다. 아! 옛날에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함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오히려 흐린 것을 취하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이를 이상스럽게 생각합니까?"하니, 나그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거울이 항상, 모두 맑게 닦여져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먼지가 껴서 뿌옇게 된 거울도 거울로 기능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거울’은 기실 ‘사람’을 가리키거나, 인생사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일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잘난 사람만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고, 못난 사람은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자로 사는 것만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라 가난 하게 사는 것도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좋은 일’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쁜 일’이 삶을 망치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거울을 갖고 삽니다. 백설 공주의 거울은 아주 맑습니다. 고물상 주인의 거울은 백설 공주의 거울과는 다릅니다. 각기 사람들은 자기의 거울에 비친 자기와 세상을 실체로 인식하며 희노애락 합니다. 이규보(1168-1241, 고려후기의 문신, 동국이상국집)는 맑은 거울보다는 먼지 낀 거울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발을 하러 갔다가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발소 주인은 나와 거의 나이가 비슷한데, 그 날은 얼굴 여기저기에 살색 반창코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넘어진 게 확실한 표시였습니다. “술 드시고 엎어졌어요?” 댓바람에 내가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는 그렇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창피해서 여러 날 바깥출입도 하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그는 쭈뼛 대면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얼굴을 까가지고 들어 온 다음 날 아침, 마누라가 발로 걷어차면서 일어나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더니 화장실엘 좀 들어가 보라고, 그래서 얼굴 감싸고 화장실엘 갔더니 화장실 거울에 반창코가 여기저기 붙어 있더라나요? 술에 취해서 까진 제 얼굴에 반창코를 붙인다는 게 그만 거울에 비친 화상에다가 붙인 겁니다. 이 사람에게 거울은 완전히 다른 용도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거울을 가지고 삽니까?
‘오감도’의 이상은 그의 시 <거울>에서 이렇게 그의 거울을 말합니다.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에 나는 왼손 잡이오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요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요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단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1933)

이 사람에게 거울은 기하학적인 대칭점으로서의 거울입니다. 이런 거울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에게는 그 삶이 어떤지 모르지만 세상과, 우주와, 자기와 다른 누군가와는 소통하지 않고 살아가는 아주 이기주의적인 생을 사는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아마 기독교인에게도 거울이 있어야 한다면 이런 거울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시인 윤동주에게도 거울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시>라는 아주 유명한 시 속에 그의 거울이 보입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산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20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그때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1942)

윤동주는 구리거울 속에서 자기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단장하고 화장하고 자기당착에 빠지게 하는 거울이 아니라 성찰하고 역사의 아픔을 고뇌하는 거울입니다. 거울이 주체가 아니라 자기의 내면과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국화 옆에서>라는 글을 쓴 서정주의 거울을 가지고 살았을까요? 나는 대번의 그의 <상가수의 소리>라는 글에서 그의 거울을 찾았습니다.

질마재 상가수의 노랫소리는 답답하면 열두 발 상무를 젓고
따분하면 어깨에 고깔 쓴 중을 세우고
또 상여면 상여머리에 뙤약볕 같은 놋쇠요령 흔들며
이승과 저승에 뻗쳤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안 하는 어느 아침에 보니까 상가수는 뒷간 똥오줌 항아리에서
거름을 옮겨 내고 있었는데요
왜, 거, 있지 않아
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
거길 명경으로 해 망건 밑에 염발질을 열심히 하고 섰습니다.
망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털들을 망건 속으로 보기 좋게 밀어 넣어 올리는
쇠뿔 염발질을 점잔하게 하고 있어요
명경도 이만큼만 특별나고 기름져서
이승저승에 두루 무성하던 그 노랫소리 나온 것 아닐까?(1975)

서정주의 거울은 조금 깊고 오묘한 구석이 있지요? 뒤란 똥오줌 항아리를 거울로 치고, 거기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보고 있는 겁니다. 그에게 거울은 단지 장식품이 아니라 생명의 경계 지움과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어떤 물질을 거울화 한 게 아니라 인생살이의 부산물 같은 똥오줌 통을 거울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쁘고 아름다운 거울을 갖고 있는 이들이 지천인데 왜 하필이면 이런 사람들의 조금은 유별난 거울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설공주의 거울을 갖고 싶어 하는데, 똥 오줌통 거울이라든지, 녹슨 구리거울이라든지, 때 낀 거울이 있음을 알려주는 까닭은 뭘까요?

누군가 말하길, 인간의 참 모습은 그 사람의 앞이 아니라 뒷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앞부분은 칠하고 덮고 가리고 꾸며서 자기와 남을 속이지만, 뒷모습은 꾸밀래야, 가릴래야, 덮을래야 덮을 수 없기 때문에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백설공주의 거울이 아니라 자기의 뒷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지녀야 하겠지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떤 거울을 갖고 삽니까? 어떤 거울에 자기의 속사람과 겉 사람을 비추며 살고 있습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약1:19-27입니다.
이기적이고 허구적인 백설공주의 거울은 이제 버리세요. 그것은 세상 그 자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거울’로 살아야 합니다. 이 거울이야 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맑고 바르고 영원히 비추는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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